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고씨의 인문학개론

19강, 그 모든 것들의 시작 - 1부

아이루다 2017. 3. 1. 08:04

 

 

빙고에요. 오늘이 19강이네요.

 

이 강연은 20강에서 끝날 계획이니, 오늘 강의는 거의 마지막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그러면 오늘이 모든 것들에 대한 결정적인 답들이 나올 것 같군요. 부디 그러길 희망하자고요.

 

오늘 강의는 1강에서 던져진 최초의 질문, '나는 누구인가?' 에서 시작되어서 다양한 관점으로 삶을 바라본 이야기들의 마지막 결론을 낼 차례입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그 답이 궁금하시죠? 그러니 우선 답을 보고 시작하시죠.

 


그것은 바로 '자아' 입니다. 영어로는 에고라고도 하죠. 사실 자아 보다는 에고가 좀 더 확실한 단어일 듯싶네요. 에고는 그 범위가 명확한 반면, 자아는 상대적으로 좀 더 넓은 의미를 품을 수도 있거든요. 그래도 이 글에서는 계속 자아라는 단어를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그것을 자아라고 부르든 에고라도 부르든 그 개념 자체가 명확하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네요.

 

지금부터 그것을 알아 볼 차례입니다.

 

그 답이 자아라면, 이제는 자아란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내야 할 차례가 왔네요. 나는 누구인지를 아는 것은 참으로 추상적인데, 자아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훨씬 구체적이니 그 답을 낼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나름대로 긍정적인 상황이에요.

 

저는 지난 시간까지에 걸쳐서 삶의 우연성을 인정하고, 행복하고자 하며, 많은 감정들을 느끼며, 피해의식과 확대해석을 하며, 상처를 받고 집착을 하며, 선과 악을 판별하고, 삶과 죽음을 경험하는 그 주체가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설명해왔어요.

 

맞아요. 그 답이 바로 자아에요.

 

자아에 관련해서는 '자아 실현', '자아 성취', '자아 성찰', '자아 완성' 등등 꽤나 유명한 말들이 많죠. 그리고 이런 말들은 보통 나쁜 의미가 아니에요. 오히려 삶의 중요한 지향점으로 쓰여지곤 하죠.

 

그래서 자아는 성찰되고, 실현되며, 성취된 후 완성되어야 할 대상인 셈입니다.

 

일반적으로 자아는 찾아야 할 진정한 자신으로 표현되는 의미를 갖습니다. , 처음엔 깊이 숨겨져 있으나 오랜 노력에 의해서, 깊은 성찰에 의해서 찾아질 수 있는 진정한 자기 자신인 셈이죠.

 

그래요. 자아는 결국 '본질적 자기 자신 뜻해요. , 각자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주체죠. 하지만 숨겨져 있기 때문에 좀처럼 그 존재를 인식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이런 공식이 가능하게 됩니다.

 

"내 안의 숨겨진 진정한 나 = 자아"

 

그러니'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한 답이 바로 '숨겨진 나, 즉 자아' 가 되는 것이죠. 얼마나 당연한 말이에요. 그리고 누가 이것을 부정하겠어요.

 

이 사실을 기반으로 해서 사람들을 한번 살펴보죠. 사실 지난 18강 동안 강의를 한 목적이 바로 이것을 위한 과정이었어요. 그것은 바로 숨겨진 당신, 즉 당신의 자아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기 위해서였던 것이죠.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행복하길 원해요. 하지만 슬프게도 원한다고 해서 언제나 행복할 수만은 없죠. 왜냐하면 이 세상은 행복하기엔 너무 많은 위험 요소들이 가지고 있어요. 그것은 통제할 수 없는 우연성에 의해서 지배 받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존재들이 가진 본질적 한계입니다.

 

그래서 자아는 항상 불안해 하고 있어요. 숨겨진 당신의 본질은 당신도 모르게 많이 불안해 하고 있다는 뜻이죠

 

표피적 당신은 질투하고, 화를 내고, 열등감을 느끼고, 상처를 입고, 외로움을 경험하며,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고, 확대해석을 하며, 집착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이 자아가 가진 두려움이 다른 형태로 드러나고 있는 것뿐이에요. 당신은 영문도 모르면서 그것들을 느낀다고 생각하게 돼요.

 

두려워서 화를 내놓고는 그저 화를 낸다고 믿죠. 두려워서 질투를 하면서도 그저 자신은 부러워서 그렇다고 믿죠. 두려워서 집착하면서 그저 자신은 성격이 집요하다고 믿죠. 아니에요. 지금까지 우리가 그것들을 다룬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어요. 그래서 모든 것들의 원인이 바로 두려움임을 알 수 있었죠.

 

그런데 자아가 느끼는 두려움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요잠시 이론적인 설명을 좀 할게요.

 

사람의 두려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요. 하나는 본능적 두려움이고 다른 하나는 판단적 두려움이에요. 본능적 두려움은 생명체로써 타고 난 것이죠. 뭔가 얼굴로 날라오면 눈을 감는 본능처럼 말이에요. 이것은 고통을 두려워하고 결국 죽음을 두려워하는 본능이에요. 그래서 누구도 벗어날 수 없죠.

 

하지만 두 번째인 판단적 두려움은 조금 달라요. 이것은 말 그대로 판단이기 때문에 벗어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죠. 하지만 이것 역시도 거의 본능적 두려움의 수준이에요.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엔 너무도 오랜 시간을 함께 해왔어요. 그리고 이것은 오직 자아만이 느끼는 두려움이에요

 

또한 어떤 면에서는 안전해진 사회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본능적 두려움보다도 이 두려움이 훨씬 더 크게 영향을 미쳐요. , 이미 사는 것은 기정 사실화 되어 있기에 사는 것보다도 어떻게 사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가 된 것이죠. 살기 위해 먹는 것은 본능적 두려움을 해소하는 것이고, 먹기 위해 사는 것은 판단적 두려움을 해소하는 것이에요.

 

판단적 두려움을 좀 더 세분화 해서 살펴보면, 또 다시 두 가지 종류로 나뉩니다.

 


하나는 바로 뒤쳐짐의 두려움이고 다른 하나는 버려짐의 두려움이에요. 다른 두려움들도 있긴 하지만 이 두 가지가 자아가 느끼는 두려움의 대부분을 차지하죠. 그리고 다른 두려움들은 그저 이 두려움이 그 모습을 변형시킨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어요.

 

뒤쳐짐에 대한 두려움은 남들과 비교해서 뒤쳐졌다고 느낄 때 생겨나요. 그래서 분노, 질투, 열등감 등의 감정을 느끼게 하죠. 무척 다루기 힘든 두려움이에요. 그래서 이 두려움에 많이 노출된 사람은 , 평판, 명예, 성공 그리고 권력 등에 대해서 끝없이 집착을 하게 되죠.

 

버려짐에 대한 두려움은 버려질까 봐 두렵기 때문에 생겨나요. 그래서 외로움을 느끼고, 상처을 만들며, 피해의식, 확대 해석 등의 생각을 하게 만들죠. 그래서 이 두려움에 많이 노출된 사람은 주로 사람간의 관계다른 사람들의 관심이나 인정 등에 끝없이 집착을 하게 되죠.

 

이런 흐름은 아주 단순해서 이해하기가 쉬워요.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자아가 하고 있는 일이에요물론 좋은 점들도 있죠. 자아가 가진 두려움의 크기가 매우 크기에 그 두려움이 사라진 상태, 즉 남보다 앞서 나갈 때의 행복, 남에게 인정받을 때 경험하는 행복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강렬해요.

 

지금 세상은 단순히 배를 채운다고 해서 행복해지긴 힘들어요. 이것은 본능적 두려움을 채우는 행복이긴 한데, 이제는 너무 당연한 것이 되어서 그래요. 하지만 정말로 좋아하는 음식을 맛있게 먹을 때의 행복은 엄청나죠. 예전엔 척박한 세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반드시 이동을 해야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여행이라고 부르죠.

 

, 원래 사실 진짜로 두려운 것은 본능적 두려움이어야 하지만, 지금은 판단적 두려움이 지배하는 세상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은 늘 판단적 두려움을 없앨 방법을 찾아 다니게 되죠. 그리고 그것을 통해 행복해져요.

 

하지만 사람들이 늘 그렇게 운이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당연히 패배하거나 실패할 때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배신을 당할 때도 있어요. 그래서 상처를 받죠.

 

기본적으로 자아는 자신이 파괴되길 바라지 않아요. 하지만 자아는 자신이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끝없는 두려움을 품은 채 살아가고 있죠.

 

원래 본능적 두려움은 자기 혼자서 해결이 가능해요. 배가 고프다면 그저 밥을 먹으면 되니까요. 내가 먹는 것과 남이 밥을 먹는 것은 아무런 연관이 없어요. 그래서 해결책이 쉽고 단순하죠.

 

하지만 판단적 두려움은 달라요. 뒤쳐지는 것과 버려지는 것, 이 두 가지 두려움은 모두 관계적이죠. 그래서 혼자서는 해결이 불가능 해요. 혼자서는 뒤쳐질 수도, 버려질 수도 없어요.

 

그래서 해결책이 복잡해질 수 밖에 없어요. 이때 사람들이 선택하는 해결책이 바로 '상태 파악' '자기 증명' 이에요.

 

상태 파악은 현재 자신의 상태가 괜찮은 지를 파악해서 현재와 미래의 위험성을 제거하려는 목적이고자기 증명은 자신이 속한 그 어떤 종류의 무리에서 인정받아서 지속적으로 그 관계를 유지하려는 목적이죠.

 

쉬운 예로 상태 파악은 토익 시험을 보고 자신의 영어 실력을 체크해 보는 것이고, 자기 증명은 가정 내에서 남편으로써 아내로써 충분히 자기 역할을 다해서 상대가 바람을 피우지 않길 바라는 것이에요.

 

그냥 생각해보세요당신이 매일 느끼는 욕구, 다른 사람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의 연봉을 원하고, 다른 사람의 인정에 목말라 하는 그 욕구가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요? 당신은 그리고 사람들은 왜 그럴까요그것이 바로 각자의 내면에 있는 자아로부터 생겨난 상태 파악과 자기 증명의 욕구가 겉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면 자아의 첫 번째 욕구, 상태 파악은 도대체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 것일까요?

 


그것이 바로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 비교를 통해 일어나요. 특히 경쟁의 승리는 자아가 정말로 원하는 것들 중 하나이죠. 승리는 비교에서 같은 수준을 넘어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섰다는 의미니까요.

 

하지만 늘 좋은 수만은 없죠. 지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자아는 경쟁을 하고 그 결과를 비교한 후 자신이 우월한 위치에 있다면 기뻐하고 반대로 열등한 위치에 있으면 불안해 하거나 우울해 해요.

 

사람들이 승부를 즐기고 그 중 승리를 즐기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에요. 자신이 응원하는 스포츠 팀이 이기거나 지는 것은 사실상 자신의 삶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그것에 따라서 기분이 천국과 지옥을 오가요.

 

그렇다면 두 번째 욕구인 자기 증명은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요?

 


사실 이것은 딱히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을 것이에요.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 그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사람이 느끼는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입니다.

 

중국 고사에 거문고를 타던 백아가 종자기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지음지교' 처럼 누군가 단 한 사람으로부터라도 진정한 인정을 받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욕구에요.

 

하지만 인정을 원하는 배경엔 무리로부터 추방당하는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있죠. 그래서 이것 역시도 일종의 경쟁이긴 해요. 보통은 경쟁에서 진 자가 이긴 자에 비해서 쫓겨날 확률이 높으니까요. 그럼에도 둘의 성격은 조금 달라요.

 

경쟁의 승리는 능동적 생존 행위라면, 무리에서 살아 남는 것은 수동적 생존 행위에요. 그래서 승부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은 꽤나 있지만 자기 증명 욕구가 없는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죠. 만약 있다면 상황 파악을 못하는 지적 문제를 가진 사람뿐입니다.

 

자기 증명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을 경우 끝없이 일어나요. 단지 신뢰가 가득한 무리에 한해서는 거의 느끼지 않게 되죠. 예를 들면 가족처럼 말이죠.

 

하지만 가족 내에서 인정을 받았다고 해서 끝이 아니에요처음엔 학교 안에서 친구들 무리에 속해요. 그리고 그 후로는 직장에 속하고각종 친목 모임에도 속하죠. 재미로 시작한 취미 모임에도 속하고, 건강을 위해 시작한 배드민턴이나 수영 모임에도 속해요. 그리고 그 안에서 각각의 인정을 바라죠.

 

이것이 바로 예쁜 여자들이 예쁘지 않은 여자에 비해서 훨씬 수월한 삶을 사는 이유에요. 많은 모임 속에서 젊고 예쁜 여자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그냥 인정을 받아요. 어떤 면에서는 참 불공평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죠. 하지만 직장은 다르죠. 직장에서는 일을 잘해야 해요. 그런데 예쁘고 일 잘하면 그야말로 최고의 인정을 받게 되죠.

 

이것은 사람 성격에 따라서도 차이도 많이 나요. 욕심이 많은 사람은 인정을 넘어서 특별한 사람이 되길 바라죠. , 어떤 식으로든 기득권을 바래요.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은 쫓겨나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기도 하죠.

 

[쉬는 시간,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