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에세이

[단편] 완벽한 인생 #2

아이루다 2021. 3. 10. 10:52

 

거기까지 진행되자 이제는 오히려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나는 예전에 돌 던지기를 부탁했었던 핸드볼 선수에게 연락을 했다. 예전에 했던 일을 또 다시 해달라고 하자 상대는 웃었다. 하지만 그 대상이 나라고 하자 이번엔 깜짝 놀라는 음성이었다. 정말로 해도 되는지를 몇 번이나 되물었다. 나는 그때보다 백만 원을 더 얹어주겠다고 했다. 대신 지금 돈 지급은 그 일이 끝난 후 해줄 수밖에 없다고 양해를 구했다. 상대는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오늘이 화요일이니 로또 당첨번호가 발표되는 주말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없었다. 나는 남은 시간 동안 내가 움직일 동선과 시간대를 설명해주고 적당히 알아서 돌을 던져달라고 했다. 만약 이 일이 완전히 헛짓거리로 끝난다면 나는 내가 약속한 돈을 줄 능력은 안 된다. 하지만 저 인간이 나한테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설령 돈을 받지 못했다고 딱히 경찰에신고를 할 만한 내용도 아니었다. 오히려 돌을 던졌기 때문에 폭행죄로 나한테 역으로 고소될 수도 있었다.

 

그 주 토요일 밤에 나는 돌에 맞아 꿰맨 내 머리에 한 손을 올리고 나머지 한 손엔 로또 용지를 쥔 채 멍하게 종이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로또 용지의 번호는 발표된 당첨번호와 딱 하나만 달랐다. 더해서 놀랍게도 보너스 번호가 같았다. 1등까지는 아니지만 무려 2등에 당첨된 것이다. 아마도 대충 사천만원 정도 돈이 들어올 듯 했다. 물론 세전이긴 했지만. 그래도 삼백을 투자하고 그리고 머리에 몇 바늘 꿰매고 받은 돈치고는 충분히 많았다.

 

단순히 우연일까? 머리가 복잡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혀 실감도 잘 나질 않았다. 당첨금을 받는 중에도, 받고 나서 통장에 든 당첨금을 확인하고도 그다지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뭔가 홀린 기분이 들었다. 이 모든 것이 그냥 내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닌가 싶었다. 손을 들어 머리를 만져보니 뒤통수에서 날카로운 아픔이 느껴졌다. 의사는 살이 찢어지고 뼈에도 살짝 금이 갔다고 했다. 그 놈이 작은 돌을 던졌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커다랗고 날카로운 돌을 던진 것 같았다. 순간 돈을 주지 말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하지만 이런 일을 또 해내려면 그런 녀석이 필요하긴 했다.

 

다음 주에 나는 로또에 다시 도전해보기로 했다. 이번엔 같은 번호로 다섯 장을 샀다. 모두 2등이 되더라도 다섯 장이면 1억이 넘을 돈을 받을 수 있다. 머리가 또 깨지는 것은 싫었지만, 그 돈이면 내가 현재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 주 토요일 밤에 나는 내 손에 쥐어진 다섯 장의 로또 용지를 멍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죽일 놈. 내 손에 쥔 로또 용지들에 있는 번호는 당첨번호와 단 하나도 맞지 않는, 완벽한 꽝이었다. 화가 많이 났다. 로또를 살 때 든 돈은 그리 아깝지 않았지만, 내 옆머리에 새로 생겨난 두 번째 상처에서 오는 고통이 갑자기 더 크게 느껴졌다. 나는 분노에 치밀어 전화기를 꺼내어 고객에게 연락을 했다. 그러자 그는 웃으며 그때 다 말하지 않은 주의사항을 이야기 해줬다.

 

그는 억지로 반복시키는 것은 운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까 내가 지난주와 똑같이 로또를 사고, 반복해서 머리에 돌을 맞은 것은 더 이상 운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운의 균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실상 스스로 상처만 내는 멍청한 짓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따졌다. 왜 그때 그 말을 하지 해주지 않았냐고 했다. 그러자 그는 그때 내가 전혀 믿지 않는 눈치인데 왜 그 말을 해줘야 했었냐고 되물었다. 뭔가 억울하지만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기분만 더 나빠졌다. 그래도 물을 것은 물어야 했다. 내가 더 알아야 할 주의사항은 없냐고 물었다. 전화기 너머 고객은 잠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실에 너무 가깝게 다가가지 마세요. 그것은 불과 같아서 데일 수도 있습니다." 라는 말만 남기로는 전화를 먼저 끊었다.

 

데일 수 있으니 진실에 너무 가깝게 다가가지 말라, 스스로 집에 불을 낸 인간이 할 말은 아닌 듯 느껴졌지만, 어렴풋이 어떤 의미인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가 한 말의 의미는 너무 자주 이 방법을 쓰지 말라는 뜻인 듯 했다. 그렇다. 무엇이든 남발하면 안 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주의사항이다. 나는 그 동안 수 많은 영화나 소설책에서 탐욕과 집착이 가져 온 불행을 충분히 봐 왔다. 그러니 내가 운을 조절하는 것은 최소한으로 해야 할 것이다.

 

다음 해 봄이 오기 전까지 자동차 사고가 한 번 났고, 집에 불이 한 번 났다. 그리고 일부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빙판 길에 넘어서 팔이 부러지기도 했다. 대신 내가 새롭게 시작한 사업은 순풍이 불 듯 잘 되었다. 나는 로또 당첨금으로 주식을 했다. 그리고 여섯 달 만에 다섯 배 이상의 수익을 얻었다. 물론 그것을 위해 차 사고가 한번 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번 돈으로 작은 상가를 얻어서 유통업을 시작했다. 과일을 파는 일이었다. 하지만 일반 과일이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는 외국 과일이나 새롭게 개발된 품종만 팔았다. 특이한 상품을 판다는 소문이 나면서 고객이 몰렸다. 더군다나 인터넷으로까지 판매를 하니 매출이 쭉쭉 늘어났다. 단지 그런 특이한 과일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집에 불을 내야 했다. 나는 집에 불이 난 후 그런 상품들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사장님과 운 좋게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정말로 우연히 팔이 부러진 후에는 여자 친구도 사귀게 되었다. 내가 다쳤을 때 찾아갔던 정형외과의 간호사였다. 다른 것들은 사실 정확히 그 인과관계를 잘 모르겠지만, 이 경우는 정말로 불운이 행운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이런 식으로 우연히 고객을 통해 운에 관한 진실을 알게 된 후 내 삶은 크게 바뀌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좋은 삶을 가져다주었다. 그 고객을 우연히 만난 일은 내 삶의 최고의 행운 중 하나였다.

 

복잡한 집안 사정으로 인해 겨우 고등학교까지만 졸업한 나는, 일찍 군대를 다녀온 후 20대 초반부터 심부름센터에서 일을 배웠다. 그리고 그 후로 지금까지 15년 동안 그 분야에서만 일을 했다. 그 동안 여자를 사귈 생각도, 사귄다고 해도 어떻게 잘 될 것 같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그 일을 하면서 반복적으로 불륜현장 잡는 일을 하다가 보니 결혼 그 자체에 대해서도 거부감이 있었다. 하지만 팔을 다쳐 병원에 갔던 날 첫 눈에 반한 연아씨와는 정말로 결혼을 하고 싶어졌다. 지금 하고 있는 가게만 유지가 잘 된다면 나와 연아씨는 그리고 우리 사이에 태어날 아이들이 먹고 사는 것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아버지 직업을 부끄럽게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은 직업의 귀천이 없다지만, 남들에게 어떤 일을 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직업과 누가 물으면 대충 얼버무리며 말해야 하는 직업은 분명히 존재했다. 흥신소는 그 중 후자였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게 된 내 삶에는 여전히 불운과 행운이 교차했다. 단지 내가 나에게 올 행운을 내가 원하는 시기에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만이 과거와는 달랐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형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었다. 사실 제대로 따져보면 각자의 삶에서 행운은 꽤나 자주 오는 편이었다. 지하철을 타러 갔는데 딱 맞춰서 도착하는 경우나, 전혀 사전정보 없이 음식점에 들어갔는데 아주 맛난 음식을 먹는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그런 행운들은 삶에 거의 영향을 끼치진 못한다. 그러니 그런 행운들은 딱히 필요하지 않다.

 

결국 나에게 불필요한 행운을 줄이고, 필요할 때 불운을 일으켜 내게 반드시 필요한 행운을 잡으려고 노력하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깨달은 삶의 비법이었다. 사실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할 수 있었던 행운에는, 팔이 부러져서 병원에 갔던 불운만으로 얻을 수 있었던 행운은 아니었다. 나는 아내에게 첫눈에 반했지만 아내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아내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또 다른 불운을 일으켜야 했다. 그것은 바로 내 사업 경쟁자의 출현이었다.

 

내가 하고 있는 특이한 과일을 파는 일은 일종의 틈새시장이었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당연히 경쟁이 거의 없었던 독점적 사업이었다. 그야말로 아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일이였던 것이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번다는 소문이 나면서 점점 경쟁자가 늘어갔다. 그로 인해서 나는 좀 더 열심히 경쟁적으로 일을 해야 했다. 물론 여전히 기존의 단골들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 주문을 하고 있었지만,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경쟁에서 밀려 큰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잘못하면 새롭게 시작한 삶을 망칠 수도 있었다. 나는 이미 좋아하는 사람도 생겼고 그녀와 결혼을 해서 살고 싶었기 때문에 절대로 그렇게 되면 안 되었다. 나는 정말로 밤낮으로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런데 이 사업에 대해서 처음 소문을 퍼뜨리는 것이 바로 나였다. 나는 익명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인터넷 게시판에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세세하게 정보를 올렸고, 그로 인해서 그런 사단이 난 것이다. 나는 내 사업의 불운을 담보로 아내의 마음을 얻으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이 정확히 성공했다. 한참을 나에게 차갑게 굴던 아내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다.

 

딸만 둘이었던 집안의 장녀였던 아내는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 앞에서 몹시 당황했다. 나는 그때 아예 가게 문을 닫고 장례식장에 가서 먹고 자면서 며칠 동안 장례 절차부터 화장터에서 장지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 해주었다. 그리고 모든 일이 다 끝난 후 아내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나에게 비로소 마음을 열었다. 그 덕분에 결혼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결혼을 한 후 곧 첫 아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둘째도 이어서 태어났다.

 

물론 경쟁자의 출현으로 인해 당연히 사업이 많이 어려워지긴 했다. 하지만 나는 죽기 살기로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썼고 그 결과 오히려 예전보다 좀 더 단단하게 바닥을 다질 수 있었다. 경쟁자도 많이 늘었지만 그로 인해서 시장 자체도 많이 커졌다. 덕분에 순이익은 좀 낮아졌지만 매출 자체가 많이 늘었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긴 했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너무도 소중한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전혀 고생스럽지 않았다. 단지 가족이 생기니 좀 곤란한 문제가 생겨났다.

 

이제 내 몸이 더 이상 내 몸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결혼 전에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뒤통수가 깨지고 교통사고를 당하고 집에 불이 나도 괜찮았다. 하지만 지금은 나를 믿고 함께 하는 가족들이 있다. 나는 나에게 운에 관한 진실을 알려 준 고객처럼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너무 위험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조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가능하다면 내 몸이 상하지 않으면서 필요한 불운이 일어나야 했다. 도대체 어떤 일이 그런 종류의 불운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나마 소소한 불운은 쉽게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정말로 재미없는 영화를 보거나, 맛없기로 소문난 집에서 가서 음식을 먹거나, 사람이 미어터질 것이 분명한 시기에 관광지를 가거나, 막힐 것이 분명한 도로를 통해 어딘가를 가거나, 비가 많이 오는 날 물 웅덩이가 깊게 팬 도로 근처에 서 있다가 물벼락을 맞는 일은 쉬웠다. 하지만 그런 불운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행운은 그리 크지 않았다. 특히나 삶에서 일부로 불운을 일으켜서까지 얻고자 하는 행운들은 결코 소소한 것일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한 동안 그런 커다란 행운이 필요한 일은 없었다. 경제적으로도 충분했고 가족은 화목했다. 하지만 삶이 늘 그렇게 좋은 쪽으로만 흐르지는 않았다.

 

어느 날부터 아내가 피곤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식욕도 줄고 살도 빠졌다. 그리고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아보니 많이 아픈 상태였다. 난소암이었다. 행운을 얻기 위해서는 그렇게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데, 어떤 불운들은 마치 뻥 뚫린 고속도로를 타고 오는 듯 그렇게 찾아왔다. 물론 이런 불운이 또 다른 어떤 행운으로 이어질지는 모른다. 하지만 아내를 잃고 얻을 수 있는 행운이라면 나는 결코 얻고 싶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치료 가능성에 대해서 희망적으로 말했지만, 내가 찾아 본 사례들을 보면 그리 희망적이지는 못했다. 물론 병원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이해는 갔다. 정말로 기적적으로 암을 이겨낼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 치료 과정이 쉽지도 않았고, 사는 것이 사는 것도 아니었다. 직업이 간호사였던 아내는 그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병원에서 치료를 하는 것을 포기하고 싶어 했다. 남은 삶을 좀 더 나은 곳에서 보내고 싶어 했다.

 

아내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항암치료로 인해 머리털이 다 빠지고 삐쩍 메마른 모습으로 사랑하는 이들과 작별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골의 조그만 집을 한 채 구했다. 주변에 따로 인가도 없어서 조용하고 공기가 맑은 곳이었다. 환경이 좋다면 어쩌면 기적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속셈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내를 살릴 수 있을 정도의 커다란 불운을 일으키는 일이었다. 시골 집은 아내가 기적적으로 살아났을 때 그것을 적당히 포장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다. 물론 아내도 시골 집 삶을 원하긴 했다.

 

하지만 불운을 일으키는 일 자체는 몹시 막막한 상황이었다. 누군가의 목숨을 살리는 일이니 그 목숨에 상응하는 수준의 불운을 만들어 내야 했기에 그랬다. 아내를 위해 내 목숨이 아깝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목숨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내에게 있어서 나나 내 아이의 목숨은 그녀의 목숨만큼이나 중요했다. 그러니 설령 아내의 병이 치료가 되더라도 내가 없는 상황이 되면 아내는 정신적으로 무너질 수도 있었다. 도대체 어떤 일을 겪어야 우리 가족에게 별 다른 피해가 없으면서도 큰 불운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오랜 고민 끝에 한 가지 해결책을 찾아냈다.

 

나는 불륜카페에 가입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남편으로 인해 외로움을 겪고 있는 여자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 중 한 여자를 만났다. 좋은 여자였다. 만약 지금의 아내와 인연이 없었다면 같이 살고 싶을 정도로 좋은 여자였다. 그녀는 남편의 외도로 인해 큰 상처를 입고 충동적으로 불륜카페에 가입했었다고 했다. 나도 비슷한 처지라고 거짓말을 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는 빠르게 사랑에 빠져 들어갔다. 불륜관계라는 사실은 우리의 사랑을 더욱 더 안타깝고 애타게 만들었다. 남편의 눈을 피해 나와야 하는 그녀와 어쩔 수 없이 아픈 아내를 속이며 나와야 하는 내 처지가 남몰래 만날 때마다 서로를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당신 얘기는, 아픈 아내를 살리기 위해서 살인을 교사했다는 거죠?" 내 눈 앞에 있는, 자신을 김형석이라고 밝힌 눈이 부리부리한 형사는 내 말을 전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비아냥거렸다. 형사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는 아무 것도 모를 테니까. 그래도 나는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내가 왜 그녀를 만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사랑하는 그녀를 왜 죽일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만큼은 숨기지 않고 털어 놓았다. 그리고 절대로 살인 교사가 아니라고 변명했다. 나는 그저 아내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수준의 커다란 불운이 필요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나는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지금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겪고 있는 중이었다. 만약에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면 절대로 그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말장난 하지 말죠. 사고를 일으켜 달라는 것이나, 살인교사나 뭐가 다르죠? 결국 옆자리에 타고 있는 정인순씨가 그 사고로 죽었잖아요. 그러니까 결국엔 살인교사죠."

 

우리 두 사람이 불륜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김형사는 나를 완전히 파렴치한으로 몰아 붙였다. 인순씨, 그래 그녀가 죽었다. 내 생애 두 번째로 사랑한 여자였다. 하지만 아내보다 더 많이 사랑하지는 못한 여자였다. 그녀는 아내를 위한 불운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 그녀의 삶은 결국 이런 사고로 인해 끝났지만, 그래도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나로 인해 충분히 행복했다. 사고가 난 당시 우리는 매화꽃을 보기 위해서 남해를 향하는 이른 봄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가 서로 각자 배우자를 속이고 처음으로 삼박사일간의 여행을 떠나는 날이기도 했다. 사고가 난 것은 바로 그 여행의 첫날이었다.

 

사실 내가 지금 경찰서에 끌려와 있는 것은 그저 상황이 좀 꼬여서 그렇다. 내가 사고를 내달라고 의뢰한 놈이 사고를 내다가 그 자신도 죽어버린 것이다. 거기에 불운이 더 더해졌는데, 그것은 바로 죽은 놈의 가족이 그 사고를 낸 과정을 알게 되면서 나를 경찰에 고소한 것이다.

 

내가 사전에 그 놈과 통화를 한 내역과 문자를 주고받은 것이 결정적 증거가 되고 말았다. 그 놈은 멍청하게도 사고를 내면서 내 차의 조수석과 자신의 운전석을 거의 정면으로 충돌시키고 말았다. 그로 인해 결국 두 사람 모두 죽고 만 것이다. 내 차의 오른쪽 측면을 제대로 치고 들어왔다면 아마도 인순씨만 죽고 그 놈은 크게 다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손 쉽게 일억을 벌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멍청한 놈이 그런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벌써 두 달이나 지난 일이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아내 몸에 종양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병원에서는 놀라운 기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제는 좀 더 현실적으로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해줬다. 하지만 아내는 지금까지도 그 기적이 시골생활에서 온 줄 알고 있다. 이제 경찰의 조사가 시작되었으니 아내는 내가 자신이 아픈 동안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아마도 큰 배신감을 느낄 것이 분명했다. 만약 내가 모든 것을 다 털어 놓는다면 아내는 나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을까? 그리 희망적이지는 않았다. 내 눈 앞에 있는 경찰처럼 우선 믿기도 힘들뿐더러, 어떤 이유든 자신이 죽어가는 동안 다른 여자와 만났다는 사실을 용납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더군다나 우리가 조사를 해보니까 그런 일이 처음도 아니더군요. 그 전에도 비슷한 사고로 옆에 타고 있던 여자가 죽은 적이 있었죠?"

 

맞는 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인순씨는 내가 불륜카페에서 만난 세 번째 여자였다. 내가 직접적으로 당하지 않으니 더 큰 불운이 필요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랑하는 척을 하면 결코 이뤄지지 않는 불운이었다. 나는 처음 만난 두 여자를 그냥 사랑하는 척만 했다. 그러고 나서 사고를 일으켰다. 그래서 그런지 아내의 병은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그래서 세 번째 만난 여자는 진짜로 사랑을 했다. 또한 사랑할만한 여자였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로 궁금한 것은, 딱히 이득도 없는데 왜 그런 짓을 저질렀냐는 것입니다. 아까 말한 이상한 헛소리 말고, 정말로 그런 짓을 교사한 진짜 이유가 뭐죠?" 형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로 내가 그런 일들을 벌인 이유를 알고 싶어 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나는 이미 진실을 말했다. 딱히 더 이상 해 줄 말이 없었다.

 

"좀 이상하잖아요. 당신 주장처럼 삶에서 오는 행운과 불행의 총량이 같다면, 왜 이 세상엔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들과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이 존재하죠?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행운과 불행이 찾아온다면 그런 차이가 생기면 안 되잖아요." 내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이번엔 김형사의 옆에 앉은 형사가 호기심 어린 말투로 물었다. 아마 조형사라고 했었을 것이다.

 

"저도 처음엔 그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알겠더군요. 사람마다 다 똑같은 행운과 불행이 찾아오는데 삶이 그토록 다양하게 행복하고 또한 다양하게 불행한지를 말이죠." 내 말에 조형사의 얼굴엔 조금 더 호기심이 깊어졌다. 그는 별다른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내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행운은 좋고 긍정적이며 밝고 가볍습니다. 그래서 허공에 떠서 찾아오죠. 그러니 자리를 잘 잡고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높이로 뛰어야만 그것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잡기가 쉽지가 않고 당연히 제대로 잡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반대로 불운은 부정적이며 어둡고 무겁습니다. 그래서 땅을 기어서 찾아오죠. 그러니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무조건 밟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최대한 정신을 차리고 불운을 밟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보통은 아무 생각없이 살다가 밟게 되고 말죠. 그리고 허공에 떠 있는 행복을 잡으려고 자주 뛰어 오르는 사람들일수록 더욱 더 실수로 자주 밟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이유로 인해서 많은 행운들은 그저 떠돌다 사라지고, 많은 불운은 발에 밟혀 현실 속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 이유로 인해 행운과 불운의 총량은 같더라도 결국 크게 행복한 사람들과 많이 불행한 사람의 차이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건 또 무슨 황당한 궤변이야?" 김형사가 짜증을 냈다. 그리고 나에게 질문을 던진 조형사를 나무랐다. 이미 내가 하는 말은 다 거짓말이라고 여기는 김형사에게는 내가 하는 말은 당연히 다 헛소리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조형사는 달랐다. 그는 내 말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둘은 잠시 옥신각신하더니 김형사는 딱 삼십분 주겠다고 하고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취조실엔 나와 조형사 둘만 남게 되었다.

 

"계속 얘기 해 보세요." 김형사가 나가면서 대충 상황이 정리되자 조형사가 나를 재촉했다.

 

", 복잡한 얘기는 아닙니다. 행복하기 살고 싶다면 늘 주의 깊게 바닥에 깔린 불운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허공에 떠도는 행운을 잘 붙잡을 방법을 생각해야 하죠. 그러면서도 행운을 붙잡으려다가 오히려 불운을 더 밟게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반드시 주의해야 합니다. 그때부터 행운과 불운의 균형이 무너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삶은 행복과 불행이 적당히 균형을 맞춘 것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불행의 방향을 향하게 됩니다."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조형사는 내가 방금 한 말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눈치였다.

 

"말이 쉽지, 그게 쉬운 일인가요? 처음부터 어떤 일이 행운인지 불운이지조차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데." 조형사는 크게 한숨을 쉬면서 물었다.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반드시 얻어야 하는 행운이 있다면 그에 따른 불운을 억지로라도 일으켜야 하는 것이죠." 이후 나는 아직 말하지 않았던, 오래 전 과거에 내가 처음 고객의 황당한 의뢰를 받았던 일부터 시작해서 이후 십 수년간에 걸쳐 내가 경험했던 모든 일들을 빠짐없이 조형사에게 말했다.

 

"놀라운 이야기군요. 솔직히 말해서 믿기도 그렇고, 믿지 않기도 그렇고, 애매하네요." 나의 긴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난 후 조형사는 몹시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란스러워 했다. 그의 그런 반응이 충분히 이해는 갔다. 나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그저 아주 예전에 고객으로부터 운에 관한 설명을 듣고 로또 당첨이 된 후부터 내 확신은 점점 더 확실해져왔을 뿐이다.

 

1심에서 15년 형을 언도 받았다. 2억을 합의금으로 내 놓고 받은 어느 정도의 양형이었다. 많은 돈을 들여 변호사를 구했더니 다행히 앞의 두 건의 사고가 많이 가중처벌 되지는 않았다. 아마도 가중처벌을 받았다면 나는 최소 무기징역형을 받았을 것이 분명했다. 아무튼 그동안 벌어 놓은 많은 돈 덕분에 그 정도 선에서 마무리 될 수 있었다. 1심이 끝난 후 항소를 포기했다. 변호사는 무조건 2심으로 가야 한다고 했지만, 재판 과정에서 나는 너무 지쳤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아무리 그 의도가 좋았더라도 나는 결국 세 명의 목숨을 뺏은 살인자였다.

 

감옥의 세계는 몹시 낯설고 두렵긴 했지만 일 년 정도 시간이 지나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하지만 역시나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내는 내가 자신이 아픈 사이에 세 차례의 불륜을 저지른 사실과 그 불륜상대들을 모두 살인교사 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물론 나는 이제 몸이 완전히 회복된 아내에게, 당신이 병에서 나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운에 관한 균형 때문이며, 그것 때문에 내가 그런 불륜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고 열심히 설명했지만, 아내는 그 모든 말을 그저 변명으로만 받아들였다. 그녀는 결국 나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가슴이 아팠지만 당장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아내가 내 진심을 알아주고 다시 나에게 돌아 올 것이라고 믿었다. 아니, 그렇게 만들 자신도 있었다. 그저 그것을 위해서 또 다른 불운을 일으키면 된다.

 

어느 날 면회가 왔다는 통보가 왔다. 교도소로 나를 찾아 올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혹시나 아내가 찾아왔을까 하는 마음에 기분이 들떴다. 아내가 나를 조금이라도 용서한 것 일까? 하지만 정작 면회 장에 가니 전혀 반갑지 않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람은 바로 나를 수사했던 담당 형사였다. 그것도 둘 중 호의적이었던 조형사가 아니라 나를 인간쓰레기처럼 취급했던 눈이 부리부리했던 김형사였다. 그가 나를 보고는 멋쩍게 웃었다. 순간 뭔가 느낌이 왔다. 나는 그가 나에게 어떤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무슨 말을 할 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조형사가 몇 달 전에 과로사로 죽었어요. 이번 진급 심사 앞두고 평소랑 달리 갑자기 미친 듯이 일만 하더니 갑자기 그렇게 갔죠." 내 예상과 달리 김형사는 뜬금없게 조형사 이야기를 꺼냈다. 누군가의 죽음이긴 했지만, 그리 좋지 않은 장소에서 잠시 맺었던 인연이라서 그런지 인간적인 안타까움 말고 딱히 어떤 감정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대신 듣는 순간 그가 그렇게 자신을 혹사한 이유가 대충 짐작이 갔다. 그는 승진이라는 행운을 잡기 위해서 억지로 불운을 만들다가 정말로 운이 나쁘게 죽음이라는 너무도 커다란 불운을 밟고 만 것이다. 어리석고 불쌍한 인간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조형사 그렇게 가고 나니 요즘 형사질 해서 먹고 사는 일에 영 의욕이 나질 않습니다. 그래서 다 때려 치고 사업이나 해볼까 하는데 겁도 좀 나고 해서... 제가 형사질 때려치우고 나가서 사업에 성공할 수 있으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어떤 일' 이라... 중의적 의미를 가진 물음이었다. 아마도 내 눈 앞에 있는 이 남자는 그날 내가 조형사에게만 했던 과거 이야기를 간접적으로라도 들었을 것이고, 그래서 지금 새로운 선택 앞에서 불안함을 느끼고 나를 찾은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그 어떤 일이란 말의 의미는 분명히 사업 아이템은 아닐 것이다. 그는 지금 사업을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불운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머리에 돌을 맞아 보거나, 차 사고가 내거나, 집에 불을 질러 보라고요?" 김형사는 깜짝 놀란 듯 내 말을 되물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형사의 표정에는 놀라움이 서서히 사라지고는 그 후로 뭔가 설명하기 힘든 웃음이 피어 올라왔다. 그것은 분명히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욕망의 미소였다.

 

그 순간이었다. 그 미소를 바라보는 나는 갑자기 뭔가 이상한 느낌이 왔다. 내 눈 앞에 있는 김형사는 내가 한 말을 실행할 것이 분명했다. 저 욕망이 느껴지는 미소가 그것을 확실하게 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아마도 그는 자신이 원하는 사업에 성공해서 돈도 많이 벌고, 그것보다도 훨씬 더 큰 많은 행운들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과연 그것을 과연 정말로 행운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분명히 아내의 불치병을 치료하는 행운을 얻기 위해서 세 사람을 사실상 살해하는 죄까지 저질렀다. 그리고 그 결과로 받아 든 것은 분명히 아내의 건강한 몸이긴 하지만, 그로 인해서 나는 감옥에서 15년을 썩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리고 덕분에 건강해진 아내는 오히려 나를 원망하며 떠났다. 그렇다면 과연 아내의 건강이 좋아진 것이 과연 행운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나와의 좋은 기억을 가진 채 세상을 떠났다면 어쩌면 그것이 더 나은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행운이라고 믿고 높이 뛰어서 붙잡은 것이 사실은 내 발에 밟혀 축축하게 물컹거리는 불운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갑자기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졌다.

 

나는 지금껏 내가 예전에 그 고객을 만나 운에 관한 진실을 알게 된 것을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갑자기 그 일조차도 정말로 행운이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때 만약 그 고객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래서 내가 로또가 당첨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었을까? 인생의 패자가 되어서 술주정뱅이가 되어 있을까? 아니면 재기해서 지금과는 다른 일을 하고 있을까? 어떤 삶이든 아내를 만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저 지금 이 순간 확실한 사실 하나는 나는 지금 앞으로 이 교도소에서 15년을 보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사랑하는 아내를 살릴 수 있는 일은 좋았지만 그것을 위해 세 명이 죽었고 그리고 이 교도소에서 나갈 때쯤이면 나 자신도 육십이 코앞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내가 운에 관한 진실을 알게 된 것 자체가 정말로 행운이었을까? 나에게 그 진실을 알려 준, 발을 다쳐서 평생 절룩거리면서 살아야 하는 그 고객의 삶은 과연 행복했을까? 아니, 그가 지금쯤 살아있기나 할까?

 

갑자기 발밑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욕망과 기대감에 찬 눈으로 감사인사를 하고 뒤돌아 나가는 김형사의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그의 미래가 그려졌다. 한 명은 평생 동안 다리를 절룩거려야 하고, 또 한 명은 아내에게 버림을 받은 채 감옥에 있어야 하고, 다른 한 명은 아예 죽고 말았다. 그렇다면 김형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생각해보면 운이란 것은 지금 내 처지에 따라서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지금의 행운이 미래엔 불운으로, 그 불운이 더 먼 미래엔 행운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오직 미래에 결정된다. 그리고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확정이 된다. 죽음이라는 가장 큰 불운이 닥쳤을 때 내가 살아오는 동안 건너 온 모든 운의 의미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어떤 것을 행운이라고 정의하고 또 다른 어떤 것을 불운이라고 정의하는 일이 과연 의미가 있는 일일까?

 

"잠깐만요."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김형사를 불러세웠다. 딱히 그의 삶에 관심이 생겨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냥 꼭 그 말을 해주고 싶었다. 나와는 이미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진 상태에서 김형사는 '왜?' 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실에 너무 가까이 가지 마세요. 그것은 불과 같아서 데일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도 잘 이해가 가질 않았지만, 나는 그 말을 하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사실 지금 이 순간 나 자신도 내가 한 말이, 아니 예전에 그 고객이 나에게 해준 말이 무슨 의미인지 혼란스러웠다. 예전엔 분명히 제대로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 순간엔 내가 아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김형사는 잠시 특유의 부리부리한 눈을 껌뻑거리더니 손을 흔들며 가던 길을 갔다. 또 언제가 시간이 흐르면 그도 나처럼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누군가에게 해주게 될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사실 별 관심도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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