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행복이란 이름의 욕망

아이루다 2012. 3. 5. 11:05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뭐 딱히 고민하지 않아도 모든 사람은 행복이라고 말할 것이다. 맞다. 우리가 보통 행복의 척도로 많이 잡는 돈에 대한 욕구도 또한 권력에 대한 욕망도 사람들과의 즐거운 시간도 휴일 오후의 맛있는 간식과 즐거운 볼거리도 모두 이 행복이란 목표를 도달하기 위해서 인간이 갖고 싶어하고 하고 싶어하는 행동들이다.

 

다른관점에서 행복을 분석해보자.

 

'행복' 이란 단어의 반댓말은 뭘까? 당연히 '불행' 이다. 영어로도 happy, unhappy 로 표현된다. 불행은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불행의 정체는 뭘까? 심각하게 고민해보자. '행복하지 않다' 는 과연 무슨 뜻일까? 10분만 생각해보자.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때 행복하다. 그럼 맛없는 음식을 먹을때는 불행한가? 그렇다고 치자. 그럼 음식을 먹지 않고 있을때는 과연 행복인가? 불행인가?

사람이 일을 하다보면 바빠서 밥먹을 시간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게 가게라면 눈코뜰새 없이 바쁜상황이니 돈을 긁어들이는 상태일 것이고 굳이 밥을 먹지 않아도 행복할 것이다. 직장인이라면 밥먹을 시간도 없이 바쁘면 불행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월급을 더 올려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밥을 먹지 않는 상태는 뭐라고 정의내리기가 어려운 상태이다.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다. 그리고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공자님은 중용의 도를 주장하셨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는 것.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는 것.  그럼 행복과 불행의 중용은 뭘까?

 

행복이라는 것은 기분이 좋은 상태 즉, 쾌락이라고 봐야 옳고 불행이라면 기분이 나쁜 상태 즉, 고통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선일것이다. 그렇다면 쾌락도 아니고 고통도 아닌 상태란 뭘까 라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쾌락이란 용어를 썼다고 해서 오해는 말자. 그냥 기분이 좋은 상태를 통털어 쾌락이라고 말한 것이다. (과거 철학자들도 이렇게 표현했으니 의심하지 말길) 또 10분만 생각해보자.

 

나의 결론은 '평온함' 이다.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는 상태. 불교에서는 욕망을 버리고 열반에 들기를 바라는 교리를 편다. 이 욕망이란 끝이 없기 마련이고 이 욕망을 쫓차 살게 되면 욕망자체에 함몰되어 결국 불행해지는 것이다. 이 욕망에는 육체적 정신적 욕망이 모두 들어간다. 성욕과 식욕 같은 것은 육체적인 욕망이고 소유욕이나 지배욕 같은 것들은 모두 정신적인 부분에 들어갈 것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자. 우리는 왜 돈을 갖고 싶어하고 잘난 외모를 위해 성형수술을 하고 또 자신의 이득을 위해 거짓말을 할까? 우린 왜 타인과 잘 어울리기 위해 마음에 없는 착한 행동을 하고 또 타인의 눈을 끝없이 의식하며 살아갈까? 

 

결론은 행복하기 위해서다. 나는 지금까지 인간이 추구하는 욕망이 모두 개별적인 것으로 판단했다. 돈의 가치성 추구나 타인에게  자신의 잘남을 인정받고자 하는 어리석은 면들이나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했던 많은 행동들이 분리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결국 돈을 추구하는 삶이나 자연에 벗해 유유자적으로 살아가는것 모두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이고 이런 서로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단지 돈은 끝없이 추구해야할 목표이고 시골에서 맘편히 사는 것은 좀 더 얻기 쉬운 것이다. 결국 시골에서 사는 것은 돈을 가져야 행복해질 수 있는 것에 비해 좀 더 달성하기 쉬운 행복이란 것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스스로 최면을 건다. 돈이란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모래성 같고 언젠가 쉽게 무너질 것이야. 혹은 돈으로만 세상을 보면 너무 각박해서 행복하지 않을 것이야. 라고 생각한다.

 

어느정도는 맞다. 돈으로 관계를 맺어 놓으면 돈이 없을때 그 관계는 모두 끊긴다. 사람들은 그것이 두려운 것이다. 돈이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인데 내 행복을 모두 그 하나에 몽땅 걸어버리면 그 불안함이 늘 나를 불행하게 만들 수 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어느정도만 맞는 것이다. 결국 인간관계의 역할에 대한 분류는 내가 문제가 발생했을때 이를 도와줄 사람이 돈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의 자발적인 부분인가? 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정으로 사람과의 관계를 맺어 놓으면 내가 베푼것보다 덜 받을 수도 더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돈으로 맺어 놓으면 딱 내가 낸 돈만큼만 받는 것이다. 혹은 몽땅 떼이기도 한다. 자발적 도움은 미소와 함께하고 돈에 의한 도움은 딱딱하고 불쾌하며 또한 불성실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이런 차이가 크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런 말들을 한다. 하지만 말이다. 잘 생각해보면 이 역시 욕망의 다른 형태 아닌가? 기대치라는 욕망 말이다.

 

돈을 버는 것이나,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사는 것이나, 직장에서 성공하려 노력하는 것이나, 공무원 시험을 보기 위해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것이나, 남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나, 매년 기부금을 내는 것이나, SETI 프로젝트에 참가해서 외계인 신호를 찾는 것이나, 자건거를 타고 매일 30km를 달리는 것이나, 게시판에 들어가 글을 쓰고 타인의 관심을 받는 것이나, 그 글을 읽고 시간을 보내는 일이나, TV를 보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일이나, 호젓한 산속의 절에 들어가 몇달이고 마음의 수양을 하는 것이나 근본적으로는 모두 행복하려는 행위이다.

 

나는 이글의 제목을 행복이란 이름의 욕망이라고 적었다. 이제 그 이유를 말한다. 돈을 추구하는 것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를바 없다. 단지 행복의 조건이 돈이라고 생각하는것 밖에. 돈이 많은 집에 태어나 부족함이 없이 사는 사람과 행복을 느끼는 유전자를 듬뿍 타고 태어나 쉽게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돈이 인간이 만든것이라면 행복은 타고난다는 것 밖에. 그리고 돈은 그 돈 자체로 행복한 것은 아니다. 무인도에 홀로 떨어지면 100억이 있든지 무슨 소용이랴. 하룻밤 땔깜으로 밖에 못쓴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욕망을 버려야 한다. 그렇다고 불행한 것은 아니다. 행복하지 않다는 말이 불행을 의미하는건 잘못된 우리 습관이다. 예를들어 둘이 완전히 반대라면 불행하지 않는것도 행복이 되어야 하는것 아닌가?  하지만 사람들은 불행하지 않다는 말을 행복하다고 여기진 않을 것이다.

 

행복하지 않다는 말은 불행이 아닌 평온함을 말한다. 행복은 물론 나쁘지 않다. 행복하려는 인간의 본능은 인내심을 강화시키고 고통을 참는 능력을 배양시켜 결국 더 커다란 열매를 얻게 해준다.

 

아무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절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 돈을 버는 것과 마찬가지로 돈을 벌기위해 불행해진다면 안되듯 행복하기 위해서 불행해지면 안되는 것이다.  평온함을 얻고자 한다면 우리가 보통 말하는 여러가지 욕망을 버릴게 아니라 그 근본적 목표인 행복하고자 하는 욕망을 버려야 한다. 

 

서점에 가보면 많은 책에서 따뜻한 삶에 대한 추구로 행복하는 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리고 당신도 행복할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또한 당시은 행복할 권리도 있고 꼭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라. 내가 행복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얼마나 정당한 것인가? 인간은 반드시 행복해야만 하는 것인가? 나는 행복하지 않는 순간 바로 불행한 것인가?  행복의 추구야 말로 인간이 반드시 해야 할 행위이며 또한 갖지 못하면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것인가 말이다.

 

사람들은 보통 갖고 있는 것보다 갖지 못한것에 대해 집착한다. 왜냐면 그것을 갖게되며 얼마나 행복해질지 상상하면 괜히 즐거워지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에서 그것을 가질 가능성은 높거나 높지 않다. 아마 그것을 얻기 위해 치뤄야 할 비용에 따라 다를것이다. 실제로 그것을 갖게되면 얼마나 오래 행복할 것일까? 하루? 이틀? 삼년? 십년? 아마 그렇게 오래가진 못할 것이다. 왜냐면 우리의 뇌는 끝없이 탐욕적이라서 또다른 행복거리를 만들어내고 우리를 강요하게 될 테니까.

 

 

 

 

행복을 추구하지 마라. 행복 자체도 역시 욕망이며 당신이 행복해야 한다는 명제는 아무데도 없다. 당위성도 없다. 그토록 행복하라고 말하는 기독교도 원죄설을 말한다. 불교 역시 인생은 고해라고 한다. 도대체 우리가 행복해야 한다는 것은 누가 처음 주장했으며 왜 우린 그것을 그토록 당연하게 믿고 평생을 걸쳐 그 목표만을 위해 살아가는가? 우리의 뇌인가? 사회가 주는 교육인가? 아니면 너무나 오랜시간 진화해 내려온 생명의 본질인가?

 

과학분야에서는 코페르니쿠스의 사고전환이란 말을 쓴다. 태양이 지구를 돈다는 누구나 진실로 믿고 있고 또한 그렇게 보이는 현상에 대해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는 생각을 해내는, 기존사고와는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지금 행복에 대한 사고혁명을 말하고 있다. 우린 행복해야 한다는 것만 알지 왜 행복해야 하는지 정말 그 이유를 모른다. 단지 행복하면 기분이 좋다고만 알 뿐이다. 그리고 행복의 조건이 뇌에서 나오는 강한 중독성 물질인 도파민과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는 세로토닌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행복해야 한다는 믿음에 대해 의심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욕망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 욕망은 돈에 관계될 경우가 많고. 작은것에 만족하라고 한다. 그래야 행복하다고 한다. 왜 그래야 하는가?  그냥 행복하지 않는 것인 꼭 불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런 불필요한 행동을 왜 하는가?

 

나는 그냥 행복하지 않는 상태, 즉 평온함을 목표로 삼겠다. 적어도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이것에 대해 욕심이 하나 있다면 행복하지 않은 상태에 대해 좀 더 적합한 용어가 있었으면 좋겠다. 평온함은 마치 행복한 상태처럼 들린다.

 

육체가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에 육체가 병드는것이 불행하다. 나는 돈을 많이 가져야 하다는 생각이 돈이 없음을 불행하게 만든다. 우린 몸이 건강하고 돈이 많은 사람의 그 건강과 돈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인해 그 사람이 행복할 가능성이 많다는 확률을 부러워 한다. 왜 그런것들이 당연하게 주어지는가? 도대체 누가 우리 인간에게 그렇게 얻기 힘든 행복을 쉽게 얻을 수 있으며 스스로의 권리라고 말하는 것인가?

 

내가 행복할 권리는 아무도 주지 않았다. 행복 추구권이 인간의 기본원리라는 것도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낸것이다. 그져 우린 주변인들로 부터 얻어들은 것이다. 행복에 대한 욕망은 그 어떤 욕망들보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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