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자신의 행복을 타인에게 권하는 사회

아이루다 2012. 8. 11. 14:09

개인적으로 국제경험이 영 미천하여 타국 문화와 우리나라 문화를 제대로 비교 할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우리나라를 망령처럼 떠도는 다 같이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직장생활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회식문화에 대한 어떤 생각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회식이 좋아요. 어떤이는 그냥 별 생각없어요. 어떤이는 회식은 너무 싫어요 할 것이다. 하지만 회식은 다 같이 참여해야 하는 일종의 직무 연장 시선이 많다.

 

나도 개인적으로 회사 회식을 무척 싫어했는데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술이었다. 또한 너무 길어진다는 것이다. 다음날 업무에 지장을 줄 만큼 심하게 오래 지속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끝나고 대중교통이 다 끊겨 택시를 타고가야 하는 것도 싫었다.

 

우린 어려서부터 같이 모여서 노는 문화에 무척 익숙하다. 또래끼리 늘 어울리며 지내게 되는데 그 놀이문화가 성인까지 그대로 오는 것이다. 어떤 회사에 회식문화가 먹고 마시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것을 주도하는 윗사람이 먹고 마시는 것을 좋아해서 그렇다. 그것이 절대 조직의 단합을 위한 것이 아니다. 회사의 돈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술과 고기를 먹고 신나게 놀다가 가는 행사. 이것이 윗 사람들이 회식을 즐기는 단 하나의 이유이다.

 

여기에서 좀 더러운 놈이 있으면 꼭 술 먹고 여직원에게 스킨쉽을 한다든가 술을 따르라고 하는 행동을 한다. 명확히 회사내의 직책 우위성을 통한 성희롱이다.

 

내가 또하나 곤혹스럽게 여기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아이를 안는 것이다. 난 왜 그런지 몰라도 아이가 싫다. 누군가는 내가 애를 낳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는데 솔직히 애를 낳아도 싫을것 같다. 이런 내 특성은 내가 좀 아는데 좀처럼 잘 안바뀐다.

 

그런데 주변에 애를 낳은 이들이 가끔 나에게 아이를 맡긴다. 안고 있으라고 한다. 그런데 말이다.. 나는 그 부모들처럼 그 애를 안고 있는것이 절대 행복하지 않다. 부모는 선량하고 행복한 얼굴도 너도 그 행복을 맛보아라는 얼굴로 맡기지만 난 솔직히 별로다. 난 거의 어떤 행복감도 못 느낀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은 노래방을 가자고 하고 노래하는 것이 제일 행복하다고 한다. 당구를 잘치는 사람은 당구를 치자하고 당구가 제일 행복하다고 한다. 낚시, 골프, 축구 등등 사람이 모여야만 할 수 있는 놀이들은 끊임없이 타인의 참여를 요구한다. 그리고 어느 모임이나 주도적인 무리들이 자신들이 잘하는 것을 골라 그 모임의 주요 행사로 이끈다.

 

남자들의 모임은 주로 술로 시작한다. 그리고 단란주점이나 룸싸롱을 간다. 난 그래서 남자들의 모임이 거의 없다. 과거 한때는 나 역시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많이 참가했었지만 나이를 먹고 나니 정말 재미없어서 못있겠다.

 

아무튼 이래저래 빼다보니 난 세상에서 매우 외로운 사람이 되었다. 어쩔 수 없다.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고 대화주제 역시 너무 달라서 이렇게 되어 버렸다. 그런데 솔직히 이게 좀 편하다. 가끔 심심함을 느낄때도 많은 그냥 세상에 살아남은 사람들과의 대화는 너무 진부한 경향이 있다.

 

뭐 요즘 세상은 좀 많이 바뀐것 같다. 회식문화도 바뀌고 젊은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바뀌고 해서 다들 각자 재밌고 행복한 것을 한다. 그런데 문제는 각가 재밌고 행복한게 너무 한정적이란 큰 단점이 있다.

 

다양한 행복꺼리가 있어야 하는데 젊은애들에게 물어보면 여행, 영화, 친구와 떠들기, 친구와 술마시기, 스마트폰으로 카톡하기, 드라마, 스포츠 보기나 하기. 나이 먹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등산, 친구모임, 정치얘기, 조금 나은 취미가 텃밭가꾸기 정도이다.

 

목공을 좋아해서 나무를 가져다 만들어보는 사람도, 인체 발전기를 연구해보는 사람도, 철학책을 읽고 토론해보는 사람도, 집을 가꾸기 위해 공구를 사러 다이는 사람도 없다. 그냥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것을 잘 골라서 쓴다. 그런것에 시간을 쓰기엔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 장소도 없다.

 

편하고 편한 아파트에 살아야 좋고 마당이나 그런것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아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꿈이긴 하지만 현실은 아파트를 선택한다. 왜냐면 편하니까.

 

그렇게 정해진 행복을 주변에 소개하고 같이 하길 원한다. 축구를 혼자 할 순 없고 카톡을 혼자 할 순 없다. 그런 것들은 모두 나와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이 있어야 하므로 타인과 나를 가능하면 맞춘다. 비슷하게 만든다. 그리고 행복해 한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들이고 왜 저렇게 사는지 이해가 안간다. 우리는 그렇게 정의되어져 있다.

 

나의 행복은 과연 정말 근원적인 나의 행복인가? 나의 열등감이 나의 부족함이 나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닌가? 내가 이룬것이 없으니 타인들로 부터 존재감을 인정받고 싶어서 타인들과 끝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진 않는가? 대화가 즐거워서 그렇다고? 왜 대화가 즐거운가? 그 대화를 나누는 내가 뿌듯한건 아닌가?

 

자신의 행복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태도도 문제지만 자신의 행복 그 자체도 제대로 이해못하는 것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