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에세이

김두삼씨 이야기 - 13

아이루다 2020. 2. 11. 07:25

 

 

13. 각연사

 

혜영은 떠났다. 내가 혜영에서 화를 냈던 그날 이후로는 우리 사이엔 뭔가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었다. 물론 벽은 혜영이 아닌 온전히 내가 만든 벽이었다. 결국 나는 혜영이 집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제대로 인사도 못한 데면데면하게 보내야 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벽으로 인해서 이별의 순간이 그리 힘들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만약 계속 감정의 변화를 그냥 두었다면 나는 아마도 혜영이 떠나는 것을 감당하기가 무척 힘들었을 지도 모른다. 원래 무언가에 실패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나 담담한 나와는 달리 장씨 아저씨는 딸과 헤어지는 것을 많이 힘들어 했다.

 

혜영이 타고 비행기 시간에 맞춰 공항에 도착하기 위해 새벽부터 서둘렀던 아저씨가 다시 혼자 집으로 돌아 시간은 점심시간을 살짝 넘긴 후였다. 그는 세상을 잃은 표정으로 어떤 의욕도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미리 김회장에게 전날부터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는 혜영이 떠나는 날엔 아예 바둑을 두지 않아도 되게 만들어 놓은 것은 나름대로 현명한 선택이었다. 나야 어떻게든 바둑을 있겠지만, 나를 도와줄 아저씨가 역할을 해낼지, 아니 그것을 해달라고 하기조차 조심스러웠다.

 

장씨 아저씨는 아주머니가 차려 늦은 점심을 먹다가 갑자기 펑펑 울었다. 식탁 위에 진미오징어 무침이 있었는데, 반찬을 혜영이 좋아했다는 이유였다. 이것 많이 챙겨서 보낼 하면서 울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아저씨는 지금 그저 핑계가 필요했을 뿐임을. 나와 아주머니는 다른 말없이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울어야 때는 울어야 하니까. 그래야 마음속에 남은 응어리들이 조금이라도 풀어지니까.

 

며칠이 지나도 장씨 아저씨는 여전히 시무룩했다. 예전 같으면 신나게 했을 텃밭 일도 별로 의욕이 없어 보였다. 하루 이틀은 그냥 넘어갔는데 일주일이 넘어가자 나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뭔가 조치가 필요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어느 텃밭의 잡초를 뽑다가 잠시 쉬는 틈을 노려서 장씨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딸과 헤어지는 것이 많이 힘든 것은 아는데, 사실 생각해보면 같이 있던 시간보다 헤어져 보낸 시간이 훨씬 길었던 아니냐고 물었다. 그런데 요즘 그렇게 유난히 힘들어 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저씨는 크게 한숨을 쉬더니 갑자기 이상한 말을 했다.

 

만나지 않고 살아도 만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달려갈 있는 곳에 있는 것과,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는 곳에 사는 것은 전혀 다르다고 했다.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그래서 나는 장씨 아저씨가 너무 슬퍼서 정신이 나갔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그럼 혜영이 이곳에 오기 전이나 떠난 후나 똑같아 미국에 있는 것이 아니냐고 면박을 줬다. 그러자 장씨 아저씨는 "그래도 그때는 한국이었제." 라고 혼잣말 하듯 중얼거렸다.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그래서 그러면 예전부터 이미 혜영이 미국이 아닌 한국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냐고 묻자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황당한 상황이 꽤나 어처구니없음을 느끼면서 그러면 동안 사실을 모른 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나를 잠시 빤히 바라보더니 너도 자식 낳아 보면 마음 것이라고 대꾸를 했다. 나는 속으로 사람이 뜬금없는 부모부심을 부리나 싶었다.

 

"부모란 존재는 말여 자식이 뻔한 거짓말을 하는 것을 알아도 모른 하는 벱이여."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하지만 순간 머리 속에 오래 기억 하나가 하고 튀어나왔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월급을 탔을 때였다. 나는 당시 지금과는 달리 꽤나 멀쩡한 삶을 살고 있었기에 월급으로 어머니에게 드릴 고급스러운 겨울 코트를 하나 사서 고향에 갔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선물을 드리자 무척 기뻐하셨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초등학교 참고서 산다고 거짓말을 하고 용돈을 타다 쓰던 내가 벌써 이렇게 자라서 이런 좋은 선물을 사왔다고 하면서 우시기도 했다. 아빠 없이 자란 아이라는 소리 듣게 하기가 싫어서 뭐든 해주려고 했지만 부족하게 키워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말을 듣고 나도 결국 울고 말았다. 당시 어머니 말을 듣고 보니 그제야 초등학교 시절에 거짓말을 했던 기억이 났다. 그때 나는 나름대로 어머니를 속였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어머니는 알고도 속아주셨던 것이다. 기억이 떠오르자 나는 갑자기 장씨 아저씨의 말이 달리 들렸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때부터 앞에 있는 장씨 아저씨가 달라 보였다. 나이만 먹었지 어린아이 같은 구석이 많았던 아저씨도 사실 자식의 거짓말을 모른 해주는 그런 부모였던 것이다.

 

결국 딸은 아빠 마음을 다치게 할까 거짓말을 하고, 아빠는 딸이 거짓말을 하는 것을 알면서도 애써 모른 것이다. 생각해보면 웃기는 집안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살짝 눈물이 났다. 뻔한 거짓말을 알고도 모른 속아 어머니가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어떻게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내가 묻자 장씨 아저씨는 아들에게서 들었다고 했다. 혜영이 아버지에겐 비밀로 했어도 자기 오빠에게는 말을 했던 모양이다. 내가 알기로 장씨 아저씨와 아들은 사이가 많이 좋지 않다. 그래서 예전에 장씨 아저씨가 아들과 통화 다투다가 그때 아들이 많이 화가 나서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때 아들은 당신이 그리 아끼는 혜영이에게 무후각증이란 유전적 결함을 전달해줘서 미래를 얼마나 제대로 망쳐놨는지 알고 있냐고 소리 질렀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도 그때 처음으로 자신이 무후각증임을 알게 되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내가 온다고 했을 별로 걱정을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마도 목숨보다도 소중한 딸의 미래를 망쳐놨다는 , 아마도 장씨 아저씨에게는 몸을 난자하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저씨는 고통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만 안은 살아온 것이다. 나는 순간만큼은 나에게 봄철 내내 일을 시켜먹고 있는 아저씨가 밉지 않았다. 물론 오래 가지는 않겠지만.

 

"그런데 아들이랑은 그렇게 사이가 나빠요?" 내가 묻자 장씨 아저씨는 한숨부터 쉬었다. 그러고 나서 자신의 젊은 시절이 문제라고 했다. 장씨 아저씨는 집에 정착하기 전까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집을 짓는 일을 했었는데, 그러다 보니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가 힘들었다. 더군다나 자신이 술을 좋아해서 잠시 시간이 때도 집에 가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밤새 술을 먹으면서 지냈다. 지금 생각하면 한심하기 그지없지만 그때는 그것이 그리 좋았다고 했다. 충분히 상상이 되었다. 장씨 아저씨는 그래서 지금도 이곳에 있지 않고 읍내에 따로 살고 있는 것이다. 일주일에 오래 친구들과 만나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 장씨 아저씨에게 어쩌면 유일한 삶의 낙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러던 어느 아내가 갑자기 쓰러졌고 아들이 다급하게 자신에게 연락을 해왔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날도 만취가 되어서 아내에게 가보지도 못한 것이다. 그렇게 쓰러진 아내는 결국 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오랜 시간 동안 투병 생활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장씨 아저씨는 그런 상황이 되자 오히려 아내의 곁에 있어주지 못했다. 투병 생활로 인한 병원비를 대려면 많은 돈을 벌었어야 했으니까. 그래서 그는 밤이고 낮이고 일만 했다. 하지만 아내의 병세는 끝내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병을 진단 받은 2 만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필요할 곁에 있어주지 못한 장씨 아저씨에 대해서 아들은 엄마의 죽음이 모두 아빠의 책임이라고 여기고는 그때부터 장씨 아저씨에게 마음의 벽을 만들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아빠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이해가 되면서도 되지 않았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 아들이 장씨 아저씨의 마음을 이해할 있는 날이 오기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하자 장씨 아저씨는 어둡고 흐릿한 미소만 지을 뿐을 뿐이었다. 그러고 나서 일어나 맥없이 걸으면서 이놈의 잡초는 뽑고 나서 돌아서면 난다고 하며 전혀 새롭지도 않은 불만을 투덜댔다.

 

시간은 무심히 흘러갔다. 사이 새롭게 생겨났던 기억들은 움직이고, 뭉쳐지고, 흩어지고, 희미해졌다. 그래서 어떤 것들은 정보의 방으로, 어떤 것들은 추억의 방으로, 어떤 것들은 망각의 방으로 분류되어 들어갔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하나는 요즘은 정보와 망각의 방보다는 추억의 방이 자주 이용되는 편이었다. 아마도 내가 조금은 행복해진 탓일 것이다.

 

시간이 흘러 6 어느 아침에 김회장이 이춘삼이 아닌 본인으로써 나를 찾았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서 약간 긴장을 상태로 방에 들어서자 평소보다도 훨씬 심각한 얼굴로 자신이 긴히 부탁할 것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긴장된 음성으로 뭐냐고 묻자, 자신은 몸이 좋지 않아서 움직일 없으니 대신해서 어디 다녀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쪽지 하나를 내밀었다. 꾸깃꾸깃한 종이엔 괴산, 각연사라고 적혀 있었다. 김회장은 그것에 내가 직접 가서 챙겨 물건이 있다고 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김회장은 이상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냥 가서 자신의 이름을 대고는 거기에서 주는 물건을 가져다주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궁금하긴 했지만 김회장의 표정을 보니 이상 뭔가 설명해줄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일단 알겠다고 하고는 등을 돌리는데 뒤에서 나를 불러 세웠다. 나는 나가려다가 어정쩡한 자세로 김회장을 돌아다보았다.

 

김회장은 물건을 가져올 절대로 내용을 봐서는 된다고 했다. 그리고 하나 자신이 오늘 일을 시킨 사실을 누구도 모르게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나는 일단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순간 잠시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김회장의 얼굴에서 이춘삼의 표정이 살짝 겹쳐지는 느껴졌다. 하지만 깜짝 놀라 다시 바라보자 그것은 착각이었다. 지금의 표정, 말투, 나를 대하는 태도, 그것은 정확히 김회장이었다. 나는 기계적으로 알겠다고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방문을 닫고 나오면서 생각할수록 방금 일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이런 멀리 움직이는 심부름은 내가 아닌 운전기사로 일하는 남상현이 해야 몫이었다. 그런데 김회장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따로 언질을 주면서까지 나에게 일을 비밀스럽게 시켰다. 도대체 그는 나에게 일을 시킨 것일까? 그리고 남들 모르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이런 저런 의문이 잔뜩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들어가 물어 수는 없었다.

 

괴산으로 출발하기 전에 나는 일단 장씨 아저씨를 찾아갔다. 김회장의 심부름을 하려면 일단 차가 필요했기에 반드시 장씨 아저씨의 도움이 필요했다. 원래 장씨 아저씨가 출퇴근에 이용하고 있는 차는 본인 소유의 것은 아니었다. 차는 원래 김회장 회사의 법인 차량으로 등록되어 있는 것이었고 그래서 차에 관련된 모든 일들, 그러니까 보험, 사고처리, 수리 등은 모두 회사에서 처리를 해주고 있는 차였다. 그런데도 장씨 아저씨는 내가 개인적인 용무가 있어서 차를 써야겠다고 하자 마치 자신의 차를 빌려주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그렇게 주인처럼 한참 위세를 떨더니 차에 대해서 한참 설명하다가 견디지 못한 내가 어머니가 아파서 빨리 가봐야 한다고 거짓 핑계를 대니 그제야 깜짝 놀라며 키를 넘겨주었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어머니에게 주라며 고추와 오이를 가득 담아다 주었다.

 

오랜만의 운전으로 제법 긴장을 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그리고 도착해서 보니 각연사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작은 규모였다. 하기야 내가 가본 절이라고는 경주에 있는 불국사와 속리산에 있는 법주사가 전부였으니까. 그에 비하면 각연사는 한참 아담한 느낌이 들었다.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대면서 보니 주차되어 있는 차는 도착한 차를 포함해서 대뿐이었다. 방문 중인 사람도 거의 없는 했다. 내가 풍수지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지만 조용하고 아늑한 느낌이 드는 것이 절터로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기는 따뜻했고 오랜만에 미세먼지도 없어서 맑기까지 했다. 내가 살고 있는 양평도 조용하기로 따지면 비슷했지만 이곳은 뭔가 다른 느낌이 났다. 양평은 아무 것도 없이 비어있어서 조용하다면 이곳은 뭔가로 많이 있으면서도 고요했다. 양평은 외로움이었고 이곳은 여유로움이었다. 분위기 탓인지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마음이 차분해졌다. 하지만 낯선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점은 얼마간 부담스럽긴 했다. 아무리 도를 닦는 스님들이라고 해도 몸에서 나는 냄새가 맡아지지 않는 것은 아닐 테니까. 하지만 나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결국 주지스님을 만나 김회장이 찾아오라는 물건을 찾아가야 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김회장에게만큼은 무척 중요한 것이 확실했다.

 

잠깐 걷자 안쪽까지 들어갈 있었다. 그렇게 안쪽으로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것은 절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건물들이 아니라 바로 누군가가 정갈하게 쓸어 놓은 흔적이 보이는 넓은 마당이었다. 흙바닥이고 단단해서 딱히 뭔가 더러운 것이 있을 같지도 않는 넓은 마당을, 누군가 아침부터 차분하게 쓸어 놓은 것이다. 빗자루에 쓸린 흔적이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오늘 내가 오는 것을 알고 쓸어 놓은 것은 분명히 아닐 테니 아마도 매일 아침마다 누군가 이렇게 쓸어 놓는 모양이었다. 이런 것도 스님들이 하는 마음수행 하나인 것일까? 나는 괜한 궁금했다. 그리고 마음 한편으로 그렇게 담백하게 쓸어 놓은 마당을 딛고 걸어가는 동안 뭔가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발자국으로 인해서 흔적들이 손상되는 여겨졌다. 하지만 그것도 어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최대한 흙을 밟지 않게 노력하면서 마당을 통과해 계단을 따라 올라서고 , 나는 주지스님이 어디 있는지 물어 볼만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잠시 주변을 살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젊은 남녀가 걷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머리도 깍지 않았고 옷도 멀쩡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구경을 하기 위해 외부에서 연인이나 부부인 듯싶었다.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서 보이지 않았지만 남자는 꽤나 키가 컸고 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있었고 옆에는 곱실거리는 파마를 여자가 밝은 꽃무늬가 새겨진 스커트를 입은 뭐라고 재잘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들 외에는 다른 사람이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물어봐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들도 나처럼 모를 같았다. 더군다나 내가 다가가면 그들은 몸에서 나는 냄새로 인해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 그래서 재빠르게 포기를 했다. 그리고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자 앞에 빨랫감인 듯한 바구니를 들고 가는 여자 분이 보였다. 그런데 분도 머리를 기르고 있어서 일단 스님은 아닌 같았다. 하지만 복장이 달랐다. 그녀는 스님들이 주로 입는 색상, 그러니까 연한 회색빛이 나는 옷을 위아래로 걸치고 있었다. 특히 요즘 사람들은 전혀 신지 않는 하얀 고무신이 이색적이었다. 그러니 아마도 어떤 식으로든 절과 관계된 사람이 분명했다. 나는 쭈뼛거리면서 사람에게 다가가 어느 정도 떨어진 상태에서 주지스님을 뵈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물었다. 그러자 생머리를 뒤쪽으로 질끈 묶은 여자 분은 그런 나를 보고는 약간 경계하는 표정으로 어색한 웃음과 함께 주지스님을 찾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대충 자초지종을 말해주었다. 그러자 분은 나에게 여기에서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안쪽으로 사라졌다가는 잠시 다른 사람과 함께 나타났다. 같이 사람은 머리가 반질반질한 진짜 스님이었다.

 

스님은 쪽으로 천천히 다가와서는 합장을 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손만 모으고는 그냥 꾸벅 하면서 목례를 하고 말았다. 스님은 나의 엉성한 인사에 잠시 웃음을 짓더니 이미 대충 사정을 들었다고 하면서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고는 앞서 걸어갔다. 나는 약간 거리를 두고는 사람의 뒤를 따라갔다. 건물들 채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자 거기에 상대적으로 아담한 건물 하나가 나타났다. 앞서 사람은 앞에 멈추더니 안에 있는 누군가를 불렀다. 그리고 잠시 방문이 열리고 나이가 훨씬 많이 들어 보이는 새로운 스님의 얼굴이 나타났다. 나를 안내 스님은 방문 안에 있는 노스님에게 공손하게 예를 표하더니 다가가서 나를 가리키면서 뭔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잠시 방에 있던 스님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쪽으로 바라보고 말을 했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힘이 있으면서도 정중한 말투였다. 나는 분위기에 눌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안쪽은 그리 좁지도 그리 넓지도 않았다. 사람이 있기엔 약간 보이고, 사람이 있기에 작아 보이는 그런 곳이었다. 아마도 앞에 있는 노스님이 쓰는 방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노스님은 방에 들어온 나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다. 나는 그제야 몸에선 나고 있는 냄새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김지영 회장님께서 보내셨다고요." 분명히 질문의 형태이지만 질문으로 들리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는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노스님은 대답으로 모든 확인이 끝난 시선을 밖으로 돌려 밖에 있는 스님에게 보관실에 가서 물건을 찾아오라는 말만 했다. 그러자 밖에 있던 스님은 알아들었다는 몸을 돌려 어디론가 사라졌고 여자 분도 그새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게 노스님과 이렇게 사람만 남았다. 잠시간 방안에 정적이 흘렀다. 스님은 나에게 차를 먹겠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노스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물을 끓였다. 그런데 전기포트였다. 절과 전기포트라... 특히 차를 끓이는 용도로 전기포트를 쓰는 것은 뭔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자 노스님은 맑게 웃으시면서 "절도 시대에 따라서 살아가야 합니다." 라고 한마디 했다. 나는 별것도 아닌 말에 괜히 웃음이 났다. 그렇게 한번 웃고 나자 마음 구석에 있던 불안함과 긴장감이 어느 정도 사라지는 같았다. 웃어서 그런지 노스님이 편하게 해줘서 그런지 딱히 구분할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잠시 기다리세요. 워낙 오래된 물건이라 찾기가 쉽지가 않을 것입니다." 노스님은 그렇게 말하고는 찻잔에 이름도 모를 진한 녹색 빛깔의 풀잎들 각각 개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사이 끓은 물을 주전자에 옮긴 천천히 따랐다. 그러자 마른 잎들이 퍼지면서 약간 노란 빛깔의 색이 우려져 나왔다. "흔한 녹차입니다만, 한번 드셔 보세요." 노스님은 찻물이 어느 정도 우러나자 찻잔을 쪽으로 밀어 주었다. 나는 앞에 놓인 작은 찻잔을 도대체 어떻게 먹어야 할지 잠시 고민을 했다. 그냥 들고 마시는 것은 뭔가 예의에 어긋날 같았다. 그러자 노스님은 어떻게 마음 갈등을 알아챘는지 차는 그저 자신이 편하게 마시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어른들과 술을 마실 때처럼 손엔 찻잔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찻잔을 받혔다. 그리고 고개를 우측으로 살짝 돌려서 들이켰다. 그런데 엄청 뜨거웠다. 나는 순간적으로 입에 들어 뜨거운 찻물을 뱉고 싶었지만 그러면 같아서 억지로 물고 있었다. 그리고 사이 천정을 데이고 말았다. 나는 아무래도 이런 절에서 주는 차와는 맞는 사람인 같았다. 그리고 순간만큼은 많이 뜨겁다고 미리 말을 해준 노스님에게 약간의 배신감을 느꼈다.

 

"그런데 김회장님과는 무슨 관계이신지요?" 노스님이 물었다. 그래서 나는 단순하게 간병인이라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노스님은 약간 놀라며 김회장님이 많이 아프냐고 다시 물었다. 나도 건강 상태는 모르지만 그냥 뇌에 작은 종양들이 생기는 문제 때문에 하던 일을 모두 내려놓고 지금은 양평의 별장에서 요양 중이라고만 대답을 했다. 그러자 노스님은 잠시 시선을 밖으로 옮겨서 펼쳐진 산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모습을 보고도 지금 앞에 있는 노스님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가 궁금했다. 그러면서 나는 천정이 까져서 껍질이 벗겨지는 바람에 혀를 놀려서 그것을 떼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성공 직전에 노스님이 말을 다시 이어가서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노스님은 자신이 김회장을 것이 벌써 25 전이라고 말했다. 당시 자신은 지금보다는 젊었고 각연사의 주지스님은 자신이 아닌 지금은 열반하신 지봉이란 법명을 가지신 분이 맡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김회장과 사이에 맺어져 있는 인연에 대해서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김회장은 지금까지도 매년 절에 꽤나 많은 시주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도 김회장을 알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김회장 본인은 원래 불교를 전혀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맞는 말이다. 내가 있는 동안에도 김회장이 절에 대한 이야기나 불교에 관한 이야기를 번도 적이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김회장은 이곳에 시주를 하는 것일까? 내가 질문을 하기도 전에 노스님은 사정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이유는 바로 돌아가신 사모님 때문이었다. 사모님의 고향이 이곳 괴산이라서 이곳을 떠나 서울로 가기 전까지는 매주 자신의 어머니를 따라서 절에 오곤 했었다고 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서울에 가서도 고향에 때마다 빠짐없이 절에 들르곤 했다. 그러다가 결국 김회장과 결혼을 하게 되면서 지봉스님과 김회장과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노스님은 그때부터 김회장과 지봉스님이 처음 만난 장면을 설명했는데 듣고 보니 특이하긴 했다.

 

" 당시 젊었던 사모님은 결혼을 남자를 정하자 지봉스님에게 소개를 해주고 싶다고 하면서 김회장을 데려 왔지요. 그래서 분이 서로 만났는데, 그때 지봉스님이 김회장을 보더니 뭔가를 느끼시는 했습니다. 사실 저는 많이 부족한 존재입니다만, 스승님이셨던 지봉스님은 남다른 도력을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단지 워낙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이런 작은 절에 주지로 마무리하셨지만, 마음만 먹으면 종계에 영향력을 행사하셨을 있는 분이셨어요. 아무튼 그런 분이었기에 김회장을 보고는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어떤 기운을 느끼신 모양이에요. 그래서 그때 직접 두삼이라는 호를 지어서 내려주셨어요. 제가 알기로 그런 일은 처음 있었던 일이었죠."

 

웃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두삼이란 호에 관해서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김회장은 그렇게 호에 꽂힌 것일까? 나는 호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 물었지만 노스님은 거기까지는 자신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아무튼 지봉스님은 당시 주변 사람들을 물리고 김회장과 시간 가량 독대를 했는데, 무슨 얘기를 주고 받았는지는 당사자들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김회장이 떠난 노트에 뭔가를 적어서 밀봉을 놓고는 언젠가 김회장이 노트를 찾으러 오면 건네주라는 당부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노트에 적힌 내용도 누구도 적이 없었다고 했다. 듣고 보니 호기심이 생겼다. 도대체 무슨 말을 했으며 노트엔 도대체 무엇이 적혀 있는 것일까? 지봉스님이란 사람은 김회장을 보고는 무엇을 것일까? 사주팔자나 관상 그리고 무슨 전생 같은 것을 것일까? 그래서 나는 도력이 높으신 스님은 다른 사람들의 전생도 있냐고 물었다. 내가 묻자 노스님은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냐는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이해를 하고는 자신은 모르지만 지봉스님 정도의 단계 도달한 분들은 그런 능력을 갖췄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다시 정말로 전생이 있는 것이냐고 물으려고 하는 도중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주지스님, 가져왔습니다." 아까 사라졌던 스님이 다시 나타나서 공손하게 말을 했다. 그의 손에는 오래되어 보이는 보자기에 쌓인 물건이 들려져 있었다. 노스님은 직접 일어나서 스님이 가져 물건을 받아 들었다. 외형만으로 보기엔 그냥 책같이 보였다. 오래되어 보이긴 했는데 보관을 잘했는지 딱히 손상된 부분은 없어 보였다. "김회장님에게 가져다 물건이 바로 안에 있는 노트입니다." 노스님은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건을 건넸다. 겉을 싸고 있는 천은 불화가 그려진 것으로 손에 닿으니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아시겠지만 절대로 내용을 보시면 됩니다. 김회장 본인만 봐야 하는 것이에요." 노스님은 지금까지의 나에게 말했던 부드러운 음성과 달리 다소 엄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일단은 노스님의 분위기에 눌려 즉시 절대로 보지 않겠다고 확실하게 대답을 했다. 하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내가 받은 물건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은 점점 커져만 가고 있었다.

 

"그럼 조심해서 가세요. 인연이 있으면 만날 겝니다." 나는 노스님의 작별 인사를 받으며 물건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 있던 스님은 신발을 신은 나에게 입구까지 배웅해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스님과 나는 천천히 같이 경내를 걸어서 바깥쪽으로 나왔다. 나는 문득 옆에 걷고 있는 스님에 대한 궁금증을 느꼈다. 머리를 깎고 있어서 쉽게 나이가 짐작되지는 않았지만, 대충 봐서 또래이거나 혹은 어린 나이인 보였다. 이리도 젊은 나이에 세속의 욕망과 거리를 두는 스님이 되었는지, 스님이 되면 과연 무엇을 얻고 싶은지 궁금했다. 스님들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머리를 깎고 이런 속에서 살아가는 것일까? 나처럼 몸에서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닐 텐데... 하지만 섣불리 그런 질문을 수는 없었다. 결국 눈치를 살피며 곁눈질로 힐긋힐긋 보았다.

 

"제가 중이 되었는지 궁금하신가봅니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뻔히 보이는 짓을 같았다. 속마음을 들킨 나는 괜히 민망해져서 애써 고개를 돌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사실 그런 질문 많이 받거든요. 그런데 어쩌죠? 뭔가 그럴만한 이유를 말씀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그저 남들보다 조금 삶의 본질이 궁금했을 뿐이었죠. 그래서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일단 대답을 듣긴 했지만 무슨 소리인지 이해는 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하고 말았다.

 

"여기 마당은 누가 쓰나요?" 내가 물었다. "막내가 쓸지요. 원래 어딜 가나 짬밥에 밀리면 하는 것입니다." 스님이 대답했다. "스님들도 짬밥이 있나요?" 내가 다시 물었다. "있지요. 인간이 사는 세상은 모두 똑같습니다. 우리와 같은 중으로 사는 인생이나 저기 걷고 있는 다정한 연인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지요." 스님은 아직도 내를 돌아다니고 있는 남녀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답을 했다. "혹시 스님이 것을 후회한 적은 없으세요? 저런 연인들 보면 사실 부럽잖아요." 내가 물었다. "후회한 적이 있지요. 이렇게 머리 깎고 산속에서 중으로 살아가려면 저런 예쁜 여자를 만날 없으니 후회가 되기도 합니다." 스님이 웃으면서 답을 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웃음이 너무 맑아서 방금 말이 진심인지 농담인지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대화가 거기에 이를 쯤에 우리는 그만 헤어질 곳에 도착했다. 차를 타고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핸들을 틀면서 출발하는데 멀리 나와 같이 스님이 젊은 남녀 사진을 찍어주는 광경에 눈에 들어왔다. 낯선 광경이면서도 보기가 좋았다. 각자 가는 길을 서로 달라도 나나 스님이나 연인들 모두 사실은 똑같은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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