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종교, 착각이 주는 행복

아이루다 2012. 3. 18. 17:47

혹시라도 뇌에 대한 호기심으로 관련 자료나 책, 다큐멘터리 등을 본 사람이라면 우리가 느끼는 현실이란 것이 뇌속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양의 전기신호에 의해 인식되어 진다는 것을 한번 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런 생각을 해보자. 우리가 팔,다리 및 몸통, 엉덩이 등등 해서 내 몸의 경계를 느끼는 것이 실제로 손발이 그리고 내 배와 등이 그 경계를 결정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지금 키보드를 두두리고 있는 내 손가락들은 끝없이 키보드 자판과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그럼 손이 그것을 인식하고 있는 것인가? 갑자기 좀 혼란스러워 진다.

 

현실은 실제로는 '아니다' 가 정답이다. 키보드에 부딪힌 손가락은 그 감각을 신경망을 통해 뇌로 보내고 뇌는 현재 내몸으로 부터 도착하는 많은 신호들을 복합적으로 판단하여 나의 몸이 하고 있는 일을 인식하고 있다. 반대로 어떤 글귀를 쓰기 위해서 나의 뇌는 또다른 신호를 보내 내 손가락을 움직이도록 하고 있다. 이런 복합적이고 정밀한 움직임을 우린 늘 하고 있는 것이다.

 

환지증이란 병이 있다. 신체 일부가 잘려나간 사람이 잘려나가기 전의 신체가 그대로 존재한다고 믿어서 생긴 증상으로 예를 들면 팔이 잘린 사람이 손가락 감각을 느낀 다든지 다리가 잘린 사람이 그 사실을 잊고 두 발로 설려고 하는 행동을 보인다. 절단된 신체는 더이상 신호를 뇌에게 보내지 않는데 뇌는 과거의 기억으로 부터 구성된 몸의 지도를 잊지 못하고 계속 그 신체가 있다고 착각하고 있어서 생기는 현상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통증을 느끼기도 한다. 뇌가 일으키는 전형적인 착각 증세 중 하나이다.

 

뇌에 대한 이야기를 서두에 꺼낸 이유는 인간은 꽤 오랜시간 동안 정신능력과 육체능력을 분리하는 교육을 받아왔으며 심지어는 육체를 무시하기 까지 했는데 인간의 뇌에 대해 알아갈수록 실제 우리가 정신이라고 믿는 그런 영역도 일종의 육체적 활동이란 것이 밝혀지고 있다.  마치 수퍼 컴퓨터가 인간과 체스를 두는 것처럼 혹은 내가 쓰고 있는 이 작은 데스트탑 컴퓨터 하드웨어가 윈도우라는 OS에 의해 지배받아 소프트웨어에 의해 동작되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인정하기에 우린 너무 스스로 존재를 높혀 놨다. 우리가 단순한 육체적 활동의 산물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어렵고 또한 실제로 완전히 그것이 증명이 된다고 해도 부정할 사람은 많을 것이다.

 

사람들의 경험 중 임사체험이란 것이 있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 경험하는 것인데 바로 죽음 직전까지 갔던 이들의 경험이다. 보통 그들은 밝은 빛이나 편안한 느낌 같은 아주 좋은 느낌을 회상하는데 실제로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특히 종교적으로 심취했던 이는 그것을 그들이 평소에 믿던 천국이나 혹은 신의 영역에 들어간 듯한 환상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렇게 믿는다.

 

다른 방향에서 이런 것들을 분석해보면 인간의 종교적 희열상태, 즉 영적인 경험과 인간의 뇌의 일부인 측두엽과 어느정도 관계가 있음이 연구로 밝혀졌다. 실제 어떤 간질병 환자는 측두엽에 의해 그 간질병이 시작되었는데 그 사람은 자주 이런 영적 체험을 경험한다고 한다. 환상이 보이고 자신이 믿는 종교, 특히 기독교나 천주교에서 믿어지는 예수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스스로 자신이 어떤 선택을 받는 존재라고 느끼면서 자신을 필요하고 의미있는 존재로 생각한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그 사람은 그져 간질병 환자일 뿐이다. 만약 간질병이 치료가 되어서 보통사람의 뇌로 변하게 되면 그는 더이상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선택이 있다. 만약 당신이 평소에 어떤 종교를 믿고 뇌의 문제로 인해 그 종교의 극단적 영적 체험을 하게 된 경험이 다수 있으며 그 덕분에 그 종교에 더욱 심취가 되고 믿음이 강해졌다면 그 치료를 통해 그런 경험들이 사라진다는 의사의 말에 따라 치료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거부 할 것인가? 치료를 하면 100% 치료된다는 가정하에서 말이다.

 

나는 잘 모르겠다. 실제로 나는 그런 믿음을 가져 본적도 없고 믿지도 않는다. 종교의 유용성은 인정하지만 세상에 대해 인간에 대해 역사에 대해 우리를 구성하는 그 모든 것에 대해 알아 갈수록 종교는 우리들 스스로의 무지와 인간의 불완정성에 의해 계속 지탱해 나가는 일종의 정신적 착각 증세라는 생각이 더 강해지니까.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 중에 '방언'이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미친사람 처럼 아무도 못알아 듣는 신과 자신만의 대화를 한다는 것이 그사람들의 주장인데 내가 보기엔 일종의 뇌 문제에 따른 언어능력 혼란으로만 보인다. 악마를 봤다거나 귀신을 본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세상을 편하게 사는 방법 중 하나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정말 아는게 병인 것이다. 어려서 부터 기독교를 믿고 그것이 진리로만 살아온 사람이 어느날 기독교가 말하는 예수가 태어났다는 12월 25일이 그전에 믿어진 태양신의 탄생일으로 그 기원이 동지인 12월 22일 후 3일이 지난 날이란 날을 알고 또 12월 22일 태양이 가장 낮아지면서 결국 3일 후인 25일 마치 다시 태어난 양 느껴지는 것으로 부터 크리스마스가 정해졌다는 것을 알고 또 그들이 기도후 말하는 '아멘' 이란 말이 이집트 신 아문으로 부터 파생되었다는 말이나 예수가 신으로 정해진 것이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라면 자신의 믿음이 흔들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미 한번 믿음을 갖게된 사람에게는 그런 진실조차 외면해버리기 때문에 흔들리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아무튼 모른다는 것은 행복의 지름길이다. 우리나라의 정치상황을 봐도 그렇다. 우리나라는 웃기게도 가장 경제적으로 하층민을 구성하는 서민들이 이상하게 기득권 층의 대변인인 새누리당을 지지한다. 왜냐고 물으면 빨갱이의 세상이 올 수 있으니 그렇다고 한다. 그럼 정말 빨갱이가 뭔지 한번이라도 공부해 보았나? 그들이 빨갱이라고 말하는 통합진보당의 강령이나 그들이 내세우는 정치적 공약을 쳐다보기라도 했냐 말이다. 하지만 모르고 그냥 빨갱이 하면서 거부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의 고혈을 빼먹는 기득권을 지지한다. 그래도 모르니 행복하다.

 

세상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리고 진실에 다가가면 갈 수록 참을 수 없는 분노와 그에 따른 불행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자신이 그리고 가족이 그 대상이 되어 당해봐야 그때서야 세상의 더러움을 울부짖을 뿐이다. 그러니 모르고 평생 그냥 사는 것이 가장 좋은 행복이다.

 

나는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영화 '메트릭스'에서 나오는 장면 중 빨간 약과 파란 약을 선택할 때 과연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면 과연 멋진 옷에 맛난 음식을 먹는 가상의 세계와 풀죽과 더러운 옷과 적들에게 쫒기며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현실에서 과연 어떤 것이 우리의 행복한 삶인가 하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종교적 가정에서 태어나 평생 종교속에서 평안하게 살다가 죽은 사람과 종교가 사회에 끼치는 패악에 대해 분노하면서 이를 고치려 평생을 노력하며 그다지 많이 행복하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 중 과연 개인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어떤 삶이 더 나은가에 대한 질문이다. 나는 어려서 부터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많은 문제를 느꼈고 그로 인해 타인이 선택하는 삶에 대해 조금 덜 욕심을 가졌으며 그 덕분에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놓쳤으며 TV에서 하는 그냥 재밌는 드라마나 쇼프로를 그냥 보지를 못한다. 그래서 난 보통의 타인보다 더 불행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다른 비판의식 없이 사회에서 주는 즐거움을 마음껏 소비하고 TV를 시청하고 세상에 관심이 없이 자신의 행복에 집중해서 산다. 그리고 나에게 왜 그렇게 삐딱하게 세상을 보는지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실제로 이 삐딱한 나의 시선은 나에게 해가 된다. 사람들은 삐딱한 나를 불편해 한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무리들과 어울리지 못해서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물론 요즘은 나도 많이 바뀌어서 굳이 이런 시선을 타인에게 전달하지 않는다. 단지 요즘 고민은 행복하게 산다는 명제만으로 보았을 때 착각속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에게 그 착각을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착각이라도 행복하다면 그냥 행복한 것이 나은 것인지가 혼란스럽다.

 

딱히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개인의 행복을 위해 착각속에 살아가는 것도 괜찮다 싶다. 내 주변에 기독교를 아주 잘 믿는 분들도 있고 또 사회에 비판적이면서도 TV를 열심히 잘 보고 사는 분들도 있다. 미래가 불투명하지만 현실에 충분히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고 주변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거의 관심이 없이 자신의 행복에 철저하게 집중하면서 사는 분도 있다. 인간관계는 대부분은 나에게 주는 즐거움이나 나의 미래의 이득과 관련된 사람들과 맺기를 즐겨한다.

 

인생에 정답이 없기 때문에 생긴 나의 고민이라고 본다.

 

바꿔야 하나? 마냥 행복한 얼굴로 기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회에 무관심 하며 돈은 벌어야 하므로 남들처럼 투기를 하면서도 자신의 도덕적 가치성은 전혀 훼손되지 않았다고 믿는 그들에 대해 내가 뭐라고 비난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난 왜 그들이 그렇게 믿고 행복한 모습을 보면 뭔가 마음 한구석이 묵직해지며 분노의 마음이 솟아나는 것일까?  바꾸기 힘든 현실을 외면하고 자신의 행복에 집중하면서 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살고 자신의 삶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고 죽은 후 천국에 가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답답해서 일까?

 

내가 오지랖이 넓어서 일까?

 

아니면 내가 행복한 그들을 질투해서 일까?

 

잘 모르겠다. 그래도 단 한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나 역시 세상에 관심을 끊으려고 한다. 점점 세상으로 부터 멀어져서 나도 행복하게 살아야겠다. 이제 나를 좀 놔줘야 한다. 편하고 행복하게 살도록. 그런데 잘 안된다. 너무 오랫동안 억눌러 온 탓에 뭐든지 쉽게 즐겨지지가 않는다. 나에게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더 많은 시간이 훌쩍 흘러야 나는 나를 자유롭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착각이 주는 행복에 대해 더이상 신경 쓰지 말자. 그런데 자꾸 그런 인간들이 미디어를 통해 노출이 된다. 결국 내가 미디어와 멀어지는 수 밖에. 아직도 미련이 많이 남은 모양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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