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대화.. 그리고 살아가기

아이루다 2012. 2. 11. 10:58

인간이 가진 감각은 총 다섯개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중 눈은 빛의 반사 정보를 습득하는데 촛점이 맞춰져 있고 귀는 음파에서 정보를 추출한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감각기관은 아니지만 유용한 기관인 입을 통해 소리를 낼 수 있다.

 

인간은 소리를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랜시간 특정한 음을 규정함으로서 언어라는 것을 발전시켜왔고 이 세가지는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에서 아주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대화를 하는가?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정보의 전달이다. 20세기 후반부터 인터넷이 얼마나 폭발적으로 성장해 왔는지 생각해보라.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는 그만큼 중요하고 사람들에게 소중한 것이다. 인터넷은 그동안 전화기,팩스와 같은 불편한 도구로 사용되던 원거리 정보 전달을 쉽게 바꾸어놨을 뿐이지만 효과는 대단했다. 정보의 전달은 인간의 삶에서 아주 큰 요소 중 하나이다.

 

대화의 부수적인 효과라고 하면 즐거움이 있다. 물론 정보의 전달과 즐거움은 확연히 구별할 방법은 없지만 대충 유익한 정보인가? 아니면 재미있는 정보인가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 친구에게 고장난 컴퓨터를 고치를 법을 물어봐서 대답을 들었다면 유익한 정보이고 그런 친구와 지난 밤에 만났던 여자에 대한 즐거운 얘기를 했다면 정보이면서도 좀 더 재미에 치중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대화자체도 대화를 구성한 인물들과 숫자에 의해 많이 좌지우지 된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 내가 말하고 싶은 부분이다.

 

대학교때 남들이 모두 외향적이라고 말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전혀 떨지 않고 즐겁게 행동했다. 난 원래 무대공포증 체질이라서 그 친구의 그런 모습이 부럽기도 했었는데 어느날 그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난 여럿이 있을 때는 참 신나게 말을 잘하는데 둘이 있으면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려. 그런데 넌 나와 반대인것 같아."

 

그말을 듣고 생각 해보니 그랬던 것 같다. 난 둘이 있을때 말이 많아지는 특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변화가 생길까? 둘이 있을 경우 셋,넷,다섯명이 모일 경우 모두 대화가 달라진다. 물론 수십명이 모이면 전체가 대화하기가 힘들어지므로 또 거기에서 무리를 지어 대여섯명씩 대화를 나누게 된다.

 

가장 큰 차이는 둘의 대화와 셋이상의 대화의 차이라고 보여지는데 일단 이런 생각을 해본다.

 

둘이 대화를 할때는 그것이 남녀이든 남남/여여 이든 상관없이 보통 대화의 내용이 재미보다는 좀 더 근본적인 것들로 채워진다. 예를 들자면 고민거리, 돈문제, 이성문제, 진로문제 같은 혼자 있을때 하는 생각들이나 남들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만 생각하던 생각들에 대해 공유가 이루어진다. 따라서 둘만 만나는 경우는 보통 많이 친하거나 연인이나 혹은 정신적인 도움을 받고자 하는 환자 같은 경우가 되겠다.

 

셋이상이 될 경우는 보통 대화의 주제가 가볍다. 남자들은 대화의 50%이상을 여자 얘기를 하고 30%는 정치얘기를 하고 나머지는 별 쓸데 없는 소리를 한다. 물론 이것이 전형적인 예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대화의 내용이 좀 더 공격적으로 변한다. 대화는 끝없이 주도권을 향한 소리없는 전쟁이 되며 정치에 대한 견해같은 경우는 자신과 뜻을 달리하는 사람들로부터 논쟁하기 위해 한층 더 공격적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자랑이나 성공한 얘기들로부터 질투나 시기심을 느끼기도 하고 이를 감추고 그것들의 단점이나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의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이런 부분은 둘 사이의 대화에서는 보통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둘 사이의 신뢰관계는 무너지고 다시는 안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둘이서 대화를 할 때와 다수가 대화를 할 때 이런 차이를 보이는가?

 

솔직히 난 그 이유에 대해 확실히 모르겠다. 근본적으로 1:1 대화는 대화 상대가 처음부터 자신과 좀 더 맞는 사람을 선택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고 다수의 경우엔 자신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끼어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얘기하기가 좀 더 껄끄럽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람은 보통 혼자 많은 생각을 하다보면 자기연민이나 자기비하등이 일어나 우울해지기 쉽다. 그래서 생각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자신의 행동이나 계획을 잡는데 보통 많은 무리들 중에서 대화를 나누거나 혼자 있더라도 영화나 게임등을 하면서 머리를 비우려고 한다. 실제로 그것들이 재밌다고 느끼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생각을 없애기 때문에 재밌는지도 모른다.

 

재미있게 보낸 시간은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혼자서 궁상떨고 있을때는 시간이 참 더디게 흘러가는 것을 대부분 경험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세상은 점점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없애는 방향으로 발달해간다. 우린 화장실에 갔을때도 잠자기 전 혼자 있을 때도 혹은 한적한 어떤 장소에 있을 때도 모바일 환경에 의해 끊임없이 세상과 교류를 할 수 있다. 트위터를 보고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을 바라보고 자신이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하고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 들어가 끊임없이 올라오는 다른 혼자 있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대화를 바랍본다. 실제로 이 모든것도 일종의 대화인 것이다. 물론 인터넷을 통한 대화는 메신져와 같은 즉각적인 대화도 있지만 언제든 그 대화를 벗어날 수 있는 편안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그것에 빠져드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세상이 발전해나간다면 우린 정말 생각하는 법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소수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소리를 내거나 글을 써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다수의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반응을 하는 형태의 대화이다. 친구들과의 대화가 줄어들고 부부간에 대화가 줄어든다. 왜냐면 혼자 생각하거나 둘이 대화를 할때 느끼는 무거움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사람은 혼자나 혹은 둘의 대화와 다수간의 대화를 적절하게 조정해서 잘 해나가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다수의 대화속에 매몰되어 둘사이의 대화조차 다수의 대화내용과 별반 다를게 없어지며 혼자의 생각하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줄어드게 된다.

 

물론 삶의 절대적인 답은 없다.

 

각자 주어진 대로 행복을 느끼는데로 살아갈 자유가 있고 그것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누구나 그럴 권리가 보장되어 있다. 하지만 다수의 대화속에 자신과의 대화 하기를 꺼리고 또 둘간의 대화에서 근본적인 요소들에 대해 외면해버리면 언제 자신을 제대로 바라볼 기회를 갖게 되겠는가.

끊임없이 타인과의 대화속에 즐겁지만 한편으로는 시기심 질투 분노를 느끼며 혼자 있을때는 또 그런 생각들을 잊지 못하고 계속 그것들을 잊기위해 또다른 대화 상대를 찾아나서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사람이라면 행복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계문명이 발전하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과거보다 더 행복한가? 하는 질문에는 누구도 확실히 대답을 못할 것이다. 타인과 대화를 나누는 방법이 많이 발전하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우린 가끔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며 그래서 자신의 근원적인 모습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자신이 타인과의 대화에 진정 즐거울 수 있는 뿌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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