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잘살아야 행복한 것일까.. 행복하기 위해 잘사는 것일까?

아이루다 2012. 3. 1. 15:04

 

일단 잘산다는 말의 의미는 경제적인 부분으로만 한정하기로 하자. 이만큼 중요한 것들이 산더미처럼 많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보통 사람들에서의 잘산다는 의미는 돈을 많이 벌고 좋은 집과 좋은 환경과 좋은 먹거리를 즐기는 것이니까.

 

5.16 군사 혁명(쿠테타) 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잘살아보세 라는 노래와 함께 아주 강력한 경제발전 정책을 펼쳤다. 4.19 의거에 의한 이승만 독재정권으로 부터 그 권리를 국민의 손으로 넘겨받은지 채 얼마 되지 않은 사건이지만 일단 박정희 정권에 대한 평가는 너무 극과 극을 달리기 때문에 최대한 중간자적 입장에서 기술해본다. 자세히 알아보면 박정희 정권동안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 대한 평가는 이견이 있지만 일단 일반적인 수준에서 그냥 공이 있었다고 인정한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시절의 희망을 그리워한다. 요즘과 비교하면 적어도 희망이 있었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누구는 10만원짜리 밥을 먹고 누구는 2천원짜리 국수를 먹지는 않았단 말이다.

 

박정희 정권의 긍정적 평가는 경제발전이다. 그럼 부정적 평가는 당연히 독재정권이다.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수 많은 사람을 죽였고 협박했고 소수의 기득권층에 엄청난 특혜를 줬으며 영남 편중 정책에 의한 지역감정이 극성을 부린 과오가 있다. 그래도 잘살수 있다는 희망이 내 집안 누군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반병신 되어나오지 않는 한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의 한국경제와 비교하면 터무니 없는 행복이다.

 

박정희를 이은 전두환은 역시나 동일하게 12.12 군사 쿠테타를 통해 다시금 정권을 찬탈했고 그 이후 노태우를 거쳐 3당통합으로 대통령에 오른 김영삼에게 정권을 물려줬다. 뭐 정확히 말하면 노태우부터는 국민 직선제로 뽑았으니 물려준건 아니다.

 

아마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가 이렇게  까지 빈부격차가 심하진 않았고 나름 다가치가 인정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7~80년대 개발된 강남의 개발신화로 부터 때아닌 돈벼락을 맞은 졸부들이 사회의 기득권층에 합류되고 일제시대때부터 청산되지 않은 깊은 위정자들은 그냥 그렇게 조용히 살아왔던 시절이었던 것같다.  대학은 독재에 반대하는 의식있는 젊은이들이 넘쳐났고 그들은 사상과 사회문제등 많은 부분에 있어서 인문학적 연구와 저항의 시대를 보냈고 또한 캠퍼스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기타와 저항의 낭만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의식변화의 계기는 아마 IMF 인것 같다. 대학에 들어가긴 어려웠지만 들어만가면 적어도 졸업 후 취업은 보장되던 시절에서 갑자기 취직이 지상명제로 바뀌어버린 시대로 변화되어 버렸다.  그나마 IMF전까지 단 열매를 먹은 학번은 90학번이 마지막이였으리라.

 

자산가치가 하락하고(내 기억으로 그때 처음 집값이 떨어졌을 것이다) 잘나가던 중소기업 사장들이 하루아침에 신용불량자가 되었으며 부유하게 자라던 아이들이 어느날 대학 등록금을 내지 못해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김대중 정부에 들어서서 IMF를 졸업했다고 선언을 했었는데 나는 지금도 우린 IMF라고 생각한다.

 

금모으기 등등의 범 국민적 노력과 대마불사론에 의해 엄청난 국고가 투입된 은행 살리기 등등으로 우리는 겨우 급한 불을 껐다. 그런데 말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기긱 시작했다. 위기를 넘기고 나니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사람들은 모두 바보가되고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나라의 경제를 말아먹은 부류는 국가의 도움을 받아 될살아 나서는 지금 마치 혼자 스스로 극복한마냥 자신해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을 속이고 또 애국심을 빙자해서 국산품 애용으로 키워놓은 우리의 대기업은 해외로 그 무대를 넓히고 얻어진 이익을 고스란히 자신의 뱃속과 직원들에게 나누어주고는 마치 우리 힘으로 모든 것을 해낸양 말하고 있다. 실제로 그렇게 되기까지 국가로 부터 엄청난 해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한번 그런일을 당하면 다음엔 다시 돕지 않는다. 심지어 적대적으로 변한다. 홍수가 나서 마을 공동 쌀창고에 물이 들어가게 생겨 모든 마을 사람을이 나와 같이 강둑을 막았는데 그중 여러명이 급류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고 다행히 홍수는 막았는데 나중에 모두 그 급류에 목숨을 잃은 이를 기억하지도 않고 그 가족에 대해 냉담해하며 그다음에 누가 또 홍수가 났을때 목숨을 걸고 강둑을 막겠는가?

 

결국 이런 불신은 사회 전체적으로 퍼져나갔고 남과 잘살기보단 나만 잘살자는 풍토가 대한민국의 일순위 가치관으로 변했으며 이놈도 못믿고 저놈도 못믿으며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자만이 현명한 처신이었다.

 

그리고 우린 이제 잘살아야 행복하게 되었다.

 

박정희 정권에 의한 경제발전 무렵은 적어도 행복하기 위해 정말 밥한끼 제대로 먹기위해 일했고 노력했다면 이제는 먹을것은 꽤 잘 먹게 되었는데 더 맛있는 것을 먹어야 하는 상황으로 바뀐것이다.

 

IMF가 우리의 당연한 운명이었을까? 아니다. 그것은 바로 박정희정권으로 시작된 우리의 잘못된 경제정책과 투명하지 못한 기업문화 그리고 자칭 똑똑한듯 말하는 어리석은 무리들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우린 고도성장에서 오는 피로감에 휘말린 것이다. 경제규모는 1년에 10%이상씩 커지는데 그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들의 머리는 전혀 같이 발전을 하지 못한 심한 물질과 정신의 부조화에서 온 것이란 말이다. 그리고 아직도 그사람들은 과거의 향수에 젖어 그 독재자의 딸을 지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잘산다는 것은 상대적이다. 그리고 행복하다는 것은 절대적이다. 내가 10억이 있었다면 내 친구가 20억이 생기는 순간 난 내 친구의 반밖에 안된다. 그렇지만 내가 지금 너무도 친한 친구와 보내는 행복한 시간은 그 어떤시간하고도 비교가 안되는 것이다.

 

그럼 왜 우린 잘살기만을 바라는 것인가?

 

물론 잘산다는 것이 행복의 기본 여건이 될 수 있다. 마치 사지 멀쩡한 몸, 건강한 육체, 좋은 부모님, 맑은 공기와 같이 이런 요소는 행복에 기본 여건이다. 내가 아무리 행복하려고 해도 몸에 암이 있으면 행복하기 어렵다. 그런 이유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안정이 기본으로 깔린다.

 

내 몸이 건강하다고 자부심이 느끼고 타인의 몸이 건강해서 부러움을 느끼는가? 물론 아픈사람은 그럴 수 있다. 그래서 누가 건강하다는 뉴스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어떤 연예인 집이 수십억이니 누구 주식인 몇조의 값어치인지 어떤 스포츠인이 작년에 수백억을 벌었고 또다른 누구가 작년 수입이 수십억이니 하는 뉴스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 어딘가에 고민상담을 할때면 자신의 연봉을 까고 시작하고 집안의 재산내력을 공개하는 이 현실을 보면 씁쓸함이 느껴지는 것은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돈의 가치가 모든 삶의 가치를 대변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대한민국. 물론 그렇지 않는 사람들도 꽤 있다. 하지만 우리의 주류와 그 주류을 위해 기사를 써대는 언론과 끝없이 사람들의 허영심을 자극해서 자사의 물건을 사게만드는 회사들의 탐욕이 끝없이 우리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일년에 수십억을 버는 연예인들이 천원을 가지고 싸우는 일명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얻고 가창력 경쟁을 통해 꿈을 이뤄준다는 미명하게 수많은 사람들을 오디션장으로 이끈다. 제법 인기를 얻은 사람들은 CF를 통해 왜 니가 그 물건을 사야하는지 자기도 써보지 않고서 사라고 부추긴다. 기업은 그런 광고비용을 모두 합해 광고를 보지도 않고 산 사람들에게까지 그 연예인에게 줄 비용을 전가시킨다.

 

밭에서 논에서 생산을 하는 농민들은 1년 천만원도 못벌고 아무런 생산 활동도 하지 않고 그져 방송에 나와 좀 웃겨주면 수십억을 주는 사회이다. 물론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사회이다.  덕분에 콩나물 천원어치는 깍는 사람들이 CF를 통해 자사의 물건이 얼마나 좋은지 수십억을 들여 해대는 광고비용은 기꺼이 지불한다. 그리고 그런 거품낀 물건의 가격을 산 자신을 제품의 말끔한 디자인을 보면서 자신이 곧 그 제품이 된 느낌을 받는다.

 

뭔가 문제가 있는것이 아닌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냥 나혼자만 느끼는 괜한 심통인지도.

 

사람들은 그냥 집에오면 의지적이든 아니든 TV를 켜고 드리마 뉴스 스포츠 등등 수많은 프로를 보다가 가끔 다큐멘터리도 보고.. 아! 나도 TV에서 교양을 쌓고 있어 라고 말하고 있다. 거기에 수없이 나오는 광고들에 그렇게 노출되어 자신도 모르게 세뇌되어 가는 자신을 제대로 못느끼며 단지 시간을 보내기 편하다. 따로 돈 드는 것도 아니란 생각에 그렇게 하고 있다. 그게 공짜인가? 그게 공짜면 그런 TV프로그램들의 제작비용은 어디서 나올까?

 

드라마에서보면 다들 좋은 직업에 다를 잘살고 풍족하게 산다. 가끔 못사는 주인공이 나오긴 하지만 결국 모든 편견을 극복하고 잘사는 사람이 된다. 사업을 하면 다 성공하고 고난은 있지만 자살은 안한다.  결국 잘살아야 행복하다고 결말을 맺는다. 그리고 시청자는 스스로 그렇게 세뇌되어간다.

 

남들한테 쥐꼬리만한 손해를 보는것도 못참는다. 그것은 나를 무시하는 것이고 나의 집안을 우숩게 보는것이다. 내 자식에게 조금이라도 손해보게하는 행위는 절대 용납 못하는 것이다. 세상은 경쟁속에 있으며 거기에서 살아남으려면 모든 가치관은 돈에만 맞춰야 한다. 결국 좋은차과 좋은 아파트가 있어야 행복한 것이고 그런것들은 더 많은 돈을 벌게 해주는 수단이 된다. 살집이 있으면서도 또 다른 횡재를 바라고 또 아파트를 사는 광풍이 휘몰아치고 그렇게 많은 아파트가 지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전국 주택보급률은 100%가 넘었는데 자가주택보급률은 50%를 넘기기가 힘들다. 한해 수십만채의 집이 지어지는데 도대체 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인구가 그렇게 많이 늘고 있는 것인가?

 

내가 행복하면 끝이고 그 행복은 돈에서 나온다는 허접한 행복론이 대한민국의 주류로 작동하고 있는 한 우리나라의 불행한 1위는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참고로 우리나라 순위 항목이다 (OECD국가 대상 2009년 기준)

 

가장 낮은 최저임금 1위
저임금 노동자 비율 1위
환경평가 뒤에서 1위
인도에서 교통 사고률 1위
학업시간 가장 높은 순위 1위
어린이 행복지수 낮은 순위 1위
청소년 행복지수 낮은 순위 1위
어린이 + 청소년 행복지수 낮은 순위 1위
이혼 증가율 1위
청소년 및 성인 흡연률 1위
자살률 1위
청소년 자살률 1위
여성 자살률 1위
남성 자살률 1위
결핵 환자 발생률 1위
결핵 환자 사망률 1위
보행자 교통 사망률 1위
온실가스 배출 증가률 1위
노령화 지수 1위
국가 채무 증가률 1위
노인 빈곤률 1위
노인 자살률 1위
자살 증가률 1위
산업재해 사망률 1위
남녀임금 격차 1위
실업률 증가폭 1위
자동차 접촉 사고률 1위
대학교육 가계 부담 1위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률 1위
낙태율 1위
노인 교통사고 비율 1위
과학 흥미도 뒤에서 1위
중년여성 사망률 1위
사교육비 지출 1위
당뇨 사망률 1위
남성 간질환 사망률 1위
대장암 사망률 증가율 1위
15세 이상 술 소비량 1위
독주 소비량 1위
심근경색 사망률 1위
출산률 제일 낮은 국가 1위
흡연률 제일 높은 국가 1위
교통사고 사망률 높은 국가 1위
근무시간 많은 국가 1위
세부담 증가속도 빠른 국가 1위
자살률 높은 국가 1위
사교육비 높은 국가 1위
국가 부채 증가속도 - 1위
식품 물가 증가율 - 1위
양주 소비율 - 1위
공교육비 민간 부담 - 1위
사회안전망 가장 안좋은 순위 - 1위
정치적 비전이 안좋은 순위 -1위
고등교육 국가가 지원해 주는 비율 - 뒤에서 1위
상 하위 소득 경차 심한 순위 - 2위
국공립대 등록금 가격 비싼 순위 - 2위
GDP 대비 공교육비 - 2위
등록금 가격 비싼 순위 - 2위
여가 순위 - 뒤에서 2위
세금 증가속도 - 2위
성 범죄 발생국 - 2위
소등 불평등 순위 - 2위
정치 참여가 가장 안되는 순위 - 3등
약자보호 가장 안좋은 순위 - 3위
표현의 자유 안되는 순위 - 3위
이혼율 - 3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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