나의 이야기

물리적인 나는 과연 무엇인가?

아이루다 2012. 9. 24. 10:38

 

가끔 황당하지만 나를, 나자신이 도대체 어디에 있을지 생각해본다. 무슨 말인가 싶기도 하겠지만 지금 내가 이글을 쓰려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단어를 고르고 타이핑을 치고 있는 나의 존재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마치 딱딱한 기계로 이루어진 컴퓨터에 전기가 공급되면 부팅이 되고,  설치된 OS가 로딩되면서 내가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처럼 딱딱한 하드웨어인 나의 몸을 이루는 뇌가 오감으로 부터 받아들인 정보를 바탕으로 어떤 결론을 도출하여 나로 하여금 특정 목적을 가진 행동을 하게 만들고 있다.

 

내가 글을 쓰는 과정을 단계별로 자세히 살펴보면, 나는 일단 눈으로 이 글이 모니터에 내 의도대로 맞는 단어가 나열되는지 감시를 한다. 띄어쓰기나 단어, 그리고 어떻게 다음 글을 이어나가야 할지 생각한다. 눈은 모니터에 있는 광학적 정보를 신경망을 통해 뇌에 전달하긴 하지만 눈은 그냥 거기까지가 자기가 맡은 역할이다.

 

눈은 정보를 선별하거나 보고 싶고 보고싶지 않고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냥 외부에서 들어오는 모든 광학정보를 뇌로 전달만 한다. 그리고 눈을 통해 들어온 정보는 거의 내가 제대로 글을 쓰고 있는지를 검증하는 역할을 할 뿐 그 자체가 생각이 아니다. 내가 다음으로 이어 나가야 할 말은 뇌에서 계속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 이 순간에 쓰여지는 말 역시 지금 방금 뇌에서 생각해 낸 것이다.

 

뇌의 생각은 그것을 글로 남기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기에 손의 움직임을 조절해서 오타가 나지 않도록 뇌가 선택한 글을 화면에 써 놓도록 한다. 만약 여기에서 오타가 나면 눈이 먼저 인식을 하고 뇌가 판단한 후 백 스페이스 문자나 딜리트 문자를 눌러 삭제를 시킨다. 만약 제대로 썼다면 그냥 지나간다.

 

문맥이 어느정도 끊겼다고 생각되면 엔터키를 두번 눌러 라인을 떼고 다음 글을 이어나간다. 글을 쓰면서 글이 쓰여지는 과정을 기술하니 좀 웃기긴하다. 마치 의사가 자신의 몸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수술을 하는 듯 하다.

 

뇌는 분명히 실체가 있는 물체이다. 그럼 나는 어디에 있을까? 뇌속에는 수 많은 신경망이 정말 엄청난 규모로 구성되어 있고 거기엔 끊임없는 약한 전기신호가 빠른 속도로 전달되고 있다. 과거의 기억을 찾고 거기에서 연관된 가능성을 분석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결국 행동하게 한다. 오직 물리적 행동이 '사고' 라는 비 물리적 개념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지구상에 살았던 그리고 살고 있는 수 많은 인간들이 너무도 당연하게 하고 있는 일이지만 잘 생각해보면 마치 바위가 생각을 하는것 처럼 매우 놀라운 결과이기도 하다. 어떻게 물리적인 존재가 생각과 사고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오래 전 인간은 영혼의 개념을 만들었다.

 

이 영혼의 개념은 그래서 매우 구체적이면서도 희망적이다. 우리는 보통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는 사고를 한다. 육체적인 것은 실제 신체를 의미하고 정신은 지금 이 글을 쓰게 만드는 존재이다. 그리고 그 존재를 영혼이라고 하고 또한 그 존재의 불멸성을 꿈꾼다.

 

육체는 100년의 시간이 지나면 이게 거의 쓸 수 없는 단계가 된다. 그럼 인간이 자신이라고 여기는 정신이 머물곳이 없어져 버린다. 실제로는 뇌에 더이상 영양분이나 에너지를 줄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는 전기를 공급받지 못하는 컴퓨터같은 상태가 되지만 그걸 인정하기엔 우리는 스스로 너무 높이 평가하는 단계에 와 버린 것이다.

 

연약한 육체로 지구에 존재하는 그 모든 동식물과의 경쟁에서 승리하여 최고의 포식자 단계로 올라와 지구를 떠날 수 있는 정도까지의 과학문명과 정말 어마어마한 지식을 쌓아 둔 인간의 공동화 능력은 스스로를 너무나 높은 단계로 승격시켜 버린 것이다. 그러니 하찮은 육체가 사라진다고 해서 우리 스스로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그 얼마나 허무하고 두려운 일인가?

 

결론적으로 우리는 신을 만들고 영혼을 정의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생각에 동조하여 종교가 만들어지고 신과 소통한다고 그 대역을 자처한 이들이 나타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간에게 종교가 만들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과정이다. 우리는 왜 천둥이 치고 땅이 갈라지는지 그 이유를 몰랐으며 어느날 내곁을 떠난 사람들의 차디찬 시신을 보며 공포에 사로잡혔다.

 

우린 스스로 위대한 존재인데 죽음이란 결론은 너무도 두렵고 대책없는 사건인 것이다. 하지만 신이 만들어지고 신이 우리를 만들었으며 또한 사후 세계가 있다는 종교의 주장은 단번에 우리의 모든 고민을 해결해준다. 내가 죽어 사라질 일도 땅이 갈라지고 집채만한 파도가 치는 것도 다 신의 뜻이니 우린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말이다.. 조금만 겸손해져보자. 정말 우린 스스로 그렇게 대단하고 존귀하고 육체적인 죽음이 있을 후까지 존재 해야 하는 영원불멸의 가치를 가진 것인가?

 

이야기가 잠시 샜는데 아무튼 나는 아직도 그 정체를 모르겠다. 지금 눈을 통해 모니터를 보고 있는 그 존재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왜 그 존재는 나로 정의되고 내 육체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는가? 물론 그것도 부분적이긴 하다.

 

 내 의식은 내 심장을 멈추지 못하고 내 소화기관이 소화를 해내도록 돕지 못한다. 또한 내가 느끼는 수 많은 감정을 조절할 능력이 안되며 그 감정에 뒤따른 행동을 하기 바쁘다. 그러니 나의 실제적 주인은 내가 아닌 나를 조절하는 또 어떤 무언가이다. 그것을 '무의식'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꿈을 꾸게하고 호르몬을 조절하고 자율신경계를 조절하며 몸이 살아가게끔, 즉 몸이 죽지 않고 살아갈 가능성이 가장 높은 쪽으로 나를 몰아댄다. 나는 무의식에 제공되는 각종 호르몬에 의해 그때 그때마다 나의 다음 생각과 행동을 결정하는데 위기를 느끼면 아드레날린을 분비해 우리를 경계상태로 만들어 경직시키고 편안함을 느낄땐 옥시토신을 분비해 육체를 편하게 안정시킨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나는 실제 나를 지배하는 어둠의 세력에 속한 행동대장일 수 있다. 나는 내 존재에 대한 주인이라고 스스로 인식하지만 나의 생각을 조절하는건 절대나의 자유의지가 아니다. 내가 배가 고파 밥을 먹는 과정도 배가 고프다는 신호를 내가 만든것이 아니니 그것은 그냥 나로 하여금 먹을 것을 찾게 만드는 자극에 따른 행동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배가 고파 먹을것을 찾아 먹을땐 나는 행복감을 느낀다. 그런데 그 행복감은 배고프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부터 힘들게 먹을 것을 찾아 먹은 나의 육체적 수고로움 (실제로는 에너지 쓰임)에 대한 보상이다.

 

만약 배가 고픈 것이 그닥 큰 느낌이 없고 또 먹어도  만족감(행복감)이 거의 없다면 과연 나는 지금의 편안한 상태를 깨고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가는 수고를 하겠는가 말이다. 거기에다가 지금은 덜하지만 예전에 인간에게 있어서 먹이를 구하는 과정은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대단한 결심이 필요했다. 자녀를 낳아 기르는 과정은 어떠한가? 만약 육아에 있어서 아무런 정신적 보상이 없다면 우리는 절대 아이를 낳이 기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나 자신. 이 글을 쓰며 내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나 자신. 하지만 실제로 나 자신은 안개속에 있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일을 하게 만들고 움직이게 만들며 요리를 하게 하고 그 요리를 먹게 하고 먹은 결과를 배설하게 하고 여자친구를 만나게 하고 잠을 자게 한다.

 

나는 그냥 그 어둠속의 존재의 시다바리이다. 그래서 난 그 존재에게 묻고 싶다. 왜 좀 더 나은 사고체계를 갖지 못해서 나를 좀 더 낫게 만들어주지 못하는가? 왜 나의 신경망을 더욱 빠르게 해서 내가 운동신경이 좀 더 나아지도록 못하는가? 왜 자꾸 나한테 부족한 하드웨어를 주고 뭔가를 힘들게 더 하도록 강요하는가?

 

스스로 좀 더 발전할 생각은 없는가? 나를 소위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뇌구조처럼 왜 만들지 않는가? 단지 그것이 회로 구성망의 차이인가? 아니면 신호를 보내고 받는 방법의 차이인가? 뇌는 어린시절에 따라 개발되기도 한다는데 그렇다면 왜 스스로 더 똑똑해지지 못하는가?

 

매일 나한테 발전적으로 되도록 강요하면서도 스스로는 왜 더 발전하지 못하는가 말이다. 나는 정말 그 어둠속의 존재에게 따져묻고 싶다. 게으른 무의식 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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