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편리함이 가져다 준 공허함

아이루다 2017. 9. 24. 10:28

 

아마도 40대 이상 정도로 나이가 되신 분들은 젊은 시절에 필름 카메라를 사용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된 시기가 15년 정도 되어가니, 아마도 대략 그럴 것이다.

 

다른 많은 발전된 것들처럼 필름 카메라를 요즘 사용하고 있는 디지털 카메라에 비교하면, 그 불편함은 엄청나다. 그 중에서 가장 불편한 것 두 가지를 꼽으라면바로 촬영의 결과를 바로 확인할 수 없다는 점과 촬영 매수가 꽤나 한정적이라는 점일 것이다.

 

특히 촬영 결과가 바로 확인이 안 되는 문제로 인해서, 중요한 날 사진을 완전히 망치는 경우도 많았다. 카메라 지식 부족으로 인해 노출 부족이나 초점 문제로 인해서 어둡거나 흐리멍텅한 사진을 찍는 경우도 많았던 것이다. 이와는 달리 대부분의 디지털 카메라는 액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진을 찍은 후 즉시 확인이 가능해서 자신이 어떤 설정을 잘못하고 있는지 바로 확인이 가능하다.

 

촬영 매수가 한정되는 문제도 심각하다. 예전에는 24장 필름이나 32장 수준의 필름만 사용 가능했다. , 필름 한 통을 사봐야 30장 남짓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물론 필름을 많이 사면 촬영 매수의 한계는 없다.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든다.

 

더군다나 실제로 사진을 보려면 인화를 해야 했다그리고 인화 역시도 돈이 들었다. 보통 한 장 당 100원 정도 했으니, 필름 값과 인화비를 합치면, 30장의 사진을 찍어서 보려면 오 천원 남짓한 돈이 들었던 것이다추가적으로 여럿이 찍어서 각자 사진을 가지려면 더 많은 돈이 들었다.

 


비용, 시간, 사진 확인의 불편함 등등, 필름 카메라가 가진 문제는 참으로 많았다. 이것과 비슷한 것이 바로 LP 이다.

 

20년 전만해도 많은 가수들이 음반을 낼 때 사용했던 LP 판은 이젠 거의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mp3 플레이어를 통해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우연하게도 이 둘 모두 스마트폰에 기본 기능으로 들어가 있다. , 지금 시대는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과거 필름 카메라가 하던 역할과 LP 턴 테이블이 하던 역할을 모두 해낸다.

 

얼마나 좋은 시대인가? 그런데 아직도 필름 카메라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스마트폰 앱 중에서 마치 필름 카메라처럼 촬영 후 3일 후 확인이 가능한 앱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또한 요즘 시대에도 턴 테이블을 구매하고 어렵게 LP 판을 구해서 노래를 듣는 사람들도 있다.

 

왜 이런 불편한 것을 쓰려는 사람들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그저 사람들의 말처럼 아날로그 감성인 것일까?

 

,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바로 '가치' 존재이다.

 

현대 사회는 과거의 시대에 비해서 비약적으로 발전을 했다. 그런데 이 발전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일까? 그것은 인류의 진보일까?

 

사실 이것을 인류의 진보라고 말해도 그리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반쪽 짜리이다. 물질 문명의 발달은 눈부시게 이뤄졌으나, 정신적인 영역에서는 여전에 과거의 틀에서 거의 한걸음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현대 사회의 발전은 단 한 단어로 표현이 가능하다. 그것은 바로 '편리함' 이다.

 

, 디지털 카메라, mp3 플레이어 등등 우리가 과거와 다르게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이 가지는 의미는 바로 '편리함' 이다그리고 냉정히 말하면 사실 필름 카메라나 LP 판 역시도 그 전 세대에 대한 편리함이었을 뿐이다.

 

필름 카메라는 자신의 얼굴을 어딘가에 남기려면 반드시 그림을 그려야 했던 시대를 편리하게 해주었다. LP 판은 직접 공연 현장에 가야만 들을 수 있었던 음악을 집에서 들을 수 있게 해주었다. 그것도 반복적으로 말이다, 그것들도 역시 편리함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편리함이 가진 단점은 없을까? 아니다. 분명히 있다. 그것은 바로 편리해지는 만큼 가치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 날라 힘들게 채운 물 항아리 속의 물과 수도꼭지에서 나온 물을 호수로 연결에서 받아 놓은 항아리 속의 물은 같은 물이지만, 그 가치는 다를 수 밖에 없다누군가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것은 가치가 생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원래 가치라는 것의 본질이 그렇다. 시간, 노력돈이 투자되었을 때 비로소 가치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편리하다는 것의 가진 의미는 시간과 노력이 덜 들며, 운이 좋다면 돈도 줄어든 것을 의미한다.

 

항아리 속의 물을 우물에서 길어와서 채우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많은 노동이 필요하다. 그러니 당연히 가치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물을 쓸 때는 정말로 아껴서 쓰게 된다. 하지만 수도꼭지에서 나온 물을 받았을 때는 가치가 거의 없다. 그래서 막 쓰게 된다.

 

같은 원리로 직접 가수의 공연을 가는 것과 LP 판을 통해 노래를 듣는 것이나 mp3 플레이어를 통해서 음악을 듣는 것은 바로 비슷한 수준의 음악을 감상하는데 있어서 시간, 노력, 비용이 줄었음을 의미한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그림을 그리는 것과 필름 카메라로 찍는 것과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그리는 것 역시도 마찬가지다. 시간, 노력, 비용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이런 식으로 가치는 편리해질수록 사라진다그런데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하나가 더 있다. 그것은 바로 가치의 분산이 가지는 문제점이다.

 

과거에는 참으로 아이를 많이 낳았다. 9, 10명이 기본이었다. 그래서 각 집안에 형제 자매의 숫자는 많았고 각 집안엔 꼭 어려서 죽은 아이 한 두 명은 있는 편이었다.

 

지금은 하나나 둘 정도를 낳는다. 그런데 과거와 지금을 비교하면 지금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훨씬 더 많은 정성을 쏟는다. 그렇다면 지금의 부모들이 과거의 부모들에 비해서 좀 더 자식에 대한 애정지수가 높아진 것일까?

 

,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숫자이다. 예를 들어서 요즘 부모라고 해도 아이가 한 100명 정도 있다고 하면, 그 아이들 중 하나가 죽는 것은 한 명의 아이를 키우다가 그 아이가 죽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물론 단 한 명의 아이를 잃는 것도 마음이 많이 아프겠지만, 그럼에도 한 명의 아이를 키우다 잃는 부모에 비하면 훨씬 덜할 것이 분명하다.

 

, 어떤 것의 가치는 그 숫자가 늘어날수록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된다. 이 말은 무엇인가가 늘어나는 것은 가치가 함께 같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분산되어 버린다는 의미를 가진다. , 가치의 총량은 언제나 일정하다.

 

이 사실은 별 것 아닌것 같지만, 가치에 관해서 정말로 중요하게 알고 있어야 할 진실이다. 가치가 분산된다는 말은, 우리가 무엇인가 소중히 여기는 확실한 주체가 사라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욕망은 언제나 가치 대상의 숫자를 늘리는 것을 향한다.

 

하지만 백수들은 알고 있다. 매일 놀면, 쉬는 날의 가치가 사라진다는 것을 말이다. 사진을 수 만장을 찍으면 그 사진들을 다시 쳐다 볼 날이 없어진다. 각 사진들은 찍히는 순간만 가치를 가지다가, 금세 다른 사진에게 밀려서 찍었는지조차 기억나질 않게 된다.


우리는 매일 행복하길 바라기 때문에 매일 가치있는 것을 원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정작 그것들로부터 얻는 행복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뭔가가 가치가 있다는 것은 그것이 얼만큼 중요한 것이 따르는 것이 아니라 얼만큼 희소하냐에 더욱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각각의 가정에서 중요하기로 따지면 냉장고나 세탁기만한 것이 없다. 아니 부엌에서 쓰는 칼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그런데 이것이 소중하거나 가치 있지는 못하다. 왜냐하면 언제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하긴 하지만, 결국 기능적일 뿐이다.

 

문명의 발달은 분명히 편리함을 가져다 줬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우리가 잃을 수 밖에 없는 것은 바로 '가치' 이다. 그런데 이 가치의 부재가 가져오는 문제는 꽤나 크다. 단지 각자 개인이 그것을 명시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편리하고 쉽다는 것이 가진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편리하고 쉬운 것은 그 중요도와 상관이 없이 신경이 잘 안 쓰인다.

 

요즘 시대는 관계를 맺는 것도 편리해지는 시대이다. 거의 끊기지 않는 통신망 덕분에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 참으로 쉬워졌다. 심지어 서로 다른 나라에 살고 있어도 그다지 어려움이 없다.

 

그렇다면 여기에도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관계를 맺는 편리함을 얻은 대신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은 없을까? 당연히 있다.

 

그것은 바로 개개인이 가진 존재의 가치이다.

 

, 관계가 편리해질수록 사람들인 동시에 더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고, 이것은 바로 가치의 분산을 의미한다.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한 명마다의 가치는 줄어들게 된다.

 

더해서 관계를 맺기도 쉽고 끊기도 쉬워지게 되면서, 즉 편리해지면서 관계를 맺는 것에 더 이상 많은 시간과 노력과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딱히 만나지 않아도 채팅을 통해서 매일 대화할 수 있으니 약속을 정하고 만나는 수고로움이나 만나서 써야 하는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그나마 사람들의 만남이 지속되는 이유는, 그것이 아직까지는 행복하기 때문이다. 현 시대까지는 사람과의 만남을 뛰어넘는 행복은 아직 발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역시도 미래 시대엔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각자가 관계 속에서 가치를 잃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 우리들 각자는 필름 카메라로 찍혀서 인화된 사진에서 스마트폰 메모리에 들어간 이미지 파일로 변해가고 있다. 우리들 각자는 LP 판에 새겨진 한 곡의 노래에서 스마트폰의 메모리에 들어가 있는 mp3 파일로 변해가고 있다.

 

무엇인가가 줄어든다는 것은, 그것도 그것이 필수적인 것이라면 당연히 그에 따른 반작용이 일어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더욱 더 존재의 가치에 대한 욕구를 느끼는 현상을 만들어 낸다. 줄어든 만큼 채워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더해서 생각해야 할 문제들이 더 있다. 사람들은 관계를 더 편리하게 맺기 위해서 바로 다양한 SNS를 사용한다. 이 도구들은 말 그대로 편리하다. 실시간 다른 사람들의 말을 볼 수 있으며, 수 많은 사진이 공유가 된다. 재미있는 일상이나 흥미로운 사건들도 빠르게 퍼진다.

 

 


하지만 단점이 명확하다. 편리해졌으니 당연히 가치는 줄어든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문제점이 생겨났다하나는 바로 칭찬이고 그것은 일종의 보상이다.

 

원래 칭찬은 매우 중요한 동기 부여의 원인이 된다그래서 사람들이 뭔가를 할 때 칭찬을 받기 위해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SNS 만큼 칭찬이 난무하는 곳이 없다결국 사람들이 SNS 통해 자주 칭찬에 노출이 되면 자신이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이 하고 싶은 일이 아닌, 칭찬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하려는 쪽으로 움직이게 된다.

 

좀 더 극단적으로 칭찬을 넘어선 실제 보상이 이뤄진 경우를 생각해보자.

 

어떤 사람이 아주 정성스럽게 준비한 선물을 친구에게 줬는데, 고맙다고 돈을 주는 경우가 생겼다. 원래 처음엔 당연히 그 돈을 받기 싫을 것이다. 그런데 그 돈이 큰 돈이었고 너무 고마워서 주는 것이라고 하니 어떻게 받게 되었다고 치자. 그 후로 다른 친구들도 돈을 줄 테니 만들어달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그때부터는 해주고 싶은 일이 아닌, 돈을 벌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된다. 그래서 돈은 벌겠지만, 그것을 만들 때 느낄 수 있는 행복은 사라지고 만다.

 

이런 식으로 뭔가 하고 싶어서 한 일들이 보상을 받고, 그것을 보상을 받기 위해서 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하고 싶은 일이 아닌 해야 할 일들로 변해가게 된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아무리 좋아해서 점점 더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 행복은 줄어들고 어떤 보상들은 늘게 되는 것이다.

 

SNS가 가진 단점이 바로 이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칭찬은, 하고 싶은 일들을 해야 할 일로 만드는 결과로 만들고 만다. 먹고 싶어서 먹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먹으로 간 것을 칭찬받기 위해서 간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먹고 싶어서 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SNS에 빠져들면 들수록 보상이 점점 더 크게 작용한다. 그래서 먹고 싶은 것이 아닌,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먹으로 가게 된다.

 

이것은 뜬금없는 얘기가 아니다. 요즘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을 선택할 때는 완전히 그렇게 변했다. 얼마나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직업 선택의 기준이다. 그 일을 얼마나 하고 싶어하냐의 여부는 이미 예전에 사라졌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 그런 얘기를 하면 세상 모르는 헛소리라고 대꾸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잃었을까?

 

바로 노동의 가치를 잃었다. 일을 하는데 그만큼의 보상을 받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가치가 이미 돈으로 다 보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하기에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정말로 중요하게 작용한다.

 

만약 의사나 선생과 같은 직업이 월급이 적었다면정말로 하고 싶은 사람들만이 그 일들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그랬다면 아마도 그들은 우리가 의사나 선생에 바라는 정말로 그런 인성을 가진 사람들로 채워졌을 것이다. ,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아이들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만이 그런 직업을 가졌을 것이란 뜻이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벌거나 안정적인 직업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그런 의사나 선생은 별로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러면서도 그들에게 인술이나 인격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짓이다. 요즘 시대엔 대부분의 의사나 선생은 돈을 벌기 위해서 그 직업을 선택했다.

 

요즘 시대엔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비난할 필요도 없다. 단지 우리들이 무엇을 잃고 있지만 상기할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통해 돈을 벌고는 있지만, 우리는 이미 노동의 가치를 거의 상실하고 말았다. 사람을 살리는 가치, 아이를 잘 키워내는 가치는 사라졌다.

 

정말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는데, 가치는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에서 가치를 찾아야 한다. 사실 노동을 통해서 가치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다른 곳에서 가치를 찾을 필요가 없다. 노동만큼 가치를 많이 만들어주는 것도 딱히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일만큼 힘들고,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 있을까?

 

그런데 그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 해놓고는 그 어떤 가치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현시대는 한 마디로 '가치 부재의 시대' 이다사람들은 가치의 부재로 인해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끝없이 흘러 다니게 된다. 가치를 찾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고 그것이 각자의 삶을 들었다가 놨다 가를 반복한다.

 

개개인은 자신이 왜 그렇게 가치에 목말라하는지도 모른 채, 매일 매 순간 자신도 모르게 가치를 찾아 헤매고 있다. 그러면서도 끝없이 스스로도 가치를 없애는 일에 합류하여 열심히 그것을 하고 있다. 그것이 결국 자신의 목줄을 죄고 있음으로 모른 채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편리하게 살려고 그렇게나 많은 노력을 한다. 즉, 각자가 가치를 버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편리한 것은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류는 과거보다 더 행복해진 것이 아니다. 물론 좀 더 나아진 것은 맞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던 시대에서 디지털 카메로 사진을 찍는, 엄청난 도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한 행복은 약간 상승한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수 없이 찍은 셀카 사진들 보다 친구가 정성스럽게 그려 준 초상화 한 장이 훨씬 더 행복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것이다.

 

매일 매일 존재의 가치가 사라짐으로 인해서 매 순간 불안함을 느낀다. 하지만 이 불안함이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오고 있는지를 전혀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반복적으로 표피적으로 존재의 가치를 채워주는 것처럼 느끼는 것에 쏠리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외면적인 것에 불과하다. 내적인 충만함을 경험하지 못하면, 끝없는 공허함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앞으로도 평생 편리하고 쉬운 것을 찾아 다니겠지만, 정작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끝없이 잃어가면서 살게 될 것이다.

 

사실 필름 카메라처럼 삼일 후 사진을 확인할 수 있는 앱을 쓰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 중 하나이다. 그것은 스스로 필름 카메라가 가진 치명적 단점을 꺼내는 짓이기 때문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찍은 후, 그것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의 문제이다.

 

충분히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 비록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라도 필름 카메라만큼 충분히 가치를 지닐 수 있다. 그러니 찍는 것에 집중하지 말고, 찍은 후 그것을 충실히 관리하는 것에 집중하면 된다.

 

이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면 결국 가치에 대한 형식주의자가 될 뿐이다. 가치는 시간과 노력과 돈의 소비를 통해 만들어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그것을 투자한다고 해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나무를 심기 위해서 옆에 포크레인이 있는데, 삽으로 구덩이를 파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고 우기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파낸 후, 무엇을 심고 이후 얼마나 정성스럽게 가꾸느냐이지, 파는 것 자체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삶의 형식주의자가 된 채, 아무런 자각도 없이 온전한 무의식 속에서 삶을 마감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