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기계적 중립에 관한 의견

아이루다 2012. 5. 29. 11:23

 

지난주 아는 후배와 차를 타고 가는 중 갑자기 진화론과 창조론에 관한 논쟁이 벌어졌다. 뭐 진화론이 맞다 창조론이 맞다 그런 종류의 논쟁이 아니고 내 입장은 진화론은 과학이고 창조론은 실제로 이론이라고 불릴 수 없는 유대교 창조신화이니 이 둘을 동일한 등급의 이론으로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관점이었고 후배는 진화론이든 창조론이든 아니면 또다른 어떤 것이든 간에 아직 완벽히 증명된 것이 없으니 모두 가능성을 열어둬야 하는 입장이었다.

 

뭐 물론 기본적인 맥락에서 나 역시 그 후배의 의견에 동의한다. 세상에 절대적이란 말이 어디있단 말인가. 우리가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우주조차도 팽창하고 있다는 것이 20세기 초반 허블에 의해 관측된 후로 이젠 모든 것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에 의해 봐져야 하는데 말이다!

(아인슈타인도 자신의 이론이 가르키고 있는 동적 우주론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우주가 고정되도록 우주상수란 것을 만들어 자신의 이론에 끼웠다가 나중에 팽창한다는 사실이 관측된 후 그 상수를 없앴다)

 

그날은 운전 중이라서 좀 정신도 없었고 내 나름대로 기독교 창조신화와 진화론에 대해 공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나 하나 이 문제점을 설명해줄 능력이 되지 않아서 그냥 너가 좀 더 공부를 한 후 얘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물론 좀 답답해서 언성이 높아진 상태로 말했으니 그 후배의 입장에서 그 말이 고깝게 들리지 않았음이 분명하고 그래서 나에게 어떤 주제에 대해 논쟁을 하는데 있어서 먼저 공부를 해야 한다면 어디까지 공부를 해야 대화가 가능하냐고 되물었다.

 

뭐 기본적으로 맞는 말이다. 과연 어디까지 공부해야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할까?

 

예전에 이정부 초반에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관한 집회가 열렸을 때 우리나라 보수의 탈을 쓴 쓰레기 언론에서 무슨 말을 했나면 바로 왜 법을 어기면서 집회를 하느냐 하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문제점에 대한 해결을 법을 지키면서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아주 교묘한 물타기 수법 중 하나이다.

 

그 당시 내가 봤던 만화 한컷이 기억에 남는다. 횡단보도 건너에 꼬마 아이가 아주 위험하게 찻길로 나오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길 건너에 있으니 파란불로 바뀔때 건널 수 있다. 그런데 그 꼬마가 그 전에 사고를 당할 지경이다. 그래서 난 좌우를 살피고 빨간불에 재빨리 길을 건너려 하는데 어떤 한분이 다가와 나를 붙잡고는 왜 빨간불에 길을 건너느냐면서 법을 지키라고 한다. 나는 상황을 설명하지만 그 사람은 계속 같은 논리이다.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아이는 사고가 나서 죽는다.

 

 

어떤 의견에 대한 중립성. 중요하다. 매우 중요하다. 서로 반대되는 의견을 들어서 치우치지 않는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려 하는 것, 나 역시 가고자 하는 길이며 공자님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중용의 도이다. 내가 이것을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그 후배는 그것을 기준으로 나를 판단한다. 왜 나에게 한쪽의견만을 맞다고 주장하는가 라고 묻는다.

 

나는 그 당시 좀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뒤늦게 생각해보니 내가 바로 그 기계적 중립태도와 논쟁을 한 것이다.

 

우리는 세상 모든 일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늘 미디어를 통해 나오는 기사나 지인이나 타인이나 혹은 인터넷 댓글들을 통해 끊없이 정보를 얻고 판단한다. 그러다보니 실제로 경험하지 못하고도 제법 그럴법한 내용을 알게 되면 그로 인해 어떤 사건이나 사상에 대한 판단이 가능하다.

 

하지만 더 잘 생각해보자. 우리가 내가 아닌 타인의 눈과 입을 통해 전달받은 그 사실이라고 말해지는 것들이 과연 얼마나 진실에 다가간 것일까? 농민들의 삶의 애환을 다룬 기사가 연재되었다고 해서 그 기자가 정말 그 애환을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절대로 불가능하다. 실제로 자신이 시골에 가서 몇년 농사짓지 않는 한 불가능한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우린 이런 종류이 기사를 너무 쉽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것이 틀리지 않았다고 믿는다.

 

늘 그렇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정말 미디어에 표출된 피상적이고 기계적이고 이익중심적인 것들 뿐이다. 진실은 늘 저멀리에 있고 카메라에 기자의 펜으로 들어나는 것들은 모두 꾸며지고 누군가 의도한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것들로 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려면 정말로 노력을 해야한다. 스스로 그 내부를 바라보려하고 또한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공부를 해야하는 것이다.

 

지금도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양비론을 내세운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오십보 백보..

 

우린 프레임이란 용어를 쓴다. 특히 보수라고 칭해지는 집단이 만들어 내고 있는 프레임은 정말 끔찍할 정도로 정교하다. 그리고 우린 거기에서 기계적 중립을 본다. 그런데 정말 그것이 중립일까?

                                                        (극좌)                                                                         (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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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체 의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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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중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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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허접한 그림에서 안쪽 사각형이 바로 언론이 만들어 내는 프레임이다. [전체의견]이라고 표현된 전체 공간에서 우측으로 한참 치우친 공간에 다시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 내고는 이것만을 끝없이 강조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중립을 주장한다. 과연 이 상태에서 저 [중립]이란 글자가 정말 중립에 서 있는가?

 

중립은 중요한 가치이다. 하지만 스스로 판단할 수 없는 자신의 지식범위를 벗어난 것들에 대해 기계적 중립은 매우 위험하다. 아예 판단 자체를 안하는 것이 옳다. 아무것도 아는 것도 없으며 누군가 만들어 낸 것인지도 모를 것에 대해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

 

우리나라 보수는 보수가 아니다. 보수란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고 안정적이고 과거의 가치를 유지해나가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보수는 그냥 일제시대 부터 이 나라를 지배해 온 지배계급이며 이익집단이며 기득권이다. 도대체 사람들이 새누리당을 지지하면서 보수라고 말하는 이유가 뭘까? 바로 조중동이 만들어내는 프레임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따로 공부를 해야한다. 저 그림에서 전체 의견을 알고자 한다면 아주 넓게 공부를 하고 자신이 갖힌 프레임을 벗어나야 한다.

 

다시 진화론과 창조론으로 돌아가보자. 과연 정말로 진화론과 창조론을 동일 선상에 놓을 수 있는가?  그리고 왜 실제로 그 둘을 반대의 의견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진정한 이유는 2천년 넘게 유럽을 지배해 온 종교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이다. 실제로는 1800년 동안 지배해왔고 겨우 2백년 전에 진화론이 나와서 수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은 아직은 모두 유대교에서 시작한 천주교/기독교에서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갖힌 것이다. 여기에서 중립을 찾는 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일까?

 

진화론은 과학논리이다. 지금도 연구되고 있으며 지금도 수 많은 논문이 발표되고 있으며 오류도 발견되고 그 오류를 극복해내고 있기도 하다. 물론 틀린 이론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진화론이 틀렸다면 다른 과학이론이 그 자리에 들어가야 한다. 뉴튼의 만유인력의 법칙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해 보정된것 처럼. 둘은 완전히 다른 이론이지만 둘은 같이 과학이란 틀에 있다.

 

진화론은 과학의 이론이며 창조론은 그냥 신화이다. 유대인에게 내려온 신화.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는 창조신화가 있다. 우리나라에도 환웅과 웅녀로 대표되는 단군신화가 있다. 그럼 우리나라의 단군신화도 진화론과 동등한 입장에서 다뤄져야 하나?

 

물론 개인적으로 종교관을 가지고 창조론을 믿는 분들을 탓할 마음이 없다. 나는 절대 믿지 못하는 신의 존재를 믿는 분들이니 이런것은 실제로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왜 과학논리와 싸우는가? 창조과학회 같은 이상한 단체를 만들어서 말도 안되는 논리를 통해 지구의 역사가 6천년이라고 주장하는 그런 분들의 모습은 과연 무엇 때문인가? 자신이 믿는 종교과 과학적으로 말이 안되니 그것을 억지로 맞춰서 옳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인가?

 

진화론, 문제 많은 이론이다. 화석발굴이나 지질학 연구해서 겨우겨우 과거를 보고 있는 학문이다. 그래서 아직도 끊어진 고리가 많고 설명하지 못하는 것도 많다. 그렇다고해서 진화론이 문제가 많으니 창조론이 대안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우수운가?

 

구름이 왜 생기는지 모르니 구름은 하나님이 만드는 솜사탕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바가 뭐가 있는가 말이다.

 

어떤 분들은 인간과 같은 고등 생물을 만드는 것이 진화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말하기엔 우린 너무 위대한 생물체가 아닌가 라고 말한다. 이 말처럼 인간의 오만함을 느끼게 해주는 말이 어딨는가? 정말로 우숩고도 너무 어이없는 생각이다. 내가 위대하고 인간이 위대하다고?

 

우리 인간은 수백조개 될지도 모른 행성 중 하나를 지배하고 있는 생명체 중 가장 상위 포식자이다. 포식자.. 그 말의 의미를 모르는가? 우린 어떤 생명체를 멸종 시킬 수도 있고 또한 복제해서 만들어 낼 능력도 된다. (감기 바이러스 같은 것은 멸종 못시킨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위대한가?

 

우리가 개보다 똑똑하다고 해서 우린 위대한가? 정말로 그렇게 믿고 싶은가? 우리가 한번 쓰담어주면 좋아서 꼬리 흔다는 개보다 똑똑해서 우린 위대하냔 말이다.

 

아무튼 지금 이 글은 진화론 창조신화를 어떻게 믿느냐를 비판하기 위한 글은 아니니 더이상 나가지 않겠다. 중요한 것은 정말로 어떤 것을 판단할 때 공부좀 하고 하자는 것이다. 누군가 알려주고 누군가 주입시킨 사고방식으로 만 세상을 보면 도대체 이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싶다.

 

 

사족.

 

조금 재밌는 것은 내가 그 후배를 안지가 이제 거의 10년이 되어가는데 그당시 나는 한참 정치문제에 관심이 있었고 그 후배는 나이가 나보다 한참 어려서 그런 문제에 거의 관심이 없었으며 또한 정치 얘기를 하는 것에 대해 별로 탐탁해 하지 않는 입장이었는데 요즘은 나보다 더 정치문제에 관심이 많는 모습을 보인다. 왜냐면 요즘 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몇년동안의 관심을 그 후배의 정치적 지식을 많이 향상시켰고 그래서 예전보다 훨씬 제대로 중립을 찾아가고 있다. 거기에서 나꼼수는 아주 지대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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