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용서하기와 용서받기

아이루다 2012. 5. 5. 08:09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한다. 평생을 살면서 하는 잘못 중 보통, 사람에게 하는 잘못에 대해 우리는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한다. 그리고 일반적인 시선으로 판단해보면 사람이 용서를 구하는 행동은 나름 긍정적인 행위로 인식한다. 즉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에 대해 호의적이란 것이다.

 

사람이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누구와 다툼이 있었는데 그 다툼의 가장 근본적인 배경은 당연히 내가 틀리지 않았음에 있기 때문에 나중에 그 다툼에서 내 잘못이 있었다고 인정하는 것은 그전에 내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틀렸다고 생각을 고쳐먹어야 한다. 물론 다른 경우도 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위해 내가 틀리다고 마음을 고쳐먹지 않아도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용서를 구하는 행위의 흐름에는 제일 처음 갈등이 있고 그 갈등의 원인에 대해 그리고 그 갈등관계에 있어서 불편함에 대해 어떻게 느끼냐에 따라 상호간의 먼저 사과나 용서를 구하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설령 내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해도 외적으로는 웃는 얼굴도 될 수 있으며 마음 한구석에 분노를 억누르고 미래를 위해 참고 있기도 하다. 물론 정말로 잘못했다고 느끼고 반성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절대 끝까지 서로 용서를 구하지 않고 완전히 남남이 되는 경우도 있다. 부부인 경우에는 이혼이다.

 

우리는 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행동에 대해 인색한가?

 

갈등에 있어서 사람의 잘잘못은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상대가 너무 안하무인격이라서 저울추가 심하게 기우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인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에서는 그렇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상식적인 인간관계의 시점에서 봤을때 내가 내 잘못을 인정하는 행위는 미래에 있어서 부채이다. 즉, 내가 이번에 잘못했으니 미래에 당분간의 기간동안은 상대에게 잘해줘야 하는 것이다. 용서를 구하는 부담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또 하나는 내 잘못을 인정하는 것으로 내가 잘못했다는 것은 현재 내 상태가 타인에게 잘못을 할 만큼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 내가 평소 타인에게 대하는 태도나 나의 사상이나 생각이 틀렸다는 말이다. 그것을 인정하기란 무척 힘이든다. 심지어 자아가 붕괴될 수도 있는 문제이다. 어떤 경우엔 용서를 구하는 것이 타인에게 굴욕을 당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것도 맞다.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타인에게 용서를 구하는 행동은 무척 힘든 일이다. 자기를 부정해야 하며 현재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해야 하며 또 미래의 부채까지 생긴다.

 

그럼에 불구하고 우린 용서를 구하는 행동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명백한 잘못을 한 후 용서를 구하지 않는 타인에 대해 용서를 해야 할 필요도 있다.

 

용서를 구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고정되지 않기 위해서이다.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현재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는 것이고 이것은 미래에 자신이 더 발전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시험을 봐서 현재 자신의 성적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공부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반드시 자기성찰이 있어야 한다. 내가 왜 타인과 갈등을 하고 왜 화가 났으며 왜 그 문제에 대해 싸웠을까 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이 문제가 많이 중요한데, 실제로 정확한 이유를 아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보통 싸움이 있으면 상대의 잘못만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 사람이 나를 화나게 했거나 나를 무시하는 태도 같은 상대방에게서 내가 화난 이유를 찾는데 마음을 가다듬고 잘 생각해보면 거의 대부분의 문제는 나로부터 야기된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나에게 '요즘 얼굴이 푸석푸석해 보여' 라고 말해서 기분이 나빴다면 상대가 그렇게 말해서 기분이 나쁜건지 내가 현재 정말 푸석푸석해서 기분이 나쁜건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처음에는 상대의 말이 기분이 나쁘다.


좀 시간이 흘러 거울을 보고나면 자신의 얼굴이 푸석푸석함을 인정하지만 왜 나에게 그런말을 해서 기분이 나빠지게 할까 하며 상대에 대해 화가 난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흐르면 어느새 푸석푸석한 자신의 얼굴에 영양크림을 듬뿍 바르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렇지만 처음 기분 나빴던 상대에 대한 감정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여기에서 갈등의 가장 큰 요소는 자신이 평소 관리하지 못한 외모에 대한 자신의 게으름이다. 성격이 원래 외모에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기분이 나빠질 이유도 없다. 오히려 그런 신경을 쓰는 상대가 이상해 보일 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경우는 한쪽의 잘못으로 유발된 경우일 수가 높다. 타인에 대한 무책임한 평가는 그 사람의 인성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어떠한가? 부부가 집안일을 분담하는 정도에 대한 싸움을 해다고 가정해보자.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날인데 아내는 혼자서 그것을 정리하면서 남편이 왜 나를 도와주지 않을까 하며 화가 남을 느낄 수 있다. 남편은 아무생각 없이 TV를 보고 있고 아내는 설겆이나 빨래를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결국 참지 못한 아내는 이 문제를 꺼내어 남편에게 항의를 하고 남편은 남편대로 갑자기 요구하는 아내의 태도에 화가나고 그래서 서로 싸우고 냉전에 돌입한다.

 

아내는 왜 화가 났을까? 가장 큰 이유는 나만 이렇게 사는 것 같아서 그럴 수 있다. 또한 동등한 부부의 관계에서 가사노동 부분만은 나에게 불평등한 부담을 주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복합적이다. 불평등하다고 느끼는데 그것이 사회 전반적인 인식으로는 옳지 않고 또 주변의 자신의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남편이 가사노동을 많이 도와주는 사람이 거의 태반이다. 그런데 왜 내가 선택한 내 남편은 그렇지 못한가?

 

여기에서 싸움의 근본적인 잘못은 아내일까? 남편일까?

 

대부분의 사람은 아마 원인을 제공한 남편에게 원인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그렇다면 남편은 결혼 후 성격이 바뀐것일까? 결혼 전에는 가사노동을 무척 도와주던 사람이었는데 결혼 후에는 남몰라라 하는 성격인가? 절대 아니다.

 

남편은 원래 그런 성격이다. 아마 부부가 1~2년 정도의 연예기간을 거쳤다면 이정도 파악 못한건 아내의 잘못이 크다. 아마 결혼전에도 비슷한 일로 인해 싸운적이 꽤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때는 좋아했고 같이 있으면 행복하기에 결혼까지 온 것이다. 아니 결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한 것일 수도 있다.

 

사람은 아주 서서히 바뀐다. 정말 적어도 10년의 노력을 해야 1% 바뀔까 말까 한다.

 

상대가 이미 그런 사람이라면 기대치를 갖는 행위가 미련한 짓이다. 그래서 실제로 여기에서 잘못은 아내이다. 이미 그런 사람을 선택한 잘못, 타인들의 결혼 생활과 비교한 잘못, 남편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현명함이 부족한 잘못.

 

이미 결혼이라는 선택을 한 상태이고 친구들을 만나면 늘쌍 비교하게 되며 또한 아무리 노력해도 안바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배우자 선택을 잘못했다고 정말 심각하게 느낀다면 이혼을 해야 한다. 이혼을 두려워 하면서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것은 자신의 잘못이다. 친구를 만나 서로를 비교하는 행동은 정말 미련한 짓중에 최고의 진상짓이다. 그런 친구를 왜 만나는가? 사람을 바꾸기 힘들다고 생각하는가? 사람을 바꾸려면 헌신적이고 장기간의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누군가 정말 나와 함께 살아갈 최고의 배우자를 얻고 싶다면 자신이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혼을 하지 않고 살고 싶다면 아내는 남편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남편을 위해서도 아니고 남편이 이겨서도 아니다. 자신을 위해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남편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반성을 해야한다. 그래야 발전이 있다.

 

우리는 끝없이 주변인들과 의견을 주고 받으며 생각을 고쳐먹기도 하고 상대의 생각을 바꾸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는 대로 상대를 무조건적으로 바꾸려 하는 행동은 답이 없는 행위이다. 절대 성공 할수도 없고 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해 엄격해지자. 그러면 대부분의 타인과의 갈등은 내 잘못이 된다. 그렇게 되면 용서를 구하게 된다. 실제로 상대의 잘못이 훨씬 큰 경우라도 용서를 할 수 있는 관용의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아주 큰 방향성을 갖게 해준다.

 

죽는 그날까지 자신을 냉정이 바라보고 머리가 굳어지지 않도록 살아가는 태도를 갖는 것이 자신의 삶에 대해 가장 높은 대접이다.

 

물론 이 세상에는 시작조차 않하는 사람이 태반이긴 하다. 그것이 좀 슬프다. 하지만 나 역시 이런 기대치를 버려야 한다. 세상에 대한 기대.. 이것이 현재 나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다.

 

나는 늘 내 문제를 세상으로 부터 원인을 찾았고 분노하고 성질을 냈다. 하지만 결국 모두 내 문제이다. 내가 가진 헛된 기대와 내가 가진 불필요한 목표의식이 나를 망치고 있는 것이다. 미련을 훌훌 털어버리고 혼자서 존재하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그것만이 온전히 내가 나에 대해 집중하는 나에 대한 최고의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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