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책

더 그레이, 재난영화로 분류된 영화

아이루다 2012. 3. 11. 15:40

 

일요일 오후 '더 그레이' 란 영화를 아무생각없이 보게되었다. 딱히 볼만한 작품이 없는 탓에 리암닐슨 이란 배우의 이름을 보고 선택한 영화다. 난 원래 예상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영화에 대한 정보는 최대한 보지않고 즐기는 편이기에 그냥 봤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보다 많이 몰입이 된 모양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땐 마음 한구석이 묵직해졌다.

 

영화 감상문을 정리해볼라고 추가정보를 위해 다음에 검색해봤더니 이 영화가 재난영화로 분류되어 있었다. 그리고 액션을 기대하던 이들의 실망어린 댓글들도 좀 보였다. 개인적으로 왜 이 영화가 재난과 액션 영화로 분류가 되었는지 좀 이해가 안갔지만 배급사가 그렇게 홍보를 한 모양이다. 재난액션 영화로 알고 본 사람들이라면 실망을 했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나는 예전부터 이런 생각을 하곤했다. 내가 절벽에서 미끄러져 밧줄하나 잡고 겨우 버티고 있을때 누구도 나를 구하러 오지 않는다면 난 언제쯤 나 스스로에게

 

"그래, 이제 됐어. 고생많았어. 찢어지는 아픔을 호소하는 내 손과 내 팔들아 이제 좀 쉬자꾸나" 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한시간? 두시간? 아니면 하루?

 

7명의 생존자로 출발한 영화는 마지막까지 하나씩 서로 다른 형태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줄어간다. 개중에 나의 시선을 젤 많이 끈 죽음은 계속 불만만 늘어놓던 어떤 인물의 마지막 포기 장면이었다. 그는 다리에 부상을 입고 절뚝거리며 오랜시간 걸은 후 이제 더이상 걸을 수 없게되자 스스로를 포기하고 자신에게 말한다.

 

"그래, 이제 많이 했어. 내가 다시 살아 돌아가더라도 날 기다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적어도 난 생존을 위해 최선은 다했어" 

 

정확하게 이런 말을 한건 아니지만 내 느낌상 이런 이야기였다. 나 역시 그런 입장이 되었다면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할까?  아니면

 

"이 어리석고 나약한 존재야. 더 힘을내어 걸어. 아직도 넌 죽은 것이 아니야. 넌 할 수 있어"

 

라고 말할까?

 

꼭 영화의 내용과 상관없더라도 우리 인생은 자신만의 짐을 가지고 살아가는것은 맞다. 그 짐을 가끔 타인에게 부탁하고 싶기도 하고 어떨땐 타인의 짐을 대신 들어주기도 하고 살아가는게 우리 인생이다. 어떤 이들은 교묘하게 자신의 짐을 타인에게 맡기는 술책을 부리기도 하고 어떤 이는 멍청한 소처럼 타인의 짐을 맡아 걷기도 한다. 이 짐으로 인해 우린 싸우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만난다.

 

'생명' 우리가 가장 잃기 두려워 하는 것이다.  또한 지키기위해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안다. 하지만 사람마다 그것을 언제까지 지킬것이냐는 천차만별이다. 아주 작은 고통에도 쉽게 포기하는 사람도 있고 공포속에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희생시켜 버리는 사람도 있고 바위처럼 침묵하면서 끝까지 지켜나가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어느 누구도 생명의 소중함을 쉽게 말해서는 안된다. 적어도 생물이라면 말이다. 그래도 난 자신이 없다. 난 절벽에 매달려 도대체 얼마만의 시간동안 나와 싸울 수 있을까?

 

이 영화를 재난액션으로 생각하고 보실분은 절대 보지 말아라. 이 영화는 삶의 본질에 대한 깊은 고민이 담겨져 있다. 물론 상황설정 같은 것들이 좀 아쉽긴 하지만 그건 그냥 곁가지일 뿐. 각자의 죽음은 각자의 짐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짐을 어떻게 내려놓을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주지 않지만 적어도 그 짐이 존재하고 있고 그것을 어떻게 버리지않고 혹은 남에게 맡기지 않고 살아갈 지 고민은 하게 만들어주는 영화이다.

 

정확히 기억에 남는 대사는 없지만 그래도 아릿하게 남은 기억은 영화 중반부 쯤 모닥불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들의 살아온 과거에 대한 짧은 회상 장면에서 어떤이의 행복한 추억을 듣던 주인공이 그것이 우리가 1초라도 더 살게 해주는 힘이 된다는 말이었다.


시간은 단 하나의 예외없이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고 우린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계속 미래로 가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선택할 여지도 없으며 또한 노력해서 극복할 성질의 것도 아니다. 과거는 고정되고 미래는 계획된다. 과거는 시간이 갈수록 퇴색되어지고 미래는 희망으로 가득찬다. 


그런데도 우리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버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은 미래의 희망이 아닌 과거의 희미하고 퇴색된 작은 행복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것인가?

 

영화보는 동안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는데 막상 쓰려니 딱히 만족할 단어가 없다. 혹시나 이글의 느낌을 받고자 하는 분이라면 한번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