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가치 딜레마

아이루다 2018. 7. 28. 08:49

 

장기 이식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몇 달 이내로 장기 이식을 받지 못하면 결국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비슷하게 이식을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 생명엔 지장은 없지만 그래도 이식을 받게 되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각막이나 신장 이식 등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그러다 보니 운 없이 건강했던 삶을 마감한 한 젊은이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 생명을 주거나 혹은 삶의 질을 훨씬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줄 수 있게 된다.

 

누군가는 죽음을 코 앞에서 두고 되살아날 수 있고, 누군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자 이런 위험한 생각이 하나 든다. 만약 멀쩡한 젊은이 하나만 희생한다면 최소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이 아주 커다란 혜택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그것이 더 나은 것이 아닐까?

 

당신은 그런 논리로 멀쩡한 사람을 하나 죽여서 여러 명의 목숨을 구할 것인가?

 

다른 예를 하나 더 보자.

 

기차가 선로를 따라 달리고 있다. 그리고 기차가 달리고 있는 선로는 앞쪽에서 두 가지 갈래로 나뉘는데, 한쪽은 다섯 명이 작업을 하고 있고, 다른 쪽에는 한 명이 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기차가 오고 있음을 전혀 모르는 상황이다.

 

기차를 운전하고 있는 기관사 역시도 앞쪽 상황을 전혀 모르기에 당연히 브레이크를 잡지 않을 것이고, 그대로 가면 기차는 다섯 명이 일하는 쪽 방향으로 향하게 되어서 결국 다섯 명이 목숨을 잃을 처지이다.

 

그런데 당신은 지금 그 선로가 갈라지는 지점에 서 있고, 양쪽 상황을 모두 파악을 한 상황이며당신 앞에는 즉시 선로를 바꿀 수 있는 레버가 있다.

 

만약 그 레버를 당기면 기차는 다섯 명이 일하는 쪽이 아니라 한 명이 일하는 쪽으로 가게 된다. , 다섯 명이 죽을 상황을 한 명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레버를 당길 것인가?

 

이 두 가지 예는 공리주의에 대한 설명을 할 때 자주 쓰이는, 선택의 딜레마에 대한 예이다. 그리고 공리주의는 기본적으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대표적 표현으로 잘 알려져 있는 사상이다.

 

그리고 지금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공리주의에 입각한 많은 사회적 결정이 내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당연하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최대한 행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결정이야말로 어떤 면에서는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사실 민주주의조차 기본적으로 다수결의 원칙이 아닌가?

 

하지만 민주주의나 공리주의가 가진 문제는 명백하다.

 

민주주의의 다수결은 반드시 소수 의견에 대한 권리 침해가 일어날 수 있는 위험성이 존재한다. 전체 모두를 위한 정책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 또한 공리주의만 추종하다가 보면 앞의 예처럼 아주 이상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은 숫자의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한 명이 희생해야 하는 상황 말이다.

 

물론 목숨이란 극단적인 대상을 가지고 예를 든 것이지만,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이런 일은 생각보다 매우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그 문제들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어떤 관점에서 볼 때 그나마 제일 나은 것일까?

 

인간의 본질은 감정이지만, 인간은 이성이란 능력을 통해 최대한 감정적인 면을 제거한 채 이성적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노력하면서 살아간다. 특히나 그 결정이 사회적으로 합의를 내야 할 대상이라면 더욱 더 그렇다.

 

사실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예를 온전히 감정적으로만 보면 딱히 고민할 필요가 없다. 여러 사람이 죽음 앞에서 고통 받는 것도 가슴이 아프지만, 그것을 위해서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도 가슴이 아프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살인이라면 더욱 더 그렇다.

 

철로 위의 다섯 명이 목숨을 잃는 것도 슬픔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명의 목숨이 사라지는 것이 슬프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만약 각각의 상황을 그저 감정적으로만 판단한다면 결국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채 끝나게 될 것이다. 각자의 대상마다 고유한 감정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이성은 전혀 다르게 동작된다. 감정적 측면에서 보면 모두 각각이 고유하고 분리된 대상이지만, 이성의 측면에서 보면 전체가 다 이어진 하나의 대상으로 바뀐다.

 

사실 앞의 두 가지 예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성적인 관점에서도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하지만 만약 부상당한 전우를 데리고 적에게 쫓기고 있는 부대원들의 입장이라면 어떨까?

 

적진에서 도망쳐서 아군의 진영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한 명의 부상으로 인해서 전체의 이동 속도가 느려져서 결국 모두 죽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말이다. 이때는 부대원들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전우를 버릴 수는 없으니 같이 가다가 결국 모두 몰살 될 것인가? 아니면 마음이 아프더라도 다른 부대원들을 안전하게 살리기 위해서 부상당한 대원을 두고 갈 것인가?

 

이런 경우를 오직 감정적으로만 결정하게 되면 결국 마찬가지로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부상당한 대원을 이끌고 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성적 판단을 하게 되면 어느 정도까지는 노력하겠지만, 상황상 더 이상 안되겠다는 판단이 드는 순간 결국엔 부상당한 대원을 두고 가는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다.

 

혹은 부상 당한 대원이 스스로 먼저 목숨을 끊거나 아니면 자신이 남겠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예들은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사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그것이 목숨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주 곤란한 선택을 해야 할 경우가 종종 있다.

 

고부 갈등의 중간에 끼어 있는 남편이 엄마의 말을 들으면 아내가 화를 내고, 아내의 말을 들으면 엄마가 화를 내는 상황에서 혼란스러워 하는 경우, 몇 달 전부터 잡아 놓은 같이 놀러 가기로 한 약속과 출발하는 날 아침에 연락 온 친구 아버지의 부고 소식 사이에서 고민하는 경우, 회사의 상사가 시킨 부정한 일을 하자니 찜찜하고, 하지 않자니 상사와의 갈등이 생길 것 같아서 고민하는 경우 등등이 바로 다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갈등들은 모두 가치와 가치의 충돌로 인해서 생겨나게 된다. , 가치 충돌이다.

 

한 생명과 다수의 생명 사이의 가치 판단자신을 낳고 키워준 엄마와 성인으로써 진짜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 아내 사이의 가치 판단, 약속되어 있으며 하고 싶은 일과 인간의 도리로써 해야 할 일 사이의 가치 판단, 도덕적이고 양심에 따라 사는 삶과 마음은 불편하지만 자신의 미래를 위한 것 사이의 가치 판단이다.

 

그런데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는 천차만별이고 더욱이 우선 순위를 두는 가치는 정말로 많이 다르다. 그러니 그렇게나 많은 갈등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다수의 이득이, 누군가는 한 명이라도 손해를 보지 않는 것이, 누군가는 키워준 엄마가, 누군가는 현재 내 옆에 있는 아내와 아이가, 누군가는 돈이, 누군가는 출세가, 누군가는 여행이, 누군가는 인간의 도리가, 누군가는 인정받는 것이, 누군가는 책을 읽는 것이 가치가 있다.

 

그리고 서로 다른 가치 추구로 인해서 갈등이 일어나게 되면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따라가는 것이 얼마나 나은 것인지를 설득하려고 든다. 당연하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해내야 본인이 행복해지니까 그렇다.

 

그러니 이것들이 모두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더라도, 결국 사람들은 늘 언제나 그것에 대해서 무의식적으로 고려할 수 밖에 없다. 그래야 수 많은 갈등 상황에서 누군가를 설득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결국 수 많은 갈등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 현명한 결정을 내리려고 노력하고 또한 실제로 실행을 했더라도 결국 마음 속에 뭔가 남는 것은 피할 수 없다모든 갈등 상황에서 전체가 온전히 만족하는 결정은 결코 내릴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

 

빠르게 음식을 먹기 위해서 전체가 짜장면을 먹는다는 결정을 했을 때 누군가는 짬뽕을 먹고 싶을 수 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처음부터 갈등이 그런 것이다. 행복과 행복 사이의 충돌, 불행하지 않으려는 것과 불행하지 않으려는 것 사이의 충돌이다. 심지어 행복과 불행이 충돌하기까지 한다. 물론 그럴 경우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행복이 이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이것은 평생에 걸쳐서 일어나는 일이며, 삶을 매우 어렵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이다.

 

또한 어떤 선택을 했을 때 그것이 그대로 끝나지 않고 마음 속에 찜찜함과 나중에 일이 의도와 달리 잘못되었을 때 후회를 만들어 내는 원인이 된다. 그리고 그런 후회가 반복되게 되면 나중엔 처음부터 선택을 하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게 된다.

 

이것은 결정장애의 원인이 되거나 갈등 상황에서 소극적으로 대처하거나 도망치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전혀 없을까? 수 많은 갈등 상황에서 선택을 하는 것도 어렵고, 선택을 한 후에 마음 속에 남는 수많은 찌꺼기들을 남기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는 것일까?

 

다행스럽게 방법은 있다. 그저 좀 어려운 일일 뿐이다.

 

그 방법은 바로 모든 것의 원인이 되는 것을 없애는 방법이다. 바로 가치 그 자체를 없애는 방법이다. 물론 말만 쉽지 매우 어려운 일이긴 하다. 하지만 만약 가치 기준을 없앨 수 있다면 갈등 그 자체가 사라짐을 경험할 수 있다.

 

사람의 목숨에 대한 가치를 버릴 수 있다면 누구를 죽이고 누구를 살리는 문제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수 있다. 사실상 아무 것도 안 해도 되니까 말이다. 혹은 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그냥 감정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고려하고 합리적인 판단이나 최선의 판단을 내려야 할 필요가 없어진다. 어떤 것도 가치가 없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 심리엔 반드시 수 많은 가치들에 대한 가중치가 서로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

 

그래서 가족은 200, 친구는 50, 돈은 90, 사람 목숨은 120, 이런 식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총 합이 가장 높게 나오는 선택을 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만약 이 값들이 모두 같다면, 선택에서 오는 혼란은 즉시 사라진다.

 

물론 사람인 이상 가치에 대한 가중치는 절대로 없앨 수는 없다. 특히 자신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불가능하다.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믿어도 누군가 자신의 돈을 훔쳐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무엇인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과 자신이 직접 그 안에 뛰어 든 상황은 전혀 다르다.

 

앞의 예에서도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 곧 죽게 생겼거나, 자신의 가족이 철로에서 다섯 명에 속해 있을 때는 전혀 다른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감정 그 자체가 이미 한쪽 방향으로 강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이성적 판단을 하려고 노력해야 할 처지이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관련된 것들이 아닌 문제를 바라볼 때는 그저 감정적으로 바라보면 된다. 괜히 이성적 능력을 통해서 가치를 판단하고 서로 누가 더 가중치가 무거운 지를 판단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 아예 의견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물론 사람인 이상, 자신이 속한 사회가 좀 더 나은 사회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분명히 참견이 있어야 한다. 많은 의견 표출이 이뤄질 때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그런 많은 의견을 표출할 때 가치를 기준으로 한 의견을 내게 되면 결국 그것은 가치의 충돌로 끝나고 만다. , 어떤 긍정적인 변화가 아닌 사회적 갈등만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그것은 오히려 사회의 혼란성을 높이고 전체 행복 지수 자체를 낮추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니 결국 어떤 의견을 내더라도 그 안에 내가 추구하는 가치만이 옳다는, 잘못된 사고 방식만 주입해 놓지 않는다면 이 세상 속의 갈등들은 현저히 줄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아무리 자신의 가치 기준에 입각해서 적절한 이론과 논리를 통해 뭔가를 주장하고 있더라도 그 안에서 진짜로 숨겨져 있는 것은 바로 두려움이라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 두려움이란 감정을 해결하고 결국 행복해지기 위해서 이성적 능력을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두려움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한, 누구나 자신이 옳은 것을 주장하고 있다는 착각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두려움을 스스로 자각하고 자신의 말과 글 속에 그것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은 오직 자신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에 현실적으로 일어나기는 거의 불가능하기도 하다.

 

결국 자신은 옳다고 믿는 가치를 추구하려고 한다고 믿고자신이 그런 가치를 추구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내려 놓지 못하는 한, 갈등은 점점 커지기만 할 뿐 결코 줄어들 수 없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그것이 옳아서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자신의 두려움을 줄여주니까, 아니 좋게 말하면 행복하게 해주기에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이다.

 

가치는 우열을 가릴 수 있다. 누구나 다 인정하지 않더라도 다수의 의견이 존재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행복은 다르다. 행복은 결코 우열이 없다. 그저 강약이 있을 뿐이다.

 

세상의 갈등은 가치와 가치의 충돌이 아닌, 행복과 행복의 충돌이어야 한다. 그래야 양보가 일어나고 서로 대화가 가능해진다.

 

서로 가치의 정당성 주장을 그만두고 각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두려움을 밖으로 꺼내 놓을 떄 진정한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 그것이 모든 갈등을 풀어내는 첫 번째 계단이 될 것이다.

 

누군가와 갈등을 풀고 싶다면, 상대를 설득하려 하지 말고 오직 자신이 가진 두려움을 이야기하면 된다. 그것을 서로 숨기기에 갈등이 해결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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