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행복의 조건

아이루다 2012. 1. 25. 18:59

특별히 철학적 사고를 하지 않아도 또는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우리 인간이나 동물들이 거의 모든 판단 기준점은 행복이다.

물론 자신의 행복일수도 있고 가족,친구 등과 같은 자신과 관계된 사람들의 그것일 수도 있고 아무 관련없는 타인이나 다른 동물일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행복이 아닌 경우라도 그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결국 자신의 행복으로 귀결된다.

 

이런 전제에 대해 딱히 다른 의견으로 반박할 부분은 없다고 본다.

그럼 인간 행동의 기준점을 행복이라고 보고 (여기서 행복은 수많은 종류의 것을 다 포함한다. 식욕,성욕과 같은 본능과 음악감상과 같은 정신적인 행복감까지)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조건을 좀 더 면밀히 들여다 보자.

 

여기서 또하나의 전제를 가정해야 하는데 솔직히 이것이 맞다 틀리다는 나도 모른다.

 

행복은 보통 어떤 욕구를 해결하는데서 느껴지는 만족감이다. 배가 고플때 뭔가를 먹고 배설하고 싶을때 배설을 한다. 외롭다면 누군가와 대화를 해서 친밀함을 느끼고 춥다면 따뜻한 곳에 들어간다. 아프면 낫기 위해 약을 먹고 병원에 가고 죽음이 두려울때는 종교를 믿기도 한다. 어찌보면 우리 인간의 행위 중에 행복과 분리된 행동이 있으랴.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닌것 같은 학창시절 힘들게 공부하는 것도 취직 후 새벽 추운 공기를 뚫고 만원버스를 타고 직장에 나가는 것도 결국엔 자기실현과 다른 행복을 얻기위한 돈을 벌기 위함이니까 말이다.

 

기본적으로 만족의 조건은 실제적 만족과 기대치의 만족으로 나뉘어 질 수 있다. 흔히들 말하듯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한다. 확실히 현대 문명에서 행복의 가장 큰 조건으로 여겨지는 돈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는 것은 맞는 것 같다. (물론 그만한 돈을 벌어본적이 없어서 확실히 모르겠지만 ㅎㅎ)

 

간단히 예를 들어 두가지를 만족을 설명해보자.

실제적 만족이라하면 배가고프면 뭔가를 먹어 위를 채워 배고픔을 없애는 것을 말한다. 기대치의 만족은 같은 예에서 보면 어떤 것을 먹는냐의 문제이다. 라면을 먹느냐, 김밥을 먹느냐, 스테이크를 먹느냐 스테이크 중에서도 소고기 안심이냐 등심이냐. 그 스테이크를 아주 유명하고 비싼 호텔 식당에서 먹느냐 고기를 사다가 집에서 해먹느냐 천차만별이고 또한 그것을 만족시키기 위한 비용은 어마어마한 차이를 보인다.

 

염세주의 철학자로 손꼽히는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행복을 느끼고 싶다면 당장 자신보다 못하는 사람들을 가서 쳐다보라는 말을 했다. 실제로 맞는 말이며 이 부분은 행복의 실제적 만족보다는 기대치 만족에 관련된 설명이다.

 

기대치의 만족.

 

타인과 대화에서 타인의 수입에서 타인의 처지에서 타인의 직업에서 타인의 명품가방에서 상대적 불행함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내가 왜 불행함을 느끼지는지에 대한 좀 더 깊은 고민을 해봐야 한다.

 

인간은 보통 자신만의 행복의 조건을 머리속에 만들어 놓는다. 물론 이 조건은 당여힌 실제적 만족이 아니다. 식욕에 대한 욕구는 위장이 가득차면 보통 더이상 욕구를 느끼지 않는다. 미래의 후손을 위한 성욕 역시 무한정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대치의 만족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들 그리고 갖고 싶은 것들에 대한 무한한 욕구이다. 따라서 우린 정보가 많으면 많을 수록 불행함을 느낀다.

 

예를 들어 내 주변에 친구들이 모두 나와 동일한 수준의 연봉을 받거나 그 이하면 나름 큰 불만 없이 신경쓰지 않거나 혹은 행복감을 느낄수도 있다. 하지만 동창회에 나가 학창시절 나보다 못했던 친구인데 엄청나게 성공해서 아름다운 여인과 사회적 지위 그리고 고급스러운 삶을 사는 모습을 보게 되면 질투를 느끼고 집에 와 거울을 바라보며 불행함과 자괴감을 느낀다.

 

동창회 나가기 전의 자신과 갔다 온 후의 자신의 전혀 다르지 않은데도 단지 높은 수입을 올리는 친구를 만남으로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는 것이다. 나는 이런 상태를 행복의 조건이 올라간 상태라고 표현하고 싶다.

 

다음 그림을 보자. 대충 그린 것이니 너무 자세히 분석하지는 말아 줬으면 한다.

 

 

 

여기에서 다양한 조건은 그냥 내 기준으로 적은 것이다. 특히 외모 같은 경우는 나이에 따라 성별에 따라 크게 차이나는 요소이기 때문에 몇가지 분리해서 그렸다. 여기에서 잘 봐야 하는 것은 행복의 기준점과 현실 사이의 존재하는 타원의 면적이다. 왜냐하면 이 부분이 결국 자신을 만족하지 못하고 불행하게 느껴게 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 그림으로 판단해보면 이런 기준점을 가진 주인공은 일단 배우자는 좀 잘난듯 하다. 그 잘남이 외모일수도 있고 성격 혹은 배우자의 수입일 수 있는데 현실에서 만족이라고 해서 반드시 절대적으로 만족한 상태는 아니다. 단지 자신이 알고 있는 주변 인물들의 평균이 그정도 되기 때문에 저정도의 기대치가 생긴 것이다.

 

서울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좋은집 아니 안좋더라도 자신 명의로 된 집에 대한 욕구가 크다. 서울에서 집한채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부러운가!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엄청난 연봉을 자랑하는 사람들도 있고 수많은 미디어에서는 신의 직장 운운하면서 끝없이 사람들의 욕구를 자극한다. 결국 여기에서 그려진 타원은 그런 정보의 총합이다. 시골 산구석에서 신문안보고  인터넷 안하고 사람들 안만나고 살았다면 현저하게 낮아질 요구치인 것이다.

 

이정도면 충분치 않아도 대충 내가 어떻게 행복한가? 나는 세끼 다 먹고 직장있고 결혼하고 애도 있는데 왜 불행한가? 나보다 못한 저놈은 왜 행복해 보이는가? 등등 대충 내가 불행한 이유에 대해 감이 잡혔을 것이다.

 

이 그림에서 타원들은 매일 바뀌고 어떤 정보를 접하느냐에 따라 높낮이가 달라진다. 결국 만족감이란 것이 주변사람들에 대한 상대적인 것이 아닌가? 그래서 오픈된 장소에서 자신의 연봉을 밝히고 주변 사람들의 시샘과 부러움을 느끼면서 자신의 허영심을 채운다. 그래서 또 행복하다. 그러다가 자신보다 더 높은 연봉을 받는 사람을 보면 역시 시샘하고 부러워 하며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낀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영원히 반복되는 행위가 되어 버린다.

 

그런데 좀 더 깊이 생각해보자. 난 분명히 밥을 굶고 있지는 않다. 엄청나게 맛나고 비싼 것을 먹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간장에 맨밥을 먹는 처지가 아니라면 나는 왜 먹는것에 만족하지 못하는가?  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맛나고 더 좋고 더 비싼 것을을 먹고 쓰고 사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 진실로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 때문인가? 아니면 타인과 비교해서 나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행위인지 말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혀를 통해 식도를 타고 나면 몸에 더 해가 되거나 아니더라도 결국 화장실의 응가가 된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멋진 한강변 비싼 아파트도 며칠 지나면 잘 쳐다보지도 않는다. 가끔 친구가 찾아왔을때 부러워 하는 것을 통해 허영심을 채울 뿐. 멋진 차는 물론 편안하고 안전하다. 하지만 어느정도 편안함과 안전함을 보장한다면 많은 유지비용과 신경이 쓰이는 좋은 차가 오직 편안함과 안전함을 위해서만 선택하는 것인가?

 

높은 연봉은 이 모든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이니 따로 비교할 필요가 없다. 통장에 100억이 있어도 내가 행복한 씀씀이가 없다면 난 불행할 뿐이다. 호주머니에 단돈 만원만 있어도 내가 정말 배고파서 맛난 칼국수 먹을때가 더 행복할 수도 있으니까.

 

백수는 주말의 소중함을 모른다. 주중에 일을 해야 주말이 기다려지는 것이고 아파야 건강할 때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물속에 빠져 숨이 막혀야 산소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 우린 부족해야한 작은 욕구 충족에 크게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행복하고 싶다면 내가 머리속에 만들어 놓은 행복의 조건을 최대한 낮춰야 한다. 남들만큼 남들보다 더 많이 뭔가를 소유하려 하는 것은 단순히 욕심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을 너무나 불행하게 만드는 짓이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은 아니지만 마음먹기 따라서 세상은 순간 많은 것이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보다는 내가 가진 것들을 찬찬히 바라보자.

 

아침 맑은 공기를 느끼려 노력하고 매일 먹는 밥이지만 이 밥을 먹을 수 있는 나의 능력에 감사하고 만족이 되지 않는 월급이지만 그만한 월급이라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자. 주변 사람들에게 주어 듣는 정체 모를 정보들을 가지고 내 행복의 조건을 마음대로 조정하지 말자. 다 믿기도 어렵거니와 실제로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은 그런 조건이 없을 것 같은가?

 

지금도 어디선가 자신의 가진것을 자랑하고 가지지 못한 자를 경멸하며 끝없는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불행한가.. 자랑을 많이 할 수록 욕구가 크다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저 그림의 행복의 조건이 끝없이 높아 있다는 것이다. 열등감과 우월감은 결코 다른 것이 아니다 같은 감정이 상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것일 뿐. 타인에게 우월감을 많이 들어내는 사람이라면 그만큼의 열등감이 있다는 것이란 말이다. 그냥 불쌍하게 봐줘야 한다. 자신의 정신적 가치에 얼마나 자신이 없으면 저런 물질적 가치로 끝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하고 있겠는가 말이다.

 

이글을 읽었다면 그리고 지금이 밤이라면 밖에 나가 하늘을 한번 봐라. 만약 반짝이는 별을 보았다면 그것도 행복이 아니겠는가? 서울에 사는 사람들 중에 과연 얼마나 하늘을 별을 바라볼 여유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