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고씨의 인문학개론

20강, 나를 넘어서 - 1부

아이루다 2017. 3. 3. 09:10

 

빙고에요.

 

오늘은 이 전체 강의의 마지막 날이면서앞선 19번에 걸친 강의들의 최종 결론을 내는 날이기도 하군요오늘 강의 할 최종 결론이 마음에 들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름대로 설명을 해보도록 할게요.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사람의 본질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그리고 최종적인 결론의 후보였던 '자아라는 존재에 대해서 나름대로 분석도 했죠.

 

그리고 우리가 낸 최종 결론은, 자아는 당신이 느끼는 두려움의 원천이며, 그로 인해서 발생하는 많은 감정들과 판단들의 주체라는 것이었어요

 

우리는 중간에 자아가 숨겨진 당신의 본질이라는 잘못된 결론을 잠시 동안 믿기도 했어요. 하지만 우리는 최종적으로 자아는 당신이 아님을 그래서 결코 당신과 일체화 되서는 안된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그리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죠. 그래서 결국 다시 처음의 질문을 다시 던질 수 밖에 없었죠.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오늘이 바로 이 질문의 정답을 찾기 위한 마지막 여행을 하는 시간이 될 것이에요.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오래 전 과거로 되돌아 갈 것입니다. 집도 없이 동굴 속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던  인류의 조상이 살던 그 시대로 말이죠. 갑자기 왜냐고요?

 


너무도 오래 전 이야기라서 그 기록조차 제대로 남아 있지 않지만,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그 모든 것이 바로 거기에서부터 시작되고 있거든요.

 

그래요. 우리가 다루고 있던 이 모든 것들은 약하고두려움을 느끼며, 생존에 대한 강렬한 욕구로 가득 찼던,  시절을 살았던 인간의 조상으로부터 엄청난 세대를 걸쳐서 전달받은 것들이에요.

 

당시 인간들은 덩치도 작았고, 날카로운 발톱을 갖지도 못했고그다지 빠르지도 못했고, 강한 턱이나 근력을 가진 존재도 아니었어요. 인간은 똑똑하다는 점만 유리했을 뿐, 그 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존재였겠죠.

 

그런데 그 당시를 살던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살았을까요? 삶의 목적이 무엇이었을까요? 요즘처럼 자신만의 추구하는 고유한 가치를 위해서 살았을까요? 아니면 그저 재미난 삶을 살고 싶었을까요?

 

설마 그런 것이었겠어요? 가치나 재미, 즉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행복한 삶은 그들에게는 사치스러운 목적이었을 것이 분명해요. 왜냐하면 그들이 매일같이 마주해야 하는 것이 바로 '죽음' 그 자체였으니까요. 그래요표현이 이상하긴 하지만, 그들은 삶의 목적은 생존이었어요.

 

그러니 당시를 살던 사람들에게 '당신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들 던진다면 그 답은 '나는 생존하기 위한 존재' 라는 답을 했을 것이에요하지만 실제로 누가 그런 답을 하겠어요. 그냥 별 이상한 소리를 다 한다는 황당한 눈빛으로 바라보기만 했겠죠.

 

당연하지만 생존 그 자체가 위협받던 그런 시기엔 이런 존재론적 질문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해요. 일단 살아야 뭐든 하는데, 사는 것 자체가 불투명한데 무슨 그런 질문에 답을 할 수 있겠어요. 그들은 그저 하루를 더 살면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존재당시는 그것이 바로 인간의 정의였죠.

 

그래요이런 식으로 오래 전 동굴 속에서 살던 사람들은 바로 '생존의 본능으로 정의할 수 있어요. '생존' 이었던 시절이죠.

 

생존의 본능은 죽음에 대한 공포의 다른 표현이에요초기 인류는 짐승에게 잡아 먹히거나, 다쳐서 죽거나, 아파서 죽는 것 등등, 그것이 어떤 종류의 죽음이든 간에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그 사실 자체가 가진 공포에 억눌려 살았을 것이에요.

 

당연하죠. 그 당시엔 늙어 죽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죽음이 흔한 일이었으니까요.

 

당시에는 먹을 것을 구하러 가다가 길을 잃어 죽고, 맹수에게 잡혀 먹고사냥 중에 상처를 입어서 죽고, 배고 고파서 죽고, 실수로 독초를 먹고 죽고,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자다가 죽고, 다른 사람과 싸우다 죽고, 지금으로써는 아주 별 것도 아닌 감기와 같은 흔한 병에도 죽었어요.

 

정말로 죽음이 흔한 일이었죠.

 

그래서 인간의 조상들은 뭔가 다른 생존 전략이 필요했어요. 적어도 머리는 좋았으니까 그것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죠.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어딘가에 정착을 하고 많은 숫자가 무리를 지어서 사는 삶의 형태였죠. 

 

그리고 이 새로운 생존 전략은 놀랍도록 대단한 성공을 거뒀어요.

 


이후 인간은 큰 문명을 일으키고 거대 도시를 건설할 수 있었거든요그리고 일단 모여서 살기 시작하자 점점 더 좋은 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과학 기술이 발전해나갔고, 세대를 따라 전승되는 지식의 힘도 점점 더 큰 역할을 하게 되었죠.

 

이런 변화 덕분에 인간들은 드디어 생존의 본능으로 살아가던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었죠.

 

이것은 결코 단순한 변화가 아니에요오랜 시간에 걸쳐서 일어났기에 변화 자체를 잘 느끼지 못할 뿐, 사실 따져보면 정말로 엄청나게 거대한 변화죠.

 

이것은 인간을 아예 다르게 정의할 수 있을 정도의 변화였어요. 문명을 발전시킨 인류는 이젠 더 이상 과거에 약하고 두려움을 가진 존재가 아니게 되었죠. 인간은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거든요.

 

사람들의 생존 가능성은 무척 많이 높아졌어요그렇게 되니 사람들은 동굴에 살던 시대에 비해서 훨씬 많은 여유를 가질 수 있었죠.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장례식도 지내 줄 수 있는 넉넉함도 가질 수 있게 되었어요또한 사후 세계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믿기도 했죠.

 

이런 변화가 가진 의미는 바로 이것이에요.

 

동굴에 살던 시대에 인간은 오직 생존만이 목표였어요그래서 인간들은 가능하다면 강한 육체적 힘과 날카롭고 강력한 무기를 가지려고 애썼죠그것만이 삶의 모든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런 능력들은 문명을 이루고 사회를 구성한 인간들에게는 예전처럼 중요한 조건은 아니게 되었죠. 물론 기본적으로 중요하긴 하지만 직업이 세분화 되고 각자 고유한 역할이 생기면서 모든 사람이 강한 힘과 무기를 가지려고 할 필요는 없어졌어요.

 

이것은 삶을 사는 방식 자체가 바뀐 것을 의미해요.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세상에서 잘 통할 수 있는 새로운 생존 방식을 터득하기 시작했죠.

 

그것은 바로 무엇인가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을 잘하는 능력을 갖는 것이죠. 주로 생존에 필수적으로 필요하거나 도움이 되는 것들을 만들거나 혹은 해내는 능력들 말이에요.

 

예전엔 사냥이나 채집만이 유일한 생존 전략이었는데, 이제는 옷을 잘 만들어도, 농기구를 잘 다뤄도, 돌을 잘 깎아도말만 잘 해도, 농사를 지어도장사를 해도아이를 잘 돌봐줄 수만 있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게 되었어요.

 

이런 사회에서라면 어떤 조건이 생존 가능성을 높여주게 될까요?

 

그것이 바로 '남들보다 더 잘하는 것' 이에요. , 상대적으로 잘난 능력이죠. 동네에서 누구보다도 옷을 잘 만들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어요. 도시에서 누구보다도 장사를 잘하면 많은 돈을 벌었죠.

 

혼자 사는 인간의 생존 전략은 나 혼자 잘하면 되는 것이지만 함께 살게 된 인간들의 생존 전략은 남들보다 잘해서 인정을 받는 것으로 바뀌었어요.

 

누구보다도 옷도 더 잘 만들고, 농기구도 더 잘 다루고, 돌도 더 잘 깎고말도 더 잘하고, 농사도 더 잘 짓고장사를 더 잘하고아이를 더 잘 보면 생존에 더 큰 도움이 되었어요.

 

한 마디로 생존 능력이 절대 평가에서 상대 평가로 바뀐 것이죠. 이런 변화를 겪으면서 인간 사회에서는 경쟁이 시작되었어요.

 

예전엔 죽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는데, 이제는 남을 이기기 위해서 노력하게 되었죠. 그리고 이런 변화는 적어도 생존에 대한 끝없는 두려움을 없애주는데 큰 역할을 했어요.

 

매일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사는 삶을 상상해보세요. 내일 혹은 한달 후에 죽을 수 밖에 없다면 오늘 무엇을 하고 싶은가요? 여전히 어제처럼 공부를 하고 직장에 나가고 싶은가요? 아니죠. 뭔가 당장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을 하길 원하게 되죠. 내일을 위해 음식도 남길 필요도 없어요. 미래를 위해 돈도 저축할 필요가 없죠.

 

그래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은 어쩔 수 없이 당장 현재를 살게 돼요. 그래서 미래를 준비할 수 없어요.

 

반대로 죽음이 자신과 거리가 멀다고 느끼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현재를 위해 모든 것을 소비하기 보다는 가능하다면 여유분을 만들어서 미래를 준비하려고 하겠죠. , 현재의 행복 중 일부를 미래를 위해서 투자하여 당장은 힘들더라도 미래를 위해서 더 나은 일을 하는 것이죠. 공부나 저축 등이요.

 

그래서 이것은 결코 작은 변화가 아니에요. 사실상 엄청난 변화에요.

 

그래요기술의 발전과 무리를 지어 사는 사회 그리고 뛰어난 지능,  세 가지 요소는 인간의 삶 패턴 자체를 변화시켰어요. , 결국 인간의 존재적 정의가 바뀌는 결과를 가져왔죠.

 

오늘만 사는 존재들은 미래를 위해 투자를 할 필요가 없어요. 그러니 오늘 내 입 속에 들어가는 음식이 가장 중요할 수 밖에 없죠. 이때 자신 이외에 모든 사람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고 사는 존재들은 시작부터 다르죠. 물론 여전히 자신의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중요하긴 해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존재도 중요해요.

 

왜냐고요?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이 미래를 위해서 의미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에요. 지금 당장 곤란한 이웃을 도우면 언젠가 자신이 곤란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지금 당장 내 입에 들어갈 음식 일부를 그들에게 나눠줄 수도 있게 된 것이죠.

 

최초 인간의 정의는 '생존의 본능' 였어요그때는 삶이란 무엇보다도 살아남아야 하는 문제였어요.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하고, 스스로 짐승과 싸워야 했죠. 하지만 문명화되고 사회에 속한 인간들에게 삶의 목적은 얼마나 경쟁에서 이기고 얼마나 주변에서 인정 받는 사람이 되느냐로 변했죠.

 

이 두 가지,  경쟁에서 이기고 주변에서 인정을 받는 것듣고 보니 많이 듣던 내용이죠그래요, 그것은 바로 자아에요. , 이 변화의 과정 속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자아가 만들어졌어요.

 

결국 자아는 인간이 문명을 이루고 사회적 관계를 맺으면서 새롭게 만들어 진, 인간의 두 번째 생존 전략이었던 셈이죠. 그래서 자아는 기본적으로 관계 형 존재에요. 혼자 있을 때는 만들어지지 못하죠. 인간이 사회를 이루면서 자연스럽게 자아가 생겨난 것이에요.

 

그리고 그 후 놀라운 일이 생겨났어요어려서부터 문명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은 문명과 사회에 너무 익숙해져서 이젠 완전히 자신과 자아와 일체화 시키기 시작했어요. , ' = 자아' 가 된 것이죠.

 

그래서 자아가 원하는 일을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일이라고 굳게 믿게 된 것이죠. 사실 이해는 해요. 자아는 자신이 원하던 목적이 이뤄지면 아주 커다란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었거든요. 이런 종류의 행복은 본능이 지배하던 시절, 먹을 것을 먹기만 해도 행복했던 경험을 대체했어요.

 

사람들은 이제 먹는 것보다도 남들보다 더 많이 먹고, 남들보다 더 맛있는 것을 먹고, 남들보다 더 고급스러운 것을 먹는 것을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본능이나 자아는 모두 생존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는 완전히 동일해요. 단지 자아가 선택한 생존 방법은 본능적인 방법에 비해서 훨씬 복잡하다는 점만 다르죠. 자아는 관계 속에서 생존해야 하기 때문에 본능처럼 단순하게 계산을 할 수가 없어요. 상대적으로 아주 복잡해졌죠.

 

그래서 자아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아하고 똑똑하며 미래 지향적인 생존 본능이에요.

 

그럼 당신은 이제 '자아의 존재' 라고 정의되어야 할까요?

 

원래 본능의 시대엔 먹고 자면 행복했어요. 자아의 시대엔 남들보다 잘나거나 인정을 받아야 행복해요. 그러니 지금 현재는 바로 자아의 시대에요.

 

하지만 여기엔 문제가 있어요. 그것은 바로 인간의 사회 발달 수준이 이미 생존을 넘어서고 있다는 점 때문에 그래요. 지금은 오래 사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닌 세상이에요. , 인간의 사회 발전은 이미 자아의 시대를 넘어서고 있어요. 물론 여전히 잘난 것과 인정을 받는 것은 중요하죠.

 

하지만 그것은 필수가 아니에요. 즉, 자아의 존재는 필수에서 선택으로 바뀌고 있어요. 그리고 이 점이 바로 당신이 자아와 일체화가 되면 안 되는 이유에요. 자아는 당신의 일부분이어야지 당신 그 자체가 되어서는 안되죠

 

혹시라도 이런 상태에서 당신과 자아가 일체화 되면 당신은 존재 자체가 선택적인 존재로 바뀌게 되요. 얼마나 무서운 말이에요. 선택적으로 필요한 존재라는 말이요. 이것은 당신이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에요. 설마 그것을 원해요? 아니겠죠.

  

[쉬는 시간,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