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을 넘어, 나를 찾다

5. 확대 해석

아이루다 2017. 5. 31. 06:58

 

지난 시간에 상처와 그것의 덧남인 확대해석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어요. 그리고 상처는 상처 그 자체보다도 확대해석이 훨씬 더 큰 문제라는 점도 강조해서 지적했죠.

 

혹시나 해서 다시 한번 강조할게요. 상처에 대한 확대해석은 정말로 정말로 주의 깊게 다뤄져야 해요. 이것이 조금만 어긋나도 당신의 삶은 의도치 않게 변형되어 결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요. 그나마 그 변형이 좋은 쪽이라면 좋지만, 보통은 그렇지 못해요. 설령 확대해석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뤄진다고 해도 말이죠.

 

이것과 관련된 흥미로운 점 하나는사람들은 매일 매 순간 어떤 식으로든 확대해석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점이에요. ,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서 나름대로 객관적이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수준의 해석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어요.

 

확대해석이 가진 진짜 무서운 점이 바로 그것이에요. 그 영향 자체가 개인이 인식할 수 없는 깊은 영역에 숨겨져 있거든요. 그래서 일반적으로 그것을 자각하기란 거의 불가능해요.

 

당신은 식당에 갔어요. 그런데 식당 종업원이 매우 불친절해요. 식당 문을 열고 들어와도 본채 만 채, 자리에 앉아도 물이나 메뉴 판을 가져다 주지 않아요. 큰 소리로 부르니 그때서야 와서 불친절한 태도로 주문을 받아가요. 그리고 나중에 음식이 상위에 올려 놓을 때도 탁탁 놔요.

 

그 모습을 본 당신은 괜히 기분이 나빠져요. 왜냐하면 그 종업원이 당신을 무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말 그대로 서비스가 엉망인 집인 것이죠.

 

이때 당신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죠. 내가 호구로 보이나, 같이 온 친구에게 원망도 생겨요도대체 왜 이런 집에 오자고 했나, 차라리 여기 말고 이 음식 가게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자신이 좋아하는 콩나물국밥 집을 갈걸 하는 생각도 들죠.

 

그렇게 짜증도 나고 후회도 들면서 은근히 화가 나요. 온갖 나쁜 감정들이 밀려오죠. 그래도 그것까지는 참았어요. 그런데 계산을 하려고 보니 주문 자체가 잘못 되어서 괜히 돈이 더 많이 붙어 있었어요. 시키지도 않은 소주가 들어가서 4천원이나 더 나온 것이죠.

 

그 순간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솟구쳐요. 그래서 계산을 하는 사람에게 언성을 높이게 되죠. 도대체 이 가게는 제대로 하는 것이 뭐냐고 그래요. 그런데 사실 계산대에 돈을 받고 있던 사람은 잘못한 것이 없어요주문이 잘못 기록된 문제는 모두 처음에 주문을 받았던 불친절한 종업원이 실수로 주문 내용을 잘못 전달한 것이에요.

 

아무튼 당신은 계산을 한 후, 기분이 많이 상해서 가게를 나왔어요. 그리고 같이 간 친구에게 한 마디 해요. 왜 이런 가게를 오자고 했냐고 말해요. 그런데 따져보면 사실 그 친구는 당신이 아무거나 먹자고 해서 이곳에 온 것뿐이에요. 그 친구도 당신처럼 기분이 나쁨에도 자신이 이 가게에 들어오자고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신의 온갖 짜증을 받아줘야 할 형편이 되었죠.

 

이 단순한 상황에서 확대해석은 무엇일까요? 잠시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세요.

 


첫 번째는 종업원이 당신을 무시하고 있다고 확대해석을 한 점이에요. 

 

그런데 정말로 종업원이 '당신'을 무시했을까요? 아니죠. 그 종업원은 '누구나' 무시해요. 원래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무시하기 때문이죠. 그러니 그것 때문에 괜히 더 기분이 나쁠 필요가 없어요. 기분은 나빠도 그냥 그러고 말아야죠.

 

길을 걷는데 지나가는 개가 당신을 보고 사납게 짖을 때 어떻게 하겠어요. 그냥 빨리 지나가고 말아야 해요. 그 개는 원래 사람만 보면 짖어요. 그러니 저 개가 나를 무시하나 라고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요. 그래 봐야 괜히 개한테 화만 나고, 화가 나도 뭔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혹시나 개를 발로 찼다간 개 주인과 싸움만 나죠.

 

두 번째는 주문이 틀린 것에 대해서 자신도 모르게 과도하게 화를 낸 점이죠.

 

이것은 주문이 틀려서 짜증이 난 것이 아니라, 이미 마음 속에 짜증이 나 있었기 때문이에요. 사실 식당 주문 시스템이 완벽할 수는 없죠. 틀릴 가능성도 있어요. 당신도 그것을 이미 알아요. 그래서 틀렸다면 다시 확인해서 계산을 하면 되요.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아주 단순하게 처리될 일이었어요. 하지만 당신은 이미 화가 났기에 계산을 똑바로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강력하게 따질 것이에요. 그렇지만 그것은 그저 객관적으로 제일 명확하게 드러난 식당의 잘못이었을 뿐이에요. 이건 아니죠.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은 처음부터 종업원의 태도였어요. 그것으로 인해 주문 실수는 분노로 엉뚱하게 확대되었죠.

 

세 번째 친구에게 짜증을 낸 일이에요.

 

이것은 절대로 친구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 친구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그런 집인지 모르고 들어간 것이죠. 그런데 당신은 자신이 짜증이 났기에 그것을 확대해석 해서 마치 친구가 그 사실을 다 알고 들어간 사람처럼 취급해요. 그래서 그 친구는 억울하고 또 기분도 더 상하게 되었죠.

 

이 별 것 아닌 순간에도 이렇게나 많은 확대해석이 일어나요. 사람의 기분은 언제나 이런 식이에요. 어떤 식으로든 기분이 상하면,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요. 원인을 생각하고, 누가 잘못했는지 판단하려고 해요. 그리고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확대해석만 하고 말아요.

 

, 그러면 확대해석이 우리들 각자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알아보도록 하죠.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평가' 를 받게 되요. 다른 말로 '반응' 이라고 해도 좋아요. 한 마디 말을 할 때마다, 뭔가 행동을 할 때마다, 끝없이 받아요.

 

그런 반응이나 평가는 웃음이나 호감 등의 좋은 것일 때도 있지만, 냉소적이거나 혐오와 같은 부정적인 것도 있어요. 물론 우리는 좋은 것을 바라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언제나 좋을 수는 없죠.

 


그리고 부정적인 반응이나 판단을 받게 될 때 바로 상처를 입어요. 그렇게 상처를 받게 되면 크게 두 가지로 반응을 하게 돼요. 하나는 '저 사람은 왜 나에게 이럴까?' 이고 다른 하나는 '내 문제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에요.

 

이런 반응은 당신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현상이에요. 물론 어떤 사람들은 상대방의 반응에 거의 신경 쓰지 않아요. 왜냐고요? 이유는 없어요. 원래 그런 사람들이에요.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행동만 하고 싶어서 다른 사람이 어떤 반응이나 태도를 보이든 신경 쓰지 않아요.

 

이런 사람들이 부럽거나 혹은 좋아 보이시나요? 우리는 이런 사람을 안하무인이라 하죠. 혹은 진상이라고 해요.

 

인간이 인간 세상에 소속되어 살아갈 때 주변 사람들을 신경 쓰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에요. 그래야 교통질서도 지키고, 일반적인 상식도 통하죠.

 

그러니 '나는 왜 다른 사람의 말에 그렇게 많이 신경 쓸까?' 라는 최초의 확대해석은 하지 마세요. 설령 그런 생각이 들더라도, 그것은 '사람은 원래' 라고 그렇게 마무리 하는 것이 좋을 것이에요. 이 점에 관해서는 오히려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문제에요.

 

그 다음으로 나타나는 '저 사람은 왜 저럴까?' 라는 생각도 사실 무의미해요. 왜냐하면 그 사람은 식당의 종업원처럼 원래 그런 사람이었으니까요. 이것은 '개가 왜 짖지?' 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아요.

 

물론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친절하고 당신에게만 불친절할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그것은 둘 중 하나에요. 당신이 그 사람에게 어떤 종류의 이득을 줄 가능성이 없거나, 그 사람이 당신에게 아무런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에요.

 

그리고 설령 그렇다고 해도 상대가 당신에게 나쁜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 사람 자체의 문제에요만약 상대가 보통 사람 수준의 상식을 가졌고 그런 경우라면 그냥 무관심하게 행동하는 것이 일반적이에요. 물론 무관심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일부로 나쁘게 구는 것보다는 훨씬 낫죠.

 

길을 가다가 불쌍한 거지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는 있지만, 거지가 가진 쪽박을 깨는 것은 잘못된 일인 것이죠.

 

마지막으로 나타나는 '나는 무엇이 문제일까?' 라는 생각은 없애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그것도 역시 마찬가지 맥락이에요. 당신은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죠. 하지만 결국 그것은 당신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의 문제에요.

 

만약 당신의 키가 아주 큰데, 상대가 너무 작아요. 그래서 그 사람이 당신을 부담스러워하고 피하려고 해요. 이것이 당신의 잘못인가요? 반대로 당신의 키가 아주 작고 상대가 아주 키가 커서 상대가 당신을 피해요. 이것도 당신의 잘못인가요?

 

당신의 키가 크든, 작든 상관없이 그것에 대해 반응을 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상대에 따라 달렸어요.

 

, 당신이 가진 어떤 특징이 상대에게 호감이 될지, 비호감이 될지는 상대가 결정할 문제이지 당신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에요. 당신은 그저 사회적으로 잘 통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고 싶은 욕망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죠.

 

그리고 그런 욕망은 보통 이루기가 힘들어요. 제대로 생각하면, 처음부터 갖기 힘들기에 사회적으로 잘 통하는 특징이 된 것이죠.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은 사회적으로 잘 통하지 않아요. 100년 전에는 고무신만 신어도 엄청난 부러움과 호감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좋은 신발을 신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부러움이나 호감을 얻긴 힘들죠.

 

하지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그것을 가지고 싶기 때문에, 어느 순간에 누군가로부터 그것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평가나 반응을 인식하게 되면 그때부터 자기 비판에 들어가요. 그래서 아무런 필요도 없고, 사실상 스스로를 괴롭히기만 하는 '나는 무엇이 문제일까?' 를 생각하기 시작해요.

 

진짜 문제는 사실 그것이에요. 자신이 갖지 못한 것들을 욕망하고 사는 것, 그것이 문제죠. 하지만 당신은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 이유, 즉 상대의 이유, 자신의 이유만을 찾죠. 이것은 사실상 엉뚱한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리고 모두 확대해석의 원인이 되고 말죠.

 

이것을 좀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상대와 당신의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죠.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 주었던 기억은 얼마나 나요반대로 당신이 상처를 받았던 기억은 얼마나 나죠?

 


아마도 받은 상처는 많이 나지만, 준 상처는 거의 기억이 나질 않을 것이에요. 사실 어떤 상처를 주고 다녔는지조차 전혀 까마득히 모를 것이에요. 받은 사람만 알 뿐이죠. 그나마 당신이 매우 훌륭한 수준의 인격 수양을 한 사람이라면 준 상처를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상처를 주지도 않겠죠.

 

그런데 왜 우리는 상처 받은 것은 기억이 잘나고, 상처를 준 것은 기억이 나질 않을까요?

 

상처는 원래 그런 고유한 특징을 가졌어요. 받는 사람만 기억하고 주는 사람은 잘 인식하지 못해요. 그리고 상처를 잘 주는 사람은 대부분 정해져 있어요. 당신 주변에도 그런 사람 한두 명은 있을 것이에요. 말을 함부로 하거나, 너무 심하게 비꼬거나, 굳이 안 해도 되는 말을 꼭 꺼내는 사람들이 있죠.

 

그러니 상처를 받고 싶지 않다면 그런 사람들 곁에 있지 않는 것이 제일 좋아요. 운 없게 불친절한 종업원이 있는 식당에 들어간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던 것이죠. 그런 사람 곁에 있었다면 그것은 그냥 당연히 일어날 일이었어요.

 

그럼에도 당신은 당신이 기분이 나쁜 일을 겪을 때마다 확대해석을 해요. 상대가 저지른 잘못을 더욱 더 나쁘게 해석하거나, 잘못도 없는 자신을 괜히 더 자책해요.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서 분을 참지 못하거나 혹은 자신을 심하게 비하해요.

 

차를 타고 가다가 어떤 차가 앞에 급하게 끼어들면 놀라서 빵빵거려요. 그리고는 상대가 자신을 무시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분노가 솟구치죠. 그래서 참지 못하고 재빠르게 차선을 변경해서 끼어든 차 옆에 바짝 붙은 후 창문을 내리고 욕을 해요.

 

그런데 그 급하게 끼어든 차의 운전자가 당신을 무시한 것일까요? 솔직히 말해서 그 사람 입장에서 보면 도로 위에서 우연히 만난 당신이, 일부로 무시까지 해야 하는 그렇게나 중요하고 신경 써야 할 사람이었을까요? 아니죠. 그 사람에게 당신은 그저 도로를 운전하고 다니다 보면 만나게 되는 셀 수 없이 많은 차 중에 하나였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당신이 보이지도 않았어요. 그 사람은 원래 그렇게 운전을 하는 사람일 뿐이에요. 그리고 더욱 더 중요한 점은 당신이 화가 난 진짜 이유는 상대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에요.

 


당신은 놀라서 화가 난 것이에요. 깜짝 놀라서 두려움을 느끼니까 화가 났어요. 혹시 당신이 다른데 정신이 팔린 상태라서 앞 차가 끼어 든 것을 보지 못했다면, 그때 옆 사람이 그것을 보고 알려줘도 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에요. 왜냐하면 놀라지 않았으니 두려움도 안 생겼고 그리고 이미 끼어든 상태인데 뭘 더 하겠어요.

 

기분이 좀 나쁘더라도 그냥 참고 말죠.

 

사람들이 살아가다가 보면 자주 나쁜 감정 상태에 놓여요. 당연해요. 질투도 나고, 열등감도 느끼고, 누군가에게 혼나기도 하고, 실수도 하고, 재수가 없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황당한 일을 겪기도 해요.

 

이런 경험들은 기분을 나쁘게 하죠. 하지만 아무리 기분 나쁜 일도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잊혀져요. 그런데 이것을 자꾸 헤집어서 상처를 덧나게 하면 기분이 나쁜 상태가 결코 끝나지 않아요. 오히려 점점 더 커지죠.

 

화가 난 경우, 화가 난 이유를 생각하다가 보면 더욱 더 화가 나는 경우가 많아요. 화가 증폭되죠. 확대해석이 되면 될수록 모든 감정은 증폭돼요.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싸우다 보면 점점 더 심하게 싸우게 되는 이유에요. 화 뿐만이 아니라, 다른 감정들도 마찬가지에요.

 

질투 자제도 기분이 나쁜데, 자신이 질투심이나 느끼는 한심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면 기분은 더욱 더 나빠요. 열등감을 느끼는데, 상대가 나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생각이 들면 더욱 더 기분이 나빠요. 큰 실수를 했는데 자신의 문제를 탓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우울해져요.

 

그러니 중간에 멈춰야 해요. 뭔가 중단을 시킬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해요. 그리고 육체적 상처는 붕대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정신의 상처는 자기 성찰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생각을 멈춰야 하기 때문이죠.

 

자기 성찰은 생각보다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그저 지금 머리 속을 꽉 채우고 있는 어떤 생각을 중단시키는 일이죠. 그러면 틈이 생겨나요. , 조금이라도 그 일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죠. 이것이 중요해요. 그래서 이 틈만 잘 잡고 있으면, 생각은 희석되고 확대해석은 서서히 멈춰요.

 

이것만이 확대해석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가장 좋은 시도는 어떤 나쁜 감정이 들었을 때, 그것을 스스로 인식하고 확대해석을 멈추는 일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보통 어떤 강렬한 감정 상태에 놓였을 때, 그것을 스스로 인식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죠.

 

하지만 이것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에요. 즐겁고 행복할 때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은 정말로 힘들고, 할 필요도 없지만, 기분이 나쁜 감정 상태에 놓일 때는 나름대로 가능성이 있어요.

 

그리고 설령 그 순간이 지나갔더라도, 그 후 그 감정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때 다시 바라볼 수도 있어요. 그래서 자신의 감정이 사실은 거의 확대해석으로 인해서 발생한 것임을 스스로 성찰해 낼 수 있다면, 그 감정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 있죠.

 

물론 한번 생긴 감정이 급작스럽게 사라지지는 않아요. 우리의 감정은 원래 급하게 생겼다가 서서히 줄어요. 단지 확대해석을 하지 않으면 이 과정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데, 확대해석을 해버리고 나면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는 현상이 일어나고 말죠.

 

이것은 결코 좋지 않아요. 불행함이죠. 행복하고 싶다면 확대해석을 멈춰야 해요. 아무리 스스로 생각해서 그것이 논리적으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생각해도 말이죠. 왜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들려고 그리도 노력하죠?

 

다른 차가 급하게 끼어들었다면 그냥 잠시 기분 나쁘고 말면 끝이죠. 거기에 온갖 욕을 하고, 하다가 옆에 탄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그러다가 결국 둘이 싸우고, 그로 인해서 가던 여행을 취소하고 돌아오게 만들 필요는 없잖아요.


이것이 원하던 결과인가요? 기분 좋게 여행을 떠났다가 싸우고 돌아오는 일이? 그러고도 돌아와서도 자신만의 논리와 자신만의 합리로 상대와 끝없이 싸우겠죠. 그래서 행복하신가요?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짓, 가능하다면 그만 둘 필요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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