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행복론 - 1

아이루다 2019. 1. 3. 11:42


그 동안 행복에 대해서 많은 글들을 써왔고,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입장에서, 다양한 상황에서 그것을 바라보려고 의도했었다. 그런데 글을 쓰고 나면 언제나 그 내용이 단편적인 관점에 머물 수 밖에 없음을 한계점으로 느끼기도 했다.

 

아마도 글이란 도구가 가진 한계이며, 논리의 한계이며, 그 무엇보다도 사고능력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어떤 것에 대해서 정말로 깊은 이해를 통해 설명을 하려면 입체적 사고방식이 필요한데, 개인적으로 그런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번쯤은 행복에 대해서 최대한 다각적이고 다양한 관점의 해석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은 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그것을 한번 시도해 볼 생각이다. 그렇지만 자신은 없다. 그래서 이 글이 완성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쓰다가 포기할 수도 있겠지만, 새해를 맞이 했으니 핑계 삼아서 한번쯤 해보려고 한다.

 

행복에 대한 이해의 시작은 그 반대편에 있는 불행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하려고 한다. 불행을 먼저 이해를 함으로써 행복을 이해하는 것을 그나마 좀 덜 단편적으로 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이후 몇 가지 질문들이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들의 답을 찾는 과정에서 행복에 대한 최대한 포괄적 이해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결국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시작해보자.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

 

사람을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첫 번째는 단연코 건강하지 못한 것이다. 건강은 행복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 즉 생존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이 있어서 그렇다. 건강하지 못하면 죽을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진실이다.

 

두 번째는 돈이 될 것이다물론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것은 정말로 돈이 없어 본 적이 없어서 그럴 것이다. 그리고 더욱 더 심각한 상황은 돈이 없는 수준을 넘어서서 빚을 지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우엔 오히려 건강을 잃는 것보다 더욱 더 불행해질지도 모른다.

 

돈이 없다면 먹지도 못하고, 잘 곳도 구하기 힘들다. 또한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래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든 삶을 살게 된다. 그러니 돈이 없을 경우 감당해야 할 불행은 정말로 실제로 그런 경험을 했을 때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후는 각자 사람들에 따라서 답이 갈릴 수 있기에, 그냥 나열하는 식으로 써보겠다.

 

세 번째는 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들면 사는 것이 힘들고, 불행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관계는 건강이나 돈처럼 필수 항목은 아니다. 그래서 힘들다면 모두 다 끊고 산속에서 홀로 살아도 된다하지만 그런 삶이 불행하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행복하기도 힘들다. 사실상 삶이라고 부르기도 힘들다.

 

네 번째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삶이다. 이것은 아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데, 결국 스스로 자신이 필요하고, 소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라는 평가를 내릴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기에 아주 심각한 수준의 소외감과 자괴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자살하는 이유는 오히려 이것이 되기도 한다.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자살 이유이다.

 

다섯 번째는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는 상태이다. 뭔가 즐겁고, 뭔가 열정적이고, 뭔가 끌리고, 뭔가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이다. 물론 꼭 불행하다고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불행해질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될수록 삶은 침몰하고 결국 우울해질 수 밖에 없어서 그렇다.

 

사람은 처음부터 희망의 존재이다.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믿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내일을 더 낫게 하기 위해서 희망, 소망, 욕망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바로 열정과 집중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지 못할 경우 미래가 불안해지고 두려워질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우울해진다.

 

그 종류는 무엇이든 상관이 없다. 건강을 위해서 운동에 빠지든, 돈을 버는 일에 빠지든, 관계에 빠지든, 가치 있는 삶에 빠지든, 다양한 취미 생활에 빠지든, 연예인에 빠지든, 스포츠에 빠지든, 쇼핑이나 여행과 같은 것들에 빠지든 그 목적은 똑같다. 바로 삶의 활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기대로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사는 것이다.

 

이것들 말고도 여러 가지가 더 있을 수 있지만, 대략 이것만 어느 정도 해결하고 나면 불행한 삶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다.


#기준점의 문제#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그리고 그 문제는 불행과 행복 사이를 오가는 데 있어서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그것은 바로 '어느 정도 해결' 이란 표현이다. 도대체 어느 정도란 정말로 어느 정도를 의미하는 것일까?

 

건강, 얼마나 건강해야 하는 것일까? 아프더라도 어느 정도 아파야 하는 것일까? , 마찬가지다. 오히려 건강보다 훨씬 더 혼란스럽다. 도대체 얼마나 돈이 있어야 어느 정도 해결된 상황일 것일까? 관계, 주변의 인정, 어떤 것들에 대한 열정의 정도 등등 그것이 무엇이든 '어느 정도'를 넘어 선 것이라고 판단 할 수 있을까?

 

어떤 면에서 보면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그것에 대한 기준점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건강을 타고 태어나서 감기 한번 안 걸리는 몸을 타고 태어났어도 운동 신경이 둔해서 그것이 불만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너무 심약하게 태어나서 하루라도 안 아프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느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도대체 어떤 기준에서 이것들이 정해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 사람들이 그것을 정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 단순히 생각해보면 다를 것도 없어야 한다. 다들 한끼 먹는 식사량이 정해져 있고, 다들 잘 수 있는 시간도 정해져 있다. 다들 하루 동안 일상 생활에 필요한 칼로리도 거의 비슷하고소비하는 공기의 양도 비슷하다. 체격에 따라서 체질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는 나겠지만, 기본적으로 차이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나마 뚱뚱하면 더 많이 필요하긴 한데, 누가 더 많은 것이 필요해지려고 뚱뚱해지려고 하겠는가?

 

그런데도 왜 그렇게 각자 그 조건을 만족시키는 수준이 다른 것일까? 그것도 아주 크게 다른 것일까? 누군가는 1억의 돈만 있어도 충분히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느끼지만 누군가는 100억의 돈도 부족하다고 느껴서 더 많이 벌지 못하는 것을 불행하다고 인식하게 될까?

 

누군가는 단 한 사람만 자신을 인정해줘도 충분히 만족하는 반면 누군가는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자신을 바라봐 주길 바라는 것일까? 누군가는 하고 싶은 일이 하나만 있어도 그것으로 평생 동안 충분히 행복한 반면, 누군가는 하고 싶은 일을 조금만 집중해서 해도 금세 질리고 불행해져서 또 다시 새로운 것들을 찾아 헤매는 것일까?


#기준점이 정해지는 원리#

 

만약 이 질문들의 답을 찾을 수 있다면, 그래서 그 조건들이 왜 그렇게 정해지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면 결국 행복에 대한 근원적인 이해가 가능하지도 않을까? 그래서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일단 그 조건 자체는 사람마다 서로 달라도 한 사람에게만큼은 어느 정도 고정되었다고 가정해보자. , 돈 만큼은 10억이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는 것이다이러 식으로 불행을 극복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특정 조건들이 명확히 정해져 있을 경우, 그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을 목표로 해서 삶의 방향을 잘 정해서 노력하면 결국 10억이라는 목표에 도착할 수 있기에 행복해질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 행복은 단순히 목표 설정, 목표로 향하는 제대로 된 방향 그리고 이어지는 충분한 노력, 이 세 가지가 잘 이뤄지면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많은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는 이 세 가지 중 하나가 미흡한 것이다.

 

목표를 제대로 설정하지 못했거나, 목표로 향하는 방향이 잘못되었거나,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기에 불행해진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 것일까?

 

불행한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나 행복하지 않는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그저 이런 이유들뿐일까?

 

다들 매일 행복하기 위해서 각자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고 사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그저 목표의 부재, 방향성의 틀림, 노력 부족 같은 것으로 인해서 불행해지고 만 것일까?

 

물론 어떤 면에서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새로운 문제점이 발견된다. 그것은 바로 왜 최초에 10억이 목표가 되었느냐에 대한 문제이다.

 

10억일까? 왜 연봉 1억일까? 40평 집일까? 처음부터 그랬을까?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10억을 모으는 것이 삶의 목표였을까?




 

결국 잘 생각해보면 그 목표는 나이에 따라 자신의 처지에 따라서 끝없이 변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불행과 행복을 결정하는 조건에 관련된 가장 큰 문제는 결국 목표 그 자체가 되고 만다. 아무리 목표지점에 다가가려고 해도 목표 그 자체가 점점 더 멀어지고 있으니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을 두고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고 하기도 하는데, 뭐 결국 같은 말이다.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고, 자고 싶으면 이불을 덥고 싶은 것이 사람이다.

 

이런 식으로 건강해지면 탄탄한 몸매를 갖고 싶고, 집은 클수록 좋고, 사람과 친해지면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주변에 받는 인정은 최고의 수준이 되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이 있더라도 어느 정도 이뤘다 싶으면 더 큰 목표를 가지려고 한다. 그래서 동남아 여행을 다녀온 사람은 유럽 여행을 다녀오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된다.

 

처음엔 어떤 모임에 들어가면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기도 한다. 눈치도 보고 착하게 굴기도 한다. 하지만 친해지고 나면 그곳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그 누구도 그러지 않은 사람이 없다.

 

단지 할 수 없으니 포기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질투심은 여전하다. 혹은 제일 잘난 사람과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한다. 일등은 못해도 일등 주변에 머무는 것이다. 그것이 싫거나 못하는 사람은 비주류가 된 채 주류를 비판하면서 살아간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같은 과정을 거친다. 처음엔 꼴등을 하다가 시간이 지나 중간으로 올라서면 그 다음엔 일등이 목표가 된다. 단지 뱀 머리에서 머물 것인지 용 꼬리가 되어서 또 다시 용 머리를 노릴지 정도의 차이만 있다.

 

모든 목표는 능력이 되는 한 끝없이 높아지게 된다. 심지어는 자신의 능력과 상관없이 높아진다. 그래서 결국 불행을 극복하고 행복으로 가는 길에 필요한 조건들은 점점 더 욕망화 되어 간다. 그리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그 조건까지 필요한가 싶을 정도로 높아지고 만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의 난이도를 스스로 높여버린 것이다. , 자신이 불행을 만든 것이 된다.


#감사함과 당연함#

 

이런 과정 속에서 사람들이 얻는 것은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당연함이고, 잃은 것은 자신이 가진 것들에 대한 감사함이다. , 최초의 감사함은 지속적으로 당연함으로 변해가게 된다.

 

목표가 한 단계 높아질 때마다 가진 것들은 당연한 것들이 되고 만다. 32평 집에 처음 이사했을 때 그리 행복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당연한 것이 되고 어느 날 40평이 목표가 되는 순간 좁고 불편한 집이 된다. 당연하다 못해 불만의 대상이 되고 만 것이다.

 

대학에 입학 한 후 1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자신이 합격했던 순간의 가슴 벅찬 감정은 사라지고 대학 타이틀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첫 직장에서 첫 월급을 받았을 때 행복은 1년만 지나도 너무 작다는 불만의 대상이 되고 만다.

 

누군가의 친절은 처음엔 기분이 좋다가 그 사람이 어느 날 조금이라도 친절하지 못하면 바로 불만의 대상이 된다. 친절한 사람의 그런 친절함이 너무도 당연해져서 그렇다.

 

누구도 알아보지 못한 무명 배우의 처음 꿈은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봐주고 사인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크게 성공한 후에 처음엔 그런 관심들이 행복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사인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귀찮아지고 만다. 그러다가 누군가 하나라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고 느낀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보는 것이 너무도 당연해져서 그렇다.

 

처음엔 그렇게 하고 싶어했던 일들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덜 재미있어 진다. 그리고 심지어 지루해지기까지 한다. 처음에 느꼈던 그런 감정들은 모두 사라지고 그렇게 변한다. 심지어 사랑조차도 그렇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라는 말도 있지만, 사랑은 분명히 변한다. 손끝만 다도 짜릿했던 관계는 어느새 서로 발가벗고 있어도 아무런 감정이 생겨나지 않는 사이로 변하고 만다. 상대의 벗은 모습이 당연해졌기에 그렇다.

 

'당연함과 감사함', 결국 이 두 단어가 불행과 행복의 열쇠가 된다.

 

사실 행복에 관한 조건이나 목표가 사람들마다 그리 다양한 이유도 바로 이것이 원인이다. 사람마다 필요한 조건이 다른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가진 것들 중에서 무엇을 당연하게 여기고, 무엇을 감사하게 여기고 사는지에 관한 차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런 가정이 가능하다. 동일한 조건 하에서라도 언제든 불행해지고 언제든 행복해지는 것이 가능하다는 가정이다. 그러니 가진 것을 딱히 늘리지 않고도 아무런 변화 없이 마음가짐 하나만으로도 언제든 행복해질 수 있다. 자신이 이미 가진 것들을 최대한 감사하게 여길 수 있다면 별다른 노력 없이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것이 말처럼 쉽게 된다면 이 세상 누가 불행하게 살겠는가? 다들 행복하게 살 것이다. 알아도, 그것이 되지 않으니 그리 힘들게들 살아가는 것이다.


[다음 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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