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어장 관리녀에 대한 생각

아이루다 2012. 4. 22. 09:22

 

오늘 우연히 읽은 글중에 어떤 여자분이 아는 얼굴 예쁜 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이야기의 대충 요약은 다음과 같다.

 

자기의 친구는 꽤 많이 예쁜 외모를 가졌고 그래서 남자들이 늘 들끓는다. 걔중에는 10년 넘게 그녀만을 바라보는 남자도 있는데 그 남자의 경제력은 별로지만 꾸준히 명품 선물을 한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그 여자는 아주 가끔 데이트 한번 정도 해주면서 관리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의 대부분의 다른 시간은 더 좋은 스펙이 있는 남자를 만나기 위해 투자를 한면서 보낸다고 한다.  글쓴분은 처음에는 이렇게 끝없이 이득을 보는 친구가 많이 부러웠는데 나이를 먹고 보니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그 예쁜 얼굴을 가진 사람에 대한 반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것이 없이 타인에게 기생해서 사는 모습을 생각하며 인간적인 짜증도 느껴졌다. 그런데 댓글중에 나의 관심을 끄는 문장이 하나 있었다.

 

'타고난 머리도 개인의 능력이고 타고난 외모도 개인의 능력이다. 그것을 이용해서 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밥벌이를 하는 것은 왜 아무런 비난을 하지 않으면서 타고난 외모을 이용해 더 스펙 좋은 남자를 만나려고 노력하는 여자는 죄인 취급인가' 라는 의미를 가진 댓글이었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나는 왜 타고난 정신적 능력만을 인정하고 타고난 육체적 능력은 무시하는가? 육체적 능력중에서도 100m를 8초에 달리는 능력을 타고난 사람이 육상선수로서 성공하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일단 외모가 일종의 불로소득이라서 그런 것일까? 보통 스포츠와 같은 것들은 성공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해야한다. 그래서 그 노력 후에 성공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다. 그러니 노력없이 얻으려는 모습에 반발하는 것인가? 하지만 더 잘 생각해보자. 예쁘게 태어난 사람이 계속 예쁜것을 유지하려면 그것도 일종의 노력이 된다. 따라서 절대 불로소득이 아닌 셈이다.

 

그녀들은 다른 사람들이 드라마 스토리를 볼 때 주인공 여배우의 악세사리를 바라보고 각종 명품백에 대해 꿰고 있으며 피부에 좋은 화장품과 예쁘게 보이는 화장법을 잘 알고 있다. 또한 더 능력있는 미용실에 더 많은 돈을 주고 다니고 있으며 수입의 많은 부분을 비싸고 좋은 옷을 사는데 투자한다. 따라서 그녀들의 노력을 단순히 별것 아닌다 라고 치부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심지어 그녀들은 그 힘든 성형수술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성형수술.. 그리 쉽게 볼건 아니다. 정말로.

 

그런데도 난 왜 그녀들의 노력이 그리 가상해보이지 않는가?

 

좀 더 생각을 해보니 그 노력이 미래가 없어서 그런것 같다. 외모는 나이가 들어가면 급격히 그 가치를 잃어간다. 그래서 젊은 시절 20년 남짓한 시간이 그녀들에게 주어진 최고의 시간인 셈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실제로 외모보다 사람에서 느껴지는 교양이나 가치기준 등이 더 훨씬 사람을 돋보이게 한다. 이 부분은 젊은 시절 동일한 시간을 공부하는데 시간을 쏟은 사람과 비교하면 심한 차이를 느끼는 부분이다. 배운 것은 남지만 외모는 사라져간다.

 

하지만 결국 스포츠 선수도 마찬가지 아닌가? 특정한 운동을 빼고는 모두 30대 중후반이면 은퇴를 해야 한다. 그러니 외모나 다를바 없다. 그런데 왜 난 스포츠 선수에게는 이런 감정을 못 느끼는 것인가?

 

그래서 세번째로 생각한 이유는 바로 자립인것 같다. 운동선수는 그 능력으로 스스로 자신이 경제적 활동을 한다. 하지만 그녀들은 보통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고 그걸 잘하는 남자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 시킨다. 그래서 그 남자에게 버림받는 순간 삶 자체가 급격히 무너져버릴 수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는 별로 없다. 왜냐면 평생을 남자들과 밀고 댕기기을 연습한 그녀들이 그런 실수를 할리가 없다. 그리고 설령 이혼을 한다고 해도 정확하게 위자료를 챙길 것이다. 그리고 이혼한 후에도 또다시 남자들이 달라붙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니 경제적인 문제는 그녀가 60대 할머니가 되지 않는 한 일어나기 힘들고 실제로 그나이가 되면 자신의 죽음까지 함께할 두둑한 위자료를 챙겼을 것이다.

 

그렇다면 불노소득도 아니고 미래의 불투명성도 아니고 자립도 아니면 그 다음 뭐가 남아 있을까?

 

좀 더 생각해본 결과 그나마 내가 가능성 있다고 보여지는 것은 바로 '삶에 대한 태도'가 아닌가 싶다. 많은 재산을 상속받은 부자나 뛰어난 외모를 타고난 미인들에게서 공통점으로 생각되는 부분은 바로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경제적 욕망을 채우는데 있어 너무 쉽게 얻으면서 살아왔다는 것이다. 부자는 이미 돈이 있으니 집이나 차를 사기가 쉽고 예쁜 여자는 자신이 갖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사귀는 남자에게 가볍게 그리고 은근하게 한마디 하면 어느새 생일날 내것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사주지 못한 사람은 능력없으니 안만나면 된다. 대범한 남자들은 헤어진다음에 찌질하게 그동안 사준것 돌려달라고는 안하니.

 

우리는 보통 80년을 산다. 그러니 꽤 오랜시간을 사는 것이고 그동안 참 많은 경험을 하고 사는 셈이다. 그러다보니 좋은 경험도 있는 방면 정말 우리를 어렵게 하는 경험도 한다. 우리는 밥만 먹고 사는 동물이 아니니 뭔가에 도전도 하고 또한 그만큼의 실패도 하며 자기의 의지에 상관없는 사건에 휘말려서 고생하기도 한다. 종합하면 우리 삶의 너무나 예측 불가능한 위험한 상태이며 또 그렇기에 위험하지 않으려 애쓰고 그렇게 되었을 때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삶이다.

 

내가 언급한 '삶에 대한 태도' 란 행복할때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나에게 불행이 닥쳤을 때 내가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하는 부분을 말한다. 예쁜 얼굴에 화상을 입었다거나 뛰어난 운동선수가 복구 불가능한 부상을 입어서 은퇴를 해야한다면 과연 우린 이 후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나이가 먹어갈 수록 외모가 초라해져가는 것도 일종의 불행인 셈이다. 그런 경우 자신의 최고의 경쟁력이 사라져가는 현장에서 어떻게 자신을 다스리고 그렇게 변해가는 것을 받아드릴 수 있느냐가 중요한 요소이다. 원래 우린 보통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그것을 터득한다. 어린시절 타인과 어울리는 순간부터 좌절을 시작하며 이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어렵게 인식하고 결국 나는 기껏해야 그 커다란 무대의 주변인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능력(외모, 부, 머리 상관없이)으로 인해 그것을 나이 먹고도 많이 못느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이 어떤 계기로 성인이 되어 어떤 자신의 일부분이 무너지는 상황이 왔을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드릴 수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갑자기 부도가 난 사업가 집안 같은 경우다. 또한 나만을 사랑한다고 했던 고스펙의 남편이 나이가 들자 서서히 자신에게 멀어져 외도를 하게 된 경우도 비슷한 예이다.

 

보통 이런경우 사람은 급격히 무너지게 되어있다. 그리고 아주 오랜시간에 걸쳐 서서히 복구해갈 것이다. 물론 중간에 포기하고 자살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지금까지 장황하게 썼지만 실제로는 가장 큰 이유가 질투일 수도 있다. 나보다 훨씬 쉽게 얻는 사람에 대한 질투.

 

아무튼 어떤 이유이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모두 그 자신들의 인생이란 것이다. 내 인생이 아니다. 우린 모두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그들이 나에게 관여하지 않는다면 나 역시 그들에게 관여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우린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어서 개인의 가치관이 모여 전체 사회의 중요 가치관을 형성시킨다. 그것이 타인이 어떻게 살든지 관여하지 말라는 가장 근본적인 모습을 건들고 있다. 나와 관련없으니 신경끄라는 말에 나와 관련없다는 전제가 잘못되었다고 반박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할까? 관련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니 말이다.

 

답이 있기 힘든 질문인데 일단은 타인을 그냥 타인으로 인정하고 객관적으로 볼 능력을 가진 것이 처음이어야 하겠다. 질투와 같은 감정의 눈이 아닌 지식과 지혜의 범주에서 판단하는 현명함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러기위해서는 가장 먼저 내가 가진 감정의 실체를 인정해야 한다. 특히 질투나 시기심 같은 감정들은 쉽게 인정하기 어렵고 아주 교묘하게 자신을 숨기고 있다. 타인에게 말해지는 내 입은 나의 끝없는 합리화를 생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잡아야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결국 해야할 일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