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에세이

김두삼씨 이야기 - 15

아이루다 2020. 2. 17. 10:53

 

 

15. 죽음 그리고 그 후

 

10 들어서 이춘삼은 훨씬 자주 모습을 드러내었다. 나는 그것이 좋았지만 어쩔 없이 불안함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불안하게 것은, 김회장이 이춘삼이 때마다 폐병이 걸린 사람처럼 콜록댔는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로 사람이 기침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정도였다. 그래도 김회장이 이춘삼일 때는 일단 골치 아픈 바둑도 두지 않아도 좋았고, 요즘처럼 좋은 날이면 같이 가을 길을 산책을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도 좋았다.

 

10 중순쯤 어느 , 김회장이 바둑을 두는 도중에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그전에도 가끔 이런저런 문제들이 생긴 적이 있긴 했지만 이번엔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일단 당장 내가 응급조치를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상태가 평소보다 훨씬 심각해 보여서 결국 서울에 있는 병원에 연락을 했다.

 

김회장이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고 급하게 내려온 정박사는 진찰을 해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무래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같다고 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병원에 연락해서는 이런저런 장치들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서울에서 장비들이 김회장의 침대 주변에 설치되자 그때부터 방에서는 기존과는 전혀 다른 어떤 느낌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죽음이었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 장면처럼, 의식이 없는 김회장의 몸에는 여러 가지 목적을 가진 선들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서 설치되어 있었고 선에 연결된 작은 모니터에서는 김회장의 심장박동 , 산소포화도 등이 매초마다 표시되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바로 죽음을 연상시켰다.

 

하지만 김회장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딱히 다른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김회장은 이곳에 벌써 정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인간적으로는 친해지지 못한 사람이었다. 오히려 내가 신경이 쓰는 것은 바로 속도였다. 이렇게 빠르게 그의 죽음이 찾아온다면 집에 덩그러니 남게 우리 사람의 미래 쪽이 신경 쓰였다. 사람의 죽음 앞에서 대놓고 그런 얘기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나와 아주머니 그리고 장씨 아저씨 모두 마음이 꽤나 심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를 제외하고는 아주머니나 장씨 아저씨는 집을 떠나서도 먹고 사는 문제는 별로 없을 것이다. 아주머니야 워낙 살림을 야무지게 하니까 어디 가서 새롭게 일자리를 잡아도 환영을 받을 것이고, 장씨 아저씨도 주변 아는 사람들을 건너건너 통해서 얼마든지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있을 것이다. 결국엔 나만 문제였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나도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만큼 절망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지난 년간 돈도 제법 모았고 처음 이곳을 소개시켜 오사장의 말에 따르면 어느 정도의 퇴직금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이곳에서 나간다고 해서 얼마간 사는 것에는 지장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지 걸리는 것이 있긴 했다. 남들이 보기엔 아닐지 모르지만 입장에서는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김회장이 이대로 삶을 마감하게 되면 집에 있던 사람이 서로 찢어지게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었다. 그나마 나는 겨우 남짓한 인연이었다. 물론 그것이 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아주머니와 장씨 아저씨가 맺어 세월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사실 사람이 부부의 연으로 이어진다고 해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 노릇이었다. 물론 입장에서 아주 객관적으로 봤을 아주머니가 연상이긴 해도 아깝긴 하지만, 아무튼 나도 헤어지기 싫은데 저분들은 얼마나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쩌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그리 오래 것은 아니지만, 나는 뭔가 원하는 대로 된다면 그것은 삶이라고 부를 없음 정도는 받아들이지는 못해도 머리로는 알고는 있다.

 

집안에 누군가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사람과의 관계와 상관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무거움을 가져다주었다. 그로 인해서 며칠 동안 집안이 질식할 같은 침묵으로만 가득 찼다. 나는 유난히 무거운 느낌이 부담스러워서 가능하면 밖에 나가서 지내려고 했다. 더군다나 장씨 아저씨나 아주머니에게는 이제 신경 쓰이지만, 요즘 안을 들락날락하는 다른 사람들이 많아져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언제 끝이 모르기에 서울에 있는 김회장 회사 사람들과 가끔은 집안사람들까지 수시로 집을 들락거렸다. 하지만 그들이 김회장의 마지막을 지켜보기 위해서 오는 같지는 않았다. 그저 김회장의 죽음과 관련된 집안의 재산 문제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그런 목적으로 이곳에 그들은 몸에서 나는 냄새를 이해해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집안에 누구라도 하나 있다 싶으면 가능하면 밖으로 나돌아야 했다. 어떤 날은 아예 하루 종일 밖으로 나가서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미 가을이 깊어진 이곳은 텃밭조차도 딱히 일이 없었다. 여름 내내 그리 빠르게 자라던 잡초들도 짧고 낮게 뜨는 태양의 흐름에 맞춰서 스스로 휴식을 취했기에 힘들게 뽑을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러니 밖에 나가고 싶어도 나갈만한 일도 별로 없었다. 나는 결국 대부분의 시간을 장씨 아저씨와 노닥거리면서 보낼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 내가 새롭게 찾은 일이 바로 장작 쪼개기였다.

 

집은 가을부터 추워서 거실에 있는 벽난로를 땠는데, 그때 나무가 많이 필요했기에 해야 일이었다. 장씨 아저씨는 매년 업체에서 반복적으로 참나무를 주문을 해왔는데, 업체는 쪼갠 장작을 파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일정 길이로 잘린 절단목 형태로만 팔았다. 그리고 우리는 나무를 필요할 때마다 쪼개서 장작으로 태웠다. 그러니 당연히 나무를 쪼갤 도끼질이 필요했다.

 

처음 장씨 아저씨에게 도끼질을 배워서 때는 어설프다고 자주 놀림을 받았지만, 일도 며칠 하자 꽤나 익숙해져서 어느 정도 능숙한 수준으로 도끼질을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렇게 한번 익숙해지자 힘껏 도끼로 내려 때마다 통나무가 반쪽으로 쪼개지는 기분은 꽤나 짜릿했다. 그래서 안에 있다가 답답하다가 싶으면 별로 필요도 없는 장작을 패곤 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도끼질을 때면 가끔은 아주머니나 하루 종일 김회장의 간호를 맡느라 지친 간호사까지도 밖으로 나와서 옆에 자리를 잡고 웃으면서 구경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누군가 옆에서 지켜보면 긴장해서 더욱 멋지게 도끼질을 하려고 하다가 엉뚱한 곳을 찍기도 하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내가 한번이라도 실수를 하면 장씨 아저씨는 즉시 다가와서 "요즘 젊은 것들은 힘만 있지 요령이 없어.." 하면서 나에게 도끼를 뺏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원조라고 하면서 더욱 멋진 도끼질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하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열댓 번만 연속으로 도끼질을 하고 나면 지쳐서 결국 헥헥거리다가 다시 나에게 도끼를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면 나는 속으로 장씨 아저씨가 하는 말을 따라서 '요즘 늙은 것들은 요령만 있지 힘이 없어...' 라고 생각만 했다. 그런 생각을 입으로 꺼냈다가는 장씨 아저씨 손에 쥐어져 있는 날선 도끼가 나를 향할 있음을 모를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시간은 느리고 느리게 흘러갔다. 하지만 결국 김회장의 마지막 순간은 왔다. 그때쯤 되자 그의 아들인 김사장과 며느리 그리고 손주들까지도 임종을 지키기 위해서 이곳 양평 집에 와서 머물렀다. 오늘 아침 일찍 이곳에 정박사의 말에 따르면 아마도 오늘이 그날일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10 30, 10월의 마지막 밤을 하루 앞둔 결국 김회장은 눈을 감았다. 향년 나이 64세였다. 그래도 삼일 전쯤 잠시 정신을 차리고 유언을 남겼는데, 웃기게도 유언의 대상은 자신의 친아들이 아닌 나와 장씨 아저씨였다. 내용은 단순했다. 장씨 아저씨에게는 자신의 방에 있던 책과 LP 등은 남기지 말고 모두 어딘가에 기부를 하라고 했다. 나중에 듣고 보니 물품들은 김회장 것이 아니라 돌아가신 사모님 것이라고 했다. 살아생전 사모님을 그리워 처분하지 않았는데 자신이 떠날 때가 되니 정리하고 싶어진 모양이었다. 얘기를 듣고 나니 조금 마음이 짠했다. 나에게 남긴 유언은 달랐는데, 무엇보다도 주변 사람을 방에서 나가게 점이 특이했다. 그는 혼자 방에 남게 지난 각연사에서 받아 물건은 아무도 모르게 반드시 태워야 한다는 비밀 유언을 남겼다. 특히 자신이 죽게 되면 그날로 지체 없이 바로 태워버리라고 강조했다. 나는 속마음과 다르게 일단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내가 혼자 독대를 방에서 나오자 사람들은 다들 도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해 했다. 중에서 특히 김회장의 며느리는 코를 막으면서까지 나에게 다가와서 김회장이 도대체 무슨 말을 했냐고 캐물었지만 나는 그냥 귀한 바둑판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그녀는 말을 믿지 못한다는 계속 따라붙으면서 나를 귀찮게 했다. 그래서 나는 아무 없이 그냥 양팔을 날개처럼 펄럭거렸다. 그러자 몸에서 아주 진국인 냄새가 퍼져나갔고, 김회장의 며느리는 갑자기 헛구역질을 하면서 나에게서 떨어져 지독히 혐오스러운 눈길로 훑어보다가 멀어졌다. 장점 없는 단점이 없다고 했던가? 나는 그날 처음으로 몸에서 나는 냄새를 제대로 있는 용도를 알게 되었다.

 

어느 순간이 오자 얕고 간헐적으로 반복되던 김회장의 호흡소리가 완전히 멈췄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부터 여러 선으로 연결된 모니터엔 이상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순간 정박사는 시계를 보며 공식적으로 김회장의 죽음을 선언했고 옆에 있던 간호사들은 김회장에게 연결된 각종 선들을 빠르고 차분하게 제거했다. 그리고 이미 밖에서 대기 중이던 사람들이 들어와서는 김회장의 주검을 커다란 검은색 천으로 싸서는 즉시 앰블런스에 싣고는 즉시 서울로 출발했다.

 

장례식은 서울에서 한다고 했다. 내가 동안 봤던 드라마 죽음과는 달리 딱히 울어 사람도, 예의상 우는 사람도, 억지로 우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저 정해진 절차만이 차례차례 이어진 밋밋한 죽음이었다. 내가 유일하게 슬퍼한 사람은 바로 아주머니였다. 그리고 장씨 아저씨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김회장에게 딱히 어떤 애정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순간만큼은 그의 명복을 빌어줬다. 그리고 사람 좋은 이춘삼을 이상 만날 없다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저릿했다. 존재하지 않는 존재이지만 이춘삼의 명복도 빌었다.

 

많은 사람들이 정리를 하자 김회장이 쓰던 방은 금세 원래 상태대로 돌아왔다. 그러고 나니 방의 주인만 없어졌을 , 언제 이곳에서 사람이 아팠는지, 언제 죽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렇게 사람들이 떠나고 나자 이곳엔 결국 다시 우리 사람만 덜렁 남았다. 물론 우리도 잠시 시간을 내서 서울에 있는 장례식장에 다녀오긴 해야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기분이 아니었다. 우리는 장례식장에 참석해서 국화꽃 송이 정도를 놓으며 고인에게 절을 수는 있지만, 공식적으로 김회장의 집안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나마 사람들이 빠져 나가니 오랜만에 집이 예전의 평온한 모습을 되찾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뭔가 허전한 느낌도 들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닌 했다. 아주머니도 장씨 아저씨도 평소와는 다르게 뭔가 쓸쓸한 분위기가 났다. 그래서 다들 사람은 모르지만 사람은 표가 난다고 하는 모양이었다.

 

그날 밤에 남상현이 홀로 차를 몰고 집으로 왔다. 예전에 일이 있을 이곳에서 가끔 자고 가진 했지만, 그것은 모두 김회장을 모시기 위해서 그랬던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가 김회장도 없는 집에 이렇게나 시간에 갑작스럽게 이곳에 찾아 것이다. 가장 빨리 반응을 것은 역시 아주머니였다. 그녀는 남상현에게 김회장의 유품이라도 두고 것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그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와서 비어 있던 식탁의 한쪽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그리고는 우리가 먹고 있던 고구마를 앞으로 밀어주었다. 커피도 마실 것이냐고 물었지만 그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고 하면서 거절했다. 그리고는 앉아서 고구마를 까먹기 시작했다. 그가 고구마를 먹는 동안엔 잠시 묘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그가 고구마의 남은 부분을 속에 넣자마자 장씨 아저씨는 서울 장례식은 되어 가냐고 물었다. 남상현은 서울 장례식장엔 서울시장까지 다녀갔다고 하면서 살아생전 김회장이 가졌던 사회적 영향력을 간접적으로 설명해주었다. 비록 말년이 사람들 사이에서 잊힌 이런 외진 시골집에서 보낸 년간의 요양 생활이었지만, 한때 많은 사람들이 그와 연줄을 맺으려고 줄을 사람이라고 했다. "회장님이 원래 정치인들한테 후원을 많이 했었지요." 아주머니가 남상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서울시장 정도는 당연히 왔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 자리가 파하고 우리는 각자 잠을 자러 갔다. 나는 방에 들어가서 바로 자지 않고 노트북을 켜고 잠시 시간을 보냈다. 딱히 일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그저 다른 사람들이 잠들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시간쯤 후에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그것은 바로 김회장이 떠나기 전에 나에게 부탁한 , 그러니까 그의 노트를 태우는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다들 별채에 자고 있었기에 현관문 여닫는 소리까지 신경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조심하면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창고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하늘엔 별이 총총했지만 아직 달은 보이지 않았다. 뜨기 전인지, 진후인지 아니면 아예 그믐인지조차 모르겠지만 아무튼 달빛조차 없는 밤은 너무 껌껌해서 걷기가 힘들 정도였다. 나는 호주머니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어 플래시 기능을 켰다. 그러자 걸을만 했다. 그렇게 창고 앞에 도착하자 나는 가지 물건이 있는 위치를 찾았다. 그것은 바로 밖에서 일할 추우면 불을 있게 설치해 반쯤 잘린 드럼통이 있는 위치였다. 드럼통이 바로 오늘 나의 목적이었다. 앞에 도착한 호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주변에 있던 신문지를 구겨서 일단 불을 피웠다. 그리고도 골판지를 잘라 넣고 이어서 잔가지를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굵은 장작은 세개 정도 넣었다.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하자 조금 추위가 가셨다.

 

나는 잠시 불꽃만 바라보고 있었다. 정도 화력이라면 노트를 태우는 일은 금세 끝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있었지만 계속 걸리는 것이 있어서 고민 중이었다. 나는 노트의 내용을 읽고 태울지 아니면 그냥 김회장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보지 않고 태울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보고 싶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그냥 태워야 같았다. 안에서 욕망과 양심이 서로 심각하게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일단 노트를 그냥 태우고 나면 복사본이 없으니 절대로 내용이 무엇인지 방법이 전혀 없다. 김회장은 그날 나에게 따로 시켜서 수십 년이나 지난 노트를 가져오라고 했을까? 도대체 안에는 무엇이 적혀 있었던 것일까? 혼란스러운 마음과는 달리 이젠 완전히 제대로 불이 붙은 장작들에서는 탁탁 소리를 때마다 밝은 불씨들이 터져 나와 허공으로 흩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순간만큼은 나도 고민도 잊은 모습에 빠져 들어갔다. 안에 아주 오래된 뭔가가 공명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일렁거리는 불길처럼 안에 있는 그것도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아주 오래 동굴에 살던 우리의 조상들이 이런 밤에 화톳불을 피워놓고 느꼈던 감정들일까? 살아보지 않았으니 길이 없다.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하나 있다. 지금이 불꽃들이 나에게 온기를 주듯이 그때 역시도 그들의 추운 밤들을 지켜주는 생명의 불길이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그때와 달리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나는 일렁이는 불을 통해서 시간을 뛰어넘어 그들과 공동의 감각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었다. 불은 그렇게 언제나 우리의 오래된 본성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고 보면 인간에게는 하나의 본성이 있다. 그것이 바로 미지에 것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이다. 호기심과 탐구심이 인류를 화톳불에서 원자력의 시대로 이끈 것이다. 호기심이 있었기에 도전을 있었고, 용감하게 도전을 했기에 지금까지 발전해온 것이다. 다들 호기심을 억누른 시키는 대로만 하고 살았다면 인류의 발전은 한참 늦어졌을 것이다. 결국엔 하지 말라는 짓을 우리는 단계 진보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나는 인류가 발전할 있었던 근원에 승복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노트를 펼쳐 보기로 최종 결정했다. 약속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류의 발전도 중요하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어쩔 없이 결정을 하긴 했지만, 장을 펼치는 순간의 떨림 역시도 어쩔 없었다. 나는 흥분과 기대 그리고 금지된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까지 동시에 느끼면서 천천히 장을 펼쳤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펼쳐진 노트의 왼쪽은 비어 있었고 오른쪽엔 한문으로 커다란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일단 자는 다행히도 내가 알고 있는 한자였다. 무슨 ''자인지는 몰라도 일단 자였다. 하지만 뒷글자는 내가 모르는 글자였다. 그리고 밑으로 약간 떨어져서 1987년이란 글자가 정자체로 적혀 있었다. 아마도 글들을 연도인 했다. 87년이 글을 연도를 의미한다면 지금보다 30 이상 오래 전에 적힌 글이란 뜻이었다. 순간 옛날 각연사의 주지의 법명이 지봉이었다는 사실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렇다면 '' 다음으로 글자는 아마도 ''자일 가능성이 컸다. 정리하면 글은 1987년도에 지봉스님이 글이 분명했다. 대충 상황파악이 끝나자 나는 다음 장으로 넘겼다. 그러자 다음부터는 정자체로 빼곡하게 쓰인 문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붓글씨로 같기도 하고, 만년필과 같은 도구로 같기도 했다. 일단 악필이 아니어서 글자를 읽는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한문이 꽤나 많이 차지하고 있어서 읽기가 수월한 편은 아니었다. 힘들어도 떠듬떠듬 그리고 한자는 대충 짐작하면서 읽어보니 어떤 내용인지는 어느 정도까지는 감을 잡을 있었다. 그것은 사람의 삶에 대한 기록이었는데, 놀랍게도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이춘삼이었다. 이춘삼이라니... 오래된 글에서 이춘삼에 관한 내용이 나오자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없었다. 나는 내용에 완전히 빠져 들어서 시간의 흐름과 내가 속해 있는 공간조차 잊고 말았다. 그래서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결국 그걸 본거야?" 한참 내용에 빠져 있던 나는 갑자기 뒤에서 들린 굵은 사람의 목소리로 인해서 혼비백산 정도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나는 순간 이곳에 말고 다른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고, 달빛 하나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있었으며, 이미 고인이 김회장과의 약속까지 어기면서 양심에 찔린 그의 노트를 읽고 있는 중이었기 더욱 놀랐다. 나는 급격히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듯한 느낌을 받으며 말소리가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러자 드럼통으로부터 나온 희미한 불빛에 비친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처음엔 너무 희미해서 도대체 누군지 가늠할 없었지만 상대가 점점 쪽으로 다가옴에 따라 구분이 되기 시작했다.

 

정말로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었다. 바로 남상현였던 것이다. 그런데 웃기게도 나를 놀라게 사람이 누군지 파악을 하고 머리 속에 생각은 바로 ' 인간은 지금 나한테 반말을 하고 있지?'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생각은 금세 사라졌고 대신 그가 방금 내게 말의 의미를 해석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남상현은 방금 분명히 노트를 봤냐고 물었다. 그것도 '결국' 이란 표현까지 썼다. 그렇다면 가지 명백한 결론이 나온다. 그것은 바로 남상현은 노트의 존재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시간에 어떻게 내가 노트를 태우려고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도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설마 김회장이 살아생전에 남상현에서 노트에 대해서 말하고 따로 나를 감시하도록 시킨 것일까?

 

내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남상현은 어느 다가와서 옆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그리고는 어디까지 봤냐고 물었다. 하지만 나는 만약 김회장이 남상현을 시켜 나를 감시 하라고 했을 수도 있으니 당연히 곧이곧대로 말할 없었다. 그래서 전혀 보지 않았다고 시치미를 뗐다. 그러자 남상현 살짝 웃으며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찔렸지만 이제 와서 자백할 수는 없었다. 사실 봤다는 증거가 어디 있는가? 오직 자백만이 유일한 증거가 터였다. 나는 무조건 버티기로 굳게 마음을 다짐했다. 그런데 남상현은 갑자기 크게 웃더니 그러면 그냥 읽은 것으로 하자고 했다. 고문을 하는 것만 아니라면 버틸 각오를 다지고 있던 나는 조금 허탈해졌다. 그런데 이어지는 그의 다음 말을 듣고는 크게 갈등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남상현은 지나가는듯한 말투로 내가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면 노트에 나오지 않는 얘기들도 해줄 없다고 했다. 당연히 나를 한번쯤 떠보는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지만 그냥 거절하기엔 너무 강렬한 유혹이었다. 노트엔 이춘삼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돌아가신 김회장과 이춘삼이 도대체 어떤 관계인지에 관한 내용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순간 머릿속에는 이춘삼과 김회장과의 관계, 노트를 적은 지봉스님은 어떻게 이춘삼을 알고 있는지, 그리고 정말로 이춘삼이 실제로 존재했었는지 등에 관해서 궁금증이 가득이었다. 거기다가 지금은 당장 앞에 있는 남상현이란 인물에 대한 의문점까지도 더해졌다.

 

비록 표현은 안하고 있었지만 내가 이미 크게 흔들리는 것을 안다는 남상현이 피식 웃었다. 싫으면 관두고. 말에 나는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 " 노트의 내용에 대해서 알고 있나 봐요?" 이미 가진 패를 들켰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끝까지 버티기 위해서 최대한 관심 없는 물었다. 그러자 남상현은 살짝 고개만 끄덕였다.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태우려고 하는데 얘기가 있으면 주세요" 나는 내가 생각해도 너무 뻔한 거짓말을 했다. 그런데 남상현은 지금 내가 노트를 읽은 것을 질책할 마음은 전혀 없다면서 내가 만약 읽었다면 말이 있지만, 읽지 않았다니 지금은 말이 없다고만 대답했다. 여우같은 자식, 남상현은 머리 꼭대기에서 놀고 있었다. 나는 그냥 항복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자고로 물러날 때는 아는 자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하지 않았던가?

 

더군다나 모든 것은 인류의 발전을 위해 두려움을 이겨낸 호기심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나는 결국 어느 정도 읽었음을 고백했다. " 읽었어?" 나는 끝에 장만 남기고 읽었다고 대답했다. "거기까지 읽었으면 이춘삼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겠네. 그런데 도대체 김회장은 이춘삼과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겠고. 아마도 노트에 그것에 관해서 쓰여 있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야." 남상현은 거의 확신하듯 말했다.

 

" 노트에 대해서 어떻게 알죠?" 내가 묻자 남상현은 웃으며 되물었다. "지금 그것이 제일 궁금해? 다른 궁금한 점이 많을 텐데?" 남상현의 말에 나는 잠시 동안 생각을 했다. 그래, 처음부터 차근차근 따져봐야겠다. 그렇다 보면 모든 것이 드러날 것이다. "그럼 제일 궁금한 점부터 물어 볼게요. 내가 알기로 이춘삼은 김회장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만들어 존재인데, 30 전에 노트를 스님이 어떻게 이춘삼에 대해서 알고 이런 글을 남길 있었던 거죠?" 말에 남상현은 즉시 답을 했다. " 질문의 답은 아주 단순하지. 이춘삼이란 사람이 진짜로 존재했으니까." 순간 나는 벙찐 느낌을 받았다. 이춘삼이 진짜로 존재했다니? 어떻게 진짜로 존재했을 있는가? 그리고 진짜로 존재한 사람이 어떻게 김회장에게서 나타날 있는가? 그렇다면 정말로 이춘삼은 김회장의 전생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나오던 것처럼 김회장에게 이춘삼의 영혼이라도 빙의라도 것일까? 혹은 영혼합체설이 맞았다는 말인가?

 

" 정확히 말하면 이춘삼은 김회장의 다른 삶이었어." 도대체 이해가 가질 않는 입장과 달리 남상현은 일도 아니라는 말했다. 말을 듣고 보니 갑자기 예전에 들었던 가지 얘기가 떠올랐다. 어떤 부자들은 나라마다 현지처를 둔다고 했었다. 그래서 여러 나라에 여러 가족을 꾸리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돈이 많으니까 그런 짓을 있다. 그렇다면 김회장이 혹시 이춘삼이라는 가명으로 다른 가족을 꾸린 것이 아닐까? 그렇게 가정하면 사람의 삶이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은 현실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도 가능해진다. 하지만 거기엔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이춘삼의 삶은 김회장의 삶과 너무 대조적이란 점이다. 김회장과 이춘삼이 동일 인물이라면 이춘삼이 그렇게 가난하고 힘들게 이유가 없다.

 

설마 가난한 사람 코스프레를 것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과했다. 본인은 그렇다고 치고 아내와 애들은 무슨 죄인가? 그것도 아이를 다섯 명이나 낳았는데. 더해서 심각한 문제점이 하나 있다. 아무리 연기를 했을지라도 김회장과 이춘삼의 인격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냥 다른 정도가 아니라 둘은 서로 극과극일 정도로 차이가 심했다. 돈은 많았지만 사람과의 거리를 두고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했던 김회장과 돈은 없어도 착하고 남과 함께 사는 법을 알았던 이춘삼은 아무리 해도 겹쳐지지 않았다. 그리고 떠나서 지봉스님이 아주 예전에 노트에 이춘삼의 삶을 기록해 놓은 것만큼은 도저히 설명이 된다. 30 전의 젊은 김회장을 보고 사람의 삶이 어떻게 가지 형태로 흘러갈지 미리 알고 기록했다는 말인가? 혹시나 그런 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그것을 기록할 이유가 없었다. 불륜의 증거로 이용해서 김회장에게 돈을 뜯어 용도가 아니라면. 그런데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가진 스님이 뭐가 아쉬워서 그런 짓을 하겠는가? 그렇다면 결국 다시 해리성 정체성 장해라는 가능성 밖에 남질 않는다. 그래서 내가 김회장이 혹시나 그런 정신병에 걸렸는지 묻자 남상현은 웃으면서 그것은 아니라고 했다.

 

"뭐라고 설명을 해야 쉽게 이해를 할까?" 남상현은 뭔가 난감한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혹시나 시간을 되돌릴 있다면 어느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어?" 나는 뜬금없는 질문에 잠시 생각을 해야 했다. 아마도 대학교 시절? 그때 첫사랑을 만났던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났다. 그래서 지금처럼 냄새 나는 삶이 아닌, 20 초반 군대 가기 전에 삶이 가장 빛나던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원래 그런 일은 불가능 하지." 당연하다.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걸 뻔히 알면서 나에게 그걸 묻지?

 

"그런데 혹시나 그것이 가능하다면 정말로 되돌아가고 싶어?" 지금의 기억을 가진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시절로 완전히 되돌아가는 거야. 미래의 내가 이렇게 된다는 것을 전혀 모른 ." 그렇게 가정을 해보니 혼란스러웠다. 분명히 과거 시절로 되돌아가면 지금과 달리 행복해질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다시 지옥 같은 5년을 보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로 고통의 시간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그건 아닌 같네요." 나는 맥없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가지 가정을 해보자고. 과거로 되돌아가는데,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되돌아가는 거야. 그러니 이후 삶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흘러가겠지. 물론 당연히 미래에 대한 어떤 기억도 없이 가는 것이니 앞으로 어떤 삶이 펼쳐질지 전혀 모르고 번째 삶을 살아갈 있을 것이야." 이번 가정은 조금 솔깃했다. 지금과 전혀 다른 삶을 있다면, 아마도 어떤 삶을 살아도 지금보다 나을 같은 처지에 그것은 정말로 좋은 일이 아닐 없었다. 딱히 지켜야 것도, 남겨야 것도, 소중한 것도 없는 내가 지난 십몇 년의 시간을 버리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생각 해봐야겠네요." 대답에 남상현은 웃었다.

 

"김회장과 이춘삼의 관계가 그것이었어. 그러니까 김회장은 이춘삼이란 사람의 번째 삶이었던 것이지. 단지 되풀이 되는 시작지점이 삶의 중간 부분이 아닌 아예 태어난 시기였던 것이 특이할 뿐이었지."

 

어떤 말들은 들은 한참 후에 머리 속에 해석이 되곤 한다. 방금 남상현이 나에게 말이 그랬다. "뭐라고요?" 나는 한참 후에 반응을 밖에 없었다. 이춘삼이 과거로 시간을 되돌렸을 김지영이 되어서 다시 태어난 거라고. 그런데 그렇게 김지영의 삶이 새롭게 시작되게 되면 자신이 원래는 이춘삼이었다는 기억은 전혀 하지 못하게 . 결국 둘은 서로 전혀 다른 인생이면서 동일한 시간을 살게 거야. 둘은 서로 이름도, 부모도, 외모도, 성격도 전혀 다르지. 그저 같은 시간대를 살아간다는 점만 동일 . 그것도 태어난 시점만 동일할 죽는 시점조차 서로 달라." 추가적인 설명을 듣고 나니 황당해도 이런 황당함이 없었다. 그런데 남상현은 이런 터무니없는 말을, 어떻게 저렇게 진지한 태도로 그리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나를 바보로 아는 것일까?

 

"정리하면, 이춘삼이 살고 있다가 어느 갑자기 다시 태어나서 김회장으로서 번째 삶을 살았다는 뜻인가요?" 내가 황당한 묻자 남상현은 이춘삼이 결코 것은 아니라는 단서를 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잘살았는지 아닌지 상관없이 사람이 어떻게 다시 있겠는가? 그것에 대해서는 번도 들어 적도 없고, 있다고 해도 그저 영화 상상일 뿐이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죠?" 내가 약간 빈정대는 듯한 말투로 묻자 남상현은 갑자기 나를 정면으로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고 나서 "바로 같은 존재들이 일을 가능하게 해주지." 라고 답했다. 순간 나는 남상현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밝게 빛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시 그를 바라보았을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갑자기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 어떤 영화를 보다가 오캄의 면도날이란 용어를 들어 적이 있다. 대충 알기로 어떤 문제의 답으로 여러 가지가 가정이 있다면 가장 단순한 것이 답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론이다. 이론에 따르면 남상현의 주장은 내가 상상 가능한 모든 가정들 중에서 가장 복잡하다. 그러니 정답일 가능성은 가장 낮다. 차라리 해리성 정체성 장애나 아니면 설명 되는 부분이 남아 있긴 하지만 전생과 현생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 나아 보인다. 그리고 제일 황당하긴 하지만 영혼의 빙의 현상조차도 남상현의 주장보다는 나아 보였다. 무엇이 답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가정을 해도 김회장이란 존재와 이춘삼이란 존재가 사람의 몸에서 나타난 이유가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모두 가지씩 치명적인 허점이 있는 점만이 문제였다.

 

전생의 개념으로 적용해보면 이춘삼을 전생, 김회장을 현생이 된다. 그래서 사람은 분명히 나이 차이가 나야 한다. 하지만 오히려 사람이 살아 시대는 거의 엇비슷하다. 제대로 계산해 보지 않았지만, 이춘삼은 98년도에 41살이었고 아마도 김회장도 98년쯤에는 정도 나이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춘삼이 살다가 죽어서 김회장으로 환생을 했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맞질 않는다. 오히려 남상현이 주장한 시간이 되풀이 된다는 것이 훨씬 그럴 듯하다.

 

해리성 정체성 장애는 기본적으로 가장 단순하고 정확하다. 윤회라는 개념이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과학적으로 제대로 증명된 경우가 없는 반면, 정신병은 실제로 증명이 사례까지 존재했다. 그러니까 이론적으로 가장 현실성 있다. 그런데 손에 쥐고 있는 노트가 가정에 대해서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도대체 수십 전에 글을 지봉스님이 어떻게 이춘삼의 존재를 있었을까? 또한 분명히 노트를 김회장에게 남긴 것을 봐서 분명히 이춘삼과 김회장과의 관계를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빙의 현상 역시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춘삼의 영혼이 김회장에게 들어갔다고 해도 30 전에 이후 사람의 삶을 예측하는 것은 미래를 있는 능력이 없는 불가능할 밖에 없다. 그렇다면 결국 남상현의 황당한 주장만 남는다. 결국 나는 내가 생각해도 황당한 질문을 하고 말았다. "도대체 그런 일을 하는 거죠?" 너는 도대체 뭔데 그런 일을 있는지도 아니고, 실제로 일이 가능한지도 아니며, 내가 그것을 어떻게 믿을 있냐는 의구심도 아니었다. 나는 그가 그런 일을 하는지를 궁금해 했다.

 

 

 

 

 

 

'소설,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두삼씨 이야기 - 끝  (0) 2020.02.20
김두삼씨 이야기 - 16  (0) 2020.02.19
김두삼씨 이야기 - 14  (0) 2020.02.14
김두삼씨 이야기 - 13  (0) 2020.02.11
김두삼씨 이야기 - 12  (0) 2020.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