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삶은 우연의 연속이다.

아이루다 2012. 3. 11. 09:54

 

얼마전 우주의 우연성에 대해 글을 썼었는데 오늘은 그 넓은 우주 속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지구에 살아가는 지구 최고의 지적생물인 인간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본다. 생명 발생에 대한 이론은 종교적 기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지만 일단 정상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원숭이가 우리의 조상이라고? 하는 멍청한 소리는 안할 것이다. 그 말은 진화론의 기본도 모른다는 스스로의 인정인거고 ㅎㅎ

 

아무튼 난 진화론을 믿는다. 아니 믿는다기 보다 지금 지구에 살아가는 3천만종의 생물과 그 최고의 위치에 선 인간의 모습에서 진화론을 믿을 수 밖에 없다. 그럼 약 6백만년 전 쯤 원숭이와 공통 조상으로 부터 갈려 인간으로 진화한 이유가 뭘까? 내 예상은 기후변화이다. 지구의 기후가 변화하면서 그 땅에서 살아가던 우리의 조상은 뭔가 변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럼 기후 변화는 어떠한가? 필연적인 것인가? 아니다. 우연이다.

 

진화는 수 많은 우연의 결과의 집합체이다. 그리고 또한 그 우연 중에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 잘 생존하고 많이 번식한 종이 계속 살아남는다. 그렇다. 우리 인간은 그 시작부터 우연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우리를 스스로 우연한 산물로 여기기엔 우리의 존재의식은 너무 오만해져버렸다. 하지만 오만한 존재의식과 상관없이 우리 조상의 과학적 지식은 형편없었으니 당연히 창조론과 같은, 신으로 부터 만들어진 존재라는 오만함의 극치가 종교화 되고 그것이 세상을 오랫동안 지배해 왔다. 오늘날과 같이 많은 과학적 사실이 밝혀진 21세기 조차 그 종교들은 서로 옳다고 싸우고 있다.

 

최근에야 들어서 우린 우리가 우주에서 절대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알고 또한 우리가 지구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우연의 연속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이제는 양자역학에서 모든 것이 확률로만 계산된다고 말하고 있다.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은 각각 원자 크기 이하의 미시세계와 행성, 항성의 움직임과 같은 거시세계의 원리를 풀어주는 학문이다. 하지만 이 둘이 만나면 아주 엄청난 문제가 터지는데 바로 무한대의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각 이론은 각자의 영역에서는 최고의 이론임에도 불구하고 한쪽의 원리를 설명못하는 반쪽짜리 이론이기도 하다.

 

나는 몇년 전부터 우리가 보는 거시세계에서 조차 확률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양자역학에서 말하 듯 내가 오늘 방의 문을 열지 않고 통과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확률이 지극히 낮아서이다 라는 말이다. 내가 만약 10조년의 생을 살 수 있어서 매일 시도를 한다면 그 중 한번쯤은 성공하지 않을까? 그리고 확률이란 결국 우연의 가능성을 말해준다.

 

대충 이쯤해서 서두를 마치고 그럼 우리네 삶의 영역으로 들어가보자. 어떤 우연들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을까?

 

"당신이 하는 모든일은 그것이 일어날 가능성을 높이거나 낮추는 것이며 실제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은 바로 우연입니다" 이렇게 말을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반발을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어느정도 공감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능이 많이 뛰어나지 못한 A라는 사람이 중/고등학교 시절 정말 열심히 노력을 해서 자신이 원하는 의대에 가까스로 진학하긴 했지만 그 후 의사가 되고 높은 수입을 올리며 살아간다면 그의 인생은 꽤나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며 의지적이라 판단 할 수 있다. 아마 이 의사는 '나의 공부의지, 인생을 바꾸다' 라고 책을 낼지도 모르다. 그리고 그 책에는 자신의 노력에 의해 얻어진 결실에 대한 아주 멋진 해석이 있을것이 분명하다.

 

다른 예를 보자.

 

2년을 수능공부를 해서 정말 자신감 있게 시험을 보러가던 어떤 학생이 시험장 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면 그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일은 없었던 일이 되고 만다. 물론 그 덕에 A는 그 의대에 마지막 순번으로 합격할 수 있었다.

 

이 예에 대한 다른 관점에서 보면 A는 어쩌면 재수를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A의 집안이 가난해서 재수를 시킬 수 없는 입장이라면 얘기는 달라지지만 재수를 했다고 치자. 그런데 그 후에 점수는 더욱 안좋아졌다. 혹은 좋아졌다. 상황은 정말 많은 가능성으로 유추된다. 그럼 과연 이 인생은 어떻게 흘러가는가?

 

잘 생각해보면 이 모든것은 상황이다. 그리고 상황은 이루어질 가능성에 의해 지배되고 그 결과는 바로 우연이다. 열심히 노력했는데 우연이라니! 기분 나쁘겠다.

 

길을 가다가 차에 치어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은 의지인가? 물론 좌우 차를 잘 살피고 신호를 잘 지키는 것이 사고예방에 도움은 된다. 하지만 우리는 100% 안전한가? 비행기 사고로 승객 전원이 죽었다면 그 승객들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인가?

 

몇년 전 '데스트니' 라는 영화가 있었다. 죽음의 운명을 피한 사람들에게 계속 죽음의 신이 달라 붙는 스토리였는데 영화의 잔인한 장면과 죽음 전 징조가 나름 섬뜻하게 느껴졌던 공포영화였다. 하지만 정말 죽음이 그럴까? ㅎㅎ

 

담배를 많이 피는 사람은 폐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뚱뚱한 사람은 당뇨나 혈액순환에 관한 병이 걸리기 쉽다. 키 큰사람은 키작은 사람보다 길거리 간판에 부딪히기 쉽고 키 작은 사람은 키높이 구두를 신을 가능성이 높다. 여름엔 비가 올 확률이 높고 겨울엔 눈이 올 확률이 높으며 친구가 많은 사람은 적은 사람보다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다.

 

이와 다르게 우연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확실한 것들도 있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다. 물은 높은데서 낮은데로 흐른다. 태양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 등등

 

그런데 그런것 조차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 아닌 옆집 아저씨의 아들일 가능성도 있다. 물은 무중력상태에서는 흐르지 않는다. 금성에서 태양은 서쪽에서 떠서 동쪽으로 진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 뜨는 태양도 없어져 버린다.

 

인생이 우연의 지배를 받는다고 해서 인간의 노력을 폄하하는것은 아니다. 노력은 분명히 확률을 높여준다. 따라서 노력하는 자가 원하는 것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자신이 이루웠다고 믿는 그 모든 것은 자신이 이룬게 아니다. 자신은 그것이 이룰 가능성만 높였을 뿐 실제로 그것이 이루어진 것인 우연의 산물이란 말이다. 확률을 얼마나 높였던 간에.

 

요즘 사후 그 리더쉽이나 카리스마에 대해 많은 얘기가 되는 애플사의 스티브잡스의 역작 아이폰 역시 그가 만든 우연의 산물이다. 그만한 크기의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의 발달이 있었고 소비자의 욕구가 변했으며 무선통신의 상황이 좋아졌다. 구글이나 페북 역시 그런 시대적 우연이 만들어낸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보통 그런것들이 그들 의지에 의해 실현된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위대한 인간들이라고 말하면서.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그 일이 실제로 이루어지기 까지는 엄청난 두려움에 싸여 지내게 된다. 실제로 일이 이루어지는데는 이 스트레스를 견디는 능력이 가장 기본으로 작용하고 있다. 모든 일은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성공한 결과만을 두고 그것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된다.

 

내가 잘나서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져 100m 달리기에 세계최고의 위치에 올라섰다면 그건 바로 그렇게 태어난 우연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런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육상선수로서의 삶을 살지 못한 다른 많은 사람들에 비해 운이 좋은 것이다. 비슷한 예로 아인쉬타인 같은 위대한 지능의 소유자 역시 스스로 그 지능을 만드어낸 것은 아니다. 그가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면 낙제생으로 '상대적으로 큰 붕어빵' 팔다 끝났을 것이라는 웃긴 농담도 있지 않은가?

 

우리는 그 존재가 시작되는 순간인 정자와 난자의 수정단계부터 우연의 결과이다.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 끝없이 노력을 하고 살지만 그 역시 끝없는 우연의 결과로 이어진다. 운이 좋다면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사가 되고 운이 없다면 노숙자가 된다. 하지만 자신의 삶에 대한 오만함은 그런 우연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아마 100명이면 100명 모두 자신의 자서전을 쓴다면 자신이 성공한 이유를 절대 우연의 산물로 기록하지 않고 모든 것이 남들과 다른 노력의 결과로 기록할 것이다.

 

우리는 부모를 선택하지 못한다. 또한 죽음도 선택하지 못한다. 나름 선택적 죽음이라고 생각될 수 있는 자살조차 강에 뛰었다가 구조된 사람이나 아파트 옥상에 뛰었지만 나무에 떨어져 살아난 이야기를 듣는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 운동을 잘하고 못하고 예술을 잘하고 못하고도 모두 타고난 우연과 그 가능성을 높인 노력의 결과일 뿐이다. 잘 생각해보면 아무리 잘난 머리와 잘난 다른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서도 어려서 홍역에 걸려 죽거나 혹은 전쟁 상태에 있는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이 자식으로 태어났다면 과연 그 능력을 써먹을 수나 있었겠는가?

 

인간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 중 가장 발달한 개체이다. 우린 지구의 모든 생태계를 지배하고 있고 인간을 위협하는 모든 존재를 말살하거나 동물원에 가둬버렸다. 하지만 우린 아직도 지진과 해일에 무방비이며 태풍과 허리케인 같은 재해를 막을 능력이 안된다. 미래의 어느날 설령 지구의 모든 지각과 대양의 온도를 조절할 능력이 생긴다고 해도 태양이 모두 소진되어 없어질 그날엔 새로운 태양을 만들 수 없다. 태양을 만들어낸다고 해도 우주에 가득차 수소를 헬륨을 다 태우고 나면 뭘 더 태울 수 있겠는가?

 

우린 아직도 많이 부족한 존재이며 또한 다른 생명체로부터 에너지를 얻어내는 존재이다. 나무처럼 광합성을 해서 직접 에너지를 생산할 능력이 없어서 식물을 먹거나 그 식물을 먹은 다른 동물을 먹고 존재하는 기생충 같은 존재인 것이다.

 

 

결론을 내릴때가 됐다.

 

우린 단 1초 후의 세상을 짐작만 할뿐 만들어내지 못한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우연임을 깊이 통감하여 스스로 오만함을 버리고 무엇을 얻고 이루던 간에 그것이 온전한 자신의 능력으로 얻었다는 자부심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타인에게 너도 그렇게 노력하면 얻을것이야 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인간의 오만함이 후에 우리의 운명을 어떤 우연속으로 끌고갈지 예상도 안된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많은 일들에 대한 압박을 내려놓고 내가 선택하고 내가 만들어가는 것들이 모두 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도록 우리를 스스로 훈련시킬 필요가 있다.

 

우린 좀 더 뭔가를 결과론적 보다 과정에 집중해야 하며 과정에 집중하면서 즐길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한다. 모든것을 결과로 판단해서 그 결과가 마치 그 사람 자체를 의미하는 양 생각하는 인간의 어리석은 판단기준을 고쳐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 스스로가 남들보다 좀 더 잘난 지능을 가지고 태어나 남들보다 좀 더 좋은 위치에 가거나 가난하기 보다는 좀 더 부자인 부모를 만나 좋은 교육환경과 풍족함 속에서 무난하고 좋은 성격을 가졌다고 해서 우리가 스스로 잘나진 것이 아니다. 남들보다 좀 더 타고난 운이 좋았고 또 기회의 운이 좋았다. 영원한 성공자도 없고 영원한 실패자도 었는것이 우리 인생이 듯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운이 부족한 이들에게 관대함을 자기 스스로에게는 겸손함을 배울 수 있도록 노력해야 가야 한다. 그래서 운이 더 많은자에 대한 부러움과 시기심, 운이 모자른자에게 대한 무시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착각임을 깊은 성찰속에 깨우쳐야 한다.

 

실패한 나는 당신은 우리는 그리 못난 사람들이 아니다. 단지 우린 조금 운이 없었을 뿐이다. 그래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게으르게 하지 말자.

성공한 나는 당신은 우리는 그리 잘난 사람들이 아니다. 단지 우린 조금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러니 운이 없는 사람들이 앞에서 자신이 잘났다는 착각을 떠벌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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