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에세이

[단편] 변두리 삶 #1

아이루다 2021. 3. 20. 07:53

'직업', 생년월일부터 이름과 지금 사는 주소까지, 막 힘없이 써내려 가던 나는 직업란 앞에서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 직업을 써 내야 했던 시절과는 달랐다. 아니, 다른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반대였다. 그 시절엔 딱히 직업이라고 할 만한 것을 가지지 못한 아버지 때문에 못 썼고, 지금은 오히려 반대로 쓸 것이 너무 많아서 고민스러웠다.

 

입으로는 늘 건설 기술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던 아버지는 일 년 중 기껏해야 서너 달 밖에 일을 못했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내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여느 날처럼 일을 하던 아버지는 5층 높이의 공사장에서 추락해 척추에 큰 손상을 입었다. 몇 년간 치료와 재활을 한 끝에 겉으로는 멀쩡해 지긴 했지만, 그때부터 아버지 몸엔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끝없는 밀려오는 한기였다.

 

아버지는 30도를 훌쩍 넘어서는 한여름에조차 내복을 입어야만 하는 사람이 되었고, 겨울은 당연하고 봄, 가을조차 춥다는 이유로 밖에 나가지를 못했다. 그러니 밖에서 일을 해야 먹고 사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돈을 벌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사람들이 에어컨을 켜기 시작하는 유월 중순부터 뜨거운 여름을 지나 살짝 가을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구월 중순 무렵까지, 대략 삼 개월 정도만 일을 했다. 그 기간이 바로 비로소 아버지가 직업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가진 시기였다. 하지만 나머지 기간은 사실상 백수였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술을 마시면서 지냈다. 술을 마시면 몸이 따뜻해진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딱히 말릴 수도 없었다.

 

그런 상황이니 우리 집은 당연히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져야 할 상황이었다. 아버지가 아픈 동안 많은 빚도 생겨났고, 그 후로도 아버지가 일 년에 겨우 석 달 벌어온 돈으로는 남들은 심심하다는 이유로 보는 영화 한 편 보는 것은 고사하고 세 식구 입에 넣을 음식조차 제대로 구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니 어머니의 역할이 중요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어머니 나름대로 문제가 있었다.

 

딱히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것도 아니었고, 타고난 일머리가 부족했던 어머니는 당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디든 몇 달 이상을 쉽게 버텨내질 못했다. 대부분의 경우 잘렸다. 그런 상황이니 내가 부모님 직업란에 뭔가를 써야 할 상황에 놓이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일년에 딱 3개월을 일하는 아버지와 일을 하긴 하지만 잘려서 쉬는 기간이 더 많았던 어머니, 그런 상황에서 초등학생인 내가 부모님의 직업을 결정해서 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고민 끝에 결국엔 아버지의 직업인 '건설 기술자' 라고 쓰고 말았지만, 나는 그때 일명 노가다를 하는 아버지의 직업에 대한 부끄러움보다 오히려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양심적 가책을 더 느껴야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의문도 들긴 한다. 도대체 왜 내 학창시절엔 부모님 직업 같은 것을 써야 했을까? 담임선생님은 왜 내 부모의 직업을 왜 알아야 했을까?

 

무엇을 적어야 할지 고민이었던 과거와는 반대로 현재 내 직업은 너무 많아서 무엇을 고를 지가 고민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중에 남들에게 이것이 내 직업이다, 라고 말할 만큼 멀쩡한 것도 사실 없다.

 

내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일은 바로 신문을 배달하는 것이다. 요즘은 신문을 보는 집이 많이 줄어서 신문배달이라는 직업이 있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지금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직업이다. 단지 다들 자고 있는 새벽 시간에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남들 눈에 잘 띄지는 않는다. 신문배달을 마치고 나면 곧바로 사우나에 간다. 팔자 좋게 씻으러 가는 것은 아니고, 청소를 하러 간다. 사실 이 일은 시작한지 얼마 되지는 않았고 또 언제까지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그 일이 좋은 점은 일을 하면서 씻을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고시원엔 공동 샤워 실이 있긴 했지만, 너무 오래되고 낡은 탓에 쓰기가 힘들었고 물에서 원인 모를 냄새까지 났다. 그러니 매일 사우나에서 씻을 수 있다는 사실은 요즘 나에겐 작은 호강이 되어 주고 있었다.

 

그 일이 끝나고 나면 아침 겸 점심으로 근처 가게에 가서 국밥 한 그릇을 먹는다. 그리고 잠시 쉬었다가 PC 방에 들어가서 댓글 알바를 한다. 제품 사용기라든가, 특정 연예인 홍보라든가, 선거철이면 선거에 나온 후보들에 대한 비난이나 칭찬 댓글을 적기도 한다. 이 일은 내가 가지고 있는 직업들 중에서 제일 육체적으로는 편하다. 하지만 남들에게는 그런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직업이기도 하다. 사실상 불법적인 일이었고, 당연히 떳떳하지도 못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내가 어느 장소에 있든지 상관없이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자주 이사를 다녀야 했던 나에겐 매우 중요한 조건 중 하나였다.

 

오후 세 시가 지나면 그때부터 나는 운전을 한다. 하교를 하는 아이들을 태우고 일명 학원 뺑뺑이를 도는 일을 한다. 운 좋게 운전면허를 가지고 있었고, 운 좋게 이 일을 소개 받았다. 물론 내 사정상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긴 했지만, 그렇게 저녁 시간까지 일을 하고 난 후 고기를 파는 식당에서 자정 무렵까지 일을 하면 하루가 끝났다. 저녁은 식당에서 해결했다. 주말이 되면 상황이 바뀌는데, 학원 운전을 하지 않아서 그렇다. 그때는 주로 예식장 같은 곳에서 일을 했다. 보통은 식이 이뤄지는 동안 보일 각종 장치들을 배치하는 일을 하게 되는데, 어떨 때는 급하게 하객 알바를 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내 직업은 현재로서는 신문 배달자, 사우나 청소업자, 인터넷 여론 조성 전문가, 학원 버스 운전자, 음식점 종업원, 예식 도우미 정도 될 것이다. 이 중에서 일 년이면 한두 개는 바뀌지만, 아무튼 일을 하지 않고 놀면서 시간을 보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내 하루에서 잠을 자는 시간은 보통 다섯 시간 남짓이었고, 아점으로 먹는 시간은 30분 정도, 그리고 전체적인 이동 시간은 총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씻는 시간이나 저녁을 먹는 시간은 아예 일을 하는 시간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따로 시간이 더 들지는 않았다. 주말엔 약간의 여유가 있긴 했지만, 딱히 뭔가를 할 만한 시간은 아니었고, 그로 인해 나는 일년 삼백육십오일을 하루 동안 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 이동시간으로 총 일곱 시간을 쓰고 나머지 열일곱 시간을 일을 하면서 보냈다. 남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 만도 한 상황일 수도 있지만, 이런 식으로 일을 해 온지가 벌써 칠 년 째이다.

 

그럴 일도 없지만, 만약 누군가 나에게 왜 그렇게 악착같이 살고 있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하나뿐이다. 바로 빚 때문에 그렇다. 부모님 두 분이 돌아가실 때 남겨 주신 빚이다. 정확히 말하면 부모님이 남겨 준 빚이 아니라 돌아가신 부모님 두 분에게 들어간 병원비가 시간이 지나면서 불어난 빚이다. 부모님의 빚도 많았지만 유산 포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문제는 이미 신용불량자였던 부모님 대신 내가 내 명의로 진 빚이었다.

 

지금은 많이 낮아지긴 했지만, 내가 병원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빚을 내야 할 당시 법정 최고 금리는 60%를 넘었었다. 그것은 그나마 법 안에서의 금리였고, 나처럼 신용도도 바닥이면서 어쩔 수 없는 절박함 속에 있는 사람들만 찾게 되는 어둠 속의 사채 시장에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았다. 그래서 한번이라도 그런 곳에 빚을 지게 되면 이자에 이자가 붙으면서 끝없이 빚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듣기로 어떤 부자들은 땅에 만 원짜리가 떨어져 있어도 그것을 줍지 않는다고 한다. 그 돈을 줍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펴는 그 짧은 순간에 자동으로 벌리는 돈이 훨씬 더 많아서 그렇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들은 숨만 쉬고 있어도 돈이 벌린다. 나는 반대로 아무 것도 안하고 숨만 쉬어도 빚이 늘어나는 사람이었다. 그런 상황인지라 나는 오래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내가 자는 동안 빚이 늘어나 있기 때문이었다. 한 시간을 자면 한 시간만큼, 두 시간을 자면 두 시간 만큼 빚이 늘어났다. 내가 하루에 다섯 시간을 자는 것은, 몸이 버틸 수 있는 한계치와 늘어나는 빚 사이의 나름대로의 타협지점이었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더 잠을 줄이고 더 일을 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만약 그랬다가는 조만간 나도 과로로 인해서 병원에 실려 가게 될 것이다.

 

'운전기사', 내가 최종 직업란에 적은 것은 결국 내가 하는 일들 중에서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것으로 적었다. 나는 나머지 내용들을 대충 적고 난 후 서류를 한 번 더 꼼꼼히 살펴보고 앞 쪽에 있는 접수대에 가서 내밀었다. 접수대에는 내 나이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여직원이 마지못한 형식적인 웃음을 지으며 내 서류를 받아 들고는 그 내용을 꼼꼼히 살폈다.

 

"다 되셨고요, 앞으로 일주일 정도 후에 심사 통과 여부와 대출 한도액이 문자로 갈 것이에요." 여직원은 나와 눈이 마주치는 것을 꺼리는 듯 말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최대한 웃으며 그녀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 애썼다. 그리고 그 미소가 사라지기 전에 재빨리 몸을 돌렸다.

 

원래는 PC방에서 알바를 할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특별한 일이 있어서 은행에 왔다. 얼마 전 정부에서 지원하는 나 같은 신용불량자를 위한 특별한 서민 대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리 많은 돈도 아니고 또한 그리 싼 이자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가 감당하고 있는 빚들의 이자율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러니 최대한 많이 받아서 그 돈으로 일단 기존의 빚을 갚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것을 위해 오늘 댓글 알바까지 포기하고는 은행에 들른 것이다.

 

등을 돌리자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반쯤 벗겨진 머리와 검은 뿔테가 특징적인 사람이었다. 한 눈에 보이게도 나만큼이나 불행해 보이는, 두꺼운 뿔테 안에 보이는 불안해 보이는 눈빛과 이런 장소와는 뭔가 좀 어울리지 않는 양복에 넥타이까지 차려 입은 남자였다. 무슨 사연일까? 저렇게 양복을 걸치고 있는 것을 보니 아마 저 사람도 한 때는 멀쩡한 직업을 가졌을 것이다.

 

대충 예상컨대, 수십 년 잘 다녔던 회사에서 정년퇴직을 한 후 아직 학업을 마치지 못한 자식들을 위해서 퇴직금을 다 털어서 장사를 해보려고 했을 것이다. 돈이 좀 있다면 큰 고기 집을 열었을 것이고, 부족하다면 치킨 집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처음엔 반짝 잘 되다가 그 후로는 몇 년 간 쭉 내리막길만 걸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도 버티면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믿고 무리하게 빚까지 내서 버텼을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망해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가족에게는 이미 무능력한 가장과 불필요한 존재가 되었을 것이고, 유일하게 남은 것은 지난 날 한 때 괜찮은 직장에서 남들처럼 멀쩡하게 월급을 받으며 살았던 과거에 대한 기억에 따른 알량한 자존심 하나뿐일 것이다.

 

천천히 몸을 돌려 나오는 길에 뒤쪽에서 여직원이 '직업란'을 비워두면 안 된다고 지적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아마도 현재 딱히 직업이 없으니 아무 것도 적지 않은 듯 했다. 고지식한 사람. 딱히 그 사연을 듣지 않아도 왜 장사를 말아 먹었을 지가 눈에 훤히 보였다. 이 세상에서 제일 장사를 하면 안 되는 종류의 사람이 바로 고지식하고 자존심 쎈 사람이다. 내 처지가 비록 이래도 수많은 알바를 하면서 익힌 나름대로 의미 있는 결론이었다. 간과 쓸개까지도 다 내 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때 비로소 장사를 할 기본이 된다.

 

투명하고 두꺼운 문을 밀어서 열고 밖으로 나오자 아직 곳곳에 눈이 쌓여 있는 길엔 겨울 햇살이 창백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길 위를 무심히 그리고 바쁘게 종종걸음으로 오가고 있는 중이었다. 예년에 비해 유난히 춥고 눈도 자주 오는 겨울이었다. 언제쯤 봄이 오려나? 빼앗긴 들판엔 결국 봄이 왔지만 내 삶에서 봄은 영영 올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나도 사람들 무리 속에 스며들었다. 그 순간 나도 오가는 무리의 일부가 되었다.

 

* * *

 

하루 일진이 영 좋지 않았다. 새벽 신문배달 도중 추운 날씨에 인해 얼어 있던 바닥에 미끄러져서 손을 삐었다. 그리고 그 아픈 손 때문에 사우나 청소를 할 때 꽤나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따뜻한 물속에서 한참 있었더니 손이 아픈 것은 좀 덜했다. 그런데 PC방에 가 댓글을 알바를 하려고 할 때 갑자기 그 일이 터졌다. 나에게 일을 주던 업체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놀랄 일은 아니다. 몇 년에 한 번씩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불법적인 일이다 보니 언론에 관련된 기사가 뜨거나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면 그렇게 갑자기 사라지곤 했다. 문제는 그렇게 한번 잠적이 시작되면 짧게는 한 달 정도 길게는 육 개월 이상 일이 없는 채 지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나는 그사이 또 다른 일은 찾긴 하겠지만 댓글 알바처럼 앉아서 손가락만 까딱거리는 일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불운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학원 차를 운전하다가 가벼운 접촉 사고가 났다. 끼어드는 차와 껴주지 않을 차 사이에 일어난 사고였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사고가 난 당시 차에는 아이들이 한 명도 없었다. 당연히 보험처리가 되겠지만 그 일로 인해 학원 원장에게 꽤나 짜증 섞인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리고 내 시간을 들여서 차 수리를 맡겨야 했다. 연쇄적으로 저녁 고기 집 알바에 늦고 말았다. 당연히 거기에서도 잔소리를 들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정말로 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내가 사장이면 사고가 나도 누가 뭐라고 할 것이며, 내가 사장이면 늦는다고 누가 잔소리를 할 것인가? 아니다. 그랬다가는 예전에 대출받으러 갔을 때 본 그 대머리 아저씨 꼴이 날 가능성이 높았다.

 

내가 몰랐던 사실은 하루 종일 겪은 불운이 더 큰 불운이 일어날 전조였다는 점이다. 그날 식당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엔 아예 차원이 다른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내가 그리 피해 다녔던 빚쟁이들이 내 집을 알아낸 것이다. 사실 말이 빚쟁이지 그들은 어둠 속의 사채업자였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업자들이 부리는 깡패였다. 가끔 길거리에 현수막에 '떼인 돈 받아드립니다' 에 적인 전화번호를 가진 인간들이었다.

 

나는 내가 진 빚들 중에서 그나마 제도권 안에 있는 것들만 갚고 있다. 하지만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빚들은 그 이자율이 너무 살인적이어서 아예 갚지 않고 그저 도망 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다행스러운 점은 그들 역시도 불법적인 일을 하고 있기에 나를 경찰에 신고하는 등의 법적인 처벌은 할 수 없었다. 대신 그들은 주먹을 썼다.

 

쫓고 쫓기는 관계, 그 놈들이 결국 내가 사는 곳을 찾아 낸 것이다. 사실 그것 때문에 나는 육개월 단위로 사는 곳을 옮긴다. 그래 봐야 고시원에서 또 다른 고시원이지만, 아무튼 꾸준히 주소지를 옮김으로써 혹시 모를 놈들의 추적을 피해서 사는 것이다. 그리고 대도시라는 특수성에 기대어 익명성 속에서 숨어서 살면 아무리 대단한 놈들이라고 해도 나를 찾아낼 수는 없다. 내가 고정적인 직업을 갖지 않는 이유이며, 내가 익명성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날따라 어찌된 영문인지 고기 집 알바를 끝내고 자정 무렵 집 근처에 왔을 때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고시원 입구에 양쪽으로 커다란 덩치를 가진 몇몇 인간들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설령 그들이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해도 처음부터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만약 저 놈들이 나를 찾아 온 것이라면, 그래서 내가 저 놈들에게 끌려가기라도 하면 내 팔다리가 성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도 내가 먼저 그들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어둠 속에서 잠시 동안 그들을 살필 수 있었다. 사람에게서 풍겨 나오는 분위기, 행동, 버릇 등등, 오랜 시간 쫓겨 다니며 생겨난 내 몸 속의 경보장치가 점차 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저 놈들은 나를 찾아 온 것이 거의 확실했다. 그나저나 도대체 내가 살고 있는 곳을 어떻게 알았을까? 며칠 전 하나뿐인 여동생과 잠시 통화했던 일 때문일까? 아니면 대출 자금을 신청했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써 넣은 주소 때문일까?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되었지만, 사실 지금 중요한 것은 원인을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더해서 저놈들이 나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아냈는지도 알아야 한다.

 

만약에 집 주소뿐만 아니라 내가 지금 일을 하는 곳들까지 다 알아냈다면 문제는 매우 커지게 된다. 그런데 그것은 아닌 것 같다. 만약 거기까지 다 알아냈다면 지금 이 시간에 고시원 앞에서 서성거릴 이유가 없다. 당연히 내가 일하고 있던 고기 집으로 쳐들어 왔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내 가정이 맞는다면 나는 그저 잠잘 곳만 옮기면 된다. 육 개월마다 옮기는 고시원이라서 내 방에 딱히 중요한 물건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것조차도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찾아가면 된다. 그리고 오늘 당장은 그냥 근처 모텔에서 자면 된다.

 

머릿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정리되자 두려움으로 인해 격렬하게 뛰던 심장이 약간은 진정되었다.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려 그 장소를 떠났다. 아니,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몸을 돌려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나는 또 다시 보이지 않는 얼어붙은 바닥에 미끄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무의식적으로 낮에 삐었던 손으로 또 다시 바닥을 집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비명 소리가 나왔다. 어두운 고용한 밤이었고, 인적도 거의 없었다. 내가 넘어지는 소리와 나도 모르게 낸 비명이 그 즉시 놈들에게 전달되었다.

 

아픈 손목을 쥐고 끙끙거리고 있는 사이 뒤쪽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몇몇 발자국이 급히 움직이는 소리였다. 아마도 놈들이 소음의 원인을 확인하려는 듯 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 순간 나는 손목이 아픈 것도 까맣게 잊고 잽싸게 일어나 뛰기 시작했다. 나는 다른 건 몰라도 도망치는 것은 일가견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뛰기 시작하자 뒤쪽에서 들려오던 발자국 소리도 역시도 빨라졌다. 놈들이 본격적으로 쫓아오는 것이 분명했다. 잡히면 엄청 맞거나 심한 경우 장기도 털릴 수도 있었기 때문에 나는 정말로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뛰었다. 하지만 내가 도망치고 있는 모습이 돈이 도망치는 것으로 보이는 놈들 역시 나만큼이나 절실하게 쫓았다. 뜬금없이 새벽의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숨이 턱밑까지 찼다. 단거리는 제법 빠른 편이지만 장거리엔 약한 것이 내 단점이었다. 그래서 초반엔 놈들과의 거리를 어느 정도 벌려놓을 수 있었지만, 어둠 속에서 익숙하지 않은 골목길을 막다른 길로 잘못 들어서지 않고 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내가 이곳으로 이사 온 지가 겨우 두어 달 정도였기 때문에 나도 놈들만큼이나 이곳이 낯설었다. 나는 뛰면서, 뒤를 살피면서,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빠르게 결정해야 했다.

 

그나저나 그 순간에도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저 놈들이 어떻게 나를 이렇게 정확하게 추적하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아무리 군데군데 가로등이 켜있긴 해도 기본적으로 어두운 밤에 미로와 같은 골목길을 따라 도망치고 있는 나를 이렇게나 정확하게 추격하고 있는 놈들의 능력이 놀라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멈춰서 그것을 물어 볼 수는 없었다.

 

또 다시 두 길이 만나는 지점이 나왔다. 나는 가던 방향으로 그대로 가야 할지 아니면 방향을 바꿔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돌아야 할지 잠시 머뭇거렸다. 좀 멀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발자국 소리와 서로 주고받은 목소리까지도 여전히 들려왔다. 그 순간이었다. 귓속에 희미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 하는 소리였으며 아마도 작은 모터가 빠르게 돌 때 나오는 소리 같았다. 어쩌면 커다란 모기 소리 같기도 했다. 겨울임을 뻔히 알면서도 순간 소름이 좀 끼쳤다. 도대체 이 소리는 어디에서 날까? 나는 두리번거리면서 소리의 출처를 찾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하늘을 보니 거기에 작은 붉은 색을 점멸거리고 있는 한 물체가 보였다. 거리나 움직임으로 보아 당연히 별빛은 아닌 듯 했고 아무래도 하늘에 떠 있는 작은 기계인 듯 했다. 나는 곧 그것이 드론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 밤중에 왠 드론? 그 순간 나는 저 놈들이 어떻게 나를 이렇게 정확히 추격할 수 있는 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로 기술의 시대였다. 깡패 새끼들조차 드론을 쓴다. 뇌가 근육으로 되어 있을 것 같은 놈들이 이런 첨단 기술을 쓰다니... 정말로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갑자기 힘이 빠졌다. 저 드론이 있는 한, 내가 도망칠 곳은 없다. 이미 체력이 바닥인데 어딜 가든 저 드론이 다 감시할 것이다. 그러니 결국 잡히고 말 것이다. 공포심과 절망감이 밀려들면서 다리가 풀렸다. 나는 제 자리에 서 있기도 힘들만큼 다리가 떨려왔다. 드론은 자신을 발견하고 절망한 채 무너지는 나를 비웃듯이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승리의 댄스를 추고 있었다. 사냥감을 잡은 자의 춤이었다. 발자국 소리와 놈들의 목소리가 빠르게 높아졌다. 몇 년을 도망치면서 버텼는데, 이제는 그 끝인가 보다. 절망이 체념으로 변하는 과정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이미 오래 전에 내 목숨에 대한 미련을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리 열심히 알바를 하면서 빚을 갚은 것은, 그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살 이유가 없어서 그랬다. 내 삶은 한참 전에 두려움에 잡혀 먹히고 말았다. 나 때문에 한밤중에 죽어라고 뛰어야 했던 놈들의 욕설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그리고 나는 곧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맞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드론에서 나던 모터 소리가 조금 다른 형태로 바뀌었다. '~' 하는 소리라기보다는 '~' 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서서히 정신이 들자 나는 일단 눈을 뜨려고 애썼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다르게 눈이 떠지지 않았다. 순간 놀란 나는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그 역시도 아무런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몸이 생각의 명령을 거부하고 있었다. 순간 겁이 덜컥 났다. 평생 동안 내 생각에 잘 따라주던 몸이 왜 갑자기 이러는 것일까?

 

그 순간 갑자기 내 손가락에 아무런 느낌이 없음을 깨달았다. 마치 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손가락뿐만이 아니었다. 온 몸이 다 그랬다. 그래서 눈을 뜰 수 없었던 것이다. 내 몸에서 유일하게 작동하는 것은 바로 귀였다. 그래서 소리는 들리고 있는 중이었다. 놈들이 나에게 몸이 마비되는 약을 주사한 것일까? 그랬을 것이다. 아니, 그랬어야 했다. 만약 이 증상이 다른 이유로 인해서 그렇다면 아주 심각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환자분 정신 활동이 왕성하시네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였다. 비록 눈은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목소리를 듣고 나니 괜히 안도가 되었다. '환자'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내가 병원에 실려 온 모양이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병원에 와 있을 수 있을까? 내가 놈들에게 두들겨 맞는 장면을 본 누군가가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일까?

 

"그러네요, 선생님. 아마도 좋은 징조이겠죠?" 이번엔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앞 선 남자와는 달리 뭔가 익숙한 목소리였다. 누구지? 적어도 내 여동생 목소리는 아니었다. 아니, 내가 여동생이 있었던가? 갑자기 뭔가가 혼란스러웠다. 마비, 병원, 왠지 모르게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 그 순간 나는 갑자기 모든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나는 원래 병원에 있었지. 그렇다면 한밤에 깡패들에게 쫓기던 나는 누구지? 뒤통수를 맞고 기절한 후 지금껏 이렇게 지내온 것인가? 아니다. 그 후로는 어떤 기억도 이어지지 않았다. 그 대신 전혀 다른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단 한 순간이었다. 갑자기 머릿속의 어떤 기억들이 봇물 터지듯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빠르게 지나가는 불빛들. 나는 도심 속을 차를 타고 달리는 중이었다. 비록 해가 진후이지만 내 차는 밝은 가로등 불빛을 받아 선명한 붉은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누가 봐도 멋진 스포츠카였다. 그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릴 때면 주변 차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 차였다. 나는 내 오른팔로는 그 차의 핸들을 잡고 왼팔은 오픈 된 왼쪽 차문에 걸치고 있었다.

 

 

내 옆자리엔 여자가 앉아 있었다. 누구지? 잠시 그녀의 이름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아도 그녀가 매우 예뻤다는 사실만큼은 기억이 났다. 바람에 긴 생머리를 휘날리고 있던 그녀는 내 옆자리에 앉아서 내 쪽을 바라보면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내 여자 친구인가? 이름도 기억나질 않는 것을 보니 그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왜 내가 이런 스포츠 카를 타고 있으며, 왜 저렇게 예쁜 여자가 내 옆에 앉아 나를 향해 호감 가득한 웃음을 짓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그 상황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오른 발에 걸쳐 있는 엑셀을 살짝 밟았다. 그러자 차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빠르고 강렬하게 반응했다. 갑자기 속도가 높아지자 관성의 법칙으로 인해 내 몸이 살짝 뒤로 밀쳐졌다. 기분 좋은 속도감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갑자기 뭔가 불길한 느낌이 엄습했다.

 

잠시 기억이 끊긴 후 곧바로 나는 허공을 날고 있었다. 내가 슈퍼맨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었고, 그저 내 차와 함께 허공에 뜬 것이다. 오른쪽 측면에서 온 강한 충격이 내가 타고 있던 차를 허공으로 띄웠다. 그로 인해 나 역시도 같이 허공에 날게 된 것이다. 차는 허공에서 몇 차례 돈 후 바닥에 강하게 충돌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내 기억은 끊겼다. 교차로에서 커다란 충돌 사고가 난 것이다.

 

내가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그로부터 육 개월이 지난 후였다. 하지만 내가 정신을 차렸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나는 의식만 되돌아왔을 뿐 몸은 여전히 마비상태였기에 내가 정신이 들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수 없었다. 그리고 그날로부터 벌써 일 년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그 누구도 내가 의식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지난 일 년간 귀동냥으로 들은 얘기를 종합하면, 내가 사고를 당한 것은 졸음운전을 한 어떤 트럭 때문이었다. 비록 당시에 내가 과속을 하긴 했지만, 내 차는 분명히 직진신호를 받은 상태였고, 졸음 때문에 이미 빨간 불로 변한 신호등을 보지 못한 트럭이 교차로에서 멈춰 서지 않고 내 차를 측면으로 강하게 충돌한 것이다. 그 당시 내 옆에 타고 있던 여자는 내가 기억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내가 잘 모르는 여자로, 그날 우연히 소개받은 여자였다. 당시 우리는 홍대에 있는 클럽에 가기 위해서 이동 중이었고, 늘 그렇듯 그날 하루를 즐겁게 즐길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사고로 즉사를 했다고 했다. 그리고 사고를 낸 트럭 운전사도 몇 주 후 죽고 말았다. 결국 그날 사고로 두 명이 죽고 한 명은 식물인간이 된 것이다.

 

기억이 거기까지 떠오르자 나머지 기억들도 거의 다 되돌아 왔다. 그 덕분에 방금 전 들렸던 여자의 목소리가 만난 지 일 년 정도 된 내 여자 친구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아니, 여자 친구였다. 내가 말을 못하니 그녀는 아직 모르고 있지만, 나는 이미 그녀와 헤어졌다. 내가 이런 처지가 되었으니 그녀의 행복을 위해 떠나 보내주는 그런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는 아니었다. 사실 그녀 마음 역시도 예전에 나를 떠났다. 그럼에도 그녀가 주변을 떠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내가 가진 돈 때문이었다. 그것도 꽤나 많은 돈이었다.

 

"환자 분 똥 쌌네요. 잠시 나가주세요." 또 다른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난 육 개월 동안 내 간병을 맡아주고 있는 분이었다. 갑자기 방금 전 꾼 꿈에 떠올랐다. 평소 꾸던 꿈과는 달리 너무도 생생한 꿈이었다. 잠을 깼지만 골목길에서 쫓기던 순간의 내 숨소리가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듯 했다. 그로 인해 지금도 꿈과 현실이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지금 갇혀있는 몸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 때문일까? 그런데 하필이면 그런 구질구질한 삶을 꿈 꾼 것일까? 돈이 너무 많아서 사실 돈 자체에 관심이 거의 없는 내가, 그 많은 종류의 삶 중에서 빚 때문에 하루 종일 일만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빚을 받으러 온 깡패들에게 쫓기는 삶을 꿈으로 꾼 것일까? 꿈은 현실의 반대라서 그런 것일까?

 

여러 소음이 들려왔다. 아무 것도 느껴지지는 않지만, 아마도 간병인이 내가 싼 똥을 치우는 모양이었다. 사실 나는 아직 그녀의 이름도 모른다. 그 누구도 식물인간을 처음 만났을 때 자기소개를 하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내 병실을 찾는 사람들도 그녀를 딱히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녀에 대한 호칭은 그냥 간병인이다. 그나마 구분해서 부르면 내 이름을 붙여서 '재원씨 간병인'이 된다. 분명히 자신만의 이름을 가지고 있을 그녀이지만 이곳에서는 오직 기능적으로만 정의되어 있다. 나도 별로 다를 바는 없다. 나에 대한 호칭은 '장기 입원 환자' 이며 더해서 흔히 듣는 말은 '식물인간' 이다.

 

나는 내 간병인이 내가 싼 똥을 치우면서 딱히 어떤 감정 표현을 하지 않아서 마음에 든다. 그 전의 간병인은 남들이 있을 땐 억지로 웃었지만, 혼자 있을 때면 똥을 쌌다는 이유로 온갖 짜증을 내곤 했었다. 나는 내 돈으로 사람을 쓰면서도 괜히 미안함을 느껴야 했다. 아니, 그것보다 견디기 힘들만큼 커다란 자괴감 때문에 화가 많이 났다. 하지만 입도 뻥긋 못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 면에서 만약 내 몸이 회복되면 꼭 두 가지 일을 하고 싶었다. 하나는 이미 마음으로 결별한 여자 친구에게 진짜 이별을 통보하는 일이고, 또 하나는 이번 간병인에게 꼭 따로 금전적인 보상을 해주는 일이다.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 기분 좋게 받을 것이다.

 

* * *

 

내 여자 친구인 선영이는 참 예쁜 여자였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내 기억 속 그녀는 그랬다. 그리고 당연히 그럴 만 했다. 나는 지금 32살이지만 내가 가진 재산은 또래의 사람들에 비하면 비교불가이다. 나는 서울에 내 명의로 된 건물만 10채 정도가 넘었고, 차명으로 가진 것까지 다 합치면 나조차도 그 내역을 다 알지 못할 정도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전국 각지에 수많은 땅도 소유하고 있었다. 나는 그야말로 대한민국 부동산 재벌 중 하나였다. 물론 그것들은 모두 전혀 내가 이룬 성과는 아니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고, 그분들이야 말로 오롯이 스스로 이루어 낸 성과였다.

 

특히 부동산에 관해서 어머니의 능력이 탁월했는데, 어머니는 젊은 시절부터 부동산에 대해서 공부하고 결혼 후 아버지가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유산을 기반으로 상가나 작은 주택들을 사서 되파는 방식으로 아주 빠르게 재산을 불렸다. 그리고 내가 태어나고 자라서 군대에 갈 무렵쯤에는 이미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계셨다. 하지만 두 분의 욕망은 끝이 없었다. 두 분은 이미 소유한 건물과 상가 등에서 나오는 임대료만으로도 대기업 회장 못지않게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더 많은 부동산을 사기 위해서 전국을 돌아다녔다. 서울의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오르자 주로 지방의 땅과 건물들을 보러 다녔고, 마음에 드는 매물이 있으면 거의 즉석에서 계약을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름도 모를 먼 시골 마을에 있다는 좋은 땅을 사기 위해서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던 도중 두 분이 한날한시에 한꺼번에 돌아가셨다. 차 사고였다. 짙은 안개로 인해서 12중 충돌을 일어났고, 부모님이 탄 차가 거기에 속해 있었다. 그 일은 내가 25살 때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졸지에 나는 고아가 되었다. 또한 청년 부호가 되었다.

 

평소에 세금을 회피할 목적으로 이미 내 명의로 된 건물도 있었고, 많은 것들이 부모님이 세운 재단의 명의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유산을 받을 때 많은 세금을 낼 필요도 없었다. 그저 몇 억 정도로 끝났다. 그리고 나머지 모든 재산은 다 내 몫이 되었다. 물론 그 당시 부모님 돈을 노리고 몰려드는 수많은 친인척들이 있긴 했다. 그들은 하이에나처럼 부모님의 재산을 노렸고 나는 부모님의 유산이자 내 재산이 될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몇 년간 많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해야 했다. 그리고 결국엔 모든 전투에서 승리했다.

 

돈이 많이 없어 본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은 돈이 많으면 정말로 많은 것들이 좋다. 또한 돈이 충분히 많다면 우리나라 법에 얼마나 구멍이 많은지도 알게 된다. 나 역시도 치열한 재산 싸움을 하면서 그것에 대해서 아주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구멍들은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에 있어서 아주 많은 도움이 된다. 적재적소에 적당히 돈을 쓰면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하기 힘든 수많은 특권들이 주어지며, 그 특권들을 누릴 때마다 나는 상대적으로 큰 만족감을 누릴 수 있었다.

 

돈으로 얻어진 특권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작게는 공항에서 비행기를 탈 때나 보고 싶은 공연 등을 예약할 때 나타나고, 크게는 불미스러운 일로 엮여 경찰서에 갔을 때나, 재수 없이 재판을 받아야 할 때도 나타난다. 수많은 장소와, 수많은 상황에서 미세하게 혹은 대 놓고 드러난다. 요즘 같은 분위기라면 운 나쁘게 언론에 오르내리지만 않으면 사실상 법 위에서 살 수도 있을 정도이다.

 

나는 서울 한복판에 200평 단독 주택에 살고 있으며 한 대에 수억이 넘는 차를 여러 대 몰지만, 세금은 거의 내질 않는다. 더군다나 그것이 불법도 아니다. 나는 원칙적으로만 보면 어떤 불법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저 법의 틈새를 잘 이용할 뿐이었다. 나는 내가 가진 돈의 힘을 통해서 특별한 위치에서, 특별한 대접을 받고 사는, 그런 특별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랬던 내가 한 순간에 그 모든 특별함을 내려놓아야 할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나도 내 부모님처럼 사고를 당한 것이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나는 다른 면으로 특별해졌다. 말로만 듣던 식물인간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사고를 당하기 전 마지막으로 내 여자 친구였던, 한때 연예인을 꿈꾸었던 선영이는 한 때는 내 옆에서 평생 놀고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언제 깨어날지 모를 나로 인해서 고민이 많다.

 

아직 완전히 내 돈을 포기하지 못한 그녀는 꾸준히 나를 찾아오긴 한다. 그리고 가끔 혼자 있으면 고백을 하듯 자신이 요즘 겪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중얼거리곤 했다. 그런데 그 이야기 대부분은 새롭게 만난 남자들, 아니 호구를 만난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어느 중견 기업의 아들, 고위 공무원, 나처럼 부동산 부잣집 아들, 의사, 심지어 이름을 알만한 연예인들도 있었다. 그녀는 도대체 어떤 경로로 그리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지조차 궁금한, 그런 사람들과 꾸준히 만났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신이 상대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나에게 와서 그것을 하소연했다. 내가 아무 것도 듣지 못한다고 알고 있었으니까.

 

어떤 면에서 아픈 나를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난 사실에 대해 양심세탁을 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 만나 봐도 결국 오빠 밖에 없다는 말을 자주 했으니까. 처음에 몇 달간은 그녀의 그런 넋두리들을 듣고 기분이 몹시 나빴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여러 번 듣다 보니 이젠 별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내가 정상인 몸이 되면 그녀와 헤어질 결심만 했을 뿐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도 꼭 몸이 회복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 년 의식이 회복된 후 잠시 동안 나는 감당하기 힘든 분노 속에서 있어야 했다. 돈 걱정 하나 없이, 하고 싶은 일이라면 아무런 거침이 없이 하고 살았던, 아주 특별했던 내가 이렇게 식물인간의 처지가 되어 누군가에게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을 맡기는 삶을 산다는 것은 정말로 미치도록 화가 나는 일었으니까. 하지만 손가락 까딱 할 수 없는 처지에 내 안에서 솟구치는 분노는 그 어디에도 분출할 곳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외부로 표현되지 못하는 감정은 어딘가 충돌하지 못하기 때문에 빠르게 소멸해갔다. 내가 화를 내면, 상대도 화를 내야 비로소 커질 수 있는데, 내가 아무리 화를 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니 결국 허공에 한 손으로 손뼉을 치는 격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제대로 충돌하지 못한 분노는 급격히 사라졌고 그 빈틈은 공허함으로 남고 말았다. 나는 화를 내면 낼수록 점점 더 공허함만 느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결국 화내는 것 자체를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으로 나에게 찾아온 감정은 좌절감과 절망감이었다. 꼼짝도 할 수 없는 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 언제 정상적인 몸으로 되돌아갈 지 어떤 기약도 없다는 사실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화라도 낼 수 있다면 견딜 수 있었을 텐데, 나는 화도 낼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그 감정도 몇 달 지나자 서서히 사라져갔다. 어느 정도 포기를 한 것이다. 그런데 분노와 좌절과 절망감이 사라진 자리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감정 하나가 자리를 잡고 말았다. 그것은 앞 선 감정들에 비해서 그 강도는 훨씬 약하지만 오히려 나를 더욱 더 미치게 만드는 감정이었다. 바로 견디기 힘든 지루함이었다.

 

하루에 자는 시간은 대략 10시간 정도, 그리고 나머지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은 그야말로 멀뚱멀뚱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나는 돈이 넘쳐나는 사람인 까닭에 지금 1인실에 있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혼자 있는 것이 당연히 좋은 조건이지만, 지금 상태의 나에겐 그리 좋지가 않았다. 오직 소리만 감각할 수 있는 나에게 외부 자극은 너무나도 부족했다.

 

병실 내에 TV가 있긴 했지만 내가 의식이 없다고 여긴 사람들은 TV를 켜 놓지 않았다. 그로 인해서 나는 내 전 여자 친구인 선영이의 방문이 몹시 기다려졌다. 그녀만이 내 병실을 찾는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TV를 켰다. 혹은 나에게 혼잣말로 주절주절 떠들기도 했다. 주로 새롭게 만난 남자 얘기뿐이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들어 줄 수 있다. 나는 지금 누가 내 옆에서 하루 종일 교과서를 읽어 준다고 해도 감사할 지경에 놓여 있었다.

 

나는 몸이 이런 꼴이 되고서야 영화 속 범죄자들이 독방에 갇히는 것을 그토록 두려워하던 까닭을 알게 되었다. 두어 달의 기간만으로도 독방에 있던 사람이 폐인처럼 변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이미 일 년 이상의 시간을 독방에 있었으며, 이 독방에 언제까지 갇혀 있어야 하는지조차 정해져 있지 않았다. 나는 나의 남아도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가거나, 술을 마시거나,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거나, 쇼핑을 하거나, 심지어 단 한 줄의 글조차 읽을 수 없었다.

 

눈은 뜬 후 하루가 너무도 길었다. 죽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나에겐 죽음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꼼짝도 할 수 없는 나는 칼로 손목을 그을 수도 없었고, 번개탄을 사다가 피울 수도 없었다. 나는 목을 맬 수도 없었고, 수면제를 사다가 먹을 수도 없었다. 심지어 나는 굶어 죽을 수도 없었는데, 먹지 않아도 링거를 타고 혈관으로 에너지가 주입되고 있어서 그렇다. 아무리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도 수십 년간을 살고 싶어 했던 몸은 매일같이 숨을 쉬고, 소화를 시키고, 똥을 쌌다.

 

[다음 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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