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을 넘어, 나를 찾다

2. 당신의 이야기

아이루다 2017. 5. 28. 06:12

 

지금 이 글을 보고 계신 분들은 반드시 '누군가' 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사람이겠죠. 사람이 아니라면 이 글을 읽을 수는 없으니까요. 이것 말고도 공통점은 꽤나 많을 것입니다

 

남자나 여자일 것이고, 나이는 젊거나 늙었을 것이겠죠. 결혼을 했을 수도 있고, 안 했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했다가 이혼을 했거나 사별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으며가슴 아픈 일이지만 있었다가 지금은 없을 수도 있어요. 혹은 나이가 꽤 되어서 사랑스러운 손자가 있을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이름은 각자 하나씩 있을 것이에요. 특별한 일을 하지 않는 한, 사람이라면 이름은 있으니까요.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분류가 가능해요. 학생이면 학생, 학부모면 학부모, 시어머니, 회사원, 30, 남자, 여자 부부 등등 삶이 현재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분류가 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 분류는 일종의 무리에요. 그리고 각자의 무리는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있죠. 학생들은 공부나 친구 그리고 걸그룹에 대한 관심 등의 고유 특징을 가지고 있고, 엄마들은 자녀 교육, 학원, 어린이집에 대한 관심 등의 고유 특징을 가지고 있죠.

 


그래서 흔히 사람들은 당신이 현재 어떤 상태에 있느냐 혹은 어떤 무리에 속해 있느냐를 가지고 당신을 판단하려고 해요. 학생이면 학생으로, 엄마면 엄마로, 회사원이면 회사원으로 판단하죠.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까지는 맞아요. 사람들은 대부분 어떤 무리에 속해 있을 경우, 그 무리가 가진 일반적인 특징을 공유하거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당신이 되는 것은 아니죠. 당신은 분명 어떤 무리에 속하긴 하지만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단순히 설명 가능한 존재가 아니니까요.

 

만약 당신이 30대이며, 여자이고, 서울에 살며, 결혼을 했고, 아이가 둘이며, 전업 주부라면 당신은 분명히 같은 조건에 있는 여자와 많은 공통점이 있을 것이에요. 생각이나, 관심사나, 요즘 고민하고 있는 것들이나, 경험하고 있는 것들에서 참 많은 것이 비슷할 것이에요.

 

그래서 만나게 되면 금세 공통 이야깃거리를 찾아서 마차 오래된 친구처럼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도 몰라요. 남편 얘기, 시댁 얘기, 아이 얘기, 음식 얘기, 유치원이나 어린이 집 얘기, 요즘 좋다는 동화책 얘기, 말을 안 듣는 아이를 다루는 법 얘기 등등 많겠죠.

 

그러니 외부에서 당신을 바라보는 제 삼자는 당신을 어떤 정형화 된 틀로 맞춰서 당신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요사실 그런 방식으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요꽤나 잘 맞기도 해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사람을 파악하는 것이 정말로 누군가 당신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일까요?

 

절대로 아니죠. 왜냐하면 그런 분류에 의한 이해는 그저 매우 표피적인 이해에 불과하기 때문이에요. 사실 진짜 당신은 그 누구와도 전혀 다른 어떤 존재이죠.

 

그 무엇보다도 당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기억은 절대적으로 유일합니다. 그것은 확실해요. 그리고 그 점이 바로 당신이 당신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이유가 될 수 있어요

 

사람들은 외모를 통해 서로를 구분하는 것에 매우 익숙해요. 그리고 외모를 사람의 고유한 특징이나 혹은 누군가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단서로 생각하죠. 하지만 사람들이 외모를 통해 다른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그저 그것이 가장 편하고 효율적이기 때문이에요.

 

예로부터 서로 몸이 바뀐 상황을 소재로 한 영화, 소설, 애니메이션 등이 제작된 적이 많았어요. 그때, 서로 몸이 바뀐 사람들은 평소에 알던 사람을 찾아가 외모가 아닌, 기억을 통해 자신을 증명해요. 당연해요. 사실 외모적 특징은 그것이 익숙하고 편하며 변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자신을 정의하는데 쓰였던 것뿐이에요.

 

보통 사람들은 몸이 바뀌는 경험은 해보지 못하지만, 젊은 시절의 외모와 늙은 외모는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만큼 서로 다른 경우도 많아요하지만 그 육체 안에 있는 일관성 있는 기억을 통해 자신을 자신이라고 느끼고 있죠. 주변 사람들도 같은 사람으로 대하고요.

 

그러니 어떤 사람이 어떤 고유한 개체일 수 있는 것은 바로 가지고 있는 지식과 기억뿐이에요. 특히 기억이죠.

 

그럼에도 사람들이 외모를 통해 다른 사람을 구분하는 이유는, 만날 때마다 서로가 가진 기억을 확인하는 절차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사람이 외모는 한 순간에 바뀌지 않으니 그냥 외모로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 제일 효율적이에요.

 

그래요. 당신은 당신이 가진 외모가 아닌, 당신의 나이만큼의 시간 동안 쌓인, 기억의 총합으로 정의될 수 있는 존재에요.  과하게 표현하면당신이 가지고 있는 기억 자체가 바로 당신이에요.

 

그 기억은 경우에 따라 다른 이들과 겹쳐지거나 공유될 수는 있지만, 결코 당신을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당신을 벗어난 기억은 금세 왜곡되거나 전혀 다른 어떤 것이 되고 말죠.

 


당신이 멋진 유럽 여행을 다녀온 후그 경험의 기억을 친구들에게 얘기해봐야 친구들의 기억 속의 유럽은 당신의 기억과 전혀 달라요이해를 돕기 위해서 그들에게 잘 찍은 사진을 보여줘도 마찬가지에요. 설령 친구들과 같이 여행을 했다고 해도 마찬가지에요어떤 노래의 가사처럼 그 여행의 추억은 서로 다르게 쌓이죠.

 

기억의 이런 특징이 당신의 기억이 유일할 수 있는 이유에요. 만약 누군가 당신과 똑같은 기억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더 이상 유일한 존재가 아니게 되죠.

 

이것은 마치 당신의 입에 들어간 맛있는 케잌과 같아요. 당신의 혀에 달콤함을 선사하고 목구멍을 통해 넘어간 케잌은 오직 당신에게만 경험되고 난 후 기억되죠. 그 맛을 다른 사람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같이 케잌을 먹은 사람과 얘기해도, 결국 둘 사이에는 결코 겹칠 수 없는 차이가 있어요. 둘은 그저 자신의 경험으로 상대가 어떤 것을 느꼈을 지, 상상만 할 수 있죠.

 

제가 왜 이런 뻔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고 있냐고요?

 

제가 이런 뻔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당신은 오직 당신일 뿐임을 알려드리려고 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요. 당신은 당신이에요. 당신은 살아가면서 수 많은 얘기를 하겠죠. 그것이 무엇이든, 당신이 속한 어떤 무리 속에서 자신이 해나가고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 말할 것이에요.

 

하지만 그것들이 당신은 아니에요. 당신은 학생도, 회사원도, 부모도, 이웃도, 주부도, 할머니도 아니에요. 당신은 그저 당신이에요.

 

이 점을 꼭 기억하세요. 절대로 잊지 마세요. 이것은 너무도 단순한 진실이지만, 당신은 그것을 곧잘 잊곤 해요. 당신이 왜 그것을 잊는지에 대해서는 천천히 설명을 드릴 것이에요. 아무튼 지금 이 순간에는 그저 한 마디만 정확히 기억하면 되요.

 

'나는 나다.'

 

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기엔 당신은 너무도 오랫동안 분류된 삶에 적응되어 왔어요. 당신은 아이였고, 학생이었고, 취업 준비 생이었고, 신입사원이었고, 신랑이나 신부였고, 부모였고, 며느리였으며, 사위였어요.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은, 끝없이 소속되어가는 무리 속에서 사회가 그 무리에 요구하는 것을 최선을 다해 책임을 다하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혹시 못하게 되면 불안함을 느끼고, 최대한 평균치 이상에 근접하려고 노력하고, 결국 실패하면 스스로를 자책 해왔죠.

 

학생 때는 공부를 잘해야 했고, 취직을 앞두고는 좋은 회사에 들어가야 하기에 수 많은 이력서를 냈죠. 때가 되면 결혼을 하려고 소개팅을 하거나 선을 봤겠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는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을 것이에요.

 

하지만 당신의 이런 삶은, 당신 그 자체가 아닌, 당신의 기능성을 의미할 뿐이에요. 그것은 당신의 정체성이 아니라 당신의 유용성을 뜻하는 것이죠그래서 당신이 해온 것들을 설명하는 것은 결코 당신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너무 오랫동안 그것에 익숙해져서 도대체 당신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

 

나는 나지만,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이제 당신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할 것이에요.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앞으로 많은 시간 동안에 걸쳐서 서로 대화를 나눌 주제가 될 것입니다.

 

그 부탁이 뭐냐고요? 혹시 그 답이 궁금하시다면 좋은 시작이네요. 호기심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해요. 만약 당신이 그 어떤 흥미로움도 느끼지 못했다면, 이후 모든 종류의 설명들은 무의미 할 것이에요. 그리고 설령 그렇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것은 그저 당신에게 불필요하기 때문이거든요.

 

모든 것이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에요. 그리고 어떤 것들은 어떤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필요하죠. 이 글도 그럴 것이에요. 그러니 혹시나 맞지 않는다 싶으면 오래 붙잡아 둘 필요가 없어요. 대신 흥미로움이나 호기심을 느꼈다면, 조금 더 나아가 보도록 하죠.

 

이제 무슨 부탁을 할지 말씀 드릴게요. 그 부탁은 바로 지금부터 당신의 이야기를 해달라는 것이에요.

 

좀 어이가 없는 부탁인가요? 사실 부탁의 내용이 좀 뜬구름 잡는 내용이긴 하죠. 그래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 드릴게요.

 

제가 당신에게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면, 아마도 당신은 당신의 기억을 꺼내어 당신의 과거를 이야기 할 것이에요. 혹은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지도 설명하려고 하겠죠. 당신이 무엇을 믿고, 당신이 무엇을 소중히 여기고, 당신은 무엇을 해야 행복한 지, 당신이 가치있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려고 하겠죠.

 


하지만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이 아니에요. 저는 당신이 기억 속에서, 당신이 느꼈거나 혹은 지금 느끼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감정들과 당신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당신조차도 그 존재를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는 당신의 근원적 욕망에 대해서 듣고 싶어요.


왜냐고요? 그것이 바로 당신이기 때문이죠. 적당한 표현과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해석된 '결과' 가 아니라, 그 어떤 필터도 거치지 않은 그 자체 말이에요.

 

그러니 당신이 맡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고민스러운지,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얼마나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있는지 말하려 하지 마세요. 

 

그것들은 그저 당신이 아닌 당신에 대한 해석이며 설명일 뿐이에요. 그것은 당신이 아니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 좋게 그럴듯 한 이야기일뿐이에요.

 

물론 그것을 말하는 것은 매우 힘들 수 있어요. 인식하기도 힘들고 더해서 그것을 입밖으로 꺼내는 것은 더욱 더 힘들어요.

  

다행히 당신은 그것을 직접 말할 필요가 없어요. 제가 당신을 대신해서 그 이야기를 할테니까요. 당신은 그저 그것을 들으면서 자신을 돌아보면 돼요. 부정해도 되고, 무슨 헛소리냐고 해도 돼요. 상관없어요. 하지만 결국 당신은 인정을 하게 될 것이에요.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서 아니라 바로 당신 역시도 인간이니까요.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는 것을 통해 운이 좋다면, 당신은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당신과, 당신이 깊게 바라 본 당신이 사실은 서로 전혀 다른 별개의 존재임을 느끼는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것이에요.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당신의 삶 전체적인 과정 속에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아요.

 

그런 후 당신이 느끼는 여러가지 문제들, 즉 현재 삶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거나, 어떤 말못할 고민이 있거나, 삶이 뭔가에 막힌듯한 느낌이 들거나, 이유없이 외롭거나, 불현듯 우울하거나 등등을 현재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에요.

 

하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반드시 솔직해져야 해요. 남들에게 설명하기 좋게 적당하게 해석되고 포장된 당신의 이야기는 거의 아무런 도움이 되질 못해요.

 

그렇게 당신의 기억을 말해줘야 합니다. 숨기지 말고 말해야 해요. 그 기억이 부끄럽거나, 숨기고 싶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돼요. 모든 것을 열어야 해요.

 

만약 어딘가 몸이 아파 병원에 가면 여러 가지 장비로 당신을 검사할 것이에요. 그때 검사 때문에 옷을 벗어야 할 때는 부끄럽지만 벗어야 해요. 그래야 제대로 된 검사를 할 수 있어요.

 

그래요. 사람은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어딘가 아프다면 모든 껍질을 벗어야 해요. 그렇게 할 때 모든 문제의 근원적 원인을 발견할 수 있답니다. 단지 육체적 문제는 병원에서 치료받는 것이 매우 쉽지만, 정신적 문제는 검사를 받는 것부터 결코 쉽지 않아요. 치료 역시 스스로 해야 해요.

 

그래도 너무 실망하지는 마세요. 왜냐하면 이 글과 앞으로 쓰여질 글들은 그것에 대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거든요.

 

만약 당신이 그것을 잘 이해하고 따라온다면, 당신 역시도 당신을 스스로 진단하고 그것을 치료할 기회를 맞을 수 있을 것이에요. 그래서 지금보다는 좀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에요. 그러길 희망해요.

 

그럼 이제 '당신의 이야기' 를 해주세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의 이야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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