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존재의 이유, 해답이 없는 문제

아이루다 2012. 5. 7. 10:47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다보니 동물에 관한 것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특히 BBC에서 만들어내는 작품들은 정말 대단한 수준이다. 며칠전 'Frozen Planet' 이란 6편자리 다큐를 봤는데 북극과 남극의 봄/여름/가을/겨울의 생명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수작이었다.


북극은 역시 북극곰이 주인공이고 남극은 역시 펭귄이 주인공이었다. 그 둘은 각자 영역에서 머물며 태어나 살고 짝짓기 하고 양육하고 사냥하며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아마 내가 평생 실제로 볼 일이 없는 그 동물들을 보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들과 동화되어 감동하고 웃고 흐믓해하며 안타까워 한다.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북극곰은 매년 그 존재를 위협받고 있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남극의 황제펭귄들은 자식을 잘 키우고자 영하 70도까지 떨어지는 남극 대륙에서 겨울을 나는 모습은 수만마리도 넘을 것 같은 그 무리들이 모두 한방향으로 서서 묵묵히 몇달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강한 감동을 준다.


그리고 나는 생각해본다. 결국 저들은 무엇때문에 저렇게 힘들고 척박한 환경에서 정말 어렵게 어렵게 양육하며 살아가는지를 말이다.


어쩌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존재 하나하나는 단순히 한세대를 이어가는 도구일 뿐 도대체 그 존재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물론 생태계 구조상 그들은 먹고 먹히는 관계로 이어져 어떤 한 개체가 없어지면 다른 개체들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동물들에게 존재의 이유가 있는 것인가?


설마 다른 포식자에게 잡혀 먹히려고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들이 감정을 가지고 유희를 즐기는지도 모르지만 몇달을 굶고 새끼를 잃는 고통을 느껴야 하며 숫컷들은 암컷을 차지하게 목숨을 건 생존 싸움을 벌이기도 하는 모습에서 어떤 이유를 찾아낼 수 있을까 싶다.


그렇다면 인간은 다른가?


연관되어 떠오르는 질문이다.


인간은 동물이다. 우리가 아무리 똑똑해도 우리가 동물이란 것은 전혀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북극곰처럼 태어나고 양육되며 먹고 싸고 번식하며 양육하고 죽는다.


기본적인 흐름에서는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대놓고 싸우지는 않지만 남자들은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암묵적 경쟁을 하고 여자들은 더 나은 남자들에게 선택받기 위해 그들의 가치를 높인다. 더 좋은 먹을것을 차지하기 위해 직업을 가지고 높은 연봉을 위해 노력한다. 


그렇다면 나는 왜 존재하는가? 내가 태어난 것은 내 의지가 아님은 분명하다. 나는 그냥 우연히 태어난 존재이다. 물론 나는 우리집에서 의미를 가진 존재이다. 딸 셋을 연속해서 낳은 어머니가 남자를 낳기 위해 나를 낳은 것이다. 그러니 어머니에게는 나는 어쩌면 희망과 안도의 존재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가족을 포함한 다른사람들에게서 필요하다고 해서 나의 존재의 이유가 되는 것인가? 마치 포식자에게 먹이가 될 필요가 있는 동물처럼?


그건 아닌듯 싶다. 아니 정말 아니다. 내가 의미가 있으려면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없다.


나는 철학자는 아니지만 철학에 대해 쥐꼬리만큼 책을 읽었고 심리학자도 아니지만 인간의 심리에 대해 나의 심리에 대해 오랜 시간 호기심과 관찰을 해왔다. 나는 유전공학자는 아니지만 우리의 존재에서 유전자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조금 공부했다. 나는 뇌학자가 아니지만 뇌에 관한 연구서적들을 읽으며 우리가 어떤 과정으로 생각과 행동을 해왔는지 알려했다. 나는 물리학자는 아니지만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읽으며 이해를 잘 못하지만 우리가 사는 이 우주의 기원에 대해 공부했다.


결론적으로 보면 나는 내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것을 진정 알고 싶었다.


하지만 오랜시간의 공부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해답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단 한명도 그 해답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도 못찾았다. 물론 종교적 관점에서 이것을 보는 사람들은 신을 통해 존재의 이유를 찾기도 하는데 종교에 대해 더 자세하고 깊게 공부하면 이것도 다 의미없는 것이란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종교를 통해 존재를 증명받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쩌면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종교로 그것을 알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읽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론이 존재의 이유에는 답이 없다는 것이고 이것이 나를 많이 힘들게 한다. 내가 살아갈 이유가 없는 존재라면 내가 생각하고 내가 중요한 가치라고 느끼는 것들은 다 무엇인가? 내가 정의를 말하고 내가 공동체 의식에 대해  떠들고 내가 하늘의 별을 담는 취미를 하든 그것들은 모두 실제로 정말 의미가 있는 행위들인가?


이 세상은 내가 있음으로 존재한다. 데카르트가 말한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존재한다는 말은 정말 명확한 설명이다. 세상의 의미 조차도 나로부터 출발하는데 도대체 세상은 그리고 나는 왜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단순히 좀 더 발전된 유기체인가? 그런데 왜 난 여기에서 나는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이나 하고 있는가?


내가 가진 질문 중 가장 답을 내기 어렵고 실제로 답이 없는 질문이라고 결론내려진 주제이다.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왜 살아가는지 보다는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신경쓰자고. 어차피 자살해서 생을 마감할 것이 아니라면 답이 없는 질문으로 스스로를 괴롭힐 필요가 없다고.


그래, 그것이 현명한 짓이다. 그렇게 나를 위로하며 오늘 하루를 내 인생에서 소모한다. 


나의 엔트로피는 하루하루 높아지고 나는 매일 한걸음씩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나는 여기에서 뭘 더 바라고 뭘 더 이루어야 할까? 


가끔은 정말 아무생각 없이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란 생각이 강하게 든다. 나는 행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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