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집착을 넘어서

아이루다 2020. 4. 18. 08:24

 

이 세상은 크게 두 가지 일이 있다. 하나는 하고 싶은 일이고 다른 하나는 해야 할 일이다.

 

하고 싶은 일은 하는 동안 신나고 재미가 있다. 그래서 즐거움의 행복이 된다. 해야 할 일은 하는 동안은 힘들고 심한 경우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그래도 하고 나면 속이 시원하다. 그래서 만족감의 행복이 된다.

 

둘 모두 행복하다는 결과를 얻지만 사람들은 가능하면 즐거움의 행복을 원한다. 당연하다. 누가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할 일을 더 좋아하겠는가? 만약 좋아한다면 해야 할 일은 그 즉시 하고 싶은 일이 된다. 실제로 청소나 빨래와 같은 귀찮은 집안 일이나 회사를 가서 일을 하는 것도 하고 싶다면 즉시 즐거움의 행복이 된다. 청소가 즐겁고 회사 가는 길이 즐겁다.

 

그렇다면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은 왜 그런 근본적인 차이가 나는 것일까?

 

똑같은 일이라고 해도 어떤 사람은 하고 싶고 어떤 사람은 해야 할 일로 인식한다.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도 생겨난다. 어떤 사람에게 운동은 하고 싶은 일이고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도 하기 싫지만 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어떤 사람에게 음식을 먹는 것은 너무도 즐거운 일인데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귀찮기 그지 없지만 살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다.

 

어떤 일이 하고 싶은 일이 될지 해야 할 일이 될지를 결정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지루함' '두려움' 이란 두 가지 감정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게 된다.

 

지루함을 없애기 위해서 하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이 된다. 그리고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 하는 것은 해야 할 일이 된다.

 

지루함은 당장 어떤 문제가 있는 상태는 아니다. 그래서 그냥 있어도 되지만 계속 그 상태에 있으면 기분이 안 좋아지고 결국 불행해지고 만다. 무엇을 하든 상관없이 남는 시간을 보내서 지루함만 느끼지 않을 수 있으면 된다. 그러니 당연히 즐겁고 신나는 일을 찾아서 하려고 한다. ,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 원래 시간은 상대적이라서 즐거울 때는 언제 가는지 모르게 갔고 반대로 고통 속에 있다면 1분도 지나기가 쉽지가 않다.

 

두려움은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생기는 상태이다. 그래서 지루함을 해결하는 것처럼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서 할 수는 없고 반드시 그 두려움이 생겨난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 암에 걸렸는데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신나게 논다고 해서 암이 낫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오직 사는 것을 포기하고 남은 인생 즐기면서 살아가겠다는 마음으로만 가능하다.

 

이런 식으로 지루함에 기반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삶과 두려움에 기반한 해야 할 일을 하고 사는 삶은 이후 수 많은 개념적 분기점들을 만들어 낸다.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고 사는 것을 집중과 열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조금만 잘못 되도 이것은 금세 집착이 될 수 있다. 좋아하는 이성의 마음을 얻으려고 끝없이 노력을 하는 것이 열정일 수도 있지만 삐끗하면 금세 집착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처음엔 분명히 하고 싶은 일이어서 열정을 품고 했지만 시간이 흘러 결국 흥미가 줄어들면서 별로 하고 싶지도 않은데 계속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에 그것을 하고 있다면 집착이 되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이 해야 할 일로 변했음에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면 그렇게 된다. 결국 열정과 집착은 지루함과 두려움의 차이이며 당연히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의 차이가 된다.

 

그런데 왜 처음엔 열정이었는데 나중에 집착을 바뀌는 것일까? 또한 왜 본인은 그런 변화를 잘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일까?

 

열정의 시작점이 바로 지루함이어서 그렇다. 지루함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그 대상이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첫 경험'을 하는 것이다. 새로운 장소에 가는 일,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는 일 등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그럴 때 지루함은 가장 쉽게 해결이 된다.

 

하지만 새롭다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익숙한 것이 되고 만다. 아무리 대단한 새로움도 몇 년 지나면 시들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열정적으로 시작한 일도 시간이 지나면 지루함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별 다른 효과를 내지 못한다. 그리고는 결국엔 그 자체가 지루해지고 만다. 그래서 그렇게 불타던 연인 사이에도 권태기가 생겨난다.

 

하지만 이런 변화를 잘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난다. 남녀관계는 쉽게 구분이 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원인은 바로 자신이 지루함을 해결하기 위해서 열정적으로 했던 그 대상에 어떤 식으로든 가치를 부여했기에 그렇다. 무엇이든 가치화 되는 순간 멈출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물론 가치화 된 행복들은 더욱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자전거를 타는 운동을 할 때 자전거를 타는 행동이 가진 장점에 대한 가치를 가지게 되면 자전거 전도사가 되면서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을 경험할 수 있다. 주변에 자전거를 권하고, 더 좋은 자전거를 사려고 노력하고, 더 멀리 더 새로운 장소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경험을 통해서 자신이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일년 동안 자신이 달린 자전거 길을 모두 모아서 보면서 자신의 삶이 제대로 가고 있다는 확신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삶에 대한 자신감이 되며 자부심이 된다.

 

하지만 그렇게 즐겁던 자전거도 몇 년 타면 시들해진다. 자전거를 타고 안가 본 데가 없이 다 가봤기에 더 이상 SNS에 올릴 것도 없고자전거에 관해 너무 많은 얘기를 해와서 주변 사람들이 ''자만 나와도 등을 돌리려고 한다그래서 본인도 점점 더 관심이 줄어들고 열정도 식는다. 결국 자전거 타는 것 자체가 지루해진 일상이 되어 버리고 만다.

 

하지만 이미 자전거를 타는 일에 대해서 자신의 삶에 대한 확신까지 부여했기 때문에 자전거 타는 것을 멈추기가 쉽지가 않다그것을 멈추는 순간 자신이 부여한 모든 가치도 같이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에 그렇다. 타고는 싶지 않지만 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 결국 하고 싶은 일이 해야 할 일이 된 것이다그 순간부터 열정은 집착으로 바뀐다.

 

처음부터 가치를 부여해 놓지 않았다면 버리기가 쉽다. 그저 즐겼다면 또 다른 즐거운 것을 찾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가치를 부여해 놓게 되면 동일하거나 그 이상의 가치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면 바꿔 타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서 가치가 사라지는 두려움 때문에 자전거를 계속 타게 된다.

 

자전거만 그런 것이 아니다. 등산, 공부, 독서, 글쓰기인간관계, 봉사활동 등등 사람들이 하는 거의 모든 일들이 그렇다. 심지어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일도 가치가 부여되는 순간 멈출 수 없다. 그러니 10 20, 평생 동안 하다가 자식에게까지 자신의 직업을 물려주려고 한다. 돈 벌이가 좋아서 그렇게 했다면 그나마 낫지만 가치를 소멸시킬 수 없어서 그러고 있다면 집착이다. 사실 돈벌이가 좋으면 자식이 먼저 하겠다고 한다.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인다. 그래서 적극적이고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게 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니 오히려 말려도 한다. 반대로 해야 할 일을 할 때는 수동적으로 움직인다. 최소한의 일만 하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 일을 할 때 그렇게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회사 일은 해야 할 일이라서 그렇다. 그때 사람들은 소극적이고 누가 시켜야만 움직인다.

 

1등을 하려고 노력하는 삶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이다. 그래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노력해서 성취하려고 한다. 반대로 꼴등을 안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삶은 해야 할 일을 하는 삶이다. 그러니 누가 시켜야 억지로 한다. 누군가 그렇게 살면 망한다고 해야만 겨우 하려고 한다.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하다가 어쩔 수 없을 때만 한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은 없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삶과 해야 할 일을 하고 사는 삶 중에서는 당연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삶이 낫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며, 자신의 의지대로 열정을 가지고 사는 삶이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며, 타의적으로 집착하면서 사는 삶 보다 나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삶을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

 

단순하게 보면 그것이 정답처럼 보인다. 그리고 둘 중 하나라면 좀 더 정답에 가깝긴 하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삶에는 본질적으로 하나의 큰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하고 싶은 일이라고 해서 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그렇다.

 

해야 할 일을 했지만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면 책임만 지면 된다. 했지만 안됐는데 어찌하겠는가?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시도했는데 실패하게 되면 그것에 대한 책임뿐만이 아니라 좌절이라는 아주 힘든 감정 상태에 놓이게 된다. 좌절은 상상 속의 잘난 자신이 현실의 못난 자신으로 내려올 때 경험하는 감정이다. 그래서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감정이다.

 

실제적인 문제도 있다. 100명 중 꼴등을 안 하는 것은 99명이 가능한 일이지만 1등을 하는 것은 단 한 명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운 나쁘게 잘난 사람이 하나라도 같은 경쟁의 무리에 섞여 있게 되면 1등은 단 한번도 못하고 끝날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뛰어난 피아노 연주 실력을 타고 났어도 동 시대에 자신을 훌쩍 넘어 서는 천재 피아니스트가 태어났다면 평생을 2인자의 자리에 머물러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2인자라는 동정을 받아야 한다. 세계 2등의 실력인데도 불구하고 좌절을 겪어야 한다. 차라리 중간을 했다면 세계 1등과 비교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기에 동네에서 작은 음악 학원을 하면서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도 있었다. 꼴등만 되지 않았으면 된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삶이 가진 문제는 성공하기도 쉽지 않고 경쟁도 너무 치열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좌절을 경험한다. 아무리 노력해서 계속 높이 올라가도 경쟁자가 끝없이 나타난다예전엔 동네에서만 1등을 해도 최고의 찬사를 받으며 살았지만 지금은 그야말로 글로벌 시대이다. 내 경쟁자는 미국, 영국, 일본, 브라질, 러시아, 독일, 남아공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1등을 하기는 거의 힘들다.

 

하고 싶은 일을 열정적으로 하고 사는 삶은 행복해야 하지만 너무 과도한 노력을 하는 도중에 불행하고 그럼에도 결국 이루지 못하기에 좌절감을 느끼며 불행해지고 만다.

 

하지만 다행인 점은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느 순간 1등을 하겠다는 마음을 접는다. 사실 세계 1등은 고사하고 반 1등도 쉽지 않는 세상이다. 그러니 누군가가 마음을 접는 것은 그리 특이한 일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의 변화를 내려놓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엄밀히 말해서 어쩔 수 없으니 체념을 하는 것이다. 받아들임이 아닌 포기인 것이다.


그래도 포기를 하면 마음은 편하다.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좌절에 대한 쓰디쓴 감정이 사라지지 않고 있지만 자신이 새롭게 찾은 일에 가치를 부여하면서 그것을 잊으려고 한다. 특히 명확한 승부가 나지 않는 분야에서 새로운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되면 어느 정도 회복도 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취미에 빠진다. 문화에 빠진다. 다들 또 뭔가에 빠진다. 그것들은 비교가 쉽지 않기에 스스로 1등이라고 믿어도 된다.

 

그러다가 좀 더 나간 사람들은 취미로 시작한 일로 그 분야에서 열리는 아마추어 대회에 나가서 우승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은 직업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취미로 한 것이니까 그 정도면 정말로 잘한 것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다 그렇게 이야기를 해준다. 그렇게 가치가 부여되고, 그 가치는 점점 더 커져간다. 그러면 결국 그것에 대한 집착이 만들어지고 만다. 자신의 것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고 다른 것들에 대한 비난이 커진다.

 

집착은 대상만 달라질 뿐 계속 반복이 된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삶의 결론이 대부분 그렇게 나고 만다. 소수의 제대로 성공한 사람들만이 상대적으로 덜 집착할 뿐 세상 사람들 모두가 각자마다 집착이 있다. 열정이라고도 하지만 결국엔 집착이 되고 만다. 뚝심 있고 한결같으며 꾸준하다고 하지만 결국엔 집착이다.

 

인간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하는 것이 본질이다. , 여름, 가을, 겨울이 서로 다르듯 우리 역시도 계속 변해간다. 환경이 변할 때 그것에 맞춰서 같이 변하는 것을 '적응'이라고 한다. 적응은 모든 생명체의 본질적 능력이다. 그래서 우리도 겨울이 되면 옷을 두껍게 입는다. 옷에 대한 뚝심, 한결같음, 꾸준함으로 늘 반팔만 입고 다니면 결국 겨울에 얼어 죽고 만다.

 

비가 오면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해가 나면 밖으로, 바람이 불면 바람을 등지고, 공기가 탁하면 입을 막고 살아가야 한다. 일관성이나 뚝심은 언제든 내려놓을 수 있을 때만 유효하다. 그것을 내려놓을 수 없어서 지키고 있다면 결국 집착이다. 신념이나 믿음조차도 언제든 내려놓지 못한다면 그저 똥고집이거나 세뇌이다.

 

싸울 수도, 싸우지 않을 수도 있을 때 싸우지 않는 것은 선택이다. 싸울 수 없어서 도망치는 것은 선택이 아니다. 먹을 수 있지만 먹지 않는 것이 선택이다. 먹을 수 없어서 먹지 않는 것은 선택이 될 수 없다.

 

무엇이든 언제든 버릴 수 있을 때 지키는 것이 선택이다.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자신을 오해하게 된다. 자신을 끈기 있는 사람, 한결같은 사람, 꾸준한 사람, 신념 있는 사람, 일관된 사람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언제든 버릴 수 있을 때 진짜로 가진 것이다.

 

버리는 것이 두려워서 하고 있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기에 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이런 문제는 처음 좌절의 순간에 '내려놓음' 이 아닌 '포기'를 했기에 생겨난다. 내려놓은 것은 능동적 행위이다. 내가 내려놓는 것이다. 하지만 포기는 수동적 행위이다. 궁지에 몰려서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다.

 

이 둘의 차이가 이후 모든 것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별 것 아닌 것 같은 두 입장은 삶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꿔버리고 만다.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은 선택이 가능한 사람이다. 그래서 이후에 1등을 하려고 노력할 수도 있고, 꼴등을 하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1등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을 수도 있고 꼴등이 되어도 상관이 없다. 무엇이든 가능하다.

 

그렇다면 선택 가능한 사람이 어떤 삶을 살겠는가? 당연히 1등을 하려고 노력하는 삶이다. 그것이 가장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며 행복한 삶이다. 그러니 그런 삶을 선택하지 안 할 이유가 없다. 단지 차이는 1등이 되지 못해 아무런 상관이 없다. 처음부터 그것을 꼭 할 이유가 없었다. 그저 과정 속에서 흘러나오는 강렬한 삶의 에너지를 즐길 뿐이다.

 

포기한 사람은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후 1등을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자체를 안 한다. 그리고 다른 대안을 찾아서 그것을 상쇄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대상만 달라진 것뿐이다.

 

옛사람은 내려놓은 삶을 순리에 따른다고 표현했다. 그래서 삶을 순리대로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순리를 따르는 삶을 패배자의 삶이라고 평가한다. 최선을 다해 1등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쉽게 포기해버리는 것처럼 보였기에 그렇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내려놓는 것을 포기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노자가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는 가장 흔한 이유이다. 노자의 사상은 극기와 노력 그리고 투쟁을 통해서 자신을 증명한다고 믿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흔한 패배자의 넋두리라고 비난 받는다.

 

극기와 노력 그리고 투쟁을 하지 못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사실은 전혀 선택하지 못하고 결국 그것에 집착하면서 자신과는 다르게 완벽히 자유로워져서 무엇이든 선택 가능한 삶을 비난하는 것이다.

 

물고기가 하늘을 나는 새에게 물 속에서 살지 못하니 너는 참 불쌍하다고 여기는 것과 같다. 새가 물고기에게 너는 하늘을 날지 못하니 참 불쌍하다고 여기는 것과 같다. 진정한 승리자는 하늘을 날 수도 있고, 물 속에서 숨을 쉴 수도 있지만 그저 걷고 있는 자이다.

 

그 사람은 바람이 불면 등을 지고, 해가 따듯하면 옷을 벗고, 비가 오면 우산을 꺼내 드는 존재이다. 매 순간 변화하는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들과 그 흐름을 맞출 수 있는 것이다. 비가 오면 비를 맞는 것만이 순리가 아니다. 또한 비가 오면 우산을 꺼내서 비를 막는 것만이 순리가 아니다. 그리고 비가 오면 처마 밑에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는 것도 순리가 아니다.

 

비가 억수로 많이 오면 처마 밑에서 기다릴 것이고, 비가 적당히 오면 우산을 펴서 비를 막을 것이고, 비가 적게 오면 그냥 맞고 걸을 것이다. 하지만 비가 억수로 와도 걸을 수 있고, 비가 조금 와도 처마 밑에서 기다릴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선택 가능하며 오직 그 순간 그 자신이 가장 행복한 것을 선택하는 존재이다.

 

우리가 그런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단 한가지만 해결하면 된다. 바로 집착이다. 바로 두려움이다. 바로 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 어떤 것이다. 바로 어떤 것에 스스로 부여해 놓은 가치이다.

 

흔히 너무 욕심을 내지 말라는 말, 너무 많이 가지려고 하지 말라는 말, 과도한 욕망을 품지 말라는 말 등은 삶을 지혜롭게 사는데 필요한 조언으로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가진 진짜 의미는 바로 돈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 그것 하나뿐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는 ''이 아니라 '집착'이란 단어이다. 돈에 집착하지 않아도 관계에 집착하고, 성공에 집착하고, 사람에 집착하고, 취미에 집착하고, 여행에 집착하고, 봉사에 집착하고, 센스 있음에 집착하고, 유머에 집착하고, 칭찬에 집착하고, 인정에 집착하고, 먹을 것에 집착하고 있다면 결국 마찬가지다.

 

집착이 일어나는 순간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할 일로 바뀐다.

 

물론 살다가 보면 해야 할 일이 아예 없을 수는 없다. 청소도 해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한다. 하지만 줄일 수는 있다. 작은 집에서 살면 청소를 덜 하고 살 수 있고, 너무 깨끗함에 집착하지 않으면 그리 자주 빨래를 안하고 살 수도 있다. 물론 넓은 집에서 매일 빨래를 하고 살아도 된다. , 본인이 그것을 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스트레스는 집착을 하고 있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답게 살려면 어느 수준의 삶이 필요하다고 한다. 삶의 질을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도 집착이다. 도대체 누가 '인간답게'를 정의해준다는 말인가? 그 기준점을 만들고 있는 순간부터 집착이다.

 

삶을 행복하게 살고 싶은가? 그럼 가장 먼저 자신의 집착을 바라봐야 한다. 정말로 집착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보면 된다. 내가 암에 걸려서 죽을 순간에도 그것을 꼭 해야겠다면 그것은 행복이 맞다. 하지만 뭐 하러 그런 것에 그리 마음을 썼을까 싶으면 집착이다. 다른 사람들의 평판도, 다른 사람들이 해주는 인정도, 다른 사람이 가진 돈도,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경험들도, 다른 사람들이 가진 물건들도, 다른 사람들이 가진 재주나 능력도 일반적인 경우엔 내가 죽게 생기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것들을 갖지 못해서 그리 불행하다. 그래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우리는 누구나 어떤 대상이든지 집착을 가지고 있고, 집착은 해야 할 일이며, 결국 자신의 가진 두려움을 가장 잘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는, 사실은 아무런 근거 없이 타인에 의해 강제로 주입된 일종의 세뇌이다. 그런데도 그것을 평생 추구하면서 살아간다.

 

그나마 남들이 욕하는 것들로부터 집착을 벗어나는 일은 쉽다. 마약, 도박에 대한 집착이 바로 그런 종류이다. 오히려 더 벗어나기 힘든 집착은 바로 남들이 칭찬하는 것들에 대한 집착이다. 봉사활동, 기부, 친절, 평판, 명예, 가치에 대한 집착은인식하기도 힘들고 설령 인식한다고 해도 벗어나기가 힘들다.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하고 있는지 하고 싶어서 하고 있는지를 잘 살펴야 할 것이다. 둘은 정말로 잘 구분되지 않는다. 그래도 확실한 방법은 있다. 언제든 선택할 수 있다면 하고 싶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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