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인과 연

아이루다 2019. 10. 18. 07:31

 

가끔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보면 '인과율' 이란 용어가 나온다. 궁금해서 따로 찾아보니 나름대로 철학용어인 듯 보인다. 위키백과에는 인과율을 '어떤 상태(원인)에서 다른 상태(결과)가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경우의 법칙성을 일컫는다'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 이해하기 어려운 말은 아니다.

 

세상은 원래 늘 원인에 의해서 결과가 생겨나는 것이니까. 그런데 그것에 법칙성이 있다?

 

,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법칙성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모른다면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규칙을 전혀 알 수 없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 때 그것이 필연이 아닌 우연으로 밖에 보이질 않게 된다. 어떤 것이 만들어지는 규칙이 너무 복잡하면 그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어서 결국 무작위성이 높아지고 만다. 그야말로 난수가 되는 것이다.

 

그냥 보기에도 너무도 잘 어울리고 행복해 보이는 한 쌍의 부부가 사실은 각자 바람을 피우고 있을 수도 있고, 누가 봐도 흉악스럽게 생긴 어떤 사람이 남몰래 불우한 이웃을 도울 수도 있다. 그런 일들이 이상하다는 말이 아니라 결과만 보면 도대체 원인과 어떤 연관이 있기에 그런 결과들이 생겨나는 것인가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잘 어울리게 보이는 부부가 잘 살고, 착하게 생긴 사람이 착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성공하는 세상이라면 법칙성은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도대체 그 법칙성이 무엇인지 알 방법이 없다.

 

누군가는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고, 누군가는 땅을 파다가 금덩이를 발견한다. 누군가는 평생 불운만 반복되고, 누군가는 평생 행운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불운이 겹친 사람들은 평생 불행하게 살다가 삶을 마치고, 잦은 행운이 깃든 사람은 평생 행복하게 살다가 삶을 마친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보면 삶은 너무 과하게 형평성이 어긋나 보인다.(죽음이라는 공정한 결과만 빼면)

 

실제로 예쁜 외모, 돈 많은 집, 좋은 머리, 많은 재주를 타고나서 평생 밝고 에너지 넘치게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 못난 외모, 가난한 집구석, 그럭저럭한 머리, 둔한 몸을 타고 나서 평생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살다가 가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중간에 어중간하게 끼어서 나름대로 즐겁거나 상대적으로 허덕이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현실이 이러니 인과율의 법칙성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정말로 있는 것은 맞을까?

 

불교에서도 '인연생기' 라는 용어가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날 때는 그것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 과 간접적인 원인이 되는 ''이 작용하여 최종적으로 어떤 결과가 만들어진다는 이론이다. 대략 인과율과 비슷하다.

 

씨앗이 밭에서 자라 싹을 틔우는 과정에서 씨앗은 '' 이 되고, 씨앗이 발아되기 위한 토양, , 태양 등은 ''의 작용을 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 인 채소나 열매가 생겨난다.

 

그리고 이 용어가 보통 사람들의 삶에서 인연이란 말로 통칭이 된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인 우리는 이 인연이란 말을 불교식으로 해석하지는 않는다. 그냥 어떤 대상과 어떤 형태로든 이어져서 연결이 된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운명의 상대라고 부를 정도로 좋은 인연이 있고 반대로 악연이라고 부르는 나쁜 인연도 존재한다.




 

나이를 어느 정도 먹고 생각을 해보면 현재 자신의 주변 사람들과의 만남, 특히나 아주 특별한 사람과의 인연이 시작되는 시점을 생각해보면 참 우연도 그런 우연이 없다.

 

그날 비가 오지 않아서 갑작스럽게 그 커피가게를 들어가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할 운명, 우연히 고등학교 시절 짝꿍이 되지 않았더라면 얽히지 못할 운명, 첫 번째 지원한 회사에서 떨어지지만 않았어도 만나지 못할 운명이 있다반대로 그날 밤에 운전만 하지 않았어도 얽힐 일이 없는 악연그 모임에 나가지만 않았어도 피할 수 있었던 악연, 사람을 보는 눈이 조금만 있었어도 절대로 결혼하지 않았을 악연이 있을 것이다.

 

태어난 곳이나 자란 환경은 고사하고 삶을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수 많은 사람들 중에서 누군가는 운명처럼 만나 삶을 함께하고 누군가는 악연이 되어서 서로 죽이기도 한다.

 

이 세상이 인과율에 따른 법칙성에 의해 유지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법칙성을 전혀 모르기에 가끔은 그렇게 맺어지는 인연들이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두 가지 생각이 든다. 이것들은 이미 예정되어 있던 것일까? 아니면 온전히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일까? 그런데 이 둘은 전혀 반대지만 그것들이 가진 의미는 동일하다.

 

운명론처럼 모든 것이 다 정해져 있다면 마음은 편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맥이 빠진다.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도대체 내가 무엇을 노력할 수 있을 것인가? 반대로 모든 것이 우연히 이뤄지는 것이라면 이 또한 내가 노력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노력해봐야 결국 우연으로 결정되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나의 노력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까? 정말로 노력이라는 것을 해야 할까? 내 주변의 모든 인연들과 처음 맺어질 때 내가 노력한 것은 무엇일까? 비가 오게 만들었을까? 짝꿍이 되게 했을까? 첫 번째 회사 면접에서 실수를 하게 만들었을까?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노력을 해야 한다고 느낀다. 왜 그럴까? 아마도 불안해서 그럴 것이다. 그나마 노력이라도 하고 있지 않으면 올 수 있는 인연도 오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나이를 제법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즘도 가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어떨 때는 좋은 인연으로 맺어지기도 하고, 맺어질 듯 하다가 멀어지기도 하고, 처음부터 맺어질 기미조차 없기도 하다.

 

내 마음 속에서는 언제나 가능하면 많은 좋은 인연들을 맺고자 하는 마음이 있지만 그것이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인과율의 법칙을 전혀 모르기에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도 힘들다. 그럼에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지금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는 여전히 나와 좋은 인연으로 맺어질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란 희망이다. 그래서 나중에 시골에 집을 짓고 살아갈 때 가끔 한번씩 그곳을 찾아와 하루 정도를 보내고 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다. 물론 반드시 먹을 것은 본인들이 챙겨와야 할 것이다. 특히 고기는 그래야 할 것이다.

 

너무 자주 보면 일상이 되니 대략 분기당 한번쯤이나 보면 좋을 것이다. 더 나이를 먹어서 몸이 힘들어지면 반년에 한번, 일년에 한번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어떤 인연도 결국 이별을 있을 것이고, 그 이별의 순간에 서로 당신을 만나서 참 다행이오, 라고 서로 따뜻한 미소를 지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앞으로 인과율의 법칙이 어떻게 작용해서 나에게 어떤 인연들이 맺어지게 될지 모르지만 좋은 인연을 만나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그리 무리한 욕심은 아닌 것 같다.

 

살짝 기대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살만한 세상인 것 같기도 하다.

 

 

 


'소소한 이야기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9년 12월 31일  (0) 2019.12.31
김장 담구기  (0) 2019.11.25
나의 자유로움  (0) 2019.09.16
주말에 뭐했니?  (0) 2019.08.16
말의 수위  (0) 2019.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