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자존감이란 무엇일까?

아이루다 2017. 10. 3. 09:46

 

행복한 삶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알려진 '자존감',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갖길 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래서 자존감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 사람도, 듣고 이해하는 사람도 각자 혼란스럽다.

 

원래 그것이 어떤 단어이든 그 뜻을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아니좀 더 솔직히 말하면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서 '사랑' 이란 단어만 해도 다들 알고 있지만, 그것을 어느 누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사랑의 대명사로 알려진 로미오와 줄리엣이 직접 나타나도 그것을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누구나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서 사랑을 이해할 수 있다. 사랑이 정확히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지만, 사랑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자존감에 대한 이해 역시 이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사람들은 자존감이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자존감이 무엇인지를 안다. 그러니 행복하고자 한다면 자존감을 키워야 한다는 조언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이해는 뭔가 부족하다.

 

그리고 이런 부족한 이해는 결국 문제를 일으키고 만다. 원래 뭔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그것을 추구하게 되면 엉뚱한 결과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아니, 이것은 엉뚱한 수준이 아니라 심각한 문제가 발생시킬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상대에게 집착을 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잘못 이해하고 있게 되면오히려 그것은 사랑을 망치는 것으로 이어진다사랑할수록 더욱 더 상대를 통제하려고 하고, 억압하려고 하며, 자기 안에서만 행복하길 바라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서로를 크게 상처 입히고 만다.

 

자존감도 마찬가지다자존감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엉뚱한 것을 자존감이라고 이해해서 결국 자존감을 해치는 것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존심, 자신감, 자부심 등을 자존감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자존감은 결코 자존심도, 자신감도, 자부심도 아니다. 그것들은 그저 어느 정도 자존감에 도움이 될 뿐이다. 과하지 않은 집착이 사랑에 도움이 되듯, 그 정도 수준이다. 그리고 집착이 과해지면 사랑을 망치듯이, 자존심, 자신감, 자부심 등이 과하게 되면 오히려 자존감을 망치게 된다.

 

그래서 자존감을 높이고 싶다면자존감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결코 잘못 이해하지는 말아야 한다. 잘못된 이해는 아예 모르는 것보다도 더 위험하다.

 

단어적으로 자존감을 풀어서 쓰면 '자아 존중감' 이다. 이 말은 자신을 스스로 존중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내가 잘났다고 느끼는 자존심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 자신감도, 스스로를 뭔가 대단한 존재라고 여기는 자부심도 아니다.

 

왜냐하면 자존감은 그저 자신을 존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뭔가를 존중할 때는 그런 그런 것들은 전혀 필요가 없다. 존중은 그저 존중일 뿐이다.

 

그래서 자존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존중' 의미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우린 어떨 때 존중을 한다고 느끼게 될까?

 

존중이란 기본적으로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의 의미를 가진다. , '나는 너를 존중해' 라고 표현한다면, 그것은 너를 존경하는 것도, 너를 비난하는 것도, 너를 숭배하는 것도, 너를 혐오하는 것도 아닌,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를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다름에 대한 응대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존중하기 힘든 것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바로 자신의 가치관으로써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다. 일반적으로는 범죄에 해당되는 행위들이 바로 그 대상이 된다. 그래서 이것은 틀림에 대한 응대이다.

 

그래서 존중 그 자체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어야 옳다. 그저 나와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인데, 그것이 뭐 그리 어려워야 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에 대한 존중은 생각보다 무척 힘들다사람들 대부분은 분명히 다른 것인데 그것을 틀린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인종, 피부 색깔, 나이, 성별과 같은 타고나서 결코 바꿀 수도 없는 것도 틀린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가치관, 사상, 종교, 신념 등의 다름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성적 취향, 취미, 행복 코드 등만 달라도 그것이 틀린 것이라고 판단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기에 대부분 사람들의 삶은 끝없이 타인을 비난하는 것으로 채워지게 된다서로 각자가 다른 것뿐인데 서로를 틀리다고 비난한다.

 

그런데 이것이 자기 자신에게 적용될 때는 어떨까? , 자기 존중은 어떨까?

 

역시나 마찬가지로 적용된다자신이 평소에 생각하던 것과 달리 자신이 엉뚱한 생각이나 실수를 저지르게 되면 그것에 대해서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비난하게 된다.

 

자신이 한 어리석은 행동, 커다란 실수,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한 것들, 큰 손해를 볼 때마다 자신에 대한 후회와 그에 따른 비난이 일어난다. 뿐만 아니다. 조금만 신경 썼으면 얻을 수 있는 이득, 살면서 기회를 놓친 것들 등등, 손해뿐만이 아니라 이득을 얻지 못할 때조차도 자책이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자신을 스스로 존중하지 못하는 태도이다.

 

그렇다면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존중하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하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

 

원래 존중은 기본적으로 가치관과 매우 연관이 깊다. 다름과 틀림을 결정하는 기준점이 바로 가치관이기 때문이다. 존중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바로 자신이 평소에 어떤 것을 믿고, 어떤 것을 옳고, 어떤 것이 정의로운 것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점에 달렸다

 

그렇다면 도대체 가치관은 무엇을 기준으로 생겨나게 될까? , 사람마다 무척 다른 경로를 통해서 가치관이 형성되기 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사회에서 가르치는 도덕과 양심이 그것의 기초가 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용기의 덕목이 중요하다.

 

사회 전체적으로 퍼져있는 보편적 가치 기준에 의해서 가치관이 형성이 되고, 그렇게 형성된 가치관에 따라서 다름과 틀림에 대한 구분이 생겨나며, 그로 인해서 최종적으로 존중에 대한 기준점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그것에 얼마나 벗어나지 않고 살아왔는가가 최종적으로 자존감을 결정한다.

 

여기까지 이해하면 자존감이 도대체 어떤 과정에서 생겨날 수 있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 자존감은 자신이 가진 가치관에 합당한 수준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때 생겨나고 유지가 된다. 결국 자존감은 도덕적이고 양심적으로 살 때 높아질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용기가 필요하다.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왜냐하면 우리들 대부분은 이것을 전혀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아는 자존감에 대한 대부분의 이해가 바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의 행동을 통해 일어나기 때문이다.

 

즉, 자존감을 이해할 때 자존감이 생기는 과정이 아닌, 그 결과로 이해한다. 그래서 그런 행동을 따라하면서 자신도 자존감이 높아지길 바란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기본적으로 존중은 다름에 대한 대우이다. , 존중은 결코 틀림에 대한 대우가 아니다그러니 존중을 받으려면 우선 틀리지 않아야 한다. 틀리지 않으려면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양심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작은 이득을 얻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돈을 훔치고 사는 사람은 결코 자존감이 생겨날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외면하고 자신만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물론 매우 행복한 사람의 경우 자존감이 높아 보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자신감이 충만하거나 자부심이 가득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생각보다 위험하다.

 

원래 자신감이나 자부심이 강해지게 되면 결국 독선적으로 변하게 된다. 자신만 옳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자존감도 비슷하다. 자신이 옳다는 확신이 있는 것은 동일하지만, 그것이 외적으로 표출되느냐 내적인 영역 안에 머무르느냐의 차이로 인해 갈린다.

 

자신의 옳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외적으로 강요하고 있다면 그것은 결국 자기 확신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물론 잘되면 자신감이나 자부심을 얻는 것에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내면의 확신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과 같다.

 

반면에 자존감은 내면에서 만들어지고 내면에 머무른다. 그렇기에 오히여 외부엔 부드러워진다. 자신에 대한 떳떳함, 이것이 자존감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없이 자존감을 높이려고 하는 것은, 자존감을 전혀 엉뚱하게 이해하고 있어서이다. 자존감은 결코 잘남이 아니다. 그저 내면에서 존재하는 자신에 대한 신뢰이다.

 

그래서 각자의 마음 속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에 나오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이 가진 의미가 바로 자존감에 대한 젊은 시인의 순수한 소망인 것이다. 그것에 대한 소망이 얼마나 순수했다면, 잎새에 이는 바람에조차 괴로워했을까?

 


이런 과정이 없이 자존감을 가지려고 노력하다가 보면 엉뚱한 것만 높아진다. 그것이 바로 자존심이다. 자존심은 생각만 하고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한 미완성 상태의 자존감이다. 배운 대로 도덕적 가치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데, 실제로 그렇게 살지 못하니 자신에게 실망해서 머무르는 상태이다.

 

그래서 자존심이 센 사람이 자존감이 높아 보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한 것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없어서 결국 언제나 불안하다. 그러니 자주 화를 낸다. 누가 조금만 자극해도 금세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이다.

 

용기 있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자신이 조금이라도 겁을 내는 것을 들키면 그것에 대해서 살인을 할 정도 심각하게 화를 낸다.자존심, 자부심, 자신감, 이런 것들은 모두 상대적이다. 스스로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관련된 것들이다. 자존감만이 유일하게 자신의 내면과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남들이 아무리 자신을 칭찬해도 스스로 용납할 수 없다면 자존감은 생겨나지 않는다. 반대로 남들이 아무리 비난을 해도 스스로 옳다고 믿으면 자존감에 상처를 입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언제라도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 역시 자존감이다그래서 자존감이 극도로 강해진 사람은 결국 유연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자존감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이다스스로만 흔들 수 있을 , 결코 외부의 힘에 의해서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존감의 이런 특징으로 인해서 그것이 필요한 진짜 이유가 생겨난다.

 

그것은 바로 불행에 대한 저항력이다.

 

많은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서 자존감을 높이려고 한다하지만 자존감은 궁극적으로 행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불행에 버텨내는 힘이지 행복함을 위한 힘이 아니다.

 

 설명은 매우 혼란스러울 수 있다. 자존감은 분명히 행복과 관련되어 있어 보이는데, 그것이 오히려 불행함에 대한 것이라고 하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럼에도 자존감은 바로 불행에 관련되어 있다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오히려 행복할 때는 자존감이 거추장스럽다. 특히 어린아이와 같이 놀고 싶을 때는 방해가 될 뿐이다.

 

아이들은 자존감이 거의 없다. 그래서 아이처럼 놀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자존감이 생겨난다. 그 이유가 바로 그 아이가 행복하게만 자랐기 때문이 아니라, 불행함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행복하게만 자란 아이는 그저 밝은 것뿐이다. 자신감이 충만하고 자부심이 높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결코 자존감이 높은 것은 아니다.

 

물론 이 말에는 문제가 있다어떤 사람이 불행함을 경험한다고 해서 반드시 자존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존감은 오직 불행함을 견뎌내었을 때만 비로소 생겨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행에 굴복한다. 그래서 그것을 견뎌내거나 극복하는 것에 실패한다. 그러다 보니 있던 자존감마저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불행은 자존감을 키우는데 있어서 양날의 검이 된다.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을 해치는 쪽으로 작용한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행을 통해 자존감 하락을 경험한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그것을 견디고 결국 이겨낸다. 여기에서 이겨낸다는 말은 단순히 벗어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믿고 있는 것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경험이 자신에 대한 진짜 신뢰를 만들어 준다.

 

요즘 시대에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사람들이 불행해서 그렇다. 자신의 현재 불행을 견뎌내고 싶으니까 자존감을 갖고 싶어한다.

 

하지만 많은 자존감에 관련된 책들은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으로 행복하게 사는 것을 권한다. 이것은 명백히 잘못된 방법이다. 행복한 것을 통해서 만들어진 자존감은 자존감이 아닐뿐더러 조금이라도 생겼다고 해도 그 행복이 사라지면 같이 소멸하고 만다.

 

자존감을 키우는 방법으로 많이 소개가 되는 외모 꾸미기, 스스로 칭찬하기, 위로 받기 등은 모두 껍질만 바꿀 뿐이다. 이것을 통해 뭔가를 바뀐다면 그것은 자신감이다. 하지만 자신감은 오히려 자존감의 적이다.

 

존중이란 것은 상호적이다. 내가 상대를 존중해야 상대도 나를 존중한다. 하지만 자신감, 자존심, 자부심은 자신과 타인을 차별화시킨다. 이런 것들은 상대와 자신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더욱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에 대한 상대의 존중은 사라지게 된다. 물론 자신도 타인에 대한 존중이 사라진다.

 

그런데 왜 자존감은 행복이 대명사가 되었을까? 사실 이유가 있긴 하다.

 

자존감은 분명히 행복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삶을 살면서 운 없이 닥친 불행에 버티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들 자신이 누리고 있는 행복을 지키는 것에 큰 도움이 된다. , 자존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행복이 안정적이 된다. 혹시라도 불행함이 닥치더라도 그것을 이겨내고 결국 다시 원래 행복한 자리로 되돌아 올 수 있다.

 


행복한 순간에서도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있다면, 앞으로 닥칠 불행함에 대한 걱정도 그다지 되지 않는다. 이겨낼 수 있는데 왜 걱정하겠는가?

 

특히 우리가 걱정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경우가 많기에 더 그렇다. 그럼에도 우리들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는 걱정을 하느라 지금 당장 행복한 순간조차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아이들이 행복해 보이는 이유는, 아이들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걱정을 할 실제적인 경험도 부족하고 또한 걱정이 있다고 해도 부모가 다 해주기 때문에 그렇다.

 

, 여기까지 해서 자존감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를 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자존감을 높이는 법을 알아보자.

 

무엇인가를 할 때는 기초가 중요하다. 그러니 일단 기초를 쌓아야 한다. 어떻게 쌓아야 할까? 답은 생각보다 쉽다. 실천이 어려울 뿐이다. 그 답은 바로 자신의 양심적 기준에 최대한 어긋나지 않게 살아야 한다. , 인류 보편적인 좋은 가치들을 지키면서 살면 된다.

 

그것을 위해서는 지킬 것은 지키고,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한다. 모든 것을 다 행복한 것으로만 채울 수는 없다. 그럼에도 행복에 대한 욕구는 이것을 지키기 힘들게 만든다.

 

원래 이 세상은 비양심적으로 사는 것이 더 편하다. 거짓말을 잘 해야 잘 살 수 있다. 자신에게만 이득이 되는 것도 눈 딱 감고 해야 결국 자기에게 좋다. 원래 사회가 요구하는 많은 좋은 가치들을 지키고 사는 것은 결국 끝없는 자기 손해를 일으킨다. 정직, 의리, 정의, 사랑, 용서, 봉사와 같은 것들은 그것을 따르다가는 자기 손해를 일으키기 아주 쉬운 좋은 가치들이다. 적당히 배신하고, 적당히 모른 척 하고 사는 것이 훨씬 좋다.

 

그래서 자존감을 지키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조금 생각을 바꿔보자. 보편적 가치를 따름으로써 우리가 입는 손해가 그리도 심각한 일일까? 혹은 반대로 이득도 그리 큰 것일까?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득과 손해에 대해서 민감한 것은 바로 행복에 관련되어 있다.

 

물론 지속적으로 이득을 추구해서 지금 행복하다면 그대로 살면 된다. 이미 행복하니까 말이다. 문제는 지금 불행함으로 인해 자존감을 높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라면 생각을 고쳐먹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손해와 이득의 계산에 의해서 종속되어 있다. 조금의 손해도 보지 않으려고 하고, 작은 이득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자꾸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게 된다그래서 결국 행복하고자 손해를 멀리하고 이득을 가까이 했지만, 자존감은 서서히 무너져간다.

 

그렇다. 자존감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것은 바로 '불필요한 욕심'이다. , 각자가 품은 욕망이 자존감을 하락시키는 주범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 집착이다. 그런데 집착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언제든 충분히 버릴 수 있다. 그리고 그럴 수 있을 때라도 자신의 양심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

 

물론 당장 손해를 보기에 돈을 덜 벌 것이다. 이득을 보지 못하기에 부자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엔 자존감을 높여서 그 사람을 행복한 쪽으로 이끌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일단 욕망이 줄어들면 만족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져서 아주 쉽게 행복해질 수 있다는 장점이 생겨난다. , 살면서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더 많다.

 

이런 상황이니 개인이 자신이 품은 불필요한 욕심이나 욕망을 버리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 삶에 도움이 될지 상상하기도 힘들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또 좋은 점이 있다그것은 바로 인간관계를 맺기가 아주 쉬워진다는 점이다.

 

원래 욕심이 적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큰 호감을 준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착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착함은 호감이나 매력의 될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착한 사람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과 사귈 때 적어도 손해를 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신에게 이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착하다는 것은 욕심이 적다는 것이고, 욕심이 적다면 불필요하게 주변 사람들에게 이득을 얻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 만나면 밥값이라도 한 번 더 낼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착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착함은 관계를 잘 맺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사실 인간관계를 아주 잘 맺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바로 손해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고, 이득을 보는 것에도 그리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자존감을 높이고자 여러 가지 노력을 할 것이다. 화장을 하고, 영어도 배우고, 근육도 키우고, 해외여행도 다닐 것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뭔가 어려운 시도를 해서 성공하고,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그저 자신감이나 자부심을 높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자존감으로 믿고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몇 번의 실패만 반복되면 금세 사라져버리고 만다.

 

자존감은 그런 것이 아니다. 자존감은 자신에 대한 무한한 신뢰이다. 그리고 이것은 자신 앞에서 얼마나 떳떳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진짜로 자존감을 높이고 싶다면 욕심을 줄이고 욕망을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결국 각자의 양심을 지키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한 온정을 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회로부터 교육받은 양심적인 삶이기 때문이다.

 

꼭 잘 맞는 것은 아니지만, 혹시나 자존감 테스트를 하고 싶으시다면 해보시라.

 

자존감 테스트 사이트 ==>  http://goldsaju.net/sei/?q=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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