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에세이

[단편] 완벽한 인생 #1

아이루다 2021. 3. 10. 10:48

 

"뭐라고요?"

 

너무 어이가 없었던 탓인지 내 직업상 가능하면 하지 않는 것이 좋은, 아니 해서는 안 되는 말이 튀어 나오고야 말았다. 누구처럼 평생직장은 아니더라도 이 바닥에서 십여 년 발을 붙이는 동안 정말로 별의 별 요구를 하는 사람들을 다양하게 만나보긴 했지만, 오늘 들은 요구는 그 중에서도 제일 황당했다. 하지만 나는 나름 관록이 쌓인 프로였다. 덕분에 아주 잠깐 외출했던 정신은 금세 다시 되돌아올 수 있었다.

 

다행히 내 앞에 선 고객은 내가 조금 전 보여 준 반응에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내가 그런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다는 듯 살짝 미소까지 머금은 채 다음 말을 이었다.

 

"이미 들은 그대로 입니다. 좀 알아보니 이곳이 평가가 제일 좋더군요. 그런 의미에서 돈은 선금으로 다 지불하겠습니다. 대신 일처리만큼은 반드시 제가 원하는 대로 해주셔야 합니다."

 

나는 멀쑥한 외모와 말끔한 복장을 갖춘, 그 표정에서도 딱히 어떤 문제도 없어 보이는 내 눈 앞에 있는 고객에게 눈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오래 하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 타인에게 보이고 싶은 표정 뒤에 숨겨진 진짜 표정을 보고 싶어서 그랬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딱히 어떤 정보도 얻어낼 수 없었다. 그는 여전히 어떤 문제가 없어 보였고 그 외모도 길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나는 흥신소, 그러니까 흔히 심부름센터로 알려진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나한테 연락이 오거나 직접 사무실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본인이 처리하기엔 곤란하거나 할 수 있다고 해도 뭔가 켕기는 구석이 있는 일들을 가지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해서 어떤 일들은 나름대로 심각한 문제를 가진 경우도 많았다. 그러니 많은 돈을 지불하면서 까지 그 일을 처리하려고 하는 것이다.

 

보통 제일 많이 들어오는 의뢰는 배우자의 불륜증거를 잡아 달라는 일이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그런 일을 요구하는 사람들 중에서 꼭 배우자가 아닌 경우도 많았다. 자신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상대가 또 다른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알아봐 달라는 요구도 제법 되었다. 만약에 그런 의뢰가 조사에 의해서 진짜 사실로 드러나면 그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가 펼쳐지곤 했다. 불륜 당사자불륜 당사자의 배우자 그리고 나에게 의뢰를 한 불륜 상대자, 마지막으로 이번 조사로 인해 밝혀진 숨겨진 새로운 불륜 상대자까지 모두 모여서 매우 흥미롭지만 결국 한 없이 지저분하기 하게 끝날 싸움의 서막이 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자주 들어오는 의뢰는 사람을 찾아달라는 일이다. 실종된 사람의 경우도 있고, 어릴 때 헤어진 가족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가을이 오면 특별하게 오래 전 첫사랑을 찾아달라는 경우도 제법 있었고 졸업시즌이 오면 학창시절 은사를 찾아달라는 의뢰도 있긴 했다. 요즘은 시대가 바뀌면서 각종 역할 대행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 흔하게는 결혼식 하객 대행부터 애인 대행까지 그리고 부모님 역할 대행이나 아이 아빠 대행도 드물게 들어오는 편이었다. 물론 그런 일들은 내가 직접 하지 않았다. 그것을 위한 전문 팀들이 있었고 나는 연결만 시켜주고 만다.

 

아주 가끔 왕따를 당하는 아이를 위해 왕따 주동자들을 혼내달라고 하거나, 자신의 돈을 떼 먹은 사람을 협박 해달라는 요청도 있다. 심지어 청부살인도 들어온다.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긴 하지만, 청부살인은 생각보다 자주 의뢰가 들어온다. 물론 나는 그런 일을 맡지는 않지만, 몇 다리 건너 아는 사람들 중에서 은밀히 그런 의뢰도 처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런 것들 말고도 매우 특이한 의뢰 있긴 했다. 하지만 오늘 내가 받은 의뢰는 내 상상을 훌쩍 뛰어 넘고 있었다. 도대체 저 남자는 왜 자신에게 돌을 던져 달라고 하는 것일까? 그것도 그냥도 아니고 머리가 터져 피가 날만큼 세게 던져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언제까지 되어야 할지만 정해줬을 뿐, 언제 어떤 방식으로 할지는 온전히 내가 알아서 해야 한다고 했다. 오히려 비록 자신이 스스로 이런 의뢰를 하긴 하지만, 우연히 그 일을 겪는 것처럼 되어야 한다는 말을 당부했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어느 날 어디선가 갑자기 커다란 짱돌이 날아와 머리가 깨져 피가 흘러야 하는 일을 겪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머리를 돌로 깨달라는 황당한 의뢰, 그러다 보니 내가 그 의뢰를 듣고 난 후 처음 든 생각은 '신종 보험사기인가?' 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의심하는 듯 하자 고객은 그것은 결코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꼭 확인해야 할 문제이긴 했다. 만약 목적이 보험사기일 경우, 수령할 수 있는 보험금에 따라서 보험사 소속의 전문가의 수사가 시작될 가능성이 있었다. 특히 고액의 보험이거나 금액 자체는 적어도 동일한 목적의 보험이 다수의 보험사에서 동시에 지급되는 상황이 되면 해당 사건은 보험사 간에 공유되면서 경찰까지 낀 공식적인 수사대상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보통 보험사기에 연루된 의뢰는 그런 일만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일들은 맡지 않는다.

 

"그 사건으로 인해 뭔가 조사 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고객은 담담하고 확신 있게 말했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비용이 얼마인지를 물었다. 비용, 중요한 문제였다. 하지만 도대체 얼마를 청구해야 할까? 그제야 생각해보니 일 자체는 단순했지만 실행하려면 난이도가 꽤나 높다는 점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멀리 떨어져서 누군가를 돌로 맞혀야 하는 작업이 쉬워 보이지 않았다. 투수 출신의 야구선수라도 섭외해야 할까? 아니면 돌을 쏴주는 장비라도 구입해야 할까? 하지만 그런 장비가 있기나 할까? 아무튼 그것에 대한 비용도 꼭 고려해야 할 것 같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한 끝에 나는 통 크게 오백만원을 불렀다. 사실 약간 거절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일부로 높게 불렀다.

 

"여기 대략 저에 대한 인적사항이 있으니, 제 이동경로는 잘 알아서 파악하시고 제가 말씀드린 날짜 전까지만 이행해주시면 됩니다."

 

고객은 단 한 번의 흥정도 없이 즉시 내 제안을 받아들이고는 나에게 자신의 평소 이동경로와 주로 다니는 장소들이 적히 쪽지를 내밀었다. 그 후 바로 그 자리에서 내 계좌로 현금을 이체해 주었다. 그렇게 얼떨결에 계약이 성사되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인사를 한 후 뒤로 돌아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가는 고객의 뒷모습을 보면서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새삼 막막함을 느껴야 했다. 이미 돈까지 받았으니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처리해야 하긴 할 것이다.

 

고객은 머리에 최소 30방 이상을 꿰매야 하는 상처를 입었다. 인맥에 인맥을 거쳐 겨우 찾은, 투수 출신의 야구선수는 아니지만 고등학교 시절까지 핸드볼을 했다는 20대 청년의 도움을 통해서 이룬 성과였다. 그는 이백만원을 받기고 하고 일주일간 연습을 한 끝에 대략 20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돌멩이를 던져 고객의 뒤통수를 정확히 맞췄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수고비를 지급받고 싱글벙글하며 떠났다. 또 이런 일이 있으면 꼭 불러달라고 했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뒤로하고는 돌멩이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는 고객을 멀리에서 살폈다. 계속 저렇게 길바닥에 쓰려져 있다가는 문제가 심각해질 수도 있었다.

 

다행이 그렇게 되지 않았다. 사고가 난 후 고객의 주변을 지나던 사람들 중 하나가 119에 전화를 걸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경광등을 번쩍거리며 구급차가 도착했다. 나는 상황을 봐서 내가 익명으로 신고를 할 생각으로 선불 폰까지 챙겨왔지만 고객이 들것에 실려 구급차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조용히 그 자리를 떴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는 살만한 곳인 듯 했다.

 

"차 사고를 내 달라고요?" 그 일로부터 한 육 개월 정도 지났을까? 예전에 돌을 던져달라던 고객이 또 다시 나를 찾아왔다. 그런데 이번엔 차 사고를 내달라는 의뢰를 했다. 이번에야 말로 정말로 보험사기가 아닌가 하는 진한 의구심이 들었다. 이 사람은 신종 자해공갈단인가?

 

"아닙니다. 그런 목적이 아니고, 그냥 도로에서 사고를 내주시면 됩니다. 폐차를 할 정도로 심각한 사고를 내 주시고 설령 그 사고로 제가 죽거나 해도 크게 상관없습니다."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왔다. 의뢰한 일의 황당함은 고사하고,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일을 저렇게나 평온한 얼굴로 담담하게 의뢰하는 고객의 태도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이 자해공갈단이 아니라면 그저 자살을 하고 싶은 사람인 것인가? 하지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자살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나 많은데 뭐 하러 힘들게 이런 방법까지 쓰겠는가? 특히나 정확히 말하면 죽음 그 자체가 목적도 아니다. 그는 죽어도 상관없다고 했을 뿐, 죽여 달라는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의뢰를 하는 것일까? 내 머리 속에서는 커다란 의문이 자라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대 놓고 물어 볼 수는 없었다.

 

나는 일단 마음을 가다듬고 의뢰건 자체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잠시만 생각해봐도 난이도가 무척 높은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선 차 사고를 내는 것 자체가 쉽지가 않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 사람을 시켜 교통사고를 일으키는 장면이 흔히 나오지만, 이 복잡한 도로에서 누군가가 탄 차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차와 사고를 일으키려면 보통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수 많은 교차로의 신호등과 예측 불가능한 수준의 끼어듬이 있는 도심의 도로에서는 앞 차를 따라가는 것만도 그리 쉽지 않는 일인데, 이것은 따라가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반대 방향에서 와야 할 상황이었다. 큰 사고를 내려면 적어도 정면이나 측면 충돌을 해야 하니까 말이다. 만약 후방 충돌로 큰 사고를 내려면 커다란 트럭이나 버스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차들은 기동성이 떨어져서 일반 승용차를 따라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그러니 결국 비슷한 기동성을 가진 차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장소도 매우 중요했다. 차가 많이 모여 있는 도심지는 적당한 장소가 아니었다. 도심에서도 좀 외졌거나 가능하다면 늦은 새벽 시간대가 좋을 것이다. 아니면 아예 외각의 한적한 시골길이 제일 적당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그 조건을 갖추는 일이 쉽겠는가? 상대와 따로 약속을 잡지 않은 한, 적당한 장소에서 적당한 시간에 사고를 내는 일은 꽤나 정밀한 계획이 필요해 보이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좀 더 심각할 수 있는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차와 차가 부딪히는 사고를 나게 되면 의뢰한 고객도 다치겠지만 일부로 사고를 낸 차의 운전자도 크게 다칠 수 있다는 점이다. 차와 차가 부딪히는 충격은 오직 사고를 당하는 차만 받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이 일의 위험도는 매우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일을 맡길 만한 사람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히 보험사기에 가담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비용이 꽤나 많이 들 것이다.

 

"이번 건 위험부담이 커서 비용이 많이 들 수 있습니다." 내 말에 고객은 얼마면 되냐고 되물었다. 나는 크게 오천을 불렀다. 사실 정말로 큰 금액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객은 또 다시 그 자리에서 바로 이체를 했다. 그리고 날짜는 꼭 맞춰줘야 한다는 당부를 다시금 반복했다. 그리고 나는 또 다시 황당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미 돈까지 받은 마당에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과정은 복잡하고 힘들었지만 결국 고객이 원하는 대로 잘 처리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번 의뢰로 꽤나 큰돈을 벌 수 있었다. 다행히 고객은 크게는 다쳤지만 죽을 정도는 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해당 사고는 쌍방 간 합의로 처리가 되어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그 고객을 다시 본 때는 그때로부터 삼년 가까이 지나서였다. 그리고 이번에도 여전히 황당한 의뢰를 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사는 집에 불을 질러달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집이 비어 있을 때도 아니고, 자신이 자고 있을 때 해야 한다고 했다. 자신뿐만이 아니라, 가족전체가 자고 있을 때 해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로 이 고객의 머릿속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도대체 왜 저런 일들을 해달라고 하는 것일까?

 

 

이번에도 비용을 크게 불렀고 고객은 아무런 흥정 없이 이체를 했다. 그새 익숙해진 나는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그 날로부터 정확히 삼주 후 고객의 집에 불이 났다. 뉴스에도 나올 만큼 커다란 사건이었는데, 보도에 따르면 방화로 의심이 되어 수사를 하는 중이지만 딱히 증거가 없어서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연했다. 나름대로 프로인 내가 그 동네 모든 CCTV를 다 피해서 저지른 일이니 딱히 수사망에 걸릴 일은 없었다.

 

그로부터 또 다시 이년이 지나 그 고객이 또 다시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하지만 그때 나는 더 이상 그 고객의 의뢰를 들어 줄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있었다. 그간 맡았던 일 중에 하나가 제대로 꼬이면서 더 이상 흥신소 일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어떤 남자의 의뢰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일이 꼬이면서 사무실은 유지하고 있긴 했지만, 이제 아예 이 바닥에서 더 이상 일을 맡을 수가 없는 형편이 되어 있었다.

 

의뢰 자체는 단순했다. 한 남자가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 같다면서 현장을 잡아 달라는 의뢰를 해왔다. 제일 많이 했던 일이고 제일 잘하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그 동안의 관록으로 단 이주만에 모든 정황증거와 실제증거를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재수 없게도 그 불륜 상대 남자가 바로 고위직 검사였던 것이다. 검사는 자신이 불륜을 저지른 사실이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 과정을 역으로 추적해서 내 존재를 알아내었다. 그리고 나서 나에게 불륜에 관한 모든 증거를 없애라고 협박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에 따랐어야 했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고객과의 신뢰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착각해서 검사의 요구를 거부했고 그 후로 검사의 잔인하고 치졸한 보복이 시작되었다. 법의 이름으로 내 사무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내가 의뢰 받는 일들 대부분은 양지보다는 음지에서 일어나는 것들이었다. 그나마 실종된 사람 찾아주는 일이나 좀 멀쩡할 뿐, 불륜증거 찾기나 대행 알바 알선처럼 남들에게 그런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 힘든 일들을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더해서 모든 거래는 현금으로만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탈세는 기본이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힘이 있는 누군가가 마음먹고 털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털릴 처지였다. 더군다나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소문이 빠른 이쪽 업종에서 검사의 눈엣가시가 된 흥신소에 일을 맡길 고객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남들에게 알려지기 싫은 일을 맡기는데 누가 그런 일들을 검사의 감시대상이 된 나에게 의뢰할 것인가? 결국 나는 거의 망해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 고객이 나를 다시 찾았을 때쯤엔 아예 원래 하던 일을 접고 물류센터에서 알바를 하면서 먹고 사는 형편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나는 시시콜콜하게 그런 얘기를 설명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개인 사정으로 일을 접었다고만 했다.

 

"그러시군요. 아쉽네요. 그간 일처리를 잘해주셔서 좋았는데." 고객은 이제는 차갑게 식어 버린 커피를 한 번에 다 비우고 난 후 대답했다. 그는 내가 왜 일을 접게 되었는지에 대해 조금 궁금해 하는 눈치였지만 따로 묻지는 않았다. ", 어쩔 수 없죠. 아무튼 다른 믿을만한 사람 소개는 해드릴 수 있습니다." 힘없이 대꾸하는 내 말에 고객은 그렇게라도 해주면 고맙겠다고 했다. 나는 전화기를 꺼내 연락처 하나를 찾아 낸 후 고객에게 문자로 전달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고객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인사를 하고 등을 돌려 절뚝거리는 걸음걸이로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몇 해 전 교통사고 때 입은 후유증으로 인해 영구히 다리를 절게 된 것이다. 그 기억이 떠오르는 순간 나는 갑자기 이제는 과거에 왜 그런 황당한 의뢰를 했었는지 물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도대체 왜 그런 일들을 의뢰한 것일까? 저렇게 몸이 망가지면서까지 말이다.

 

"잠깐만요." 나는 밖을 향하고 있는 고객을 불러 세웠다. 생각보다 말이 더 빨리 나가서 스스로 좀 놀랬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지금이라도 도대체 왜 그런 의뢰를 했었는지 저에게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몸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얼굴만 돌린 채 내 말을 들은 고객의 얼굴엔 순간적으로 흥미롭다는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려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는 정말로 알고 싶은지를 진지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리고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혹시나 싶어서 먼저 경고를 하겠습니다." 절룩거리면서 돌아와 다시 자리에 앉은 고객은 거기에서 말을 멈추며 잠시 뜸을 들였다. 그 순간 나는 조금 긴장이 되었다. 상대의 진지한 얼굴을 보다 보니 내가 실수로 건들면 안 되는 어떤 것을 건든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내 생각과 상관없이 고객의 입은 다시 열리고 있었다.

 

"이 세상엔 수많은 진실이 존재하지요. 그런데 어떤 진실들은 알고 난 후엔 절대로 알기 전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마치 평생 자신의 자식인 줄 알고 키웠는데 사실은 자신과는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과거에 아내가 바람을 피워서 낳은 아이인 것을 알게 된 아버지나,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는 상대가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자신이 가진 돈만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처럼 말이죠. 그런데도 정말로 그 진실을 알고 싶으신가요?"

 

그때부터 좀 더 본격적으로 겁이 났다. 도대체 무엇에 대해 말하려고 저런 섬뜩한 경고를 하는 것일까? 그래도 여기에서 물어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감당하겠다고 대답했다. "꼭 듣고 싶다면 말씀드리지요." 고객은 살짝 웃고는 한참 동안 침묵 속에 있었다. 아마도 머릿속에서 어떻게 설명을 할지 생각을 정리하는 듯 보였다.

 

"사장님은 혹시 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죠?" 뜻밖의 질문이 나왔다. 운이라니... 운은 그냥 운이지 어떻게 생각하고 말고 자시고가 있는 것인가?

 

"운에는 행운과 불운이 있죠. 행운은 좋은 것이고, 불운은 나쁜 것이고요." 나는 그다지 자신없는 태도로 답했다.

 

", 그렇죠. 그러면 어떤 것이 행운이고 어떤 것이 불운일까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행운과 불운을 딱히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나한테 이득이 되면 행운이고 나한테 손해가 되면 불운이 것이지. 하지만 내 대답을 듣고 고객은 아까처럼 살짝 웃기만 했다.

 

"사장님이 요즘 상황이 힘들어져서 흥신소 일을 접는다고 했죠? 그런데 그 일을 접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그 순간 자신이 진실을 말해주니 나에게도 숨기지 말라는 뜻인 것 같았다. 말하고 싶지 않았을 뿐, 딱히 숨길 일만도 아니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냥 다 말하고 싶다는 충동도 들었다. 나는 고액의 의뢰비를 받고 불륜 현장을 조사하던 일, 하지만 그 불륜 상대가 현직 검사인 줄을 몰라서 된통 당하게 된 일 등을 넋두리 하듯 털어 놓았다.

 

"그럼 처음에 고액의 의뢰비를 받은 것은 분명 행운이었겠군요." 맞는 말이다. 운 좋게 평소 받던 비용의 두 배 이상을 받았으니까. "하지만 그 일이 결국 불운의 씨앗이 되고 말았지요." 그 말도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의뢰를 맡은 일은 행운인가요? 아니면 불운인가요?"

 

"..." 나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분명 당시엔 행운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불운이 확실하다. "불운이죠. 맡지 말아야 할 일을 맡아서 이렇게 망했으니까." 내 대답에 고객은 좀 더 밝게 웃었다. "그렇다면 만약에 이 일로 인해 하던 일을 접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는데, 그 일이 너무도 잘 되서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면 그 일은 행운일까요? 아니면 불운일까요?"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지금 당장 하루 벌어먹기도 힘들어서 택배물류센터에서 노가다를 뛰고 있는 나한테 무슨 소리인가?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행운이네요.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죠." 나는 약간 짜증나는 표정으로 답했다. ", 그러면 다시 묻죠. 무엇이 행운이고 무엇이 불운일까요?" 나는 그 질문을 받고서야 고객이 나한테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최근 힘들어서 읽었던 몇 권의 책들에서 나오는 말처럼 인생은 자신이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그런 뻔 한 소리나 하려고 하는 것인가? 나는 아무 대답도 없이 고객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았다. 어떨 땐 말보다 표정이 훨씬 더 생각전달이 잘 된다.

 

"죄송합니다. 지금 한참 불운의 시기에 있는 분에게 괜히 행운의 시기에 대해서 말씀드렸네요. 아무튼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 아니라, 삶은 늘 행운과 불운이 오고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관한 진짜 진실은 사람들 모두 각자의 삶의 기간 동안 동일한 양의 행운과 불운을 경험하게 된다는 점이죠. 그러니까 행운이 따르는 만큼 불운이 찾아오고, 불운이 감당하는 만큼 행운도 따른다는 것이 지금 제가 말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진실입니다."

 

이건 또 뭐 개 풀 뜯어먹는 소리냐? 나는 더 짜증이 났다. "그 진실이라는 것이 저에게 돌멩이를 던져서 머리를 깨달라는 의뢰나 차사고 내고 집에 불 질러 달라는 요구랑 무슨 상관인가요?"

 

"분명히 상관이 있습니다. 그런 일들은 분명히 저한테 불운이기 때문에 저는 그에 상응하는 행운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나는 그 순간 내 눈 앞에 있는 고객이 분명히 어떤 정신적 문제가 있음을 확신했다. 그러니까 미친놈이다. 행운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머리에 돌을 맞고, 결국엔 평생 다리를 절뚝거리는 사고를 당하고, 가족이 다칠 수도 있는데 집에 불을 질러 달라고 의뢰를 한단 말인가?

 

"사장님 표정을 보니 제 말을 전혀 믿지 않은 눈치네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사실 처음에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꼭 아셔야 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제가 돌을 맞아 머리가 깨진 후 회사에서 이사로 진급을 했고, 차 사고를 당해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아내가 병 때문에 죽어가는 상황에서 다시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불이 난 후엔 아이가 자신이 원하던 대학교에 입학을 했죠. 그 모두 저에게 꼭 필요한 행운이었습니다. 물론 그 대신 제가 감당해야 할 불운은 컸습니다. 머리가 깨졌고, 보시다시피 다리가 불구가 됐고, 집에 불이 나서 큰 곤란함을 겪었으니까요. 물론 모두 보험에 들어있었기 때문에 의뢰비에 들어간 돈 말고는 재산상의 피해는 거의 없었습니다만. 아무튼 저는 저에게 닥친 불운을 통해서 저에게 진짜로 필요한 행운들을 얻었습니다. 그것을 위해 사장님에게 그런 황당한 의뢰들도 했던 것이고요."

 

듣고 나니 더 황당했다. 그래, 다 양보해서 행운과 불운의 총량이 같다고 치자. 하지만 전혀 연결되어 있지 않는 두 사건, 그러니까 머리가 깨진 불운이 이사로 진급하는 행운에 영향을 미칠까? 아니, 다 떠나서 그렇게 억지로 일으킨 불운도 불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도대체 이해 할 수 없는 소리였다.

 

"사장님이 지금 제 말을 믿고 안 믿고는 상관없습니다. 저도 처음에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믿고 그것을 토대로 살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불운이 없으면 오히려 더 불안합니다. 앞으로 제가 진짜로 얻고자 하는 것들을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니까요. 그래서 운 좋게 한참 동안 불운이 생겨나지 않으면 일부로 불운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렇게 제가 정말로 얻고 싶은 것들을 얻죠. 물론 사장님이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저 궁금하다고 하시기에 설명하는 것일 뿐이죠."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나는 그냥 맥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고객은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싶으면 지금 이 자리에서 나가는 즉시 로또를 사세요. 그리고 그 로또가 꼭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세요. 그러면서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머리에 돌멩이를 던져달라고 해보세요.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제가 한 말이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객은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한참 동안 그가 열고 나간 문을 바라보면서 멍하게 앉아 있다가 결국 밖으로 나왔다. 맑고 눈부신 오후의 가을 햇살이 눈에 들어오자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나는 성가신 햇살을 피하기 위해서 시선을 왼편으로 돌렸다. 그 순간 갑자기 길거리에서 로또를 파는 노점상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라면 어떤 관심도 가지지 않았던 간판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곳 앞에 서 있었다. 작은 노점엔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바쁘게 움직이는 손만 보였다. 나는 로또 한 장을 주문하고 돈을 지불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동으로 선택된 번호가 찍힌 로또 종이가 내가 인지를 하기도 전에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 마치 꼭 귀신에 홀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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