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사람을 움직이는 세 가지 힘

아이루다 2016. 12. 16. 10:01

 

그 동안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다양하게 설명되어 왔다. 그것은 사랑, 정의로움과 같은 것일 수도 있고, 두려움과 권력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어떤 것이 더 진실에 가까우냐를 두고 아주 오랫동안 서로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정말로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일까?

 

이 질문의 답은 "예" 가 될 수도 있고 "아니오" 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예나 아니오 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아예 처음부터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 정의로움, 두려움, 권력은 모두 타의적인 움직임을 야기한다. 즉,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외부의 상황에 의해서 움직이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모두 우리가 가진 좀 더 근원적인 원인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일종의 표면적 현상에 불과하다. 이것을 제대로 알려면 좀 더 깊이 들어가봐야 한다.

 

우리가 움직이려고 하는 진짜 힘, 즉 능동적 혹은 자의적인 힘을 찾아야 한다.

 

자의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크게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안전함의 추구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안전하게 살기 위해서 노력한다. 기본적으로 안전함은 생존과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은 가장 근본적인 목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자기 증명이다. 자기 증명은 일단 안전함이 보장된 후에 나타나는 현상인데, 지금 살아가고 있는 세상 속에서 자신이 충분히 살아갈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려는 노력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존재감이라고도 하는데, 이 존재감의 숨겨진 목적은 역시나 안전함이기도 하다.

 

세 번째는 재미 혹은 흥미다. 이것은 일단 안전함이 제대로 보장된 후에 나타나는 것인데, 어떤 면에서는 자기 증명과도 연결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스스로 재미있거나 흥미로운 사람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증명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세 가지 힘에 대해서 알아보았고, 이제는 좀 더 깊이 들어가보자. 우리는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인간은 기본적으로 생존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니 우리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무조건 안전함의 추구이다. 안전함은 인간에게 있어서, 아니 모든 생명체에게 있어서 가장 필수적인 가치이다. 이것은 자신의 삶, 즉 생명 그 자체를 보존하는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조건이다.

 

그러니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안전함인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리고 보통 자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대부부의 생명체들은 여기에서 머문다. 하지만 인간은 그 한계를 벗어났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배경엔 바로 우리가 이룩해 놓은 문명이 필요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우리는 문명 사회에서 오랫동안 평화롭고 안전한 삶을 누려왔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그 중요한 사실을 곧잘 까먹는 문제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마치 안전함은 당연한 것이고 그 후로 일어나는 새로운 현상에 더욱 더 우리의 목적이 있다고 믿고 살게 되었다.

 

쉽게 말해서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해서 살고 있다고 믿고 살고 있다.

 

하지만 사실 이 착각은 언제든 금세 깨진다. 오늘 아주 즐거운 놀이공원에 가서 놀고 있다고 해도 타고 있던 놀이기구가 고장 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이면,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오직 안전함만을 원한다.

 

또한 안전함의 추구는 단지 한 가지 형태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기 때문에 그것이 안전함을 추구한 것인지조차 스스로 헷갈릴 수 있다.

 

사람에 따라 다양하긴 하지만 안전함을 추구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관계 속에서 얻는 안전함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안전함인데, 가족이나 믿을 수 있는 친구 등과의 신뢰를 기반으로 안전함을 얻는 방법이다.다른 하나는 돈이나 총과 같은 물질적 도구를 통해서이다. 돈이면 대부분의 물질적 도구를 얻을 수 있으므로 그것을 그냥 돈이라고 하자.

 

물론 이 둘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추구하게 되기 때문에 반드시 한쪽의 유형만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사람의 성격과 환경에 따라서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은 일어난다.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사람은 돈보다는 관계 속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성향이 나타난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과 관계에 서투르거나 혹은 그런 관계를 맺는 것이 사실상 불편한 사람들은 관계 속에서 안전함을 추구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돈을 더 신뢰하려고 한다.

 

이 차이에 대한 흔한 예는, 아플 때 가족의 간호를 받는 사람과 간병인을 쓰는 사람의 차이로 보면 된다. 이때 누가 더 나을 까는 각자마다 판단이 다를 것이다.

 

단지 일반적으로 관계는 안전함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추가적인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점에서 조금 더 낫다. 즉, 우리는 가족이 간병할 경우 그 사람과 다양한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지만, 간병인과는 그렇게 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은 간병인보다는 가족의 간호를 선호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안전함이 보장되고 나면 추가적인 욕망들이 일어난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안전함만 보장되면 그것 자체로 만족하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기에서 만족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안전하다고 믿는 것이 사실은 불안전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어느 시점의 안전함은 단지 현재일 뿐이다. 미래의 우리는 어떤 불안전한 상황에 놓일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미래의 불안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지금 가능하다면 더 많은 자기 증명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은 단순히 회사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도 쉽게 나타난다. 어떤 사람들은 현재의 자기 자리에 만족하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급에 대한 욕망이 있다. 즉, 현재에 머물러 있는 것은 미래에 있어서 불안전함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국 현재에 만족하기 보다는 더욱 더 노력을 해서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길 원한다. 그리고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자신이 얼마나 유용한 존재인지를 증명해내는 노력이다.

 

자기 증명은 이렇게 당연한 상황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거의 본능적 욕구로써 우리는 우리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거의 모든 자리에서 그것을 느낀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잘하고 싶고, 이기고 싶고, 칭찬을 받고 싶고, 호감을 얻고 싶고, 주인공이 되고 싶고, 주목을 받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면 그것은 모두 바로 자기 증명을 하기 위한 다양한 모습이다.

 

우리는 자기 증명을 통해서 자신이 속한 모든 종류의 관계망에서 자신이 최대한 필요한 사람임을 증명 받으려고 애쓴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자기 증명에 매달리는 이유는 바로 미래에 닥칠 수도 있는 도태의 상황에서 최대한 버텨내기 위해서이다.

 

결국 자기 증명도 안전함의 또 다른 얼굴인 셈이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세 번째인 재미와 흥미의 힘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이것은 반드시 안전함을 기반으로 해서 나타나는 것이지만 또한 안전하게 되면 당연히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바로 이 욕구의 근거에는 바로 지루함이나 권태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생존하는 삶을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우리는 누구나 반짝거리는 삶을 살고 싶어한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자기 증명과 대비되는 욕구이다. 우리는 안전함이 보장된 후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분화가 된다. 하나가 자기 증명을 위한 삶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재미와 흥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삶이다.

 

즉, 학생들이 공부를 할 때도 보면 자신이 더 나은 능력을 증명하려고 공부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어떤 학생들은 특정 과목이나 혹은 공부 그 자체를 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한다. 물론 소수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들의 경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이 없고, 자신이 관심을 가진 그 대상에 대해서 집중과 몰입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당연히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 세 가지 종류의 목적 중에서 가장 나은 삶을 살 수 있긴 하지만 이것이 누구나 하고 싶다고 해서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란 점이 문제이다. 이런 성향은 타고나야 한다.

 

안전함을 추구하는 삶이 제대로 성공하게 되면 온화하고 평온한 삶을 살 수 있다.

 

자기 증명을 추구하는 삶이 제대로 성공한다면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존경 받는 사람이 되어서 관대하고 겸손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재미와 흥미를 추구하는 삶이 제대로 성공하면 특정 분야에서 대단한 업적을 내거나 혹시 그것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문제는 이 각각의 목표를 제대로 달성해내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점이다.

 

안전함을 추구하기 위해서 주변 사람들과 끝없이 교류를 하고 돈을 벌어야 하지만 결국 우리는 수 많은 상처를 입거나 혹은 원하는 만큼 돈을 벌지 못해서 어떤 면에서 돈의 노예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결국 사나워지고 돈의 가치에 매몰되어서 이기적이고 신경질적인 사람이 되기가 쉽다.

 

자기 증명에 평생 매달리다가는 결국 끝없이 다른 사람의 평가를 갈구하게 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즉, 자신의 삶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결정을 남의 이목에 따라서 하게 되는 것이다.

 

재미와 흥미만을 추구하다가는 자신이 관심이 있는 편협하고 좁은 세상 속에 갇히고 결국엔 안전함의 기반마저 상실한 후 가장 기초적인 안전함 속에 매몰되어서 살아갈 수도 있다. 또한 자신이 삶에만 너무 집중하게 되어 관계를 맺는 것에도 실패할 수 있다. 편집증 환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는 성공할 가능성보다 실패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기본적으로 이 세 가지 중에서 어떤 것을 자신의 목적으로 삼고 있느냐는 대부분 타고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왜 그렇게 한가지에 목매고 사는지에 대해서는 스스로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생각보다 매우 관성적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안전함을 추구하는 것은 어제도 안전함을 추구했고, 그제도 그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충분히 안전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안전함을 추구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자기 증명은 특히 더 그렇다. 우리가 자기 증명을 받으려는 이유는 바로 미래의 안전함 보장 때문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증명 자체를 바로 인생의 목표로 정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심지어 우리는 흔히 '자아 실현' 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그것을 포장해 두었다.

 

하지만 자아 실현은 자기 증명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다. 우리는 자아 실현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된다. 물론 자아 실현을 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은 그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어야 한다.

 

만약 이 세 가지 목표 중에서 가장 나은 것을 하나 꼽으라면 당연히 재미와 흥미를 위한 목적이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잘 맞는 것이다. 즉, 행복한 삶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형태이다.

 

그래서 현재 사회 변화의 방향도 그렇고 미래의 세대는 점점 더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안전함이 보장될수록 우리는 자기 증명보다는 재미와 즐거움 그리고 흥미를 얻기 위해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반적으로 재미와 흥미 추구의 배경엔 지루함과 권태라는 기저 원인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즉, 우리는 마치 그것을 위해서 살아간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그저 안전하기 때문에 느끼는 권태와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서 그렇게 살고 있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과도한 재미와 흥미 추구를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야 재미있으면 뭐든 하거나 재미없으면 무엇이든 하지 않는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있다.

 

과도한 안전함의 추구, 과도한 자기 증명의 추구, 과도한 재미와 흥미 추구는 모두 그 사람을 불행과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무의식적으로 추구하다가 보면 자신도 모르게 과도해질 것이 분명하다. 우리의 욕망은 원래 한계를 모르니까 말이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 많은 관계와 돈을 원하고, 지금보다 더 많은 권력과 인정을 원하고, 재미만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허용이 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들 대부분은 이미 그렇게 변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이 세 가지 목적 중에서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과연 어디에 더 집중되어 있는지를 판단함으로써 자신이 겪고 있는 수 많은 문제점들이나 혹은 갈등과 상처들의 원인을 찾아낼 수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은 우리가 겪는 문제점들은 바로 이 세 가지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에 대한 집착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끝없는 안전함에 대한 집착은 늘 뒷걸음질 치다가 결국 아무 것도 이루지 삶을 만든다. 자기 증명에 대한 집착은 끝없이 다른 사람의 시선에 얽매여서 결국 자기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삶을 만든다. 재미와 흥미에만 집착하는 삶은 어쩔 수 없이 마주치게 되는 삶의 진지함 앞에서 끝없이 도망치다가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 삶을 만든다.

 

하지만 자신이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각할 수만 있다면 사실상 안전함에 대한 추구나, 자기 증명이나, 재미와 흥미를 추구하는 삶이 생각보다 반드시 그렇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님을 스스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아주 오래된 관성적 삶을 멈추고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삶을 살아가는 최초의 시작점이 되어 준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각자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봐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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