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나는 정말로 패배했을까?

아이루다 2021. 5. 15. 07:33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들이 있는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꼭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그것은 바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는 일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승자가 되는 일이다.

 

인간 세상에서 경쟁은 정말로 수 많은 상황에서 수 많은 형태로 일어난다. 아침에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순간부터 점심에 식당에 들어가서 음식을 주문하는 순간, 영화표를 끊는 순간, 온라인으로 상품을 주문하는 순간에도 눈에 보이지 않을 뿐 판매자는 판매자들끼리, 소비자는 소비자들끼리 끝없는 경쟁이 일어나고 있다.

 

학교에서는 공식적으로 시험 성적이나 달리기 시합 등을 통해서 일어나고, 비공식적으로는 누가 더 인기가 많은 사람이 되느냐, 누가 더 예쁜가, 누가 더 운동을 잘하는가 등등을 통해서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다

 

그야말로 경쟁의 세상이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각종 모임에서도, 취미 생활 속에서도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은 정말로 쉼 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경쟁에 휘말린 사람들은 경쟁을 힘들어 하면서도 즐기고, 즐기면서도 힘들어 한다. 가끔은 너무 힘들어서 피하거나 도망치기도 하고 너무 좋아서 미친 듯이 매달리기도 한다.

 

경쟁의 최종 목적은 승리이다. 지기 위해서 경쟁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기고 싶다고 해서 다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로 인해서 경쟁은 최종적으로 네 가지 결과로 나뉘어 진다. 그리고 각각의 결과에 속한 무리들은 고유한 특징을 보인다.

 

첫 번째는 바로 승자 무리이다. 주로 잘나게 태어난 사람들이 속한 무리이다. 그러니까 이길 수 있는 조건을 잘 타고 난 사람들인 셈이다. 머리가 좋게 태어나거나,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가졌거나, 누가 봐도 잘생기고 예쁜 외모를 타고난 경우이다. 가끔은 평범하게 태어났더라도 잘난 부모를 가진 경우라면 승자 무리에 속할 수 있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여기에 속한 사람들은 좀 더 운이 좋다면 유명인사가 되기도 하고, 많은 돈을 벌기도 한다. 큰 권력을 잡아서 대접을 받고 살기도 하고, 명성이나 명예를 얻어서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기도 한다.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상관없이 승자 무리에 낄 수만 있다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조건은 차고 넘친다. 그래서 적당히 자신이 타고난 능력 안에서 욕망을 품는다면 대부분 행복한 삶을 살다가 죽게 된다.

 

하지만 개중에서는 분명히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욕망을 품는 사람들이 분명히 생겨나고, 그들은 가끔 자신이 가진 욕망에 눌려 비참한 최후를 맞기도 한다. 부모의 유산을 두고 칼부림이 난 형제 이야기, 권력의 욕망으로 인해 불법을 저질렀다가 한 순간에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진 정치인, 성공하기 위해서 무리한 사업을 하다가 결국 자살하고 만 어떤 사업가의 이야기 등이 바로 거기에 속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는 널리 퍼져서 마치 승자 무리에 끼면 불행할 수도 있다는 염려(?)를 만들어 낸다. 과연 누가 그런 이야기를 퍼트릴까?

 

재미있게도 바로 승자들이다. 자신들의 숫자보다 훨씬 더 많은 패자들의 무리가 불만을 갖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다. 승자에 속하는 것이 무조건 행복한 것은 아니란 점을 강조해서 패자들이 자신의 현재 처지에 만족할 수 있도록 해준다. 더해서 복권처럼 기타 좁고 작은 성공 사다리를 만들어 둔 후 너도 노력하면 승자 무리에 낄 수 있다고 유혹한다.

 

네가 승자에 속하지 못한 것은 타고난 능력 문제가 아니라 노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고 설명해준다. 노력을 할 수 있는 성격도 타고나는 것인데 그 사실은 숨기고 말을 해주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패자들은 자신의 패배가 타고난 능력 문제가 아닌 자신의 의지와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믿고 시작부터 불공정한 세상을 탓하기 보다는 자신의 노력 부족을 탓하게 된다.

 

두 번째는 승자에게 진 패자의 무리이다. 이기고 싶었지만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결국 주저 앉은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승자무리에 비해 숫자는 훨씬 더 많다. 왜 그럴까? 두 사람이 경쟁하면 한 명은 이기고 한 명이 진다. 그렇다면 승자와 패자는 공평하게 서로 절반만 차지해야 한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패자가 훨씬 더 많다

 

패자가 많은 이유는 영화를 찍는 과정을 떠 올려 보면 된다. 한 편의 영화 속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서 과연 승자는 누구이고 패자는 누구일까? 적어도 우리가 나온 배우의 이름을 알아야 승자가 아닐까?

 

결국 승자는 주연배우로 나오는 두세 명, 그리고 조연까지 합쳐야 10명도 채 안 된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패자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한 편의 영화를 찍으려면 얼마만큼의 사람들이 필요할까? 영화마다 다르겠지만 스탭까지 합치면 수백 명이 함께 작업을 해야 한다. 그런데 슬프게도 승자는 많이 쳐줘야 10명 남짓하다.

 

30명이 한 반인 학교에서 절반인 15등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한 해 수십 만 명이 수능 시험을 보지만 그나마 서울 내의 대학교를 갈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그렇게 힘들게 입학한 학교에서도 졸업 후 선망하는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우리는 누구나 승자 무리에 끼고 싶지만 처음부터 승자에 할당된 자리 자체가 매우 적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대다수는 패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패자들이 신세한탄이나 하면서 사는 것은 아니다. 패자들도 행복하고 싶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포기를 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기회만 된다면 언제든 승자 무리에 속하고 싶다는 욕망이 평생 함께 한다.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승자의 무리에 속할 가능성이 생겨나면 그 욕망은 언제 그랬냐는 듯 거세가 불타오른다. 누군가 운 좋게 크게 성공한 이야기는 넓게 퍼져서 네가 열심히 노력하면 너도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나가게 된다.

 

승자가 늘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과 내가 패배한 것은 내 노력 부족이라는 인식이 패자들로 하여금 그 자리에서 머물 수 있게 해주는 자기 합리화의 이유가 된다.

 

 

세 번째는 경쟁 자체를 회피하는 무리이다. 소수이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경쟁을 해서 얻는 승자의 과실도 좋지만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스트레스가 너무 버거워서 경쟁 자체를 피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원래 사람들 눈에 띄려면 경쟁을 해야 한다. 아이 둘이 싸움이 났다면 주변에서 그 싸움을 구경하는 아이들보다 중앙에서 서로 치고 받고 코피를 흘리고 있는 아이 둘이 훨씬 눈에 띈다는 뜻이다. 그런데 경쟁을 하지 않는다면 누군가의 시선을 받을 리가 없고, 그런 이유로 존재감 자체가 사라지고 만다. 그러니 경쟁을 회피하는 무리는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듯 느껴지게 된다.

 

왜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존재하게 될까? 모든 생명체는 경쟁을 통해서 생존할 수 있는데 경쟁 그 자체를 회피한다는 것은 뭔가 이상해 보인다.

 

기본적으로 그 원인은 약하게 태어난 것이다. 육체적으로 약할 수도 있고, 정신적으로 약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바로 타고난 욕심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평균치에 비해 가진 욕심이 적다. 그리고 마지막 조건은 바로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그럴 수 있다. 이미 풍족해진 이 세상에서는 사람으로만 태어나도 먹고 살기 위해서 크게 경쟁할 필요까지는 없다. 잘 먹고 잘살기는 힘들지 몰라도 먹고 사는 일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니 생존하기 위해서 그렇게 무리할 필요가 없다.

 

잘 싸우지도 못하고, 잘 싸울 수 있더라도 싸우고 싶은 마음도 거의 없다. 싸워서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한 욕망이 별로 없으니 힘들게 싸우고 나면 이겨도 별로이고 져도 별로이다. 이기면 패자가 자신을 싫어하게 될까 봐 두렵고, 지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니 두렵다. 그러니 처음부터 경쟁을 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은 욕망하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패자 무리에 속한 사람들보다는 나아 보인다. 적어도 속은 편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다행히 경쟁을 하지 않더라도 타고난 능력이 있어서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다면 괜찮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다른 사람들과의 생존경쟁에서 밀려 삶이 많이 힘들 수도 있다.

 

이 무리에 속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기 정당성이 부족하다. 그러니까 내가 이 세상에 살아가야 할 이유가 다른 사람들보다 적다는 뜻이다. 그러니 내 권리에 대한 인식이 낮다. 그렇기에 적극적으로 싸울 수가 없다. 그럼에도 그 상황 자체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있기에 크게 괴롭지는 않다. 오히려 이런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싸우지 못한다는 사실 그 자체에 대한 자책감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싸워야 한다고 배운다.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 자신의 꿈을 실현해야 한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등등의 말이 가진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어려서부터 끝없이 최선을 다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는 삶을 사는 것이 삶의 정답이라고 배운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렇게 살지 못한다. 그러니 평생 마음 한 구석엔 제대로 싸우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책이 함께 한다. 패자의 무리에 속한 사람들은 불공정한 세상에 대한 분노나 이기지 못하는 자신의 못남에 대한 자책을 하면서 살아간다면, 이 무리에 속한 사람들은 그저 자신이 싸우지 못한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스스로를 공격한다.

 

자신을 겁쟁이라고 여긴다. 자신을 못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필요 없는 존재라고 여기게 된다욕심도 별로 없고, 남에게 해도 안 끼치고, 착하고, 인간적인 존재임에도 스스로에 대해 그렇게 평가한다

 

흥미롭게도 패자 무리에 속한 사람들과 여기에 속한 무리의 사람들이 친구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싸우다 졌든, 싸우지 않았든 상관없이 결국 패자이기에 그렇다.

 

그런데 이런 만남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계속 좋은 친구 사이로 남게 될까? 아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패자 무리에 속한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이 경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진 단점을 이용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약하고, 자기 정당성 없고, 끝없이 모든 것을 자기 잘못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패자 무리에 속한 사람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이들은 끝없이 상처를 입다가 결국 세상 속에서 자취를 감추고 만다. 끝없는 경쟁과 자신을 이용해 먹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어딘가에서 혼자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때 느낄 수 있는 마음의 평화로움을 자신의 행복으로 여긴다.

 

네 번째는 승부 그 자체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세 번째와 비슷한데 승부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승부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

 

이 무리에 속한 사람들을 만나 볼 일은 거의 없다. 아주 높은 정신적 성장을 한 사람들만이 도달할 수 있기에 그렇다.

 

오래 전 과거에 노자는 자신은 평생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바로 한번도 싸운 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이 말은 잘 못 들으면 싸움을 회피한 자의 변명처럼 들리지만 제대로 들으면 결국 맞는 말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누가 싸우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은 오직 싸울 수도 있지만 싸우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이 그럴 수 있다. 경쟁과 경쟁하지 않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만이 그것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선택할 수 있다면 왜 힘들게 싸우겠는가? 경쟁은 원래 처음부터 힘든 일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싸울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물론 누군가 싸움을 건다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할 상황이 된다면 또한 싸워도 된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무리에 속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단지 이런 형태의 삶도 가능하다는 정도만 알고 사는 것은 도움이 될 것이다.

 

* * * 

 

이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패자 무리에 속하거나 승부를 회피하는 무리에 속한다. 이 두 무리는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지금 자기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 명확히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패자 무리에 속한다고 믿고 살아가지만, 사실은 승부를 회피하는 무리에 속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 둘을 구분하려면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분노를 바라보면 된다.

 

분노가 세상을 향해 있다면 패자의 무리에 속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을 향해 있다면 승부를 회피하는 무리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자신이 일등이 되는 것이 목표라면 패자 무리에 속한 것인지만 꼴등이 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 이 무리에 속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니까 경쟁해서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인간의 무리에서 도태되지 않는 것이 두려워서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제대로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분노가 자신을 향해 있다면 거기엔 분명히 희망이란 두 글자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등이 되고 싶은 사람은 일등이 되지 못하는 한 행복해질 수 없다. 일등만이 목표이기 때문에 설령 지금 일등이 아니더라도 끝없는 노력을 통해 일등을 향해 간다. 인생의 목적이 일등이 되는 것이며, 일등이 되기 위해서는 힘든 노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꼴등이 되기 싫은 사람은 전혀 다른 선택을 한다. 대충 중상위권만 되면 금세 그만 둔다. 노력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더 노력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겨난다. 주변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다가 가끔 자신이 뒤쳐진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자책감을 느낀다. 노력하지 않은 자신에 대해 분노한다. 기회를 잡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난다. 평생 그런 식으로 살아왔다. 경쟁해야 할 것 같아서, 경쟁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자신을 괴롭혀왔다. 그렇게 살아오다가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패자 무리에 들어가 버렸다.

 

자신을 제대로 알게 된다면, 자신 안에 있는 자책과 분노를 제대로 잘 바라봄으로써 다른 관점에서 스스로를 이해해 줄 수 있다. 그렇게 힘들게 자신을 몰아붙이지 않고 살아도 된다. 생각보다 괜찮다. 그런 이해는 결국 자기 용서로 이어지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친구, 동창, 옆집 이웃 등을 근거로 자신이 도달해야 할 위치를 정한다. 재산, 사회적 지위, 행복도 등등이 그것을 기준으로 이뤄진다. 그리고 그것에 제대로 도달하지 못할 때 끝없이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더 열심히 경쟁해야만 할 것 같다는, 마음 속에서 밀려 올라오는 자신에 대한 불만이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이 도달해야 할 위치를 정한 기준이 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정해진 것일까? 우연히 같이 들어간 대학교 동창? 우연히 같이 입사한 동료? 우연히 옆에 살게 된 이웃?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일까?

 

더해서 자신이 더 경쟁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과연 얼마나 제대로 실현 가능한 목표일까? 정말로 그럴 수 있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일까? 아니면 그저 누군가 그렇게 사는 모습을 보고는 나도 저렇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된 것일까?

 

만약 정말로 그럴 수 있었다면 이미 그렇게 살고 있지 않았을까

 

자주 지는 것도 서러운데 왜 자주 지고 있는 자신을 스스로 그렇게 괴롭히는 것일까? 패배한 친구는 위로해줄 수 있지만, 패배한 자신은 스스로 위로해줄 수 없는 것일까?

 

경쟁의 목적은 승리이지만, 승리의 목적은 결국 행복이다. 그러니까 꼭 경쟁을 통해서만 행복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어떤 길을 걷든 스스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든지 괜찮은 삶이다

 

그런 면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패자의 무리에 속해 있는지, 승부 그 자체를 스트레스 받아 하고 힘들어 하고 있어서 피하고 싶은지 정말로 깊은 생각을 해봐야 한다. 생각보다 싸우고 싶은 것이 아니라 싸워야 할 것 같아서 싸우는 중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승부에서 한걸음 물러설 수 있다면 이제 네 번째 무리에 속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싸울 수도 있고 싸우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싸우지 않는 삶을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네 번째 무리에 속하는 것이 좋은 점은 승자의 무리에 속하지 않고도 그만큼이나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것을 넘어서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설령 제대로 속하지 못하더라도 아무런 변화가 없이 지금보다는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러니 그 길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정말로 진심으로 이기고 싶은가? 나는 정말로 진심으로 승자가 되고 싶은가? 나는 그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그런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