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관념과 현실 사이

아이루다 2012. 1. 27. 15:10

남자는 태어나서 죽는날 까지 세번 울어야 한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일종의 경구이다. 태어날 때,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 한번은 뭐더라??

아무튼 이 말이 품고 있는 뜻은 세번 울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눈물을 아끼라는 뜻이다. 눈물이란 자신의 약함을 외부에 표출하는 작용으로 이해한다면 말이다.

 

나 역시 이 땅에 태어나서 자라면서 이런 종류의 수 많은 속담, 경구, 명언 등등을 접하면서 살아왔다. 어떤때는 정말 마음에 담아주고 평생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할 것 같은 명언도 있고 어떤 때는 참 현실적이고 비관적이이다 하지만 어쩔수 없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던 글도 있었다.

 

난 아무튼 어려서 부터 울지 않아야 한다는 관념을 머리속에 담아 두고 살아온 것 같다. 실제로 눈물이 많이 없었던 편이였으니까. 아마 자기 인식을 한 후 남들 앞에서 울어본 것이 몇차례나 될까?

 

말이 좀 길어졌는데 오늘은 관념과 현실의 괴리에 따른 자아붕괴에 대한 얘기를 써보고자 한다. 말이 참 어렵다 ㅎㅎ

단순히 말하면 내 머리속에 나는 이런 모습인데 현실의 나는 이런 모습이기에 서로 큰 차이가 날 수록 자기 비하에 빠지거나 심한 스트레스를 느끼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다루고자 한다.

 

어린아이 일수록 꿈이 크다. 대통령, 위대한 과학자 등등. 만약에 10살짜리 어린애가 미래의 꿈이 우편배달부라고 한다면 보통은 조금 갸우뚱하거나 이 아이가 자란 외부 환경에 의해 라고 생각해봄직 하다. 하지만 인생의 긴 항로를 지나 이제 죽음이 더 가까워진 나이가 되신 분들에게 꿈을 얘기 하면 보통 그냥 큰 걱정없이 죽는 날까지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할 것이다.

 

꿈이 아주 소박하게 변했다.

 

이렇게 까지 변할 과정에서 그 개인은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냥 될 것 같은 대통령은 적어도 쉽지 않고 존경하는 아인쉬타인 박사와 같은 사람이 되길 바랬으나 아이큐 차이가 너무 크다. 에디슨같은 발명왕이 되고자 했으나 이미 쉬운것들은 다 발명되어 있다.

 

하지만 인간이 자신의 가치를 진심으로 인정하기란 얼마나 힘든 것이냐. 우린 그래서 끝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애쓰고 살고 있다. 어린 시절을 되돌아 보면 남들처럼 축구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고 공부도 하고 모든 것을 다 해보지만 결국 남은 것은 자신이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하는 소수의 몇개이다. 그중에서도 그나마 조금 잘하는 것을 골라서 자신의 직업으로 평생 보내게 된다. 이것도 행복한 사람이고 보통은 자신이 잘하지도 못하는 영역에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을 꾸역꾸역 하면서 살아가는게 일반적인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보통 체념을 한다. 포기를 한다. 하지만 그래서 머리속에 근본적인 관념은 쉽게 바뀌질 않는다. 우린 언제라도 생각한다. 내가 기회만 있었다면 내가 조금만 그당시 더 노력했다면 현재보다 훨씬 잘난 존재가 되었을 텐데 라고 말이다.

 

누군가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말하면 보통 무척 화를 내고 그런 사람과 상종도 안하려 한다. 상처를 주었기 때문이다. 노래방에서 노래를 못하는 사람이 용기를 내어 하고 있는데 못들어 주겠다고 마이크를 뺏으면 얼마나 창피하겠는가? 하지만 노래를 못하는 것은 현실이다.

 

어떤 것을 행복하게 즐기는데는 몇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잘해서 재밌는 경우. 제일 일반적이다. 잘하면 재밌다. 그 지겹다는 공부도 재밌다. 1등하면 재밌는것이다. 꼭 1등이 아니라도 어느정도 레벨만 들어가도 된다.

둘째 못해도 재밌는 경우. 좀 특별하다. 그냥 하는것 자체가 즐겁다. 누가 잘하고 못하고 보다는 그대로 재밌는 것이다.

셋째 이겨서 즐거운 경우. 잘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잘 모르지만 누군가와 경쟁해서 이기면 재밌다. 물론 지면 재미없다. 이기기 위해 노력한다.

 

어떤 것이 불행한 경우 또한 몇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못해서 재미없는 경우. 일반적이다. 못하면 재미없다. 노래 못하면 노래방 가기 싫고 공부 못하면 도서관 가시 싫다.

둘째 잘해도 재미없는 경우. 특별하지만 있다. 힘이 쎄서 막노동을 잘할 것 같지만 막노동 하긴 싫은것이다.

셋째 져서 재미없는 경우. 경쟁해서 지면 재미없다. 약오른다.

 

뭐 나름 정리해서 써놨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누군가 내가 뭔가를 좋아하고 즐긴다고 말할땐 그 밑바닥에 어떤 감정이 숨겨져 있는가 이다.

또한 누군가 내게 뭔가를 싫어하고 즐겁지 않다고 할때 어떤 감정이 숨겨져 있는 것인가 이다.

 

인간은 누구나 존재가치에 대한 무한한 욕심이 있다. 존재가치는 생명이 살아가는 가치이며 내가 죽지 않을 수 있는 이유다. 따라서 우린 수 많은 활동을 통해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고자 하며 이것을 밑바탕으로 내가 좋아하고 내가 행복한 것이 정리되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쓰임새라는 말로 하면 좀 더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쓰임새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 바로 곧 내가 존재할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럼 내가 쓰임새가 있게 되려면 내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당연히 내가 남들보다는 어떤 면에서 좀 더 나은 존재여야 한다. 이것이 관념이다. 달리기는 초를 재어서 판단하니 내가 빠르게 달리는지 느리게 달리는지 구별이 쉽다. 하지만 공부는 다르다. 물론 성적에 의해 구별되기도 하지만 그것인 오직 시험을 보는 학교시절의 이야기이고 사회생활에서 누가 머리 좋은지는 절대점이 없다. 또한 외모도 그렇다. 절대 기준이 없다. 따라서 누구나 예쁘다고 하고 잘생겼다고 하면 좋아한다. 근거는 없지만 자신에게 증명은 되니까 말이다. 이렇게 기준이 명백하지 않은 능력에 대해 인간은 스스로 높은 위치에 올려놓게 된다.  이것은 존재가치를 증명 받고자 하는 인간의 아주 기본적인 형태로 누구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이것을 혀영심이라도 표현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관념적 나와 다르다. 나는 내 생각보다 똑똑하지 않고 나는 내 생각보다 쓸모 있는 존재가 아니다. 내 전화기에 수천명의 사람의 주소록이 있고 내 트위터에 수십만의 사람들이 팔로잉 되어 있다고 해서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있는건 아니다. 그런 것들은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있는 인간관계일 뿐이다. 어느날 나의 은밀한 사생활이 들어나서 유출된다면 나를 알고 있는 숫자만큼의 사람들이 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되고 만다.

 

연예인들을 공인이라 칭하는것도 우숩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존재는 그래서 그 많은 사람들의 긍정적 관심과 부정적 관심을 다 받는 것이다. 선플과 악플 모두 관심이란 것이다. 또한 그들이 짊어지고 나갈 직업의 업보이기도 하다.

 

아무튼 관념의 자신의 현실의 자신이 다름으로서 우린 참 많은 고통을 얻는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지만 아이스크림은 몸에 해로우니 먹으면 안된다. 나는 뚱뚱하고 몸 관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니 당연히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는다. 하지만  아주 가끔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 간단한 예를 들었지만 이런 예는 수없이 많다. 인생은 짧으니 하루 하루 열심히 살아야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열심히란 말의 기준이 뭘까? 어렵다. 난 8시간 자고 14시간을 일하고 2시간을 밥먹는데 썼으니 열심히 시간을 보낸 것인가?

 

나는 이 관념의 자신과 현실의 자신의 차이를 극복하고자 한다면 어떤 명제에 대해서도 그 근본적인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건강하길 원한다. 솔직히 감기만 걸려도 얼마나 힘든가? 건강이 소중하다. 누구나 안다. 그런데 정말 그 소중한 건강을 위해 우린 얼마나 신경쓰고 사는가?

건강이 소중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있나?

 

그런데 왜 건강이 소중한가?

 

정말 깊게 생각해보자. 왜 건강이 소중한가?

 

어떤 사람들은 건강을 포기하면서 까지 성형수술을 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건강이 가장 소중한 가치가 되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건강을 포기하면서 까지 일을 하곤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건강은 가장 소중한 가치가 되는가?

 

결국 잘 생각해보면 건강이 소중한 것을 알지만 정말 소중한 것을 몰라서 그렇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병에 걸릴 것을 알면서도 방치하곤 한다. 담배를 피는 것이 바로 그렇다. 담배의 해독성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담배를 핀다.

 

그럼 건강이 소중하다는 것이 얼마나 관념적인 것인가?

 

매년 새해가 밝으면 사람들은 담배를 끊고 헬스장을 등록하여 건강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실제로 두어달 지나면 모두 시들해진다. 의지력 부족이란 용어로 표현되지만 실제로는 정말로 건강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관념적인 접근을 한 탓이다. 그러니까 매년 헬스장에 등록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말자. 정말로 건강하고 싶은 소망이 없다면 말이다. 그리고 반드시 건강해야할 이유가 없다면 말이다.

 

건강이 소중하지만 다른 가치가 더 소중하다면 건강에 덜 신경쓰면 된다. 건강은 정말 소중한 사람에게만 소중하면 되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이다. 그 실제를 반드시 제대로 바라보고 자신의 머리속에 관념과 현실의 갭을 줄이지 못하면 끝없이 갈등하고 좌절하게 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남자는 세번 울어야 한다고 믿으면 그러면 된다. 반대로 드라마 보고 울고 영화 보고 울고 나가수 들으면서 우는것은 아무 문제없다. 울고 싶으면 울고 웃고 싶으면 웃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 자, 이제 좀 떨쳐버리자. 우리가 끝없이 받았던 교육과 사회가 은연중 주입시키는 수 많은 관념들.

남자는 울면 안된다. 건강을 위해서는 운동해야 한다. 몸에 좋은것을 먹어야 한다. 편식하면 안된다... 남에게 피해주는 일 아니면 다 다시 생각해보자.

 

진실로 그것을 원하면 하자. 왜 자꾸 하지도 못할 것들을 머리속에 주입시키고 또 그것을 하지 못해서 괴로워 하는가? 좀 놔주자. 내가 좀 편하게 놔주자. 그리고 정말 진실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해보자.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면 책 읽는 즐거움을 얻어보려 애써보자. 아무리 책을 읽어도 재미가 없다면 책을 읽어 늘어나는 지식에 집중해보자. 지식이 늘어나도 재미가 없다면 출세를 하기 위해 책을 읽자. 출세를 하기도 싫다면 그냥 책 읽지 말자. 책은 나하고 안맞는 것이다.

 

TV 보면 바보되니 TV 보지 말자. 근데 TV 안보니 할게 없다. 딴게 아무리 해도 재미없다. 그럼 그냥 TV 보자 관념의 나는 TV 안보는 시간을 멋지게 보내지만 현실의 TV를 멀리한 나는 나는 네이버에서 어제 한 드라마에 나온 여배우 캡쳐사진 보고 있다. 이러지말자. 그냥 TV보자. 나는 그냥 TV보는 수준인거다. 인정하면 편하다.

 

단지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은 처음부터 다 즐거운건 아니란 것이다. 수영을 배울때도 처음에 좀 고통스럽다. 즐기는 법을 배우려면 수영을 적어도 1년 이상 해야한다. 포기하더라도 좀 이 단계까지 가서 포기하자. 1년 했는데도 재미 없으면 수영은 나하고 안맞는것이다.

 

독서의 즐거움을 얻고자 한다면 한 100권 정도 책을 읽어보자. 너무 많다면 10권만 읽자. 그리고도 재미있는 책이 하나도 없다면 그냥 딴거 하자.

 

무심코 지나가던 수 많은 것들을 좀 자세히 바라보면 매일 매일 보던 책상에서도 재미있는 것을 찾을 수 있다는 조언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