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정신과 육체 - 의식편

아이루다 2018. 8. 6. 07:14


[앞 글에서 계속]


이쯤 되니 머리가 좀 복잡해진다.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해주는 기억이 그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과연 무엇이 그것을 해줄 수 있을까?

 

다행히 아직 희망은 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아직 남은 비장의 카드가 하나 더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의식이라고 부르는 영역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감정이라고 주장하기도 할 것이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차이를 감정의 유무로 주장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감정을 인간 고유의 특징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

 

하지만 감정은 처음부터 인간 고유의 특징은 아니다. 생명체 전체의 특징이다. 아메바나 말미잘이 두려움을 느낀다고 해서 정신이나 영혼이 있다고 말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감정이란 그저 외부자극에 대한 선천적 혹은 후천적인 반응이다. 감정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정신이나 영혼의 증거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의식도 좀 애매한 개념이긴 하다. 그런데 그 이유는 기억이나 감정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누구나 의식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자신의 의식을 인식하는 사람의 숫자는 거의 없기 때문에 애매하기 때문이다. 즉, 의식은 분명히 정신이나 영혼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최고의 후보이지만, 사람들 중에서 의식의 존재를 인식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점이 심각한 문제가 된다. 

 

냉정히 말하면 의식 그 자체를 의식하고 사는 사람은 전체 인류의 0.001%도 되지 않을 것이다. ,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근거가 있는 통계는 아니다. 개인적으로 살아오면서 의식을 의식하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어서 그렇다.

 

, 의식은 누구나 가지고 있긴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을 평생 무의식 속에서 살아간다. 물론 우리는 언어 상으로 '의식적으로' 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정작 의식적이란 말이 가지는 의미를 의식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의식적이란 말의 의미는 '뭔가 해내기 위해서 적극적이고 집중해서 노력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 어떤 상황에서 단순히 무의식적으로 하던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많은 몰입을 해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고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집중이나 몰입이란 단어 자체가 처음부터 무의식을 의미한다. 집중과 몰입이 심해질수록 현실 감각이 완벽히 사라지니까 말이다.

  

그래서 냉정히 말하면 일반적인 의식에 대한 이해는 그저 기존의 경험과 지식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상태에 불과하다. , 컴퓨터로 따지면 좀 더 상위 버전의 앱이 나와서 좀 더 많은 기능성을 가진 상태의 앱이 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의식적인 것은 고사하고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의식이란 단어가 진짜로 어떤 의미인지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니 의식을 제대로 의식하고 사는 사람이 아주 소수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무의식과 의식을 구분하는 기준을 바로 '기억' 의 유무로 판단하는 것에 매우 익숙하다. , 무의식적으로 경험한 것들은 아무런 기억에 남지를 않고, 뭔가를 의식적으로 경험하게 되면 그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알고 있다.


 


영화를 봤을 때 그 영화가 재미가 있으면 나중에 장면이나 대사 등이 많이 기억 난다. 반대로 재미가 없으면 집중력이 떨어져 잡생각이 많이 나게 되므로 기억에 별로 남질 않는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 기억에 많이 남아 있을수록 자신이 그것을 의식적으로 봤다고 판단하게 된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영화가 정말로 재미있으면 재미있을수록 몰입이 일어나게 되고, 몰입은 완벽한 무의식의 상태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순간에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인식을 하지 못한다.

 

, 많이 기억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의식적으로 경험된 것은 아니란 뜻이다. 그것은 그저 과거의 일을 떠올리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그것이 진짜 의식이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식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식적이지 못한 이유는 언제나 현재가 아닌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그렇다. , 먹고 있는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먹고 난 후에 뭔가를 먹은 자신을 떠올릴 뿐이다.

 

물론 의식이란 단어의 의미를 다들 그렇게 이해하고 있으니 의식적이란 말을 그런 용도로 써도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다. 단어라는 것은 어차피 많은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여기면 그것으로 끝이니까 말이다. 사과를 사과라고 부르는 이유는, 사과가 사과라서가 아니라 다들 사과를 사과라고 알고 있으니까 그런 것이다.

 

하지만 의식을 기억하는 것으로 정의해버리고 말면 결국엔 기억 그 자체가 되고 그러면 마지막 희망이 사라진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아는 의식은 그저 경험과 지식을 좀 더 집중해서 사용하거나 그저 과거를 더 많이 기억하는 것뿐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의식을 그렇게 정의하게 되면 결국 정신을 정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지고 만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남은 숨겨진 패도 없다.

 

그렇다면 정신은 정말로 비실체적인 환상인 것인가? 유물론자들의 주장처럼 사람은 그저 육체적 존재이며 우리가 정신이라고 믿는 것은 그저 뇌의 전기활동에 불과한 것일까?

 

일단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말은 쉽게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살펴봐도 인간에게 있어서 정신이라고 부를만한 것을 찾기가 힘들기 때문에 그렇다. 고유한 경험과 지식은 그저 서로 다른 앱이며, 의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저 그것의 업그레이드 한 버전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그럼 유물론자들의 주장을 수긍하고 끝나야 할까?

 

, 그래도 그리 이상하거나 자존심이 상할 필요는 없다. 그냥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정신이 존재하며 영혼도 존재할 수 있다고 믿고 살면 되니까 말이다. 사실 사람들이 자신의 의식에 대한 아무런 인식도 없어도 정신이나 영혼의 존재를 믿고 살 수 있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무의식적으로 살기에 가능하다.

 

, 정신이나 영혼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나 데카르트를 통해 형성된 인간의 이원론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 채 믿고 살아가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을 의심한 사람들은 많은 의식적인 노력 끝에 결국 정신을 부정하는 유물론자가 되기도 한다.

 

결국 점점 의식적으로 될수록 인간의 정신이 부정 당하는 이상한 결론이 나오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희망은 있다. 왜냐하면 의식을 전혀 다른 어떤 것으로 정의해준 분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들은 공통적으로 의식을 일종의 '깨어있음' 이라고 말한다. , 이때 의식은 집중이나 몰입도 아니고, 지난 일을 떠올리는 것도 아닌, 지금 당장 이 순간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의식이란 지금 이 순간의 생각이나 행동을 스스로 지켜보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의미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깨어있으라고 한다.

 

물론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많은 노력끝에 잠시 의식적일 수는 있지만, 금세 무의식적으로 변하게 된다. 그것이 편하고, 그것이 자연스럽고, 그것이 너무도 오랫동안 살아온 방식이라서 그렇다.

 

그래도 이것은 작은 희망이다. 그리고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무튼 인간에게 있어서 정신 혹은 영혼이라고 칭할만한 뭔가가 있을 수 있음을 '깨어있는 의식' 을 통해서 유추해 볼 수 있다.

 

단지 문제는 이 깨어있는 의식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아주 어려운 것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기억으로 정의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기억을 통해 고유해진다. 더해서 사후를 믿는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조건도 바로 죽은 후 살아 생전의 기억이 유지되는 것일 것이다. 만약에 죽은 후 어딘가 좋은 곳을 갔는데 기억이 몽땅 사라진 상태라면 그것이 정말로 좋은 곳에 간 것일 수가 없다.

 

이렇게 기억은 인간의 시작과 끝이다.

 

하지만 기억을 통한 정의나 그것으로 인해 생겨난 고유성이 정신이나 영혼의 존재를 증명해줄 수는 없다. 그것은 컴퓨터에 있는 디스크나 메모리에 들어 있는 0과 1의 정보와 그다지 다를 바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나마 정신이나 영혼의 존재가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의식이다. 그것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아니 그것이 존재하는지 조차 모르는 '깨어있는 의식' 이다.

 

물론 결론적으로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면, 정말로 인간이 정신적 영역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영원불멸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이 어떤 식으로 존재하고 있을지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은 사유의 과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노력한다고 해서 딱히 어떤 결론을 얻을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할 수 있는 대답을, 그 대답을 얻기 위한 질문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른 채 살아간다면 너무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저 유물론자들처럼 아예 없다고 생각하고 산다면 모를까 말이다.

 

별다른 결론은 없는 글이다. 그나마 하나 건진 것은, 기억이 정신이나 영혼의 필수조건이 아님은 알았으니, 만약에 죽은 후 영혼이 생전의 기억을 갖지 않고 있더라도 그것이 그리 이상한 문제는 아님을 이해한 것은 제법 괜찮은 얻어걸림이다.

 

그렇다면 기억을 제외한 나는 과연 무엇을 통해 정의될 수 있을까? 답도 없는 질문을 던지면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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