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부러진 화살을 보다

아이루다 2012. 2. 5. 10:03

 

어제 결국 이 영화를 봤다. 원래 영화도 게으른 성격 때문에 또는 볼만한 영화가 없어서 잘 안보는 편이지만 주변의 들은 이야기와 관람수를 하나라도 늘려 주자는 의지로 저녁 시간대에 보러갔다.

 

개봉한지 좀 된것 같은데 좌석은 제법 찼다. 물론 토요일 저녁시간대였기 때문에 그럴것이다. 그래도 나름 무거운 주제일 수 있는 이 영화에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 것은 요즘 시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간접적으로 읽게 만드는 것이라 애써 믿는다.

 

스토리를 이미 어느정도 듣고 갔기에 내용은 크게 내 예상과 벗어나지 않았다. 동종업자에 대한 철저한 무리짓기의 영향으로 나타난 사법부란 조직의 막장 모습에서 커다란 분노를 느꼈지만 곳곳에 작은 부분이지만 웃음코드도 있고 피고자로 나온 김교수님의 아픈 부분도 느껴졌다. 내가 그 입장이었다면 참 견디기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며 나오는 데 사법부의 권위에 도전한.. 이란 말이 자꾸 머리에 맴돈다.

 

조직의 권위. 어떤 조직에 인정되는 사회적 평가 정도 라고 규정해야 할까?  그럼 인정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당사자인가? 아니면 그 조직을 바라보는 시선인가?

우린 권위와 권위의식을 많이 혼동하며 사용한다. 권위는 정말 말 그대로 누구나 인정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권위주의는 자기 스스로 인정하는 능력이다. 국민의 법에 관한 모든 판결을 주무하는 나라의 세금으로서 돌아가는 기관이 스스로 권위라는 말을 쓴다는 것이 참 어설프다. 과연 그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들이 모여서 폭탄주 돌리고 한잔씩 부으면 권위가 생기는 것인가? 아니면 학창시절부터 남보다 좀 더 똑똑했고 그래서 사시도 합격했고 결국 판사,검사 자리에 오른 자만감에서 오는 것인가? 일단 머리가 똑똑함은 인정한다. 나 같은 사람은 절대 합격 못할 시험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그 시험에 합격 가능한 사람, 드물다.

 

그렇다면 지능이 뛰어나면 권위가 있는 것인가? 판단력이 뛰어나고 현명하고 지혜로운 것인가? 그건 절대 아니다. 우린 그런 사례를 너무도 많은 곳에서 본다. 심지어 사이코 패스도 많다. 지능이 뛰어난 사이코패스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고 아무튼 다시 영화로 돌아가자.

 

아직 영화가 상영중이니 영화 내용에 관한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는게 좋겠다. 뭐 많은 사람들이 보는 글도 아니지만 혹시나 해서 ㅎㅎ

 

법정영화였기에 역시 주 무대는 법정이다. 그리고 여기엔 두명의 판사가 나온다. 한명은 석궁을 맞았다고 주장하는 박홍우 판사, 한명은 피고의 유죄를 이미 믿고 모든 재판을 강압적으로 마무리 하는 신재열 판사.

 

박홍우 판사는 김교수의 수능문제 오류를 지적한 행위에 대한 대학의 재임용 탈락 무효에 대한 최종 대법원 판결을 맡았던 것 같고 그래서 그에 대한 앙심을 품은 김교수가 석궁을 들고 가는, 이 모든 이야기의 시발점이 되는 판사이고 추후 고소인으로서 법정에 선다. 이 판사는 얼마전 구속된 정봉주씨의 2심 판결을 맡아 겹치는 바람에 요즘 아주 욕을 지대로 먹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실제 영화를 보면 이 판사보다는 신재열 판사가 더 골때린다. 뭐 영화는 픽션이니 다 진실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영화를 보면 기가 막힌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다. 최후 변론에서 김교수 담당 변호사였던 박변호사는 뒤레프트 사건을 언급하면서 마무리 한다. 물론 실제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생각보다 담담하게 만들어진 영화라 큰 감정 기복없이 봤다. 그러나 역시 옆에서 본 유진이는 울고 웃고.. 영화보고 나와서는 갑자기 민주투사가 된다.

 

어제는 송파도서관에 가서 "우리와 그들 -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 (데이비드베레비 지음) 이란 책을 봤다. 인간이 어떻게 서로 무리짓고 서로의 영역을 구분하는지에 대한 나름 분석적인 책이었다. 시간상 다 읽지는 못하고 반쯤 봤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그 책 내용이 떠올랐다. 책 내용중 이런 내용이 나온다. 미국에서 인디언과 싸우던 시절 평생을 백인우월주의자로 살아온 한 백인이 인디언에게 사로잡혀 감옥에 갇히는데 거기에서 자신이 늘 경멸해 마지않던 흑인을 만난다. 그에게 있어 백인과 흑인은 종이 다른 무리이다. 그리고 그것은 도저히 합칠 수 없는 한계인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는 단 한명의 감방동기인 흑인과 영어를 사용하는 (인디언은 영어를 안쓰니) 무리로 급격히 전환된다. 그에게 있어서 백인/흑인 종은 절대 영어를 같이 사용하는 무리짓기를 넘지 못한것이다. 그리고 그 후 그는 인종차별주의자에서 벗어난다. 물론 그것이 감옥이라서 가능했을 것이다.

이 책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모두 읽고나서 책 카테고리에서 소개하는것이 좋을 듯 하니 여기까지만 얘기한다.

 

우리는 늘 무리를 짓는다. 사법부도 사시를 통해 무리를 짓는다. 그리고 그 무리 중 하나가 공격을 받았다. 그래서 그들은 분노했다. 권위에 대한 도전이란다. 잘 생각해보라. 그것이 권위에 도전한 것인지. 아니다. 그들 무리에 도전한 것이다. 원래 인간은 자신이 속한 무리가 공격받으면 아주 엄청난 보복을 한다. 국가간 전쟁이 그렇고 부족간 피튀기는 싸움이 그렇다. 무리에 대한 공격은 생존에 대한 문제인 것이다.

 

무리짓기 이론에 충실한 사법부의 입장을 이해한다. 그런데 대신 권위에 대한 도전 같은 웃기는 말 하지 마라. 그냥 니덜 무리를 공격한 외부인에 대해 아주 원초적인 복수심이라고 솔직히 고백하는 건 어떤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인간은 아무리 똑똑하고 잘나도 생물학적 본능을 넘어 설 수 없다. 그리고 실제 그리 잘난것도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치졸한 면이 불쌍하기도 하다. 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