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장점과 단점의 한계

아이루다 2016. 10. 2. 14:29

 

사람들은 각자마다 고유한 성격이 있다. 그리고 그 성격들은 참으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또한 사람들은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사회는 꽤나 복잡하게 보인다. 사람들끼리의 비슷한 점을 보면 거의 쌍둥이처럼 닮아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점만 보면 도대체 지구인과 화성인처럼 달라 보이기도 한다.

 

각자 가진 고유한 성격적 특징들은 각자 자신의 삶을 사는데 있어서 도움이 되기도 하고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보통 도움을 주는 특징을 장점이라고 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특징을 단점이라고 한다. 그리고 장점은 주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고 단점을 주로 손해를 불러올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장점은 최대한 개발을 하고 단점은 최대한 극복해야 한다고 주입 받는다. 그리고 이 조언은 어느 정도는 옳다. 그래도 조금은 수정해야 한다. 장점은 개발하는 것이 좋지만 단점은 극복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로 바꿔야 한다. 단점은 극복하는 것은 너무 힘든 노력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장점을 개발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이 낫다.

 

아무튼 장점은 살리고 단점을 숨기는 일은 중요하다. 그래서 다들 그렇게 살고 싶어한다. 자신이 잘하는 분야를 찾아서 그것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다들 그렇게 사는 듯 보인다.

 

삶을 어느 정도 만족스럽게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그렇게 살고 있다고 믿는다. 어린 시절에 느낀 단점들은 숨겨지고, 자신이 가진 장점들은 자신의 삶을 윤택하고 해주고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공 여부만 가지고 그것을 판단하는 방식은 시작부터 꼬인 것이다. 물론 당장 눈앞에서는 그것이 제대로 된 판단인 듯 보인다.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서 돈도 많이 벌고, 사회적 지위도 얻었다면 말이다.  그리고 행복하기까지 하다면 도대체 그것을 꼬였다고 말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놓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과연 정말로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숨겼는지를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을 생각해야 하는 근거에는 모든 종류의 장점은 반드시 단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장점과 단점은 마치 동전의 앞뒤 면처럼 붙어 있다. 단점 없는 장점은 없고, 장점 없는 단점도 없다.

 

정확히 말해서 장점과 단점은 환경에 따라 판단되는, 결국 결과론적 판단일 뿐이다. 전쟁터에서는 무식하고 과감한 성격이 세심하고 소극적인 성격보다 더 나을 수 있다. 하지만 평화로운 문명 사회 속에 살아갈 때는 아니다. 즉, 어떤 성격적 특징이 장점이 되거나 단점이 되는 것은 바로 어떤 환경에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

 

과감한 성격은 사업을 할 때는 큰 도움이 되지만, 누군가에 밑에서 일을 할 때는 큰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낙천적인 성격은 평소엔 행복에 도움이 많이 되지만, 어떤 위기 상황에 놓이면 아무 것도 못하고 일찍 죽을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으로 위기 상황엔 비관적인 성격이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장점과 단점이 가진 특징은 단 하나의 사실을 말해 준다. 그것은 바로 사람의 모든 특징은 장점이자 단점이 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장점을 키우고 단점을 숨기는 일이란 말의 뜻은 실제로 그것을 어떻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고유한 특징이 장점으로 작용하는 환경으로 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음치가 노래를 하면 안 된다. 이것은 참으로 단순 명료하다. 물론 개그로써 사람들을 웃기는 노래는 해도 된다.

 

원리가 이토록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것을 잘해내지 못하는 이유는,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서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청소를 하는데 특출 난 재능이 있는 사람이지만 청소 업종에 종사하고 싶지 않다면 그것은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조금이라도 잘 하는 환경으로 가게 된다. 의도적으로 하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못하는 곳에서는 경쟁에서 져서 탈락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어느 정도 잘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장점을 정말로 가치 있다고 믿는다. 즉, 장점이란 것은 분명히 특정한 환경 하에서만 유효한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이 유일한 가치라고 믿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나서 자신의 장점이 가진 다른 면, 즉 단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살아간다. 이것은 당연하다. 이미 잘 살고 있는데 왜 그것이 가진 단점을 고려하겠는가?

 

즉, 어떤 특징이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면, 그것을 오직 좋은 것으로 본다. 사교성이 좋다면 그것으로 인해 생겨나는 문제점은 고려하지 않는다. 말을 잘 한다면 말을 잘하기에 생겨나는 문제점은 고려하지 않는다. 모든 장점은 더 발전시키면 발전시키려고 하지 결코 제어하거나 혹은 관심을 가지고 그것으로 인해 일어나는 부작용을 지켜보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말했듯이 결코 어떤 특징도 오직 장점으로만 작용할 수는 없다. 반드시 단점으로도 작용한다. 또한 단점들도 그렇다. 단점도 어느 순간엔 장점이 될 수 있다.

 

부지런한 특징은 사람에게 있어서 큰 장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부지런함을 주요 덕목으로 삼는다. 하지만 부지런한 사람은 자신의 부지런함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 그래서 부지런하긴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만큼의 부지런함을 기대하게 되고, 그런 기대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피가 마른다.

 

사람의 부지런함은 거의 타고난 성격이다. 그래서 억지로 부지런하게 살려고 하다 보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그러니 누군가 주변에서 끝없이 잔소리를 하면서 부지런하게 살라고 강요하면 그것을 견뎌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부지런한 사람은 자신의 부지런함 자신만의 고유한 존재적 가치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그래서 부지런함을 통해 얻는 만족감을 평생 동안 누리려고 한다.

 

하지만 부지런한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부지런함은 바로 주변 사람들의 게으름으로 인해서 증명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틈만 나면 부지런하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들이 게으르기에 자신이 부지런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정말로 그들이 어느 날 모두 부지런해지면 자신은 금세 아무 것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 되고 만다. 더군다나 그들이 더욱 더 부지런해지면 이젠 자신이 게으른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잔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검소한 삶도 비슷하게 작용된다. 열심히 노력하는 성격도 그렇다.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성격적 특징들은 모두 그렇다. 자신이 그것을 통해 뭔가를 이뤄냈다면 그것은 바로 가치화 되고 남에게 강요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로 인해서 주변 사람들은 괜히 돌을 맞는다.

 

심지어 전혀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정직한 성격도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끔 그냥 묵인을 해야 할 때도 있고, 거짓말을 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아예 정직한 성격을 싫어하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장점은 장점이기에 그것을 그냥 두거나 더 부각되게 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장점은 이후 삶 속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문제들과 갈등의 원인이 되고 만다.

 

즉, 사람들은 자신의 장점을 통해 이득을 얻고, 다른 사람들의 지지와 공감을 얻은 경험을 했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 한 경험에 대해서 거의 무조건적인 확신을 갖는다. 사람을 많이 사귄 사람은 인맥을, 꿈을 쫒아 살았던 사람은 꿈을, 안전한 삶을 산 사람은 안전을, 결혼을 한 사람은 결혼을, 아이를 키운 사람은 아이에 대한 확신을 갖는다.


그리고 각자의 장점은 결국 신념, 가치, 믿음, 고집, 옳은 방향 등으로 변해서 중년 이후 노년까지의 삶을 경직되게 한다. 자신이 경험한 것으로 삶을 정의 한 후, 그것을 주변 사람들이나 젊은이들에게 마구 조언을 해댄다. 말 그대로 꼰대가 되는 이유가 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장점들은 자신의 결정이 아니다. 이미 말했듯이 우리는 우연히 어떤 특징들을 가졌는데 그것이 주변 환경과 잘 맞은 것뿐이다. 그러니 장점은 그저 운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기보다는 자신의 삶이 다른 사람의 그것보다는 뭔가 더 나은 어떤 것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즉, 우월감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확신에 차 있다.

 

더해서 어떤 단점들은 자신이 받아들임에 따라서 나이를 먹으면서 더 이상 단점이 아닌 것이 되기도 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좋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단점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단점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소극적인 성격, 걱정이 많은 성격, 게으른 성격 모두가 그렇다.


그리고 단점은 분명히 장점이 될 수 있다. 어떠한 삶을 사느냐에 따라 단점이 장점으로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단점은 그저 단점으로만 끝나버리고 만다.

 

소극적인 성격은 단점으로 알려진 것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것은 삶의 조금 다른 면, 즉 눈에 보이고 그저 즐기는 것과는 달리 삶이 가진 여러 가지 면을 고려하고 생각하고 바라 볼 수 있는 삶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아무래도 소극적이다 보니 사람들과 많은 시작을 보내기보다는 혼자서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때 자신이 가진 단점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만다. 혼자 있을 때 그 시간들을 통해 삶을 관찰하고 이해하기 보다는 그 시간들을 그저 때우려고만 한다. 왜냐하면 당장 외롭고 심심하고 불행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극적이거나 내성적 성격을 가진 사람은 그저 단지 그런 성격의 사람으로 끝난다. 그리고 그 문제로 인해서 결국 그리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사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만다.

 

만약 그렇게 혼자 보내는 시간을 단지 TV를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는 데만 쓰지 않고 사람들을 관찰하고, 인간을 이해하고, 삶의 숨겨진 비밀을 알아내려고 노력했다면 뭔가 달라졌을 것이다. 그때는 소극적이거나 내성적인 성격이 아주 크게 장점으로 부각될 수도 있었다.

 

오랜 사유의 시간을 통해서 적어도 자신이 살아가고 있음을, 삶이란 과정이 얼마나 무의식일 수 있는지를, 우리가 산다고 말하는 전체적인 것들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임을 완전히 이해는 못해도 적어도 근접하는 이해는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특히 책을 많이 있는 것은 흔히 장점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책은 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독서는 기본적으로 지식을 쌓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들은 책을 많이 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것이 태반이다. 왜냐하면 그냥 원래 그래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혹은 책을 많이 보는 사람이 뭔가 지적으로 보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지식의 습득이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이득을 추구하기가 쉽다.

 

하지만 책의 역할은 여기까지 만은 아니다. 더 넓고 깊은 의미가 있다. 그것은 바로 통찰력을 얻기 위한 필요 조건이다. 우리는 책을 통해 쌓인 지식으로 통찰력을 가질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삶이 가진 진실된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지혜로움이다.

 

사실 그래서 지혜로움은 반드시 책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책은 지혜로움을 위해서 꽤나 도움이 되는 도구이다. 지식은 거기까지만 유효하다. 그렇지만 독서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뛰어넘어서 지혜로움을 갖기 위해서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걱정이 많은 성격은 그로 인해서 삶이 불편한 단점도 있지만 미래를 대비하고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즉,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 성격이다. 그런데 걱정이 많은 사람이 그냥 그대로 살아갈 경우,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걱정이 많아질 뿐이다. 삶의 그 어떤 순간도 걱정이 줄어들 날이 없다. 나이를 먹으면 건강이 나빠지니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결국 오랜 시간 걱정을 하면서 살면, 삶이 걱정 그 자체가 된다. 그래서 입에서는 끊임없이 잔소리가 나온다. 걱정이 되니 잔소리가 많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도 몹시 힘들다. 자신도 불행하고 주변도 불행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미 걱정이 많은 것이 너무도 강하게 굳어져서 자신을 신중한 성격이라고 믿는다. 그리고는 그것을 자신의 정체성화 시킨다.

 

단점이 최악으로 흐른 경우이다. 걱정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발생한다. 그러니 마음 자체를 바꿔 먹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물론 걱정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걱정에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미래에 대한 기대, 뭔가 자신이나 주변에 대한 대한 불필요한 불신 등이 걱정을 만들어 낸다.

 

우리가 가진 성격적 특징의 대부분은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장점이든 단점이든 결국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본인은 그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상황에 따라서 부지런함도 단점이 되기도 하고 게으름도 단점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자르듯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런데 부지런함이 진정한 장점이 되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보다 더 부지런하다는 장점으로 그들에게 도움을 주변서 살아야 한다. 게으름이 장점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보다 부지런한 사람에 대한 깊은 감사함을 느껴야 한다.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 해주는 사람들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이것을 스스로 알아내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삶에 대한 이해가 가진 힘이다. 그래서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이 결국 어떤 식으로 동작하게 될지에 대해서는 결국 자신에 대해 얼마나 많은 그리고 깊은 성찰을 했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그것이 장점이든 단점이든 스스로 그것을 이해하고 바라볼 수 있는 능력만 갖출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장점도 단점도 아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너무도 중요하고 멋진 장점이 될 수 있다.

 

삶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만 제대로 해 낼 수 있어도 자신이 사는 삶은 전혀 다른 모습을 느껴질 수 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는다는 일이 그 자신에게 꽤나 다른 느낌으로 다가갈 것이다.

 

이것을 경험한 사람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 사이는 겉으로는 전혀 다름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 제대로 볼 수 있다면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깊은 틈이 있음을 알게 된다. 지식과 지혜의 틈 말이다. 그리고 더 깊어 질 수 있다면 지혜와 진리의 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