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2019년 12월 31일

아이루다 2019. 12. 31. 09:04

 

 

오늘 아침 눈을 떠보니 새벽 5 45분이다. 사실 자발적으로 눈을 뜬 것이 아니라 아내가 자고 있는 나를 깨웠다. 그리고 아마도 아내는 한참 전인 5시쯤 깨었을 것이다.

 

우리 부부는 요즘 대충 5시 반쯤 눈을 뜬다. 아내가 아침마다 회사에서 영어 공부를 한다고 해서 평균적으로 일어나는 시간이 그렇게 빨라져 버렸다!

 

딱히 출근할 곳도 없는 내가 아침에 그리 일찍 일어나는 것은, 일단 일찍 자니 일찍 깨는 것이기도 하고, 오늘처럼 일어나기 힘든데도 억지로 일어나는 것은 아침에 출근하는 힘든 아내에게 따뜻한 커피 한잔을 내려주기 위해서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 자상한 남편이다. 지난 3년 동안 매일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어제는 아내가 회사 회식이라서 늦게 집에 왔다. 집에 도착한 것이 거의 11시이고 자기 위해서 준비를 하고 나면 12시가 다 되었다. 그러니 오늘 아침 5시 반쯤 깨는 것은 잠이 한참 부족한 상태이다.

 

나야 아내가 출근하면 좀 더 잘 수 있지만 동지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은 깜깜하고 더군다나 오늘처럼 많이 추운 밖을 나서는 아내의 뒷모습은 조금 안쓰럽다. 물론 아내는 오늘 반차를 내서 오전만 근무하기 때문에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내일은 쉰다. 그러니 괜찮을 것 같긴 하다.


 

연말이면 한 해를 마무리 하는 글을 한 편 정도 쓰는 편인데, 올해는 마지막 날까지 몰렸다. 사실 딱히 쓰고 싶은 것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그럼에도 그냥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로그의 글을 하나 채우는 것도 요즘은 좀 부담스러운지라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사실 나에게 있어서 올해처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해도 없었다. 그러니 쓸 것도 없는 것이다.

 

올 초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의 변화는 거의 없다. 그나마 올해 일어난 일을 적으라면, 새로운 독서모임에 참가하게 된 일, 열심히 땅을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한 일, 이 두 가지 정도 일 것이다. 그 외엔 육체가 조금 더 늙은 것 말고는 똑같다.

 

단지 내 머리 속에서 일어난 변화만큼은 내 삶 중에서 가장 드라마틱 한 것 같긴 하다. 내가 느끼기에 나는 올해 1년 동안 조금 다른 사람이 된 듯 하다.

 

무엇이 변했는지를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냥 그 증상으로는 참 많이 행복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확실한 증상 하나는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왔던 지루함이란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는지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일어나긴 했다.

 

아무튼 그 덕분에 사람들과의 만남을 제법 즐기게 되었다요즘은 사람들과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겁다. 옛날엔 즐겁지만 힘든 일이었는데 지금은 즐겁기만 하다. 그리고 그런 만남의 시간들 속에서 딱히 상처를 주거나 받는 일도, 더해서 딱히 뭔가 마음에 남는 일도 거의 없다.

 

만남은 언제나 즐겁지만 헤어지면 곧 잊혀진다.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본다. 나와 경쟁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 모두 나와 같이 무거운 삶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잘난 척을 하는 것도, 못된 짓을 하는 것도,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도, 웃기려는 것도, 돈을 쓰는 것도, 남의 험담을 하는 것도, 누군가를 칭찬하는 것도, 부러워 하는 것도, 은근히 자랑을 하는 것도, 오래된 추억을 말하는 것도, 여행이 얼마나 좋았는지 말하는 것도, 맛난 집을 소개해주는 것도, 친구와의 갈등을 말하는 것도, 남편과 싸운 얘기를 말하는 것도, 아이가 공부를 잘 했다고 말하는 것도 다 마찬가지다.

 

비록 무의식적이긴 하지만 다들 살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를 본다. 나를 느낀다. 나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들은 모두 나의 거울이다.

 

딱히 따질 것도 없고, 막을 것도 없으며, 반박할 것도 없다. 그리고 결국 남길 것도 없다. 내가 그러고 싶듯이 그들도 그러고 싶은 것이다. 다들 이유를 말하긴 하지만 원래부터 딱히 이유가 있을 필요가 없었던 것들이다. 거기에 옳고 그름이 있을 필요가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해 듣고 같이 슬퍼해주고, 웃어주고, 좋아해주면 된다. 그것이 삶이다.

 

이렇게 삶이 단순해지니 꽤나 편하다. 꼭 해야 할 일이 없어지니 자유롭다. 당장 하고 싶은 일이 없어도 괜찮다. 삶이 불안하지 않다.

 

아마도 나의 나머지 삶은 올해 얻은 변화가 점점 더 또렷해지는 형태로 채워질 듯 하다. 그래서 올해보다도 내년이 좀 더 행복해질 것 같다. 그러면 된 것이다.

 

내년 이 맘쯤에도 이 블로그의 글을 여전히 쓰고 있을까? 아마도 그럴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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