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정신과 육체 - 기억편

아이루다 2018. 8. 5. 08:11

 

꽤나 오래 전부터 인간은 크게 두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알려져 왔다. 바로 정신과 육체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사실이란 의미는 아니다. 사실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며, 그 여부가 확실히 밝혀지려면 앞으로 한참 더 시간이 필요할 듯 하다.

 

아마도 처음으로 인간을 정신과 육체라는 개념으로 정의를 하기 시작한 사람은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일 것이다. 그는 그리스 시대의 대표적 철학자로써 형상과 질료라는 개념을 통해서 인간을 정신과 육체를 구분하는 이원론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가 말한 형상과 질료의 개념은 그다지 어려운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서 흙은 질료라고 칭했을 때그 흙이 뭉쳐서 그릇을 만들면 그것을 형상이라고 부른다. 이런 식으로 씨앗은 질료이며 씨앗이 자라나 나무가 되면 나무로 형상화 된 것이다. 그것이 끝이 아니다. 나무는 형상이지만 목재라는 질료가 되어서 가공된 후 탁자라는 형상이 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질료는 형상이 되고 형상은 또 다시 질료가 된다이러한 원리로써 우주 만물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원리를 인간에게도 적용했는데그는 육체는 질료로, 그 육체가 형상화된 것이 바로 정신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한참 시간이 흘러 데카르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원론을 좀 더 발전시켰는데, 그는 인간의 정신을 한 단계 더 높여서 영혼이란 개념으로 확장시켰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정신은 육체가 파괴됨과 동시에 같이 사라질 어떤 것이지만, 데카르트가 확장시킨 영혼은 육체의 존재 여부와 관련이 없이 독립적으로 그리고 영구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 된다.

 

그로 인해서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기독교와 같은 종교 쪽에서 아주 크게 환대를 받았다. 종교가 아닌 학문의 영역에서 영혼의 존재를 증명해줬기 때문이다.

 

아무튼 죽음을 두려워하고 영혼불멸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수 많은 종교적 설명과 사상 그리고 철학이 더해지면서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자연스럽게 인간을 정신 혹은 영혼 그리고 육체로 구분하는 사고 방식이 매우 광범위하고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서양만의 흐름이 아니다. 동양에서도 오래된 종교나 철학 분야에서도 영혼의 개념은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있다. 윤회론을 기반으로 하는 힌두교와 기타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불교와 같은 종교에서도 당연히 내세의 개념을 가지고 있으며, 전혀 동떨어진 문명으로 보여지는 인디안들 조차도 만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토테미즘을 믿기도 했었다.

 

그러다 보니 딱히 종교가 없어서 천국이나 윤회론은 믿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인간을 정신과 육체로 나눠서 생각하는 사고 방식은 인간이라면 사실상 누구나 기본적으로 가진 개념이 된 것이다.

 

하지만 유물론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신이나 영혼의 개념을 무시하기도 했고 반대로 유심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물리적인 것들 조차도 그저 환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유물론은 정신을 부정하고, 유심론은 육체를 부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을 정신과 육체로 나눠서 바라보는 관점은 얼마나 근거가 있는 것일까? 어쩌면 너무도 오랫동안 그런 사고 패턴에 익숙해져서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정말로 인간에게는 정신적 영역에 해당되는 영혼이란 존재가 깃들여져 있는 것일까?

 

사실 이 글에서 그것을 증명하거나 혹은 부정할 수는 없다. 단지 한번쯤 그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는 의도이다.

 

지금부터 그것을 해보기 위해서 인간이 만든 것들 중에서 가장 인간과 비슷한 발명품을 하나를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제대로 보는 것은 아직까지는 많이 힘드니 인간이 만든, 그리고 인간과 가장 유사한 구조를 가진 어떤 발명품을 뜯어 봄으로써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것에 도움을 받아 보기로 하자.

 

그것은 바로 컴퓨터이다.

 

컴퓨터를 대상으로 정한 이유는 그것이 바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즉 인간으로 치면 각각 육체와 정신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렇게 구성된 컴퓨터는 엄청나게 발전해서 이제는 인공지능이란 표현을 얻을 수준에 이르렀다. ,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가지게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몇 해 전에 바둑에서 인간을 꺾음으로써 인공지능의 미래를 밝게 혹은 사람들을 두렵게도 만들었다.

 

인간의 육체와 컴퓨터의 하드웨어는 아주 비슷하다당연히 물리적으로 존재하고 있고, 고장 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고장 난 부속품을 바꾸기도 한다. 그리고 언제가 수명이 다하게 되면 폐기가 된다.

 

그래서 이 둘을 연관 짓는 것에는 별다른 혼란스러움은 없다. 컴퓨터는 두뇌에 해당되는 CPU, 뇌의 기억 영역에 해당되는 메모리나 디스크, 인간의 감각기관처럼 외부로부터 입력을 받는 키보드나 마우스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반응을 하는 인간처럼 스피커로 소리를 내고모니터에 자신이 한 결과물을 표시하고, 프린터에 인쇄를 하기도 한다.

 

, 그러면 이제 정신과 소프트웨어를 비교해보자. 그런데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처럼 그리 쉽지가 않다. 그냥 생각 같아서는 쉬울 것 같은데 실제로는 쉽지가 않다.

 

정신과 소프트웨어가 쉽게 비교가 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인간의 정신이 가지고 있는 능동성 때문이다.

 

정신의 능동성은 다른 말로 하면자유의지, 창의성, 고유성 정도로 표현이 가능한데, 아무튼 이 특징은 인공지능과 인간의 지능을 구분하는 잣대로 활용되기도 한다. (물론 감정의 유무가 더 중요하긴 하다)

 

아무튼 소프트웨어에는 정신을 정신으로 정의해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것들이 빠져 있다. 그러다 보니 하드웨어와 육체간의 보여지는 유사성과는 전혀 다르게 사실상 둘은 아예 다른 것처럼 보여진다.

 

그렇다면 소프트웨어는 왜 인간의 정신과 달리 능동성을 가지지 못하는 것일까? , 당연한 질문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로 하자.

 

소프트웨어를 물리적으로 설명하면 어떤 저장장치에 기록되어 있는 0 1로 구성된, 어떤 목적을 가진 정보의 덩어리이다. 이것은 일종의 건축의 설계도와 시공 계획서와 같은 개념으로, 그 설계도를 기반으로 시공 계획서대로 따라서 하면 건축물이 생겨나는 원리와 비슷하다.

 

, 0 1로 구성된 다량의 정보 그 자체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라도그것을 읽어서 수행할 수 있는 CPU에 그 값이 들어가게 되면 뭔가를 처리하는 명령어가 된다. 그리고 CPU는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아무런 의문도 없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명령대로 정확히 수행을 한다.

 

여기에 가끔 외부에서 정보들이 입력이 된다. 키보드나 마우스 그리고 랜 케이블 등을 통해서 정보가 들어온다. 그러면 CPU는 기존의 명령어들에 이런 외부로부터 들어온 정보를 조합해서 그 결과를 주로 모니터 상에 표현한다

 

결국 모니터에 나타나는 화면은 CPU라는 하드웨어가 디스크에 들어 있는 어떤 명령어 조합을 차례로 실행하여 나온 결과물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명령어 조합은 다양한 종류가 존재하며, 일반적으로 하나의 목적을 가진 덩어리를 전통적으로는 프로그램이나 어플리케이션이라고 칭하고 요즘은 Application 앞 자를 따서 App, 즉 앱이라고 부른다.

 

결국 컴퓨터에서 인간의 정신과 비슷하다고 알려진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를 운영하는 명령어 다발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대략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정신은 어떨까?

 

인간의 정신도 역시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긴 하다. 오감을 통해서 입력된 외부 정보들을 기존에 이미 쌓여 있는 지식과 경험을 기반으로 해서 생각한 후 최종적으로 말이나 행동으로 그 결과를 표현해주니까 말이다.

 

여기에서 오감은 키보드나 마우스가 되고, 최종적으로 나타나는 말이나 행동은 모니터가 된다고 볼 수 있다그러니 둘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기존에 쌓여 있는 경험과 지식의 유무이다.

 

컴퓨터는 인간과 달리 경험과 지식이 없다. 그래서 절대로 개별 컴퓨터마다 같은 입력에 따라서 각자 고유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면 고장 났다고 한다. 그러니 동일한 앱을 실행시키면 모든 컴퓨터가 동일한 결과를 보여주게 된다. , 뭔가 복제된 느낌이 나는 것이다.

 

그것과 다르게 인간은 모두 개별적 경험과 지식, 즉 기억을 가지고 있다. 쌍둥이라도 예외 없이 그렇다. 그나마 지식은 비슷하게 쌓일지 모르지만 경험은 정말로 서로 다르다. 그러니 같은 외모를 가진 쌍둥이라고 해도 결국 둘의 고유한 개체성은 보장이 된다. , 인간은 컴퓨터와 다르게 언제나 단 하나뿐이다.

 

그러니 결국 인간의 정신적 본질은 바로 기억, 즉 개별적으로 쌓인 지식과 경험으로 인해서 정의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절대로 컴퓨터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아니, 그렇게 믿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식별할 때 각자가 가지고 있는 기억을 통해서 나오는 반응을 기준으로 한다. 물론 그 과정이 복잡하기에 외모로써 그것을 대신 하지만, 헤어진 지 50년 만에 만나는 가족은 서로의 얼굴을 가지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 함께 했던 기억을 통해서 기억한다. 그래서 만약 길에서 만났더라면 서로 알아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 사람들이 하드웨어에 해당되는 외모를 기준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단지 편의상 그런 것 뿐이다. 기억을 확인해서 누군가를 구분하는 일은 매우 복잡하니까 말이다.

 

, 그러면 여기까지 설명을 통해서 인간의 본질은 기억을 통해서 정의된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리고 그 기억이 이후 감각기관을 통해서 입력된 다양한 자극에 대한 그 자신만의 고유한 반응을 만들어내고 있음도 이해했다.

 

컴퓨터는 인간과 달리 그런 기억이 존재하지 않기에 그 자체의 고유성이 존재할 수 없다.

 

, 그렇다면 한가지 엉뚱한 질문이 떠오른다개별 기억의 고유성은 한 사람이 어떤 존재임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로 우리가 믿는 정신 혹은 확대되면 영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영구 불변한 존재의 근거가 될 수 있을까?

 

그럴 일을 없지만, 만약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컴퓨터에 모두 서로 다른 앱을 실행하고 있는 상태이고 절대로 다른 앱을 실행시킬 수 없어서 각각의 컴퓨터가 온전하게 고유해졌다면 그 순간부터 컴퓨터도 정신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

 

이것은 기억은 분명히 인간의 고유성을 정의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육체와 분리된 정신이란 영역이 별도로 존재한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일까에 대한 질문이다.

 

그리고 만약에 이후 인간이 인공지능을 좀 더 발전시켜서 인공지능 역시도 고유한 경험과 지식을 쌓을 수 있게 한다고 해서 (이것은 이미 가능한 기술적 영역으로, 알파고에도 적용되어 있다이것은 학습효과 혹은 딥 러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것을 정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발전된 인공지능 컴퓨터가 고유한 경험과 지식을 가졌으니 정신을 가졌거나 혹은 영혼의 존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결국 경험이나 지식, 즉 기억은 정신이나 영혼의 존재를 증명하는 근거가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그렇다면 인간이 스스로 정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도대체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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