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춘추오패시대

아이루다 2017. 8. 6. 11:31

 

관중의 죽음 후, 강소백의 끝은 그지 좋지는 않았다. 강소백은 관중이 죽기 전 멀리해야 한다고 한 세 명의 신하에 의해서 그 시대의 영웅답지 않은 죽음으로 삶을 마무리 한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패권을 쥔 나라가 바로 ()국이다.

 

그리고 그 시작 또한 강소백이 국군에 오를 수 있었던 과정과 비슷하게 흘러간다.

 

()국의 국군 희궤저는 그가 아끼는 후처 여희가 있었다그리고 여희는 후처이기에 그녀의 자식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서자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것을 뒤집기 위해서 음모를 꾸민다.

 

그녀의 음모는 바로 원래 적장자의 계승권을 뺏는 일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왕위 계승권을 뺏는 일이 어떻게 피를 보지 않고 할 수 있겠는가?

 

일단 여희는 자신에게 푹 빠져있는 희궤저를 설득해서 적장자인 희신생을 죽이도록 한다. 그러자 공식적으로 다음 왕위 계승권을 가진 적차자들인 다른 두 명의 아들은 깜짝 놀라서 외국으로 망명을 한다. 이것은 당연하다. 그 다음은 반드시 그들이 될 테니까 말이다. 적장자를 죽인 왕이 적차자들을 죽이지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이렇게 왕비 태생의 적자들을 모두 처리한 후희궤저가 죽자 여희의 아들 중 하나인 희해제가 왕위에 오른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도 눈에 뻔히 보이는 음모였고, 그로 인해서 불만 세력들이 생겨나게 된다.

 

결국 희해제가 왕위에 오른 후 두 달만에 이극이 정변을 일으켜 희해제를 죽여버리고 만다. 그러자 여희는 자신의 둘째 아들인 희탁자를 왕위에 세우지만, 이극은 또 다시 정변을 일으켜 그마저 죽이고 만다. 그리고 이때 여희 또한 같이 죽는다. 여희의 음모는 이렇게 끝난다.

 

아무튼 이런 상황이 되자진국 또한 제국과 같은 왕이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고 만다.

 

이 소식이 다른 봉국으로 피신해 있는 희궤저의 남은 두 아들 귀에 들어간다. 그 중 한 명이 희이오였는데, 그는 자신이 형인 희중이가 자신보다 먼저 귀국하지 않을까 염려해서 또 다른 진()국의 국군이자 매부인 영임호에게 영토 일부를 줄 것을 약속하고는 자신이 왕위에 오르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을 한다.

 

딱히 손해 볼 것이 없는 영임호는 그 부탁을 들어주게 되고, 결국 희이오가 영임호의 도움을 받아서 진국의 왕위에 오른다.

 

하지만 이후 희이오는 영임호에게 약속한 땅을 주지 않는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달랐던 것이다. 그러자 분노한 영임호가 군대를 이끌고 진()국을 공격했으며 당연히 승리를 한다. 희이오는 패하여 포로가 되지만, 영임호의 아내이자 자신의 누이동생의 도움으로 목숨은 건진다.

 

영임호는 그저 자신에게 약속한 땅을 받고 희이오의 아들 희어를 볼모로 데려오는 수준에서 마무리를 한다.

 

그렇게 희어를 데리고 온 영임호는 그를 친자식처럼 아꼈고 자신의 딸 회영과 짝을 맺어주기까지 한다. 그런데 결국 그 아비에 그 자식이었나 보다. 5년 후 희어는 자신의 아버지인 희이오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는, 혹시나 자신의 왕위를 뺏길까 두려워서 아내인 회영까지 버리고는 몰래 진()국으로 도망치고 만다.

 

아비에 이어 아들에게까지 뒤통수를 맞은 영임호가 분노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희이오의 형인 희중이가 우연히 영임호에게 몸을 의탁한다. 그러자 영임호는 희어의 아내였던 회영을 다시 희중이에게 시집 보내게 되는데그로 인해서 족보가 꼬인다. 희중이는 자신의 조카 며느리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딱히 갈 곳이 없는 희중이 입장에서는 이것 저것 가릴 입장이 되질 않았다결국 영임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듬해인 BC 637년 결국 희이오가 죽자 희어가 왕에 오른다. 그리고 1년 후 진()국의 영임호는 희중이를 앞세워서 진()국의 수도를 공격해 자신을 배신한 희어를 죽이고 희중이를 왕위에 올린다.

 


그런데 이렇게 험난하게 왕위에 오른 희중이가 춘추오패 중 두 번째 패권을 이룬 창업주가 된다. 그런데 당시 희중이의 나이는 벌써 62세였다.

 

사실상 힘도 없고, 다른 봉국에 의해서 왕위에 추대되었으며, 신체적으로 나이도 많은 그가 진국을 패주의 자리로 올려놓을 수 있는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기막힌 두 개의 행운이 그에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행운을 희중이가 잘 잡았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행운은 당시 존재감도 거의 없는 주나라에서 일어난 한 치정사건으로 인해 찾아온다.

 

당시 주왕국은 20대 왕 희정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그의 아내 적후가 희정의 동생인 희대와 사통을 하다가 발각이 된 사건이 일어난다. 왕의 동생이 왕비인 형수님과 정을 통한 것이니, 이 얼마나 큰 스캔들이겠는가?

 

당연히 희정은 왕비인 적후를 패하고 동생 희대를 체포하려고 한다. 그러자 희대는 다른 봉국, 즉 적국으로 몸을 피신하게 되는데, 거기에서 가서 도망 친 것으로 끝나지 않고 감언이설로 적국의 국군을 설득해서 오히려 주나라를 침공을 하도록 만든다. 형수와 사통한 사이지만, 그 능력은 좋다.

 

적국은 아무런 힘도 없는 주나라에 쉽게 승리를 거두고는 이번엔 희대를 왕위에 올려주고 형수인 적후까지 아내로 맞게 해주는 결정을 한다. 왕비 적후는 형제를 이어서 왕비의 자리를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왕위와 아내까지 모두 잃은 희정은 낭패한 꼴로 정국으로 도망치는데, 당시에는 패주인 강소백도 없어서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이 사정을 알게된 희중이는 군대를 일으켜 희정을 보호하고 주나라로 가서 희대와 적후를 죽여버림으로써 희정의 왕권을 복권시켜주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진()국은 공식적으로 주나라를 보호하는 중요 봉국이 된다.

 

두 번째 행운은 초나라가 송국을 공격하는 사건으로부터 일어난다.

 

송국은 자신의 나라에 강력한 초나라 군대가 쳐들어 오자, ()국의 희중이에게 도움을 청한다. 과거 주나라의 치정사건을 잘 마무리 한 진()국을 봉국들의 패주로 인정하겠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낸 것이다.

 

희중이는 초나라의 강력한 군사력을 알기에 깊이 고민하지만, 결국 출병을 결정한다. 그리고 운 좋게도 성복지역에서 초나라 대군을 대패시킴으로써 ()국은 패주로써 완전히 자리를 굳히게 된다.

 

그리고 이 패권은 희중이 사후에 약함과 강함이 반복적으로 나타나지만꽤나 오랫동안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 뒤를 이은 패주는 바로 희중이를 패주의 자리에 올려 놓은 진()국의 영임호였다.

 

(사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구분하는 시점에는 다양한 의견이 있는데, 백양이 쓴 책처럼 오나라가 월나라에게 멸망한 BC 481년을 기점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월나라가 패권을 잃고 이후 삼국의 융성한 BC 403년을 기점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 세 번째 패주인 진()국의 영임호는 역사학자 백양의 의견에 따르면 춘추오패에 속하지만, 월나라를 포함한 춘추오패에서는 빠지게 된다. 이것은 후대의 역사 분류의 의견차이로 인한 것이니, 그리 큰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좋을 듯 하다.)

 

희중이가 세상을 떠난 BC 627, ()국의 국군인 영임호는 자신의 부하 백리맹맹에게 정국을 기습하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정국과의 거리가 600km에 가까워 기습은 거의 힘든 상황이었다백리맹맹이 군대를 이끌고 정국을 향하지만, 정국은 이미 그들의 기습을 모두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백리맹맹은 기습을 포기하고는 가는 길 근처에 있던 죄 없는 활국만 공격하고는 되돌아 가게 된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철군을 하는 과정에 생긴다.

 

그들이 철군하는 경로에는 아주 험난하고 좁은, 효산 협곡이라는 지형이 있었는데, 거기엔 진()국의 병사들이 매복을 하고 그들을 기다렸던 것이다. 결국 백리맹맹이 이끄는 진()국의 병사들은 거의 죽거나 포로가 되고 만다.

 

영임호 입장에서는 자신이 희중이를 도와 진()국의 국군이 되도록 했으며, 자신의 딸까지 아내로 줬던 나라에게 전혀 예상치도 못한 배신을 당한 것이었다.

 

이 일로 인해서 영임호의 진()국과 희환의 ()국은 철전지 원수가 된다. 하지만 영임호는 주력 군이 와해됨으로써 그 원수를 갚을 방법이 없는 상태였다.

 

이때 행운이 하나 일어난다. 그것은 바로 진()국의 국군인 희환의 어머니, 즉 영임호의 딸 회영이 자신의 아들에게 청을 해서 포로로 잡힌 영임호의 병사들을 풀어주라고 부탁한 것이다. 그리고 희환은 어머니의 청을 받아들여서 백리맹맹 이하 몇몇 장수들을 석방한다.

 

이 일로 인해서 영임호는 다시 한번 기회를 얻게 된다.

 

그로부터 3년의 각고한 준비 끝에 백리맹맹은 병사를 이끌고 진()국을 공격하여 승리를 거둔 후, 춘추 시대의 세 번째 패권을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이 패권은 BC 621년 영임호 사후에 급격히 몰락하여 결국 사라져 버리고 만다. 아마 이런 이유로 영임호를 오패에 포함시키지 않는 견해가 많은 듯 하다. 당시 패주인 ()국과 전쟁에서 이겼지만, 겨우 3년간 그 패권이 유지되었을 뿐이니까 말이다.

 

짧았던 ()국의 뒤를 이어 패권을 움켜쥔 나라는 바로 초왕국였다.

 

BC 614년 초왕국의 왕위에 오른, 6대 왕 미려는 야심만만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지속적으로 부국강병의 길을 걷는다. 그 와중에 당시 주나라 봉국 중에서 그나마 가장 강한 나라였던 진()국에서는 일어난 여러 가지 정치적 사건으로 인해서 외부에 거의 신경을 쓰지 못하는 상태가 되고 만다.

 

이것은 미려에게 있어서 하늘이 준 기회였다.

 

미려는 일단 정국과 전쟁을 벌여 승리한 후, 회군을 하다가 필성이라는 지명을 가진 지역에서 정국을 도우러 오고 있던 진()국의 병사들과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리자 두 군대는 피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고, 결국 전쟁을 하게 된다.

 

이때 미려가 승리를 거둔다. 그리고 이 필성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초나라는 춘추시대의 네 번째 패권을 확정 짓는다그리고 그 어느 패권보다 강력한 힘을 휘두르게 된다.

 

그런데 이 초나라의 강력했던 패권은 우습게도 남녀간의 뒤틀린 연애 사건으로 인해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그 이야기는 진()국의 대신 하어숙의 아내 하희로부터 시작된다. 하희는 남편인 하어숙이 죽자, 공식적으로 미망인이 된다그런데 그녀는 절세미녀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더 무서운 점은 정조 관념이 없었고 머리도 좋았던 모양이다.

 

원래 정조관념이 없는 머리 좋은 미녀가 세상이 미치는 영향은 엄청 날 수 밖에 없다. 단순히 정조관념이 없는 미녀는 보통 남자들의 노리개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미녀가 머리가 좋은 편이라면 어떻게 될까?

 

남자들을 손바닥 위도 놓고 가지고 놀 수 있게 된다. 하희가 바로 그런 여자였다. 그리고 요즘 시대에는 이런 종류의 여자를 팜므파탈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남자가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라는 뜻이며, 그로 인해서 남자를 파멸시키는 여자라는 뜻이다.

 

하희는 남편이 죽자, ()국의 다른 대신이었던 공녕, 의행보등와 성적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그 사실을 진()국의 국군이었던 규평국이 알게 되자, 그와도 관계를 맺는다. 세 명의 남자와 동시에 관계를 맺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이 한 나라의 국군이었다.

 

보통 여자라면 꿈도 꾸기 힘든 일을 그녀가 해 낸 것이다. 그런데 그녀에게도 문제가 있긴 했다. 그것은 바로 정의감이 넘치는 아들의 존재였다.

 

BC 599, 하희의 아들 하징서는 자신의 어머니와 관계를 맺은 ()국의 국군인 규평국 죽어버린다. 아마도 규평국이 자신의 어머니를 강제로 취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것은 하희같은 여자들이 아주 잘 하는 행동 중 하나이다. 바로 자신이 언제나 피해자인 척 하는 것인데, 대부분의 남자들이 거기에 속는다. 아들도 속았던 것 같다.

 

사실 아주 아름다운 여자가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를 하면 그 어떤 남자가 그것에 넘어가지 않겠나 싶다. 그러니 악녀로 이름이 높았던 상나라의 달기를 처형할 때, 그 미모로 인해서 차마 목을 베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아무튼 이렇게 규평국이 죽자, 그녀와 원래 관계를 맺어왔던 공녕과 의행보는 당장 자신들도 목숨이 위태로워지니 두려움을 느끼고 초왕국으로 도망쳐버리고 만다. 그리고는 초왕국의 왕이었던 미려에게 하징서가 국군인 규평국을 죽였다는 '사실'  고한다.

 

이 일로 인해 미려는 핑계를 얻게 된다. , 군대를 일으켜 진()국으로 가서 국군을 죽인 하징서를 죽여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신도 하희의 미모에 반하게 된다.

 

하지만 초나라의 대신 무신이 그녀의 미모에 빠지면 나라를 망칠 수 있다고 간언하여, 그녀를 최근에 홀로 된 연윤양로라는 인물의 아내로 정해준다.

 

이렇게 하희의 삶은 이렇게 정리되나 싶지만, 그러기엔 그녀는 너무 젊고 아름다웠다. 결국 그녀는 늙은 연윤양로의 아들과 바람을 피우게 되고(정말로 대단하긴 하다), 남편이 사망 후, 아예 그 아들과 둘이 살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어떤 식으로든 어미와 자식간에 통정을 한 것이기에 결국 소문이 퍼지고, 미려는 그런 그녀를 어찌할 수 없다는 판단에 그녀의 친정이 있는 정국으로 돌려보내고 만다.

 

결국 이렇게 하희가 홀로 자신의 친정으로 돌아가게 되자그때 자신의 숨은 목적을 드러내 무신이 그녀를 데리고 진()국으로 도망치게 된다. , 무신이 처음 미려를 말릴 때부터 그는 자신이 하희를 차지하고 싶었던 강력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신은 정치적으로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진()국은 그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더군다나 그가 떠나온 초나라는 그들이 가장 강력한 적이 아닌가?

 

그런데 이 시기를 계산해보면, 무신이 하희와 연이 맺어질 때는 대략 따져도 그녀의 나이가 48세가 넘는 나이었을 텐데, 그 나이까지 그런 매력을 발휘했다는 점에서, 어쩌면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매력을 지닌 여자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초나라는 그런 무신의 배신에 분노하며 초나라에 남아 있던 무신의 가족을 모두 죽여버리고 만다. 그리고 이 일은 무신으로 하여금 초나라에 깊은 복수심을 품게 만든다. 비록 여자를 얻기 위해 나라를 배신한 인물이었지만, 능력 있는 남자가 복수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무신에게는 기회가 다가온다. 그것은 바로 또 다른 부족인 오부락의 추장 오수몽이 나라를 세우고 오왕국이라고 칭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어설프고 많이 부족한 나라였지만, 무신은 오왕국이 잠재적 힘을 가지고 있음을 파악했다. 그래서 자신이 속한 진()국에게 오나라와 연합을 하여 초나라를 치는 '연오제초' 전략을 제안한다. ()국으로써는 그의 제안을 마다할 것이 없었다. 이것이야 말로 이이제이였으니까 말이다.

 

그러자 무신은 자신의 아들 무호용이 이끄는 군사 고문단을 보내 오나라 군사들을 훈련시켜 정예 군사로 만든다. 이렇게 10년이 흐르고, BC 574년 오왕국과 진()국의 연합군이 초나라를 향해 행군을 시작한다.

 

이 두 군세는 언릉이란 지역에서 일전을 벌이고 결국 오와 진 이 두 연합군이 승리를 거둔다. 그리고 진()국은 잃었던 패권을 잠시나마 되찾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초나라가 완전히 물러 선 것도 아닌, 일종이 두 강대국의 끝없는 패권 다툼의 시대가 열린다.

 

이로 인해서 평화회담에 대한 요구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실제로 진국과 초왕국 사이에 평화 조약이 맺어지기도 한다. 물론 잘 지켜지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이 평화 회담은 몇 차례에 걸쳐서 진행되었는데, 첫 번째 회담은 언릉 전투 이전에 이뤄지기도 했었다. , 두 나라가 전면전을 하기 전에도 이미 평화 회담을 했었다는 것이다.

 

평화조약은 BC 541년에 세 번째 회담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안정화 되었는데, 사실은 그것은 회담의 성과가 아니라, 두 나라 모두 자체적으로 발생한 내분으로 인해 외부에 신경을 쓸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초나라에는 오자서라는 뛰어난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초나라 국왕인 미기질에게 아버지와 형제가 모두 죽는 험난한 꼴을 당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도망쳐 갖은 고초를 겪은 끝에 적국인 오왕국에 가 절치부심하여 재상의 지위까지 오른다.

 

그리고 초왕국을 공격해 승리한 후, 자신의 철천지 원수였던 미기질의 무덤을 파해치고 그의 시체에 300회의 채찍질을 한다. 이 사건이 유명한 오자서의 '편시사건' 이다.

 

이렇게 초왕국을 완전히 무너뜨린 오왕국은 춘추시대의 다섯 번째 패권 국가로 우뚝 서게 된다. 하지만 오왕국의 패권 역시도 오래 가지 못한다. 그것은 또 다른 새로운 왕국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바로 월왕국이다.

 

BC 497년 사구천이란 인물이 월왕국을 세운다. 그러자 패주였던 오왕국의 오광은 사구천을 공격하게 하는데, 실패하고 전쟁에 참여했던 오공마저 죽는다.

 

그로부터 2년 후인 BC 494년 오광의 아들 오부차가 재공격을 해서 이번엔 승리를 거둔다. 그리고 월왕국의 사구천도 생포를 한다.

 

그러나 이때 오왕국 내에는 크게 두 가지 의견으로 갈리는데, 오왕국을 패주의 지위로 올려놓은 공이 있는 오자서는 월을 반드시 오에 편입시켜야 한다고 주장을 했고, 사구천에게 몰래 뇌물을 받은 백비라는 자는 그냥 속국으로 삼자고 주장을 하게 된다.

 

결국 백비의 의견이 채택이 되고, 사구천을 볼모로 해서 월왕국은 존재 자체는 인정받게 된다.

 

그런데 이때 살아남은 월왕국의 왕 사구천이란 사람이 아주 대단한 인내심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오부차의 똥 맛까지 보는 아부를 하면서 그를 안심시킨다. 결국 사구천에 대한 의심을 풀은 오부차는 3년만에 그를 풀어주어서 월나라로 보낸다.

 

이렇게 갖은 고초 끝에 월나라로 돌아간 사구천은 이후 곰의 쓸개를 핥으면서 자신의 복수를 다짐하게 되는데, 이 일을 계기로 '와신상담' 이라는 사자성어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 사건을 배경으로 만든 중국 드라마, 와신상담>


그리고 그렇게 복수심에 불타는 사구천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자국의 미녀들을 모아서 오부차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이것은 겉으로는 충성과 감사의 표시이지만, 사실은 지독한 음모가 숨겨져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그 여인들 무리에 중국 미녀들 중 순수하게 미모로만 따지면 거의 최고의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서시' 가 속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시를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된 오부차는 사구천의 의도대로 되고 만다. 그녀에 완전히 빠져서 젊은 시절 품었던 복수심도, 야망도 모두 잃고 일개 범부로 전락하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서시는 심통이라는 일종의 심장 질환을 앓고 있었는데, 가끔 그녀가 심장의 통증을 느끼고 얼굴을 찡그리기라도 하면,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모든 사람들이 넋을 잃었다고 한다.

 

<서시 상상도, 출처 http://m.blog.daum.net/money33/9786616>


서시에 빠진 오부차는 그녀를 위해 고소대라는 아주 화려한 궁전을 지어서 그녀를 살게 해주었다.

 

BC 484년 오부차는 근처에 제국을 공격해 승리를 거둔다. 그런데 사실 제국은 오왕국이 딱히 공격도 할 필요가 없는 나라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오부차는 이 작은 승리에 취해서 자신의 용맹함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자랑을 했다. 그러자 오자서는 그 모습을 보고 한탄을 하게 되는데, 만약 졌다면 경각심이라도 가질텐데 이런 작은 승리를 거둬서 오만해지기만 했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있어서 진정한 적은 월왕국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백비가 그런 모습의 오자서를 모함하고, 그로 인해서 오자서는 결국 자살을 하게 된다. 파란만장했던 한 남자의 삶이 그렇게 마무리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은 오나라의 멸망의 신호탄이 된다.

 

그로부터 2년 후인, BC 482년에 오부차는 월나라를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진()국을 침공한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승리를 하지만, 오부차의 군대가 나라를 비운 절호의 기회를 월나라의 사구천이 놓치지 않는다.

 

이 일로 인해서 오부차는 완전히 코너에 몰리게 되고, 사구천에게 화친을 요청하게 되는데, 놀랍게도 사구천이 그 화친 제안을 받아들인다. 당시에 사구천에게는 오나라를 온전히 제압할 군사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시에 빠져 있던 오부차는 이 한 차례의 패배로 인해 모든 의지를 잃고 완전히 폐인이 되고 만다. 그리고 9년 후인 BC 473년 더욱 강해진 월왕국은 오왕국을 재공격을 해서 멸망할 때까지 서시의 치마폭에서만 살다가 결국 최후를 맞게 된다.

 

멸망 당시 오부차는 또 다시 화친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스스로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자살을 한다. 저승에서 오자서를 볼 면목이 없다는 이유로 인해서 말이다. 그에게 적어도 그런 양심은 남아있었나 보다.

 

이렇게 오나라는 114년이란 짧은 시간만 존재한 후, 멸망해버리고 만다.

 

중국 역사상 월나라의 사구천은 가장 유명한 치욕을 견딘 인물로 기록이 되어 있다. 이해는 간다. 살아남기 위해서 원수의 똥까지 먹었고, 곰의 쓸개를 먹으면서 복수심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사구천은 치밀하고 잔인한 성품의 사람임은 분명하다. 보통 그런 사람들이 그 정도 수준의 인내심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똥을 먹는 짓까지도 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의지력으로 보는 것은 어리석은 판단이다. 그것은 바로 욕망이다. 강력한 욕망만이 그런 비굴함을 참아낼 수 있는 힘을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그의 성품을 그의 두 신하 중 한 명인 범려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고, 다른 신하 한명인 문종은 몰랐던 모양이다.

 

범려는 월나라가 오나라를 이기고 패권을 쥐자, 문종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그 편지에 그 유명한 문구가 들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냥개로 토끼를 잡으면, 사냥개도 삶아 먹는다' 라는 뜻을 가진  '토사구팽' 이다. 이 문구는 훗날 한나라를 창업한 유방이 자신의 최고 장수였던 한신을 죽임으로써 유명해진 사자성어기도 하다.

 

아무튼 결국 사구천을 두려워하며 도망친 범려는 살고, 사구천을 믿은 문종은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렇게 신흥 패자로 떠오른 월나라 역시 7대 왕인 사무강의 시대인 BC 333년에 멸망하고 만다. 나라를 세운지 165년만이다. 그리고 그나마 패자로 남아있던 진()국마저도 스스로 망해가다가 결국 멸망하게 된다.

 

그리고 그로부터 100년의 시간이 흐른 후, 한 인물이 존재감도 거의 없는 주나라를 무너뜨리고 중국 최초의 강력한 통일 왕국을 세우게 된다. 그가 바로 진()시황제이다.

 

또한 이 시기를 기점으로 춘추시대를 이은 전국시대마저 끝나고 결국 수 많았던 나라들이 성립하고 흥망성쇠를 했던 춘추전국시대는 마감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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