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탈출 프로젝트

안녕, 영월집

아이루다 2017. 4. 26. 07:47

 

내 예상과 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나는 어제를 마지막으로 영월집에 다녀왔다. 집을 짓기 시작한 후로 만 5년만에 이별이다.

 

5년전인 2012년도 이때쯤이면 집이 막 지어지고 있었다. 지금도 그때가 기억이 난다. 그리 오래된 시간도 아니다.

 

시골에 집을 짓고 싶다는 마음을 먹고는 터무니 없는 계획과 예산으로 시작했었다. 중간에 이런 저런 변화를 겪은 후, 영월의 한 장소에 터를 정하고 집을 지었다.

 

모든 것이 엉성했다. 그래도 집을 다 짓고 나니 참 좋았다. 예산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들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하지만 내가 자리를 잡은 지역에 군부대가 들어오기로 하는 바람에 모든 것이 틀어졌다.

 

, 지금에 와서는 큰 불만은 없다. 그 동안 마음을 바꿔 먹은 탓에 그런 것 같다. 나는 지금 두 번째 기회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집을 짓는 것에 대해서 정말로 아는 것 없던 나는, 이제는 그것을 조금은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두 번째 집은 조금 나아질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또 땅을 알아보고, 집을 지을 시공사를 정하고, 집에 관한 많은 서류를 처리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나에게 있어서 영월집은 단순한 집 이상이었다. 나는 집을 지은 후, 나를 바꿨다.

 

사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영월집에 감사하다. 물론 영월집만은 아니다. 나를 바꾸게 해준 것들은 몇 가지 더 있다. 하지만 그 시작 지점에 영월집이 있다.

 

그곳의 무엇이 나를 바꿨는지는 모른다. 사실 표현할 방법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그곳의 맑은 공기가, 아무런 소음이 없는 고요함이, 아침의 상쾌함이, 별이 총총히 빛나던 밤이, 붉게 타오르던 모닥불이, 창문을 열면 솔솔 불어오던 바람이, 잘 익은 옥수수가, 겨울에 구워먹던 군고구마가, 눈이 내려 하얗게 덮인 그 공간이, 봄이 되면 우체통에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던 새들이 그리고 그런 그곳에서 늘 함께 해주던 아내가 생각난다.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는 없다. 어쩌면 행복이란 단어로 표현해야 가장 맞을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들이 나에게 온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좀 덜 냉소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가족들과 조금 더 잘 어울릴 수 있게 되었고, 아내와 깊은 신뢰를 쌓았다. 나는 내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게 되었으며, 사람들에게 조금 더 잘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화를 거의 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이것은 작은 변화라면 작은 것이고, 큰 변화라면 큰 것이다. 그것을 측량할 방법이 없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아가면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그 만남은 우연히 이뤄지고, 그 헤어짐도 우연히 이뤄진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람이 평생을 함께 친구나 부부가 될지, 누군가와 헤어질 때 그것이 그 사람과의 마지막 만남일지 알 방법은 거의 없다.

 

그것을 아는 것은 오직 태어남과 죽음의 순간뿐일 것이다. 소중한 아이가 태어날 때, 그 아이와 평생 함께 함을 의심하지 않고, 소중한 누군가가 죽을 때 그것이 그 사람과의 마지막임을 아는 것, 그것 말이다.

 

나에게 영월집은 태어남과 죽음을 함께 한 유일한 존재이다. 그리고 나는 영월집과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첫 만남이 그랬듯이, 헤어짐도 그렇다. 요란하지도 않고 극적이지도 않다.

 

나는 집을 마지막으로 살펴 본 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차에 타서 시동을 걸고 출발을 했다. 나는 집이 보이는 마지막 지점쯤 잠시 멈춰 서서 차의 사이드 미러로 보이는 집을 잠시 응시했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짧은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왔다.




'도시탈출 프로젝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름 휴가  (0) 2014.08.27
광복절 연휴  (0) 2014.08.17
멧돼지와 무지개  (0) 2014.08.09
7월 방문.. 비가 오다  (0) 2014.07.23
초보 출사  (0) 2014.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