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장자에 대한 이야기

아이루다 2012. 4. 9. 12:29

 

정확한 시대는 모르지만 2천년 전 중국에는 유명한 철학자 몇분이 있었다. 공자,맹자,장자,노자 등등

그분들의 책을 내가 모두 정독해서 읽어본 것이 아니라서 뭐라고 말하긴 그렇고 며칠전 우연히 EBS에서 방송강의를 들었다. 주제는 '장자' 였다.

 

총 4부에 걸친 강좌였는데 강사는 기억이 잘 안나고 장자에 대해 논문도 쓰고 그런 분이었다. 당연히 나보다는 그리고 일반인보다는 장자 전문가였다.

 

각각의 강좌마다 하나의 우화를 소개해줬는데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월나라에 모자 팔러 간  상인 : 월나라에 갔더니 다들 대머리여서 모자를 안쓰더라.

2. 새를 사랑한 왕 : 새가 궁중에 날아드니 새를 사랑한 왕은 음식과 술을 새에게 줬는데 새는 결국 오일 후 죽었다

3. 조삼모사 : 원숭이를 키우는 사람이 도토리를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 줬는데 이것을 원숭이가 거부하자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로 바꿔서 원숭이가 좋아했다.

4. 붕새 : '곤'이란 거대한 물고기가 '붕' 이 되었는데 너무 커서 바다가 움직이는 거대한 바람이 부는 날에만 하늘을 날았다. 주변에 잡새들이 왜 그리 높게 나느냐고 비난했다.

 

우화라는 것이 참 이상한 이야기이다. 막말로 해석하기 나름인 것이다. 1편에 나온 상인 이야기를 들으면 보통 사전조사를 하지 않은 어리석은 상인에 대한 생각이 우선 나지만 강사분은 이렇게 해석을 한다.

 

"우리는 전지적 시점에서 월나라에서 모자를 안쓴다는 것을 이미 알았지만 상인의 입장에서 보면(정보통신이 발달하지 못한 과거) 월나라는 타지이고 정보가 없다. 따라서 그 상인이 타지(타자)를 처음 만난 순간 어떻게 해야할지 결정해야 한다"

 

상인이란 말 때문에 이득을 가장 우선적으로 떠올리는 보통의 관념덕에 우린 상인이 이득을 얻지 못하면 뭔가 합리적인 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상인으로서의 그의 자질과 운없음을 탓할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월나라에 대한 인식을 내가 모르고 내가 익숙하지 못한 타인이나 타자로 놓고 보면 너무나 당연한 상황이란 것이다. 여기에서는 이것을 통털어 '타자' 라는 말로 통칭하는데 어느정도 나도 공감이 간다.

 

우리가 처음 사람을 만나게 되면 우린 그가 왜 사람인지 알려고 하지 않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싶어한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며 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도 중요하게 여긴다. 특히 그 사람이 자신에게 소중 할수록 더 많이 알고자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최대치가 된다.

 

하지만 우린 처음에 아무것도 모른다. 그래서 사회 통념적으로 혹은 자신의 과거 경험을 통해 접근을 시도하게 되는데 맛있는 음식이나 멋진 볼거리 등을 제안하며 상대의 마음을 끌려고 한다. 1부에서 나온 상인은 이제 월나라에 대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다시 떠나 원래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야 할지, 아니면 월나라의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려고 노력해 그곳에서 다른 장사를 시작할 수 있다.

 

장자는 실제로는 정착하길 바랬나보다. 그는 타자와의 만남에서 도망가길 원하지 않았다.

 

2부에서 나온 이야기는 일방적인 사랑에 대한 우화이다. 새를 사랑한 왕이 새가 좋아하는 것을 제안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새에게 주었지만 새는 인간이 먹는 먹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죽는다.

 

우리의 시점에서 보면 아이의 미래를 생각해서 아이가 하고픈 일이 아닌 사회 통념상으로 좋은 길이라고 여겨지는 길로 애를 몰아간다. 공부를 잘하길 바라고 또 그 잘하는 공부라도 미래의 보수가 많이 보장되는 직업을 갖길 바란다. 그것이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주 가끔 그 죽은 새처럼 아이 역시 죽을 수 있다. 설령 죽지 않더라도 그 부모가 원했던 아이가 아닌 아주 이기적인 성품을 가진 아이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이유로 인해 부모의 처지에 문제가 생겼을때 아이는 부모를 냉정하게 버리기도 한다.

 

부부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린 서로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자신이 당연한 것을 너무 쉽게 강요한다. 모든 갈등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3부에서 나온 내용은 앞에 두가지 이야기에 대한 해결책이다. 여기서 조금 특이한 내용은 조삼모사에 담긴 뜻을 다르게 해석한 부분인데 우리는 보통 조삼모사 하면 원숭이의 어리석음이나 일관성 없는 행동을 뜻한다고 이해하는데 교수는 이렇게 해석하지 않고 있다. 원숭이를 키우는 사람은 원숭이들에게 제안을 한 것이라고 한다. 원숭이는 거부를 했고 그러자 원숭이를 키우는 사람은 다른 제안을 했다. 그리고 원숭이는 받아 들였다.

 

도토리 7개라는 변경 불가능한 식량을 가지고 다양한 제안을 한 것이란 말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어떤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태도라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소통이다. 강요가 아닌 그리고 자신이 가진 정당함을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는 자신의 입장이 아닌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소통법이다.

 

실제로 참으로 어려운 소통법이다. 내가 가진 모든 신념을 버리고 상대에 맞추는 것이란 말은.. 정말 힘든 일이다. 하지만 장자는 이것을 하나의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이다. 물론 제안한 것일 뿐이다.

 

4부에서는 거대한 붕새의 한계를 가진 자유를 말했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에만 날아오를 수 있는 한계를 가진 거대한 붕새. 그 주변에는 언제나 날 수 있는 메추리나 비둘기가 붕새를 비웃고 있다. 그 한계를 말이다. 그리고 말한다. 그렇게 한계를 가지고 9만리나 날아오르면 뭐가 달라지냐고 한다.

 

거대한 높이의 산에 올라본 사람이 산의 위대함과 자신의 보잘것없음을 안다. 공부를 해본 사람이 자신의 머리가 멍청함을 안다. 사람은 스스로 경험하지 못하면 자신의 한계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정말 이 말은 중요해 보인다. 우리는 결국 집에서 뒹굴거리는 자유를 느끼고 있는 셈이다. 여행을 해봐야 힘들고 새로운 것을 접해야 자신이 가진 고정된 사고의 문제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결국 타자와 접해보지 않으면 우린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이런 해석이 물론 모두 장자가 의도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우리가 타자와 만남에서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는 알려준다. 나는 결국 두려워 도망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죽지 않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나는 나의 한계를 좀 더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난 더 많은 타자와 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타자와 만나고 처음의 어색함과 심지어 두려움마져 느끼다가 어느덧 익숙해지지만 결국 또 자신의 선호도를 상대에게 강요하거나 상대에게 끊임없는 기대를 품고 상대를 조정하려 들며 그렇게 갈등의 시간을 겪고 나중엔 어느정도 서로 암묵적 협약에 의해 선을 지키며 또다시 즐겁고 행복한 관계를 이어나간다. 물론 성공한 사례이긴 하지만. 인간관계란 그리고 다른 문화와의 관계란 모두 참으로 길고 어려운 오래된 시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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