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책

벽오금학도

아이루다 2020. 9. 7. 08:26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내 나이 30이 되기 전에 한번 읽었었던 책이다. 그래서 그런지 꽤나 오래 전에 쓰였을 것이란 어렴풋한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에 이 책을 다시 한번 더 읽고 보니 아주 오래 전에 나온 책은 아니었다. 초판이 92년도였으니까 말이다. 내 기억으로는 70년대쯤 나온 책 같았다.

 

아마도 책 내용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주인공이 태어난 시기도 그랬고 그의 대학시절엔 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선 시기였던 70년대였다. 그리고 그가 평생 찾아 헤매던 사람을 만나 이 세상을 떠난 시기는 바로 90년대 초반인 것으로 보인다.

 

90년대 초라고 해도 30년은 된 책이다. 내가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뜻도 되고, 작가인 이외수씨도 그만큼 나이를 먹었을 것이란 뜻도 된다. 요즘도 간혹 소식이 들리는 것을 보니 - 나쁜 소식도 있긴 하지만 - 아무튼 아직은 정정하신가 보다.

 

이외수씨는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분 중 한 명이다. 그리고 그가 쓴 이 벽오금학도는 내가 좋아하는 소설로 따지면 다섯 손가락 안에 손 꼽히는 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 다시 읽었는데도 여전히 기억나는 문구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처음 읽었던 때와는 뭔가 다르긴 했다.

 

30년 전에 나온 이 책은 기본적으로 노장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쉽게 표현하면 천지간의 이치를 꿰뚫은 도사들이 나오는 책이다. 거기에 더해서 불교와 유파인 선종이 더해져 있다.

 

대충 줄거리를 살펴보면, 어린 시절 우연히 오학동이라고 불리는 선계를 다녀온 주인공 강은백은 그곳에서 얻어온 그림을 가지고 평생 다시 오학동에 돌아갈 생각만으로 살아간다. 오학동을 다녀온 이래 머리가 하얘진 탓에 백발의 동안이라는 고유한 외모를 갖게 되며, 그 특이한 외모만큼이나 특이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렇지만 사실 따져보면 특이하지도 않다. 딱히 돈을 벌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 직장을 갖거나 결혼을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남다른 성과를 내거나 특이한 일을 하면서 사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시간이 날 때마다 벽오금학도라고 불리는 그림 한 점을 등에 맨 채 전국에 있는 유명한 도사들을 찾아 다니는 것이 그의 유일한 삶이었다.

 

그가 들고 다니던 벽오금학도는 오학동에서 얻어 나온 그림인데, 그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며, 그 통로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림을 자유자재로 드나드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가 그렇게 전국을 떠돌면서 유명하다는 도사나 뭔가 남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찾아 다닌 것이다.

 

하지만 불혹의 나이가 되기까지 그 어디에서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소설 속에서는 몇 명의 인연이 더 나온다. 붓으로 그림을 그려 최고 수준에 다다른 고산묵월 그리고 그의 어린 제자와 술친구이자 스님인 침한이 있다. 그리고 그 외 몇몇 부수적 인물들, 속세의 사람이 아닌 듯한 주인공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할아버지와는 너무나 다른, 속물의 대명사 격인 아버지와 그의 새엄마 얘기도 잠깐 언급된다.

 

이야기 중간엔 한번 본 그림을 다시 보기 위해 속세로 나온 고산묵월과 우연히 만나 난초 그림을 받게 되는 교통경찰도 있고, 결국 주인공이 만나게 되는 최종 인물, 노파와 인연이 되는 사주팔자를 봐주는 고영감도 나온다. 그리고 문학도를 꿈꾸지만 현실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잡지사에서 일하게 되는 인물도 나온다. 그는 노파의 예언으로 통해서 다가온 죽음을 무사히 넘기며 도인에 대한 기사를 씀으로도 최종적으로 그림에 관련된 모든 이들이 정월 대보름에 한 장소에서 모일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태함산 정상에 모인 다섯 사람, 노파, 주인공, 고산묵월, 그의 제자, 침한이 그림을 펼치고 모든 것을 마무리 한다. 그후 노파와 주인공이 먼저 그림을 통해 오학동으로 가고 그 후 뭔가를 깨달은 고산묵월은 스스로 그림을 그려 그곳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남은 두 사람인 침한과 어린 제자는 태함산을 암자로 불성을 깨울 것을 말하며 소설이 끝이 난다.

 

 

이 책에서는 90년대 들어서 무너져 가는 한국의 전통적 가치관에 대한 회환,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가고 있는 사회에 대한 꽤나 직설적인 비판, 수 많은 것들이 혼재되어 원래 모습이 무엇이었는지 조차 구분해내기가 힘들어진 것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꽤나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 중에서 글의 초반부에 나오는 표현 하나, '서울이 폐렴을 앓고 있었다. 가을이 각혈을 하고 있었다' 는 참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문구라고 느껴졌다. 문학적 표현으로도 그리고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로도 기억에 오래 남을 듯 하다.

 

주인공 강은백은 스스로를 금 밖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액자화 되지 않는 존재라고 여긴다. 직설적인 세상과 어울리지 않으며 은유적인 삶을 살고자 한다. 그는 오학동에서 경험한 '편재'를 느낄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 한다. 두루두루 펼쳐져 있는 뜻이기도 하지만, 모든 것이 하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내가 풀이 되고, 풀이 내가 되며, 내가 하늘이 되고, 하늘이 내가 되는 세상이다. 나와 네가 다르지 않는 세상이다. 이 우주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합일이 되는 세상이다.

 

이것은 도가 사상에서도, 불교 사상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가짜가 사라진 후 나타나는 진짜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 이것을 과학적으로 풀어도 말이 된다. 이 우주는 모두 원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물체를 이루는 물질은 동일하다. 그러니 사실 모든 것은 하나일 수 밖에 없다. 나는 별의 후손이며, 내가 생겨난 것도, 내가 죽은 후 내 몸을 이루던 물질들은 그저 원래 자리로 돌아간 것에 불과하다. 나는 잠시 동안 어떤 원자들이 유의미하게 결합된 물체이며, 언젠가는 다시 다른 물체가 될 재료들의 집합이다.

 

그러니 내가 우주와 하나가 아닐 까닭이 없다.

 

하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아니 작가가 글을 썼던 수십 전에도 그 전에 수 백년 전에도 사람들은 최대한 자신을 다른 것들과 분리하기 위해서 노력해왔다.

 

최대한 남들과 분리되어 그 경계가 뚜렷해질 때 비로소 사람들은 안심했다. 자신이 성공했다고 믿을 수 있었다. 그리고는 죽지 않는 법을 연구했다.

 

하지만 결국 누구나 죽어서 다시 자연으로 되돌아가고 만다. 평생을 죽음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결국엔 죽음을 맞이하는 삶을 산다. 그 뻔한 결과가 두려운 사람들은 자신이 죽은 후에도 자신을 기억해줄 것들을 만들기 위해서 평생을 노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행운도 사실 몇몇만이 누렸을 뿐이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나마 족보에나 그 이름을 기록했을 뿐, 그 누구도 기억하지도 않고 어딘가에 기록되지도 않은 채 삶을 마무리 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 조차도 어느 날 인류가 멸종하는 날이 온다면 이 우주에 아무도 기억하는 존재가 없게 된다. 그야말로 누군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심지어 인류가 멸종하지 않더라도 일어날 일이다. 지금부터 수천 만년이 지난 후 누가 문명 초창기에 유명했던 나름대로 존재들에 대해서 기억할 수 있을까?

 

지구조차도 잊혀질지도 모른다.

 

다시 읽어 보니 도가 사상이 너무 깊게 드러나서 약간 거북한 면이 있었다. 특히 천부경에 대한 해석을 넣어 놓은 것은 좀 무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30년 전엔 괜찮았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보니 낯설고 거부감이 들었다.

 

그럼에도 다시 읽어 볼만한 책이었다. 그리고 내가 살고자 하는 삶과 이 책 속의 오학동이 그리 다른 모습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내의 표현으로는 나는 나만의 오학동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들어보니 그런 것 같다.

 

선계는 아닐 것이지만 인간계에서는 제법 괜찮은 곳을 만들고 싶다. 내가 만든 그곳이 누군가에게는 오학동이었으면 좋겠다.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남은 집착들, 그러니까 오학동에 되돌아가고 싶다는 것과 자신이 지닌 그림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서 칼로 그림을 찢어 오학동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듯이 나 역시도 내가 가진 집착들을 털어 냄으로써 나만의 오학동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멀었다. 여전히 그 끝이 어디쯤일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 길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언젠가 내가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잊혀지는 날, 나는 정말로 나만의 오학동으로 들어간 것이 될 것이다.

 

아무도 있는지 모르면 비로소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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