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에세이

김두삼씨 이야기 - 14

아이루다 2020. 2. 14. 08:31

 

 

14. 슬픈 자는 등을 돌린다

 

하루는 느리게, 일주일은 그냥 저냥, 달은 제법 빠르게 흘러갔다. 지구 온난화의 여파인지 여름 내내 뉴스에서 '역대 더위' 라는 용어가 자주 흘러나왔다. 딱히 뉴스를 보지 않아도 정말로 덥긴 더웠다. 정말로 지구에 어떤 문제가 생기긴 모양이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진짜로 문제들은 내가 늙어서 죽기 직전이거나 혹은 죽은 후에나 생길 모양이다. 앞으로 얼마나 오래 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다행이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더위에 내가 서울에 있었다면 엄청 끔찍했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더운 만큼 몸에서 땀이 많이 났을 것이고, 땀이 많이 나게 되면 당연히 몸에서 나는 냄새도 심해졌을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착각하지만 몸에서 나는 냄새라고 해서 예외적으로 내가 멀쩡한 것은 아니었다. 나도 몸의 냄새가 감당하기 힘들만큼 역겨웠다. 그저 자신이 냄새의 진원지라서 언제나 나를 따라다니니 어쩔 없으니 참을 뿐인 것이다. 그러니 만약 내가 이곳에 있지 않았다면, 에어컨도 없었던 좁은 집에서 밖에도 나가지도 못하고 나는 몸에서 올라오는 냄새로 인해 스스로 질식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이곳은 성능이 좋은 에어컨이 하루 종일 돌았고, 서울과 달리 해가 지면 바로 시원해져서 열대야 현상이 없었다. 이렇게 더운 시기에 이곳에 있을 있었던 것은 어떤 면에서 정말로 운이 좋은 일이었다. 그렇게 8 중순을 지나자 낮에도 뙤약볕만 피하면 그럭저럭 밖에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민족의 명절인 추석이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에도 고향엘 거야?" 아침 식사를 장씨 아저씨는 며칠 심은 배추 모종을 보러 나갔고 나는 설거지를 했다. 내가 설거지를 끝내고 식탁 의자에 앉자마자 아주머니가 기다렸다는 고향에 것인지를 물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잠시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물론 명절이니 어머니가 계신 고향엘 가긴 해야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와는 아주 가끔 연락만 , 얼굴 지가 벌써 년이 넘었다. 몸에 문제가 생긴 내가 고향 집을 찾지 않은 탓이다.

 

동안 명절에도 고향에 차례도 가질 않았다. 아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난 구정 때도 고향에 가질 않고 여기에서 시간을 보냈었다. 하지만 나뿐만이 아니었다. 장씨 아저씨도 아주머니도 그리고 당연히 김회장도 그랬다. 여전히 혼자 이런 곳에서 살고 있는지 없는 아주머니는 여기에 계속 있었고, 장씨 아저씨는 아들과 딸이 하나씩 있긴 하지만 사이가 틀어진 아들은 명절에도 보지 않았다. 그리고 혜영은 당시 미국에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니 당연히 수가 없었다. 그래도 명절이니 자신의 형제자매들 정도는 보러 갈만 한데 그것조차도 별로 내키지 않은 했다.

 

그나마 김회장만 우리 셋과 조금 상황이 달랐다. 그에겐 번듯한 아들이 있었고, 아들이 결혼도 해서 손주도 있었기에 구정엔 같이 세배를 하러 왔었다.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그저 형식적으로 보였다. 그들은 김에 떡국이라도 먹고 가라는 아주머니의 살가운 부탁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는 온지 불과 시간 만에 떠나 버렸다. 하기야 사는 우리들은 익숙해져 있지만, 집안에 가득 기괴한 냄새들을 맡으며 밥을 먹을 생각은 나자 않을 같기도 했다. 거기까지가 지난 구정 때의 기억이다. 그런데 이번 추석도 그리 다를 바는 없을 보였다. 김회장의 아들 부부가 이번에도 올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와도 걱정이긴 했다. 요즘 김회장의 상태가 많이 나빠져서 이제는 김회장일 때와 이춘삼일 때가 거의 반반씩이었다. 만약 이춘삼이 나타났을 아들 부부가 오게 되면 아마도 뭔가 한바탕 난리가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별로 내키네요." 잠시 뜸을 들인 나는 낮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래도 가봐야지. 세상에 뿐인 어머니인데." 아주머니는 구정 했던 말을 똑같이 되풀이 했다. 분명히 아주머니는 좋은 뜻으로 하는 조언이겠지만, 입장에서는 그저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말일 뿐이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내가 이지경이 되었어도 여전히 버티고 있는 양심이란 녀석이 틈만 나면 나를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아주머니처럼 말을 하면,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명절에 부모님을 찾아뵈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는 자책이 금세 나를 눌러왔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와 만나는 일이 꽤나 힘들고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이유가 내가 다른 사람을 피하는 것과는 달랐다. 적어도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처럼 몸에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나를 멀리하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지금 이순간도 내가 마지막으로 고향 집에 갔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때 나의 처참하게 망가진 모습을 어머니는 애써 별일도 아닌데 사람들이 유난이라고 말하며 웃었지만, 밤에 내가 잠이 후에 주방에서 홀로 앉아서 하염없이 우셨다. 선잠을 들었다가 어머니의 울음소리에 나는 울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몰래 보면서 치미는 자기 혐오감과 삶에 대한 분노 때문에 참을 없는 고통 속에 있어야 했다. 그래서 당장이라도 집을 나와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행동하면 혹시나 어머니가 힘들어 하실까봐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밤새 꾹꾹 감정을 눌러야만 했다. 그것에 관한 기억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다시는 어머니 집을 찾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나에겐 이미 결혼도 하고 손주도 둘이나 안겨드린, 나에 비하면 너무도 멀쩡히 살고 있는 여동생이 있다. 아마도 착한 동생이 어머니를 챙겨 것이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이번에도 어디 가세요?" 나는 불편한 감정을 느끼면서 의식적으로 대화 주제를 바꿨다. 그래서 딱히 필요도 없는 질문을 아주머니에게 하고 말았다. 쓸데없는 질문이지만 아주머니가 살짝 웃으며 답을 했다. "내가 때가 어디 있겠어. 그냥 여기에 있어야지." 아주머니는 담담한 목소리도 대답했다. 데가 없으세요?이왕 말이 나온 김에 나는 나갔다.

 

김회장과는 어떤 인연이 있기에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오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서울이라면 모를까 이런 외진 곳에서 사실상 친구 하나 없이 살면 외롭지 않는지도 물었다. 실제로 내가 이곳에 있는 거의 동안 아주머니는 번도 친구를 만나는 적도 없고, 심지어 혼자서 외출을 적도 딱히 없다. 아주 가끔 남동생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전화가 오긴 하지만 그조차도 그리 오랜 시간 동안 통화하는 같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주머니는 보통 사람들과 달리 딱히 친구도 가족도 없는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머니가 어떤 문제가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내가 동안 아주머니는 차분하고, 말씀도 하시고, 심지어 나이에 비해 외모도 좋은 편이다. 특히 공감능력이 좋아서 사람에 대한 배려심도 깊고 요리를 잘해서 어딜 가도 환영을 받을만한 분이다. 물론 먹고 살아야 하니 어딘가에서 일은 해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외진 곳에서 도를 닦는 스님처럼 그렇게 살아갈 필요는 없었다. 집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얼마든지 삶을 행복하게 즐기면서 살아갈 있는 분이었다.

 

"아주 예전에 남편이 회장님의 회사에서 일했었어. 인연이 여기까지 이어진 거지." 아주머니가 일단 과거형으로 대답했다. "그럼 남편 분은 지금 어디 있는데요?질문을 순간 살짝 굳어진 아주머니의 표정을 보고는 내가 과한 질문을 했음이 느껴졌다. "죄송해요. 제가 아무 생각 없는 소리를 했네요." 내가 죄송하다고 하자 아주머니는 괜찮다는 고개를 저었다.

 

" 얘기가 궁금해?" 나는 멋쩍게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하긴, 성범이 네가 이곳에 온지 년이 되어 가는데, 생각해 보니 내가 얘기를 번도 해준 적이 없네. 그런데 서운하게 생각은 하지 . 사실 아무한테도 말한 적이 없으니까." 아주머니는 말을 멈추고 잠시 뭐가를 생각했다. 오늘 이왕 말이 나왔으니 나도 한번쯤 얘기를 해보는 것도 괜찮을 같기도 하네." 스스로 괜찮다고는 했지만 때부터 아주머니의 표정에 명백한 변화가 느껴졌다. 평소보다 굳어지고, 진지해졌고 어두워졌다. 나는 분위기에 눌려 나도 모르게 침을 꼴딱 삼키면서 의자를 앞으로 당겨서 자세를 바로 잡았다.

 

 

아주머니의 남편 분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으로 김회장의 회사에 들어갔다. 그때만 해도 회사가 지금처럼 크지는 않았지만 젊고 희망이 넘치는 사람들이 모여서 미래의 성공을 꿈꾸며 아주 열심히 일을 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지금 시대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가질 않지만, 당시 남편 분은 매일 자청해서 야근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일을 했다고 한다.

 

작은 회사인지라 사장과 직원 사이가 격의가 없었고 그러다 보니 가족들끼리도 어느 정도 안면을 트고 지내는 사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젊은 시절의 김회장은 지금과는 달리 꽤나 괜찮은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런 와중에 아주머니와 남편 분은 사람을 모두 알고 있는 지인을 통해 소개를 받았고, 만난 서로 눈에 상대에게 반하고 말았다고 했다. "사람이 키도 크고 성실해 보이더라고. 그런데 돈이 너무 없었어. 그래서 솔직히 말해서 결혼을 할지 말지를 꽤나 고민을 것도 사실이야." 아주머니는 얘기를 하면서 오래 좋았던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는 밝게 웃었다.

 

그렇게 만난 사람은 바쁜 와중에서 시간을 쪼개서 데이트를 하면서 사랑을 키웠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그때만 해도 자신이 꽤나 예뻤었다고 하면서 다시 웃기도 했다. 지금 얼굴을 봐도 남아 있는 미모가 느껴졌으니 그냥 하는 말은 아닌 같았다. 아무튼 사람은 결국 결혼까지 했고 아이도 셋이나 낳았다. 시절이 누구나 그랬듯이 어렵고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하지 않은 삶이었지만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아이 키우는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인생에서 최고의 행복한 날들이 지나가고 있었어."

 

아주머니는 거기에서 잠시 말을 멈추고는 나에게 커피를 마실 것인지 물었다. 그래서 내가 먹겠다고 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나는 사실 아주머니가 갑자기 말을 멈춘 느낌을 받았지만 그냥 모른 가만히 있었다. 그저 커피를 내리기 위해서 물을 끓이고, 원두를 분쇄하고, 필터지를 접어 드리퍼에 넣고, 안에 갈은 커피를 넣고 뜨거운 물로 내리는 일련의 동작들을 기계처럼 하고 있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것은 평소와 전혀 다름이 없는 모습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뭔가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미세하게 다른 느낌이 났다. 도대체 무엇이 다른 것일까?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나는 그제야 무엇이 다른지를 알아낼 있었다. 그것은 바로 등을 돌린 어깨의 떨림이었다. 나처럼 신경 써서 보지 않으면 절대로 알아 없는 미묘한 떨림이었지만, 일단 그것이 눈에 들어오자 결코 내가 것이 아니란 확신이 들었다. 잠시 커피를 내린 아주머니는 잔의 컵에 가득 커피를 담아서 하나를 나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표정이 그리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저 커피 잔을 내민 손에서 작은 진동이 느껴졌을 뿐이다. "어쩌면 너무 행복했던 것일까?" 잠시 동안 커피만 마시고 있던 아주머니가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어느 남편이 오랜만에 휴가를 얻어서 아주머니네 가족은 함께 여름 여행을 떠날 있게 되었다. 동안 각자 사느라 바빠서 신혼여행 해만에 떠난 가족여행이었다. 사이 아이가 셋이나 태어나서 당연히 신혼여행과 같은 단출함은 느낄 없었지만, 2 3일이라는 짧은 일정에도 너무 기대가 되는 여행이었다. 목적지는 동해, 지금이야 워낙 곳이 다양하지만 그때만 해도 여름엔 바다를 가는 것이 진리였던 시절이라고 했다. 그들은 휴가철이라서 고속도로가 막히기도 해서 결국 6시간이 넘게 걸려 힘들게 동해의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그나마 숙소로 정한 민박집에서 저녁으로 시장에서 회를 사다가 푸짐하게 먹고 나니 겨우 휴가를 기분을 느낄 있었다. 하지만 다음 아주머니가 회를 먹었는지 탈이 났고 말았다. 토하고 설사를 하는, 흔한 장염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결국 주변 병원을 가서 진찰을 받고 약을 타서 먹고는 민박집에서 쉬어야 상황이 되고 말았다.

 

오랜만에 떠나 여행이 장염 때문에 망가지게 생긴 것이다. 그래서 아주머니는 남편에게 자신은 빼고 아이들 데리고라도 바닷가에 놀러 갔다 오라고 했다. 남편은 아픈 아내와 함께 있겠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아이들이 생전 번도 바다를 적이 없다는 말에 어쩔 없이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바닷가를 향해 차를 타고 출발을 했다. 그런데 그렇게 떠난 사람의 모습이 아주머니에게는 그들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 되고 말았다. 바다에 도착해서 신나게 놀고 돌아오던 사람은 오는 길에 술에 취해 운전 중이던 덤프트럭과 충돌을 하는 바람에 결국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사람들이 되고 것이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지금과 달라서 사고 신원 파악도 쉽게 되지 않았고, 겨우 신원 파악이 후에도 서울에 있는 집이 아닌 민박집에서 누워 있던 아주머니에게 소식이 제때 전해질 수가 없었다.

 

한편 아무 것도 모르는 아주머니는 저녁 시간이 지나도 남편과 아이가 돌아오지 않자 너무 걱정이 되어서 아픈 몸을 끌고 주변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결국 찾을 없어서 걱정과 불안함이 가득한 그날 밤을 눈으로 새고 말았다. 정말로 미칠 같은 기분이었어." 아주머니는 당시 감정이 떠오르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눈을 지그시 감고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미안해. 어떤 기억들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거든." 그녀는 나에게 괜한 사과를 했다.

 

아주머니가 남편과 아이들 소식을 들은 것은 다음 점심 부근이었다. 밤을 뜬눈으로 새운 아주머니는 근처 파출소와 병원 등을 모두 뒤지고 다니기 시작했는데 결국 마지막으로 찾은 경찰서에서 남편과 아이 사고 소식을 듣게 것이다. " 삶의 모든 것이 무너졌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히려 당시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어. 아마도 내가 기절을 해서 그랬던 같아." 나는 아주머니의 커플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너무 힘드시면 이상 말씀 하셔도 돼요." 나는 꽤나 걱정이 되었다. "아니야, 할만 .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그런데 지금 보니 나뿐만이 아니라 듣고 있는 사람도 많이 힘들 같네." 아주머니는 오히려 나를 걱정해줬다. 나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대답을 했다.

 

아주머니는 후로 삼일 동안 반복해서 정신을 잃었다고 되찾길 반복했다. 그리고 사이 장례 준비가 끝나 있었다. 아주머니에게 후로 일어난 모든 일들은 마치 꿈처럼 멍하게 그리고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아닌 오히려 남의 일처럼 무감각하게 흘러갔다. 끔찍한 사고로 인해서 너무 형편없이 망가진 남편과 아이의 몸은 수습하기도 힘들어서 시신 확인조차 하지 못한 그냥 화장을 해야 했고, 아주머니는 화장이 끝난 재를 담아서 가슴에 품고 서울 집까지 올라왔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때까지 눈물 방울도 났어." 하지만 그녀는 아무도 없는 자신의 집에 도착한 후에 터진 눈물은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울었다. 너무 많이 울어서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만큼 울었다. 아주머니는 자신을 걱정하던 부모님이 집에 오셔서 보살펴주지 않았다면 아마도 울다가 죽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달이 지나갔다. 사람들은 세월이 약이라고 하지만 아주머니에게는 세월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자신이 그날 장염에 걸리지만 않았어도, 자신을 두고 가기 싫다는 남편에게 아이들 데리고 다녀오라고 억지로 등만 떠밀지 않았어도, 처음부터 자신이 그때 바다를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면 남편과 아이들이 그렇게 떠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후회는 매일 아주머니를 숨도 쉬지 못할 만큼 무겁게 눌러왔다. 사는 죽는 것보다 힘들다는 말을 그때서야 처음으로 이해했다.

 

나는 거기까지 듣고는 사람은 모두 각자만의 이유로 고통스럽지만, 내가 죽을 경험했던 고통의 기억조차도 아주머니가 겪은 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갑자기 사랑했던 사람들을 한꺼번에 모두 잃는다는 , 과연 내가 그것을 버텨낼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어느 누구도 버티기 힘들 것이다. 그러니 아마도 스스로 목숨을 끊게 것이다. "어떻게 버티셨어요?" 나는 놓고 묻지는 못하고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자살을 하지 않고 버틸 있었느냐는 말을 돌려서 했다. 나라면 분명히 그랬을 테니까. 그러자 아주머니는 질문에 대한 대답 대신 갑자기 자신의 왼쪽 팔목을 살짝 걷어서 앞에 꺼내 보였다. 거기엔 세월이 많이 흘러서 희미해지긴 했지만 줄기로 그은 깊은 상흔이 보였다.

 

" 버텼지. 그래서 그었어. 그런데 무슨 명줄이 그리 긴지 살려 내더라고. 내가 걱정스러우니 계속 방을 들여다 부모님 때문에 살아났지. 그것 말고도 약도 먹었는데 그걸 토해내게 만들어서 살려내더라고.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나는 그때 아직 죽을 팔자가 아니었나 ." 아주머니는 그때 일을 마치 일처럼 말하면서 살짝 미소까지 지었다. 하지만 나는 아주머니의 손목에 일자로 새겨진 흉터를 순간부터 완전히 얼어붙어 버렸다. 아주머니의 말처럼 아무리 시간이 흘렀어도 결코 잊을 없는 것들이 있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지금 그런 힘들었던 시간들을 저렇게 담담하게 말하고 있다. 순간에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나였다. 나는 딱히 뭐라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이미 커피 잔만 입으로 가져다 대었다.

 

"죽으려고 해도 자꾸 살려내니 결국 죽지 못해서 살고 있었지. 그러던 어느 사람이 집으로 찾아왔더라고. 분이 바로 회장님의 사모님이셔. 어디에서 주소를 알아냈는지 몰라도 사고가 후에 정도 지나서 우리 집에 직접 찾아왔어." 아주머니는 그때부터 자신과 김회장 집안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사실 전에 사모님은 낳기 전에 가족 동반 회사 회식모임에서 다였어. 그런데 알지도 못하는 나에게 자신의 집에서 일을 해볼 생각이 없냐고 묻더라고. 너무 힘들 때는 오히려 밖에서 일을 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고 하면서. 그리고 사람은 갔지만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하더라고. 하지만 사실 나는 인연도 아닌 나에게 그런 제안을 해주는 사모님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긴 했지만 제안을 받아드릴 생각이 전혀 없었어. 매일같이 어떻게 하면 부모님 눈을 피해서 죽을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거든. 그래서 당연히 거절했지." 나는 속으로 김회장의 사모님이란 사람도 보통 사람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남편 회사에 일하다가 사고로 죽은 남자의 아내에게 찾아가서 일자리를 제안하다니... 적어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쨌든 어설픈 위로를 하기 보다는 그런 식으로 일자리 제안을 하는 것은 나름대로 현명한 판단인 같았다. 집에 처박혀 있다고 해서 슬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사모님의 말처럼 오히려 밖에 나와서 사람들과 어울려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조금씩 나아질 수도 있는 것이다. 분명히 좋은 의도였지만 당시의 아주머니에게는 완벽히 무의미한 제안이었다. 삶을 이어가는 자체가 무의미 했으니까.

 

"그런데 설득이 되니까 포기하고 집을 나서기 직전에 나에게 그러더라고. 그냥 당신이 지금 그렇게 살다가 죽고 나면 누가 떠난 그들을 기억해줄까요, 사람은 잊힐 진짜로 죽는 것이에요." 말하고 있는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당시의 감정이 선명하게 되살아나는 내가 느낄 정도로 제법 떨려 나왔다. 그리고 말을 듣고 있던 역시도 순간 머리를 망치로 엄청나게 강하게 얻어맞은 느낌을 받아야 했다.

 

" 말을 듣고 나니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 보였어. 전엔 기회만 되면 빨리 죽고 싶었는데 갑자기 죽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져 버리는 거야. 내가 죽고 나면 누가 남편과 준수, 진수, 진영이를 기억해주겠어. 막내 진영이는 그때 겨우 살이었는데. 누가 가여운 아이를 기억해 주겠냐고.. 너무도 불쌍한 딸을..."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아무리 담담한 해도 아이들을 떠올릴 때만큼은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둔 감정이 밀려 올라오고 있는 했다. 아주머니는 어쩔 없이 다시 말을 멈추고 말았다.

 

아주머니는 결국 마음을 고쳐먹고 김회장 집의 가사 도우미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집안에서 살림과 요리를 담당해 것이다. "원래 목숨이란 것이 그런 것인지 살아보니까 살아지더라고." 이야기가 거기에 다다르자 아주머니는 이제 안정이 되는 담담한 미소를 되찾으며 말했다. 하지만 불행한 일은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집에 들어간 아주머니는 5년도 되지 않아서 다시 슬픔을 맛봐야 했다. 그녀를 살게 해준 고마운 사모님이 암에 걸려서 6개월 만에 돌아가시고 것이다. 아직 세상을 떠나기엔 너무도 이른 나이에 일어난 허망한 죽음으로 인해서 김회장네 식구들뿐만이 아니라 아주머니 역시도 한참을 우울증에 빠져서 힘들어해야 했다. 그래도 그녀가 계속 버틸 있었던 힘은 바로 남편과 아이에 대한 기억, 자신이 오래 살아야 그들이 죽지 않을 있다는 말을 최선을 다해 지키고 싶다는 의무감 때문이었다.

 

후로 주변에서는 인물이 아깝다면서 재혼 자리도 제안이 오긴 했지만 모두 거절을 하고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오고 있다는 말로 이야기의 끝을 맺었다. 마지막 부분에 아주머니의 말투와 표정은 평소의 그것과 거의 다름이 없을 정도로 회복이 되었지만, 듣고 있던 나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아주머니의 말을 듣는 내내 답답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이해가 되질 않기도 했다. 그리고 듣고 후에도 모든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나를 휘감고 있었다. 삶이란 이렇게 심하게 잔인한 것일까?

 

"그래도 한번쯤 오랜 시간 동안 홀로 지내시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 생각은 없으셨어요? 그런 아픔을 마음에 품고 살아 삶을 제가 감히 상상하기도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을 행복하게 살아야 하잖아요." 답답한 나는 푸념하듯 말했다. "그런가?" 아주머니는 말에 살짝 웃었다. 그리고 다음 말을 이었다.

 

"내가 뭔가 많이 알아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닌데,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보니 삶이란 것이 내가 예전에 믿어 왔던 것처럼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가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누군가는 열심히 살아가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그저 살아지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그냥 살아있기만 해도 각자 충분하다고 생각해. 다들 주어진 속에서 뭔가를 이루려고 노력하고, 자신이 살아야 이유를 찾고, 자기만의 가치를 얻으려고 하지만, 사실 그렇게만 필요는 없을 같아. 사실 사는 것은 그냥 사는 것일 뿐이지. 운명이란 녀석은 언제나 우리들 머리 꼭대기에서 놀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어느 갑자기 나를 뒤흔들어 놀지 수가 없거든. 나에게 삶이란 마음속에 무엇과도 바꿀 없는 자신만의 소중한 것을 하나쯤 발견할 있다면, 그래서 죽을 때까지 그것을 놓치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나는 이미 그것을 가지고 있어. 비록 슬픈 일이지만, 남편과 소중한 아이들은 언제나 마음 속에서 살아 있으니까."

 

그냥 하는 말이라고는 하지만 듣고 보니 많은 것이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몸에서 냄새가 나기 전에 역시도 아주머니가 말한 그런 삶을 추구했던 같다. 명확한 목표는 없더라도 뭔가 이루고 싶었고, 세상에 존재를 증명하고 싶어 했고, 세상이 나를 알아주길 바랐다. 나만의 가치가 있는 것들을 이루려고 했고, 그것들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느낄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순간 처지와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내가 과거에 그런 삶을 살려고 했던 것이 얼마나 허망한 생각인지가 떠올랐다. "성범이 너는 아직 젊으니 소중한 것을 찾을 있는 기회는 언제든 있을 거야. 지금은 많이 힘들겠지만 언젠가는 너를 채워 사람을 만나서 너만의 삶을 그려 기회가 있을 거야." 그럴 있는 가능성 여부를 떠나서 틀린 말은 아니기에 나는 딱히 뭐라고 대꾸 말은 없었다. 나는 대신 이런 얘기까지 나온 김에 마저 그간 궁금해 했던 것을 하나를 묻고 싶어졌다.

 

"그런데 아주 예전부터 묻고 싶었던 질문이 하나 있는데..." 나는 말끝을 흐리며 살짝 눈치를 봤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웃으며 뭐냐고 물었다. "아주머니는 몸에서 냄새 나요?" 아주머니는 질문을 듣더니 일초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냄새가 많이 난다고 대답했다. 순간 질문을 내가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그러면 냄새가 역겹지 않아요?" 내가 다시 묻자 아주머니는 솔직히 견디기 힘들 정도로 역겨울 때도 있지만 참을 하다고 대답을 했다. "어떻게 참으세요?" 질문에 아주머니가 하고 웃었다.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가 아무리 심해도 이유가 결국 거기에 사람이 있으니까 나는 거잖아. 혼자 있으면 아무런 냄새도 나질 않아서 좋을 수도 있지만, 혼자 있는 것보다 고약한 냄새가 나더라도 옆에 사람이 있는 것이 나는 좋네."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갑자기 살짝 코끝이 찡해졌다.

 

"사람은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하는데, 나는 지금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수가 없어.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면 같아서 그래. 내가 즐겁고 행복하게 살면 먼저 떠난 사람들한테 너무 미안하잖아. 누군가는 이렇게 사는 나를 바보 같다고 수도 있지만, 그게 삶인데 어떻게 . 나는 그냥 정도의 삶이 나에겐 어울려. 하지만 나도 어쩔 없는 인간이라서 가끔 깊은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지." 거기까지 말한 아주머니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이미 차갑게 식은 커피를 모금 마시고 나서 나를 따뜻한 눈길로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런 순간에 누군가 옆에 있어 준다면, 딱히 뭔가를 해주는 것이 없더라도 그저 서로의 체온을 나눠줄 있다면, 그래서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이유로 떨고 있던 사람들이 자리에 모여 얼어 죽지는 않을 정도의 따뜻함을 공유할 있다면, 사실 냄새 같은 것들은 정말로 아무런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해.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냄새가 난다는 이유나, 외모가 추하다거나, 몸이 정상적이지 않다거나, 가난하거나, 재미가 없다거나 하는 이유로 멀리 한다면, 그것은 그저 아직 외로운 것일 뿐이지. 사람이 진짜로 외로우면 그런 것쯤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니어야 하거든." 아주머니는 거기까지 말을 마치고는 입을 다물었다. 순간부터 나는 이상 어떤 말도 없었다.

 

이미 비어서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곳으로부터 감당하기 힘든 뜨거운 어떤 것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몸으로 그리고 얼굴로 가득히 퍼져나갔다. 나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서 이를 악물어야 했다. 저렇게 힘든 삶을 살아 아주머니도 웃고 있는데 내가 이런 작은 위로로 우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다. 하지만 의지에 상관없이 눈은 붉게 충혈 되었고 입술이 바들바들 떨리는 것은 숨길 없었다. 나는 물을 먹고 싶다는 핑계를 대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싱크대 쪽으로 갔다. 나도 아까 아주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똑같은 모습으로 그렇게 등을 돌리고는 소리 나지 않게 흐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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