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말하기만 쉬운것들

아이루다 2012. 7. 12. 09:47

작년쯤인가.. 트위터를 잠깐 한적이 있었는데 대학동기 중 한명이 혜민스님이란 사람이 쓴 트윗을 자주 리트윗해서 우연히 그 스님의 글을 자주 읽게 되었다. 꽤 공감가고 또 삶을 살아가는데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야할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써주신 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로부터 몇달이 흐른 후.. 우연히 어느 신문기사에서 그 스님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흘리듯 읽었었고 '아 그 스님이 꽤 유명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지나갔다. 그리고 한달 전쯤인가? 책을 냈다는 신문 기사를 봤고 또 어느 통신사 광고인가에 나온 모습을 보았다. 아마 영화관 갔다가 본 광고에서 봤을 것이다. 집엔 아예 TV가 안나오니 내가 따로 광고를 볼 일이 없다.

 

그리고 바로 며칠 전 어떤 기사가 하나 더 났는데 그건 워킹맘(맞벌이 부부 중 엄마를 칭하는 말)들에게 새벽에 45분 일찍 일어나 아이와 놀아주라는 트윗이 워킹맘들에게 많은 원망을 듣고 있다는 기사였고 또 하루 뒤인가 그것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는 기사도 봤다. 아무튼 그 기사에 같이 나온 캡쳐 화면 중 누군가 댓글을 달아놓은 것을 보았는데 "목사님/스님들이 당신들이 겪어보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일반 사람들의 삶에 대해 너무 쉽게 해법을 던지는 것은 때로는 너무도 무책임해보이고 사려깊지 못해 보인다" 라는 글이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마음 한켠에 싸늘함이 번졌다. 기분나쁜 느낌이 아니라 그냥 깊은 공감을 했다고 할까?

 

우리는 우수운 말로 이런 표현을 쓴다. 우리가 초등학교때 받은 도덕교육만 제대로 지키고 살면 세상은 아름다워 질것이라고.

 

교통질서를 지키자.

나쁜 짓을 하지 말자

괴롭히지 말자.

어려운 이를 돕자.

 

뭐 똥을 화장실에 싸자. 배고프면 밥먹자 그런 교육은 따로 받지 않지만 잘하면서 교육받은 것을 지키는 것은 왜그리 다들 힘들어 할까?

 

어떤 글이나 말이 힘을 가지려면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보통 사회적 명사가 된 사람들이나 성공한 사람들이 한 얘기들이 명언이나 잠언식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이다.

 

아마도 내가 쓰는 많은 글들 역시 이런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많은 글에서 어떻게 살아야 한다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한다는 것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재빠르고 명백한 정의. 노숙자에게 왜 사지 멀쩡한 사람이 일하지 않느냐라고 물어보는 것이나 빚에 쪼들린 사람에게 왜 빚을 질 행동을 했으냐라고 따지는 것이나 자살을 하려는 사람에게 인생은 희망이 있으니 살아갈만 하다 라고 말하는 것들이 과연 말이나 글로서 힘이 있을까?

 

만약 자살을 하려는 사람에게 내가 상담자로서 배정이 된다면 과연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내가 자살을 하기 위해 약을 먹어본 적도 없는데 말이다. 공감이란 것이 형성될 리가 없다.

 

사람들은 치유를 말한다. 앞에서 언급한 혜민스님이 어디선가 강연을 했다는데 650명이 순식간에 모였다고 한다. 치유를 받기 위해. 그런데 말이다.. 급한 계획으로 진행되는 그런 행사에 정보를 듣고 와서 청강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수준이 과연 치유를 필요로 하는 수준일까?

 

손가락이 베어서 아픈사람과 암에 걸린 사람 중 누가 치료를 받아야 할 대상일까? 작은 농담에, 자기를 낮추는 발언에 공감하면서 어린 시절 어려움을 겪었던 일들에 대한 아련함을 고개 끄덕이며 듣고 있는 그 사람들의 상처도 물론 상처라고 말할 수 있다.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말이다. 이 사회에 진정하게 치유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 누구이며 또 그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서 스스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깊은 고뇌와 실천이 따르지 않는다면 누가 한 말이든 글이든 그것은 단순히 음성과 문자일 뿐이다. 깊이가 없는 말은 그냥 말장난으로 끝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시대의 사람들은 다들 아파하고 힘들어한다. 그래서 치유받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왜 이 사회가 그렇게 되었을지 스스로 반성하지는 않는가? 내가 내 자식 하나 더 챙길때 남의 자식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는 수 많은 부모들.. 내 부모, 내 가정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무한 경쟁사회를 만들어가는 집안의 아빠들, 그리고 내자식 최고를 만들기 위해 어마어마한 사교육속으로 애들을 밀어넣은 엄마들. 내가 성공하고 위해 내 친구를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다른 도시에 사는 누군가를 넘어서고자 그리고 직장내의 누군가보다 먼저 출세하고자 노력한 그 수많은 사람들의 이기심이 모여 모여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낸 것이다.

 

능력보다는 내가 아는 사람인지, 내 고향사람인지, 내 대학교 후배인지가 더 중요한 사회적 판단기준에서 끝없이 동창회다 친목모임이다 하면서 무리짓고 배척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머리에서 나온 행복에 대한 공식이 과연 얼마나 제대로 된 행복을 증명해낼 수 있을지 정말 의문이 든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주면서 또 서로를 시기하고 미워하면서도 또 다른 이득을 위해 웃고 지내는 이런 행태의 인간관계가 지속되는 한 우리에게 진정한 치유는 올 수 없다. 치유를 받는 강연을 참석하기 위해 또다른 경쟁을 통해 타인에게 상처를 줬을 그 청중들과 그런 것을 외면한 채 공감과 치유를 말하는 그 스님의 모습에서 진정함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마 내가 삐뚤어졌기 때문일것이다. 인정한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안치환씨가 부른 노래이다. 예전에 큰누나가 이 말에 대해 깊은 치유를 받았다고 표현했는데 나 역시 그렇다. 사람은 사람과 관계속에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느낀다. 우리가 이렇게 끝없는 개인/가족 이기주의의 모습속에서 살아간다면 아마도 우리의 최종 모습은 내 손톱에도 피가 내 얼굴에도 피가 흥건한 상처주고 상처받은 그런 모습만을 누리게 될 것이다.

 

과연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 이 말이 갖는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의 비율이 얼마나 될까 궁금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