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어색함에 대한 생각

아이루다 2012. 2. 4. 09:31

토요일 아침 평소보다도 좀 더 일찍 일어났다. 주 5일 근무제로 일하는 내게 주말은 늦잠을 잘 수 있는 여유가 주어진 요일이지만 몇년 전부터 이상하게 주말에 더 일찍 일어나게 되는 상황이 반복되어 왔다. 아마 몇년 전부터 생긴 걱정꺼리들로 인해 그런 듯 하다. 늙어서 그렇다는 얘기를 듣기도 하는데 아무튼 요즘은 주말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나름 좋다.

 

아침의 고요함도 있고 하루가 길어져서 뭔가를 하기도 좋다. 특히 토요일은 내가 유일하게 청소하는 날이라서 일찍일어나는 습관이 아침 일정을 소화하기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오늘 아침에 갑자기 어색함에 대한 생각이 났다. 주변사람들과 어색함, 익숙치 않은 장소에서 어색함, 처음 보는 사람들 혹은 몇번 본 사람들과의 어색함, 이미 친해졌지만 가끔 어색함 등등 어색함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듯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한참 구글을 통해 검색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어색함에 대한 글을 찾을 수 없어서 내가 한번 정리해보기로 했다.

우리는 어색함이란 단어 하나로 통일되어 사용하지만 실제 어색함은 다양한 모습을 지닌 듯 보인다.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본다.

 

1. 불편함으로서의 어색함

 

모르는 사람을 처음보면 불편함을 느낀다. 그 이유는 좀 더 생각해봐야 겠지만 아무래도 정보의 부족이 아닌가 싶다. 상대가 착한지 나쁜지 (내 기준으로) 어떤 이야기 주제 대한 흥미가 있는지 없는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등등 사전 정보가 없다면 초반에 어쩔수 없는 불안함을 느끼게 되고 그것은 불편함이 되며 결국 어떤 말을 해야할지 조차 망설여지는 어색함으로 느껴진다.

 

주변 사람들 중에 이런 어색함을 덜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데 보통 이런 사람들을 사교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보통 신변잡기에대한 주제로 대화를 많이 하거나 남들이 평범하게 관심을 갖는 주제에 대해 그 스스로도 관심이 많거나 많은척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다른 형태로는 웃음이 많고 스스로를 즐겁게 사는 스타일도 있다. 여자들은 보통 화장품이나 의류 드라마 등등의 소재로 대화를 시작하여 어색함을 지울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그것은 가벼운 주제들이고 누구나 쉽게 대화에 참여 가능한 것들이기에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서로 친해지지가 쉬운 면이 있다. 남자들 역시 여자 얘기나 자동차 전자제품등의 많은 남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로 얘기를 풀어나가기가 쉽기에 이런 주제로 낯선사람과 친해질 수 있는 듯 하다.

 

이 심리에 근원은 뭘까? 왜 나는 그사람에게서 나와의 동질성을 찾고 있는가?

첫번째로는 일단 나의 정당성 확인으로 보인다. 내가 관심을 갖고 내가 즐거워 하는 것이 틀린것이 아니라는 믿음을 주는 존재를 찾으려는 행위이다. 내가 자동차에 관심이 있는데 상대가 자동차 관심 있는 인간에 대한 혐오감을 보인다면 기분이 나빠진다. 그것은 자동차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이 나쁜것이란 의미로 받아들여져서 나의 관심의 정당성이 훼손되는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나는 이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보는데 상대가 무시하거나 반대 의견을 내어서 상대 자체의 평가가 낮아지는 면도 있다. 그것은 보통 정치나 종교와 같은 주제에서 많이 나타난다. 일종의 철학적 주제일수도 있지만 이런면도 많다. 그래서 불편함을 덜 느끼려는 그런 종류의 대화는 안하는 것이 좋다.

 

아무튼 상대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나서 나와의 작은 공통점이라도 발견하게 되면 우린 어색함에서 친밀함으로 바뀐다. 물론 중간에 호감을 느끼면 더 빠르게 전이 된다. 한두번 본사람이 몇년 본사람처럼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2. 성격적 특성의 어색함

 

사람들은 보통 무난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살아오면서 그렇게 살아야 덜 손해본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체득했기 때문이다. 물론 손해본다는 생각까지 하지는 않는다. 타인과 잘 어울리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했고 어떻게든 잘 어울려 놓아야 개인적인 손해가 덜하다. 그것뿐만 아니라 이득도 커진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은 강한 성격으로 인해 자신이 손해본다는 것을 알면서도 성격을 고치지 못하는 것이나 혹은 자신의 신념으로 인해 절대 용납하지 않는 생각등이 있어서 오랫동안 사귀고 만나도 어색함이 존재하는 경우이다.

 

우리의 대화는 보통 끝없는 연결고리 형태로 이루어진다. 차가운 날씨에서 시작한 주제가 올해 대선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남자들은 어떤 얘기를 해도 결국 여자 얘기로 귀결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런 연결고리 중 특별하 어떤 사람이 생각하는 사상과 반하는 내용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대화가 중간에 중지되거나 아니면 그 주제로 인해 서로 언쟁이 붙는다. 그래서 다음기회엔 그 주제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여 하다보니 불편하다. 보통 이런 경우 심하면 아예 관계가 끊어지기도 하거나 대화를 하더라도 아주 조심스럽게 하게된다. 그래서 정보가 충분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색해진다.

 

주변의 친구들을 쭉 생각해보면 모두 동일하게 친밀감을 느끼지 않게된다. 분명 어떤 모임이 있더라도 걔중엔 모임 이외에 따로 만나는 이가 있는 반면 모임이외엔 거의 개인적으로 만나는 일이 없는 친구들도 많다.

 

3. 익숙치 못한것에 대한 어색함

 

이부분도 어느정도 1번 주제와 비슷한데 이번 경우엔 장소나 일과 같은 인간이 아닌 대상에 대한 어색함이다. 낯선 거리를 갈때 어색함이나 새로운 일을 할때 혹은 새로운 도구를 쓸때  느끼는 어색함인데 이 경우는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익숙하지 않다는 것은 일종의 새로운 신선함을 의미하게 되어 기대치가 생기거나 호기심을 유발하는 이유가 된다. 이 어색함 역시 근본은 정보의 부족이 크다.

 

4. 관찰자로서의 어색함

 

TV 개그프로를 보다보면 어떤 개그맨은 참 어색하게 한다. 그리고 보는 사람들도 어색하다. 그런 현상은 여기저기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식은땀을 흘리며 단상에 선 발표자 같은 경우도 비슷한 느낌이다.  보통 이경우에 심리적 동조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자신이 그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느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되면서 마음이 불편해지고 그래서 그런 개그맨을 바라보는 것이 결코 즐겁지 않게 된다. 심지어 채널이 돌리거나 하는 행위를 하게 된다. 하지만 어색하더라도 그 사람이 그 어색함을 별 불편함없이 넘기는 성격이라는 것이 확인되면 좀 더 편해진다.  단상에서 식은땀을 흘리던 발표자가 "여러분 보기에 불편하지죠? 하지만 여기 서 있는 저는 더 불편하답니다. 그래도 제가 이자리 선 이유는... 잘 안되지만 열심히 해보께요" 라는 식의 말을 했다면 순간 어색함은 많이 사라지고 오히려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기도 한다.  그순간 내가 느끼는 심리적 불편함이 그 사람의 말을 통해 많이 해소된 까닭이다.

 

참고로 이런 경우 내가 느끼는 어색함은 그 대상자는 훨씬 더 심하게 느낀다는 것을 이해하자. 내가 그 입장이라면 인정하는 것이 차라리 좋다. 유재석과 같은 진행자는 이런 익숙치 않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잘해서 시청자에게 친밀감이 높은 것이다.

 

5. 금기된 주제에 대해 어색함

 

누구나 대부분 주말 영화를 부모님과 보다가 농도 짓은 키스씬이나 좀 더 자극적인 내용이 나오게되면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미 결혼을 한 사람이라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어색함은 우리 사회가 이미 잠정적으로 정의한 금기된 주제에 대한 침입으로 간주되어 불편해지는 것인데 이 경우 상당히 막힌 관점의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구성애라는 분이 아우성이란 주제로 성교육에 대한 주제를 펼친적이 있었는데 그분이 성에 대해 말하면 사람들은 좀 더 덜 불편하게 느낄 것이다. 왜냐면 그분이 주장하는 바는 그런 것들을 너무 숨기지 말자는 말이며 오랜시간 유교적 사고방식으로 살아온 우리들에게 다른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가끔 보면 TV 다시보기 같은 형태의 프로에서 어찌어찌해서 보기 불편했다 라는 시청자가 보낸 불만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는 좀 우숩다. 결국 자신의 사고범위의 한계를 공식적으로 들어내고 있지 않은가?

 

결론

 

인간이 어색함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내가 5가지 형태의 어색함을 말했지만 솔직히 다 같은 것인지도 모르고 혹은 다른 감정을 잘못섞은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어색함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인정하면 어색함은 어느정도 희석된다. 그리고 인간이면 누구나 어색함이 존재하고 있다는 지식과 타인과 잘 지내는 성격을 가진 사람들 조차 그런 어색함을 이겨내려 어린시절부터 노력해왔다는 사실이나 혹은 자신의 이득을 포기할 수 없어서 적극적인 형태의 성격으로 성장해 온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색함을 많이 느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자기 손해이다. 인간은 진화적 관점에서 봐도 함께 공동 사냥을 했으며 공동 주거환경을 갖고 살았다. 단체 행동은 많은 약한 인간이란 종족에게 커다란 힘이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공동체에서 낙오된다는 것은 결국 죽음과 연결되며 낙오되지 않는다 해도 지도자에게 잘못보이면 막대한 손해를 입거나 주변사람들과 관계를 잘못해 많은 트러블이 생긴다면 그 후 많은 경제적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커진다.

 

우리는 이것을 본능적으로 두려워 한다. 타인과의 관계에 끝없이 신경쓰는 이유도 물론 즐겁게 보내고자 하는 욕구도 있지만 (이 욕구는 자기 존재감 확인이라는 약간 다른 주제로 바라볼 수 있다) 타인과 분리될 때 느끼는 두려움과 외로움에 대한 스트레스도 크기 때문이다. 인간이 공동체를 구성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본질적으로 이득의 극대화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기에 그런것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에 들어서 생존과 같은 본질적인 문제는 많이 희석이 됐다. 법적으로 나는 우리나라 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공공의 서비스가 많이 개발된 탓이다. 이미 인간의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최상위 포식자로 자리를 굳혔고 외계생명체가 오지 않는 한 그것은 바뀌지 않을 것이기에.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 기아가 있기 하지만 먹을 것에 대한 걱정 역시 구석시 시대의 인간에 비할바가 아니고 기타 여러가지 부분에서 우린 사회안정망을 통해 보호받기에 생존에 대한 걱정은 많이 줄어든 것이다.

 

그럼 왜 우리는 아직도 타인과 잘지내길 바라고 또 그것이 잘 되지 않을 때 걱정할까? 일단 크게는 회사 자체가 그런 조직문화이고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쩔수 없다면 잘하는 것이 좋지 않는가? 그렇다. 잘하고 즐기면 되는 것이다. 분명히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 하거나 그 사람들이 누리는 작은 이득을 바라만 본다. 그리고 스스로 상대적으로 불행함을 느끼는 것이다.

 

자, 이미 성격은 거의 구성이 되어 있다. 쉽게 바뀌지 못한다. 내가 사교적이지 않은 성격이라면 노력해서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몇가지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해 포기하자. 아무리 노력해도 갖기 힘든 것에 대해 왜 고민하는가. 그냥 내가 잘하는 것에 집중해서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행복하자는 것이다.

 

오늘 인터넷을 뒤지다가 어떤 책에 나온 내용인데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자는 주제이었다. 타인과의 관계는 어떤 의미에서 이득의 획득과 권태로운 삶으로서의 해결책일 가능성이 크다. 내가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밤 12시까지 일하고 잠드는 생활을 10년간 하루종일 반복하고 일하는 중에도 엄청 바쁘다면 타인과의 관계는 그리 중요한것이 아닌것이 된다.

 

작은 이득을 포기하고 권태로운 삶으로 부터 자기 발견의 삶으로 전환이 된다면 우린 어색함을 쉽게 받아드릴 수 있다. 그럼 어떤 의미에서 어색함을 그리 어렵지 않게 극복하는 계기도 된다. 자신을 바라보다 보면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우리는 습관도 생기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기 보다는 늘 배우는 자세로 임하게 된다.

나도 못하지만 아무튼 오늘 아침 어색함은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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