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에세이

2. 여왕을 만나다

아이루다 2018. 10. 11. 08:02

 

사실 두 번째였다. 일개미 #3470가 여왕님과 만나는 것은 말이다. 하지만 그는 마치 오늘이 마치 처음으로 여왕님을 만나는 날처럼 느껴졌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처음 여왕님을 만난 것은 알에서 깨어난 후 겨우 하루가 지난 후였기에 그랬다. 그 뿐만이 아니라 모든 개미들은 알에서 깨어난 후 여왕을 만난다. 그것은 여왕을 보는 대면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절차인 셈이다. 그러니 태어난 개미들이 그 순간을 기억하느냐 마느냐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사실 일개미 #3470은 자신이 그때 여왕님을 만났다는 것 조차도 한참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러니 오늘 처음으로 여왕을 만나는 것을 앞두고 마음이 떨리는 것도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이쪽으로 쭉 들어가게. 일개미 #3470"

 

계속 자신을 안내해주던 궁정 개미가 멈춰 선 후 앞쪽을 가리켰다. 그는 궁정의 일을 총괄하는 자신조차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여왕의 포궁엔 들어갈 수 없다는 부연 설명까지 해주고는 뒤로 돌아서 온 길로 되돌아 나갔다.

 

일개미 #3470가 앞두고 있는 장소는 포궁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여왕이 알을 낳는, 그러니까 개미 왕국의 모든 존재가 태어나는 곳이었다. 물론 최초엔 모두 알의 형태이기에 태어났다는 표현은 좀 그렇지만, 아무튼 모든 개미가 포궁에서 만들어져서는 알방으로 옮겨져 거기에서 부화를 한 후 태어나게 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래서 포궁은 개미 왕국 내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경계가 삼엄한 장소였다. 그러다 보니 그 누구도 특별한 용무가 있지 않는 한 들어갈 수 없는 곳이기도 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가고 있는 일개미 #3470의 눈에 비친 포궁을 향한 통로는 뭔가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 일단 일반 개미들이 다니는 통로처럼 구부러진 형태가 아니라 반듯하게 뻗은 직진 형태로 되어 있었고, 원래 개미들의 통로는 그저 마주 오던 개미들이 서로 엉키지 않을 정도의 크기로만 만드는데 반해서 포궁의 통로는 그보다 훨씬 더 높고 넓게 구성되어 있었다.

 

어느 정도 걸어가자 앞쪽으로 포궁의 입구로 보이는 문이 보였고 그 앞에는 양쪽으로 어떤 커다란 존재들이 눈에 들어왔다. 일개미 #3470는 그 순간 그들이 수호 개미라고 불리는 존재들임을 기억해냈다.

 

수호 개미들은 일반 개미들과는 달리 그 누구보다도 강력한 턱을 가지고 있었는데, 듣기로는 자르는 것을 전문적으로 하는 잘개미들보다도 훨씬 더 강하고 힘이 세다고 한다. 태어난 개미들 중에서 특별히 큰 몸통과 힘을 가진 개미들만을 모아서 따로 전문적인 훈련을 시킨 후 경호 업무만 맡는다는 소문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일반 개미들 사이에서는 전혀 볼 수가 없는 존재들이기도 했다. 또한 길을 잃고 포궁에 접근하려고 한 일개미를 순식간에 두 동강이 냈다는, 믿기는 힘들지만 꽤나 공포스러운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일개미 #3470가 실제로 그들의 모습을 보자 그 소문이 그저 과장된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그들의 몸집은 일개미 #3470의 족히 세 배는 되어 보였고, 자신에게 그리 높고 넓게 느껴지던 통로 조차 그들에게는 좁아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그들의 위압감은 일개미 #3470으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두 더듬이를 서로 비비도록 만들었다. 그것은 겁을 먹을 때 그가 하는 버릇 중 하나였다.

 

그것은 상상으로 인해 만들어 진 순수한 두려움이었다. 직접 그들의 실체를 확인한 일개미 #3470는 상대가 언제든 자신을 두 동강 낼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지금 그 두려움을 넘어서야 하는 절실한 뭔가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자신의 머리 속을 가득 채운 의문을 풀어야 한다는, 그래서 반드시 여왕님을 만나야 한다는 내부에서 올라오는 끝없는 욕망이었다. 그 욕망이 그를 뒷걸음질 치지 않도록 해주고 있었다.

 

수호 개미들은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자신들 몸 크기의 반도 안 되는 빈약한 일개미를 무표정한 얼굴로 그저 바라 보고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만약 상대가 허가되지 않은 접근을 시도했다면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재빠르게 두 동강이 낼 것이 분명했다.

 

".. 오늘 여왕님을 뵙기로 한.. 일개미 #3470입니다"

 

일개미 #3470의 목소리는 떨려 나왔지만 그래도 궁정 개미에게 미리 교육받은 대로 자신의 방문에 대해서 설명했다.

 

"일개미 #3470."

 

양쪽에 서 있는 수호 개미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자신의 이름을 반복했다.

 

".."

 

"오늘 허가된 출입이다. 들어가라."

 

역시나 둘은 동시에 대답을 했다. 그리고는 바로 시선을 돌려 포궁으로 들어오는 유일한 통로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아무도 없는 공간에 누군가 존재하는 듯 말이다.

 

일개미 #3470는 이미 허가가 된 일이기에 통과를 하는 것이 매우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통과가 허용되자 '긴장감이 풀리면서 여섯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러면서도 이들이라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여왕님을 지켜줄 것이란 신뢰 같은 것이 느껴졌다.

 

수호 개미들의 허락이 끝나자 그들 뒤쪽에 있는 문이 열렸다. 일개미 #3470는 잠시 멈춰 서서 심호홉을 하고는 그 안으로 들어섰다. 거기부터는 이제 정말로 포궁이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안쪽에 들어선 일개미 #3470을 가장 놀라게 한 것은 그 크기였다. 천정은 그 끝이 어디일지도 모르게 높았고, 멀리 경계선이 보이기도 했지만, 포궁 전체 넓이가 한 눈에 가늠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리고 벽면은 다른 개미들의 숙소처럼 흙으로 되어 있었지만, 깊은 땅속임에도 불구하고 아늑한 느낌이 들고 습도나 온도가 모두 적절하게 느껴졌다. 일개미 #3470는 그 순간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잊고 평소 자신이 기거하는 토굴과는 달리 이 깊은 굴을 어떻게 이렇게 적절한 습도와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지 그 비결이 궁금할 지경이었다.

 

"일개미 #3470인가요?"

 

한참 낯선 공간에 빠져 있을 때 갑자기 낯설지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왕이 나타난 것이 분명했다. 일개미 #3470가 시선을 돌려 목소리가 들려 온 방향을 바라봤을 때는 자신의 몸보다 최소 두어 배는 더 커 보이는, 하지만 수호 개미처럼 결코 위압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자신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왜 제 이름을 아시나요?"

 

어떻게도 아니고, 왜라고 물었다. 일개미 #3470는 말을 내뱉고 난 순간 자신이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당황해서 말을 이었다.

 

", 그게 그것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도저히 믿기질 않아서.."

 

"당연히 알죠. 내가 낳은 아이인데."

 

여왕은 어쩔 줄 몰라 하는 일개미 #3470에게 따뜻하게 답을 해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한 마디가 일개미 #3470의 마음 속에 최초의 흔들림을 만들어내었다그리고 그 흔들림은 점점 더 커져서 일개미 #3470는 금새 그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알아준다는 것이 이토록 커다란 파문을 일으킬 수 있음을 그는 오늘 처음으로 경험하는 중이었다.

 

"감사합니다."

 

감정이 어느 정도 잦아들자 일개미 #3470는 여왕에게 감사함을 표현했다. 그 스스로도 여왕이 자신의 이름을 알아줘서 감사한 것인지, 여왕이 자신을 만나줘서 감사한 것인지를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그냥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

 

"낯선 장소라서 긴장이 많이 되죠? 사실 누구나 그래요."

 

여왕은 약간의 웃음을 담은 채 그를 다독여줬다.

 

"그래도 저는.."

 

"괜찮아요. 그나저나 오늘 여기에 온 이유에 대해서나 말해보도록 할까요?"

 

여왕은 부드럽게 일개미 #3470에게 부탁을 했고, 그는 그제서야 자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떠올랏다갑자기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 그것 말이죠.."

 

"시간은 충분하니까 천천히 차분하게 말해봐요."

 

일개미 #3470 설명에 앞서서 크게 심호흡을 한 후 자신이 일주일 전에 일개미 #2999에게 했던 질문들을 여왕 앞에서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말한 것을 정리하면 지금 자신이 태어나서 살아가는 목적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는 뜻이지요?"

 

", 그 질문들이 한번 떠오른 후, 저는 그 어떤 다른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어요."

 

"저런, 어려운 질문을 갖게 되었군요."

 

여왕은 알듯 말듯한 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제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기도 해요."

 

"그래도 좋은 일이에요."

 

"뭐가요?"

 

"당연히 그런 질문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에요."

 

"?"

 

"나도 한때는 그런 질문을 품고 있었던 적이 있었거든요."

 

"여왕님도요?"

 

일개미 #3470의 목소리는 자신도 모르게 크게 터져 나왔다. 주변 동료 개미들 모두가 관심이 없는 주제였다. 지난 일주일간 다른 개미들과 자신이 떠올린 질문에 대해서 대화를 해보려고 했으나, 그들의 태도는 모두 일개미 #2999보다도 더욱 더 무관심할 뿐이었다. 심지어는 정신 나간 녀석이라는 소리까지 들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눈 앞에 있는 여왕이 자신과 같은 궁금증을 품었던 적이 있었다니, 그가 놀랄 만 했다.

 

"그래요. 꽤나 오래 전 과거이긴 하지만, 분명히 그랬던 적이 있었죠."

 

여왕은 잠시 아련한 표정을 지으면서 답을 했다. 아마도 그녀의 어느 시절이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나요?"

 

"어떻게 한 것이 궁금해요? 아니면 답을 찾았는지가 궁금해요?"

 

이번엔 여왕이 씽긋 웃으며 물었다.

 

".. 둘 모두 궁금하긴 해요하지만 둘 중에서 선택하라면 어떻게 한 것이 더 궁금해요."

 

"답이 아니고요?"

 

", 어떻게 했는지 만 알면 제 스스로도 답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흐음.. 참 좋은 태도를 가지고 있군요."

 

여왕은 한껏 다정한 미소로 일개미 #3470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러면 혹시 그것에 대해서 말씀 해줄 수 있나요?"

 

"나도 정말로 말해주고 싶어요. 할 수만 있다면 말이에요. 하지만 할 수가 없네요."

 

"왜요?"

 

"질문을 품었지만, 그 답을 찾으려고 하기도 전에 선택을 했어야 했거든요."

 

"어떤 선택이요?"

 

여왕은 대답 대신 일개미 #3470를 잠시 동안 바라보기만 했다.

 

"생각해봐요. 그 질문을 떠올린 내가 무슨 행동을 했을지."

 

".. 아마도 주변 개미들에게 물어봤겠죠. 저처럼 말이에요."

 

", 맞아요. 그리고?"

 

"혹시.."

 

", 그래요. 나 역시도 나의 여왕님을 만났어요."

 

"? 그럼 여왕님도 여왕님이 있었어요?"

 

"당연하죠. 나 역시 태어난 존재니까요."

"듣기로는 여왕님은 우리랑은 완전히 다른 존재라고 하던데.."

 

"일개미들 사이에 그런 소문이 돌고 있다는 것은 알아요. 하지만 나 역시 평범한 개미이며, 다른 개미들보다 좀 더 오래 살 뿐, 영생을 하거나 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에요나를 낳아주신 여왕님이 있었고요. 생각해보니 그 분은 지금쯤은 당신의 삶을 끝냈을 것 같네요."

 

말을 마치는 여왕의 목소리에는 갑자기 슬픔이 묻어 나왔다. 아니 일개미 #3470가 그렇게 느꼈다.

 

"그렇군요."

 

일개미 #3470는 따로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나저나 여왕이 영생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에게 또 다른 고민거리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만약 여왕만이라도 영생을 한다면 그나마 자신들이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삶은 영원히 이어지는 후대를 위한 사다리가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하지만 그녀마저 한정된 시간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면, 결국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 개미 왕국 역시도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 아닌가?

 

"아무튼 나 역시 나의 여왕님을 만나 질문자로써 그분을 뵈었죠. 하지만 어떤 제대로 된 답을 듣기도 전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입장에 놓이고 말았어요."

 

일개미 #3470는 이어지는 여왕의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든 생각에서 빠져 나왔다.

 

"어떤 선택이요?"

 

"그것은 바로 내가 품었던 질문의 답을 찾는 길을 갈 것인지, 아니면 여왕이 되어서 나만의 왕국을 만들어 갈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이었죠."

 

", 그러면 그때 여왕이 되기로 선택을 한 것이었나요?"

 

"결론적으로는 그렇죠. 당시 나의 여왕님은 나이가 많았고 그래서 남은 삶이 그리 많지 않은 분이었어요. 나이가 많은 만큼 현명하신 분이었지만, 나이가 많은 만큼 두려움도 큰 분이셨죠. 그래서 그 분은 내가 여왕의 길을 가길 바랬어요. 나는 그 분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죠. 또한 나만의 왕국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도 그런 결정을 하는데 있어서 큰 몫을 했고요."

 

"그러셨군요."

 

"그래도 아예 아무런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적어도 그 답을 찾기 위해서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들었으니까요. 그러니까 해보지는 못했어도 방법은 들은 셈이죠."

 

", 그러면 적어도 저에게 '어떻게' 에 대한 답은 해주실 수 있는 것이네요."

 

", 맞아요. 그래서 그런지 저는 지금도 가끔 그 길을 갔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하곤 한답니다. 물론 그런 선택을 했다면 지금의 왕국은 존재하지 않았겠지만, 그리고 나의 수 많은 사랑스러운 아이들도 없었겠지만, 그래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들곤 해요."

 

"잘은 모르겠지만, 여왕님의 마음이 조금은 느껴져요."

 

"그래서 그런데,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해준다면, 그 길을 가볼 생각이 있어요? 그것이 아무리 힘든 여정이라고 해도?"

 

여왕은 진지하게 물었다.

 

", 정말로 그 답을 찾고 싶거든요."

 

일개미 #3470 역시 단호하게 대답했다.

 

"다행이에요. 내 아이들 중에 단 하나라도 그런 질문을 품은 존재가 있어서 말이에요."

 

여왕은 만족스러운 듯한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었다.

 

"사실 방법은 단순해요."

 

"뭔데요?"

 

"이곳을 떠나는 것이죠. 개미 굴을 떠나서 더 넓은 세상에 나가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세상 속에서 삶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에요. 그것이 나의 여왕님이 나에게 알려준 방법이었어요."

 


"?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요?"

 

", 맞아요그것은 매우 위험하고 생존 그 자체를 보장하기 힘든 것이지만, 그 길이 아니면 답을 찾을 수 없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이곳을 떠나는 것은.."

 

"왜요? 겁이 나요?"


".. 솔직히 말하면 그렇네요. 개미가 홀로 밖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알고 있으니까요. 더군다나 곧 겨울이 다가온다고 들었는데.."

 

"그것은 떠올리기만 해도 많이 두렵죠.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떠나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자신이 가진 가장 큰 두려움을 마주하는 것이라고 들었어요."


"자신이 가진 가장 큰 두려움과 마주해야 한다고요?"


"네, 맞아요. 그때가 되었을 때 비로소 진실이 보일 것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우리들 개미들에게 있어서 그 두려움의 순간은 바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그곳을 떠나는 것이죠. 하지만 나의 경우엔 두 가지 선택지 모두가 그것이었어요. 존재의 의미를 찾아 떠나는 것도, 여왕이 되어서 나만의 왕국을 만드는 것도 모두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을 떠나야 한다는 의미였으니까요."

 

"그러셨군요."


일개미 #3470는 어쩐지 여왕의 선택이 자신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당시 여왕이 감당해야 했던 두려움의 크기가 매우 무겁게 느껴졌다. 더군다나 그것을 선택을 해야 할 처지라면 더욱 더 그랬을 것이다. 선택은 언제나 책임과 후회를 만들어 내니까 말이다. 그것은 또 다른 두려움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라는 단어의 본질은 오히려 두려움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기를 떠나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아니니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선택을 하세요. 질문을 품은 채 평생을 여기에서 살든가, 그 답을 찾기 위해서 위험한 세상 속으로 나가든가, 사실 그 어떤 선택을 해도 상관은 없어요. 그 둘 모두 각자 의미가 있으니까요. 단지 그 의미를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만 차이가 있을 뿐."

 


여왕이 무엇을 말하는지 충분히 이해는 했지만, 일개미 #3470는 딱히 뭐라고 답할 것이 없었다.

 

"선택은 오직 스스로의 몫이에요. 나는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다 해준 듯 하네요. 둘 중 어떤 선택을 하고, 그 결과가 어떻게 주어지더라도 일단 선택한 후에는 절대로 후회를 하거나 자책은 하지 말아요. 삶은 원래 그런 것이니까요."

 

".."

 

일개미 #3470는 들릴 듯 말듯한 작은 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럼 나는 이만 돌아가 볼게요. 늦으면 알 도우미 개미들이 또 뭐라고 하니까요. 그럼 잘 가요. 그리고.."

 

여왕은 몸을 돌리다가 잠시 멈추고는 뜸을 들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혹시나, 정말로 혹시나 답을 찾을 수 있었다면, 그때는 꼭 다시 한번 더 나를 찾아줘요."

 

여왕은 마지막 말을 마치고는 커다란 몸을 돌려 포궁 안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홀로 남은 일개미 #3470는 포궁의 바깥 문이 열리고 수호 개미들이 들어와 그를 붙잡고 나갈 때까지 그 안에서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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