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아이루다 2019. 7. 4. 08:40







봄이 오면 연두색 여린 잎을 피우고, 여름이 오면 진한 초록빛으로 거칠 것 없는 햇빛을 가린다.

그 덕에 나는 잠깐 그늘에 있다.

가을이 오면 노랗게 물들어 눈을 즐겁게 하고, 겨울이 오면 가진 잎을 다 떨구어

드러난 여린 가지들 사이로 부드러운 햇살을 내려 보내준다.

그 덕에 나는 작은 따스함을 즐긴다.

너는 어찌 그리 내 마음을 잘 아느냐.

 

내 숨에서 나와 너의 숨으로 들어간다. 너의 숨에서 나와 내 숨으로 들어온다.

나는 안다, 그것이 각자의 욕망임을.

그럼에도 내가 너를 살리고, 네가 나를 살린다.

너는 다음 생엔 사람으로 태어나거라.

평생 움직이고 싶었지만 결국 죽어서야 동강이가 난 채 움직일 네가 가엽다.

나는 다음 생엔 나무로 태어나겠다.

평생 머물 곳을 원했지만 결국 죽어서 뼛가루가 되어서야 정착할 내가 가엽다.

다음 생이 만나면 내가 너에게 그늘이 되고, 내가 너에게 노란 빛깔을 주고, 햇살을 줄 것이다.

그때도 나는 나를 위해 살겠지만, 그리고 너도 너를 위해 살겠지만, 우리는 함께 살아갈 것이다.

지날 때 한번쯤 아는 척 해주려무나. 아무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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