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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삼씨 이야기 - 끝

[에필로그] 장씨 아저씨가 밥 먹으러 언제 내려올 거냐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나는 2층 내 방에서 천천히 그리고 내가 생각해도 꽤나 담담한 기분으로 짐을 싸고 있었다. 이곳에 올 때만 해도 거의 빈손으로 오다시피 했는데, 떠날 때가 되니 제법 짐이 늘었다. 아주머니는 이 집에 원래 있던 물건이라고 해도 필요하면 다 가져가라고 했다. 단, 부엌에 있는 식기들만 제외하고. 그런 말을 듣긴 했지만 내가 이 집에 있었던 물건들 중에서 딱히 탐 날만한 것은 없었다. 혹시나 장작을 패는 도끼라면 모를까. 하지만 그런 것을 들고 다녔다가는 곧 경찰서에 끌려가게 될 것이다. 아니, 그 전에 장씨 아저씨에게 멱살을 잡힐지도 모른다. 떠나기 전 아주머니가 해주신 마지막 식사는 푸짐하게 끓인 동태찌개였다. 겨울이..

소설, 에세이 2020.02.20

김두삼씨 이야기 - 16

16. 비난과 인정의 간극 "왜 그랬냐고?" 남상현도 내가 그런 질문을 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듯 혼잣말 하듯이 내 질문을 되감았다. 그러고 나서는 잠시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손으로 부지깽이를 들어 이제는 슬슬 숯이 되어가는 장작들을 툭툭 쳐서 여러 조각으로 부러뜨렸다. 그 순간 수많은 불티들이 허공으로 날리며 찰라간 환해졌다가 금세 사그라져 갔다. 불티들의 불꽃은 순간적이었지만 사라진 후에도 한참동안 눈앞에 있는 듯 느껴졌다. 그런 식으로 타던 장작을 뒤집어 놓자 덜 탄 부분이 불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꺼져가던 불길도 금세 다시 되살아났다. "나는 불을 피울 때 이 순간이 제일 좋더라고." 남상현은 혼잣말 하듯 중얼거렸다. 나는 지금 그가 내 질문에 대답을 하기 싫어서 말을 돌리고 ..

소설, 에세이 2020.02.19

김두삼씨 이야기 - 15

15. 죽음 그리고 그 후 10월 들어서 이춘삼은 훨씬 더 자주 모습을 드러내었다. 나는 그것이 좋았지만 어쩔 수 없이 불안함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불안하게 한 것은, 김회장이 이춘삼이 될 때마다 폐병이 걸린 사람처럼 콜록댔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로 사람이 기침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김회장이 이춘삼일 때는 일단 골치 아픈 바둑도 두지 않아도 좋았고, 요즘처럼 좋은 날이면 같이 가을 길을 산책을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도 좋았다. 10월 중순쯤 어느 날, 김회장이 바둑을 두는 도중에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그전에도 가끔 이런저런 문제들이 생긴 적이 있긴 했지만 이번엔 뭔가 좀 다른 느낌이었다. 일단 당장 내가 응급조치를 하긴 했지만..

소설, 에세이 2020.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