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영혼의 친구

아이루다 2012. 3. 18. 10:11

 

요즘 내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은 매우 적다. 기본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즐거움을 잘 느끼진 못하는 탓도 있지만 실제로 생각해보면 그들과 나눌 대화 내용이 정말 무의미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서이다. 특히 어린시절 부터 친분을 맺어온 오래된 친구들을 가끔보면 대부분 비슷한 상태를 지니고 있다. 바로 40대의 끝없는 중압감이라고 할까? 대부분 한 가정을 이루고 한명 이상의 자녀를 두고 있는데 결혼한 시기에 따라 빠른 애들은 고등학생 자녀를 가진 애들도 있고 지금도 첫애가 아내의 뱃속에 들어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의 고민은 불안정한 고용환경과 자녀교육 등이다. 그나마 보통은 부동산 문제들은 어느정도 해결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애들이 대부분인데 불구하고 미래의 보장되지 않은 수입에 대해 많은 걱정들을 한다.

 

그래서 대화가 늘 비슷하고 또 너무나 뻔하다.

 

그보다 어린 나이를 가진 후배 애들을 보면 아직 세상의 어려움을 덜 겪었거나 혹은 결혼을 못했거나 해서 관심사는 온통 정치, 취미, TV, 인터넷, 게임 등이다. 물론 40대의 친구들보다는 대화 내용이 낫긴하다. 그래도 몇몇은 이제 좀 뭔가 자신을 둘러싼 문제들을 인식하기 시작했으니까.

 

나는 내가 그리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정말 힘들게 힘들게 살아간다. 나는 남들보다 잘난 능력이나 잘난 직장이나 잘난 외모를 가진 사람이 아니다. 나는 늘 부족하고 어리석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내가 사는 모습이 특별하다고 한다. 객관적으로 보면 난 가정을 이루지 않고 40대를 보내고 있으며 시골에 가서 살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40대 미혼률이 그리 낮지 않기에 나만 특별한 것은 아니고 또 귀농에 대한 넓은 인식이 이미 사회 전반적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그 역시 내가 산에 들어가 스님이 되지 않는 한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니다.

 

한국이란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일단 직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가정을 이뤄야 하고 자녀를 낳아 키워야 한다. 그게 모두의 사는 모습을 한마디로 정리한 것이다. 여기에 세부적으로 어떻게 돈을 버는가, 누구와 결혼을 하는가, 애는 몇명을 낳아 어떻게 키울 것인가 정도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이 하나의 삶을 살아가는 공식이라면 그 안에서 벌어지는 그 모든 행복과 고통을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것도 역시 그 자신이다. 돈을 벌고 가정을 꾸리고 애를 키우는 것이 본인이 선택한 삶이라면 또한 다른 관점에서 그 선택에 대한 책을 지는 것도 온전히 본인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공식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하지만 그 역시 나의 의지가 아니다. 내가 이렇게 살고 싶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기 싫어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보통의 사람들과 대화에서 좀 많은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수 많은 사람들의 얘기를 듣다보면 외롭다는 느낌이 든다.

 

그들은 끝없이 자신의 처지와 자신의 행복과 자신의 고통을 공감하려 한다. 하지만 난 정말 입에 바른 소리를 해줄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그대로 말했다가는 아예 관계를 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답답함을 많이 느낀다.

 

주변 사람들은 책을 읽는 사람도 드물고 우리가 사는 정치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가진 사람들도 드물고 설령 관심이 있다고 해도 흥미 위주나 개별적인 사건들에 대한 끝없는 분노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것들은 순간에 머물 뿐 깊이 삶속에 각인되지 못한다. 난 그래서 외롭다.

 

나의 여자친구는 나의 말을 참 잘 들어준다. 내가 거의 외계인 같은 소리를 해도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준다. 그런데 그녀는 실제로는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냥 내 얘기는 흥미로운 소재이고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일깨워주는 수단으로 간주된다. 어쩌면 이 블로그를 유일하게 읽어주는 내가 아는 사람이면서 또한 그 느낌에 대해 좋은 표현을 해주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외롭다는 것을 느낀다.

 

영어로 소울메이트란 말이 있다. 우리말로 하면 영혼의 친구란 의미다. 영혼의 친구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고 내가 고민하고 내가 느끼는 그 모든 것을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가끔 영혼의 친구가 그립다. 그 사람이 누군든 어떤 성격과 외모를 가졌던 간에 나의 생각에 공감하고 또 나의 잘못된 생각을 그리고 나의 엉클어진 실타래 같은 의식의 흐름을 가끔 정리해 줄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세상에는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 그 누가 이 세상에서 나만큼 나를 이해해줄 수 있겠는가?

 

아마도 내 생각에 우리나라 인구의 10%는 특별한 탐욕속에서 살고 50%는 일반적인 탐욕으로 살고 20%는 죽지 못해 살고 10%는 남을 해치며 살고 5%는 종교에 빠져 살고 3%는 특별하지만 인간세상속에 살고 2%는 세상에서 벗어나서 사는 것 같다. 물론 아무 근거없는 통계다.

 

나는 아무 근거도 없이 사람을 분류하고는 세상과의 분리된 점점 두꺼워 지는 벽을 만들어 내고 살아간다. 이런 것이 나를 두렵게 한다. 또한 나를 외롭게 한다. 나를 둥글게 싼 벽은 접접 좁아지고 두꺼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나 스스로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내 의지도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을 해봐도 세상을 살아가는 보편적인 모습은 나에게 점점 부담만 될 뿐 나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나는 절대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이것이 내가 가진 가장 큰 문제다.

 

그나마 최근에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쇼펜하우어 역시 한계가 있는 철학자였다. 공자님도 부처님도 마찬가지다. 모두 자신의 삶속에서 그리고 그 테두리에서 삶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뛰어난 영혼의 소유자였지만 다른 면으로는 모두 그들만의 세계에서 사는 것이다. 그것은 내 세계가 아니다.

 

나는 가끔 내 이곳에 글을 쓰면서 그런 친구를 찾고 있다. 내가 수천개의 글을 쓰는 어떤 날이 오면 우연히 누군가 나를 이해하고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줄 어떤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정치,경제,가정,육아 같은 다른 사람들 얘기가 아닌 나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생겼으면 한다. 아마도 불가능 하겠지만 그래도 희망은 품는 것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니 그리 생각한다.

 

나는 쇼생크탈출에서 나온 두 주인공이 멕시코 어느 해변에서 만나는 그런 장면을 상상한다. 그냥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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