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삶에서 일어나는 아주 나쁜 일들

아이루다 2016. 10. 11. 07:26


배신, 실망, 집착, 좌절, 패배, 질투, 죽음 등의 단어들은 일반적으로 아주 나쁜 일들이다. 아주 특별한 사람이나 이상한 변태가 아니라면 그것들을 좋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단어들과 최대한 친하지 않게 살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각자의 삶에서 이런 단어들과 만날 수 밖에 없다. 왜 그럴까? 그토록 피하고 싶어하고,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도 열심히 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이 단어들과 종종 마주칠 수 밖에 없을까?

 

우리는 왜 배신을 당하고, 실망하며, 집착하고, 좌절하고, 패배하고, 질투하고 결국엔 죽게 될까?

 

어처구니 없긴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온전히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우리의 생각과 달리 결코 남의 탓은 아니다.

 

누군가를 믿었기 때문에 배신을 당하고, 무엇인가를 기대를 했기 때문에 실망하며, 사랑하기에 집착하고, 도전을 했기에 좌절감을 맛보게 되며, 경쟁을 했기에 패배를 당하게 되고, 가치를 부여 했기에 질투를 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엔 살았기 때문에 죽게 되는 것이다.

 

만약 누구도 믿지 않는다면 배신을 당할 리도 없고,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다면 실망할 일도 없다. 누군가를 사랑을 하지 않았다면 집착을 할 일도 없고, 무리한 도전을 하지 않으면 결코 좌절할 일이 없다. 이길 가능성이 별로 없는 싸움을 하지 않았다면 질 이유도 없고,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면 질투를 느낄 이유가 없다. 마지막으로 살지 않았다면 죽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산다는 것은 의지적인 일이 아니었으니 죽음은 좀 다르게 다뤄져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근본 원리는 동일하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려고 할 때 그것이 가져오는 부작용은 반드시 일어날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런 일을 당할 때마다 참지 못한다. 분노하고, 절망하고, 우울해 하고, 저주를 한다. 분명히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으며, 그래서 일어난 일임에도 그렇게 느낀다. 어떤 면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일임에도 그렇다.

 

물론 우리는 평생 동안 누군가에게 배신이나 실망감을 느끼지 않으며, 사랑에 빠지지도 않고도 행복하게 살고, 도전이나 경쟁을 할 필요가 없이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 있으며, 가치를 부여하고는 거기에서 충분히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아주 커다란 '행운' 이다. 그런데 그 행운은 우리가 어쩔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설령 행운을 좌지우지 하는 어떤 신이 있다고 해도 그 신이 어떤 식으로 우리를 다루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최대한 착하게 살면서 그 신이 자신을 돕기를 바란다. 적어도 착하게 살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보면 진실을 알게 된다. 착하게 사는 것보다 착하지 않게 사는 것이 더 많은 것을 갖고, 더 많은 것을 누리며, 결국엔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요즘 시대엔 착하지 않게 사는 것이 트렌드이다.

 

아무튼 착하게 살든 아니든 우리들 거의 대부분은 이 중 하나를 경험할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것들을 경험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실 생각해보면 방법은 있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뺀 나머지, 즉 배신, 실망, 집착, 좌절, 패배, 질투의 경험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누구도 믿지 않고 살며, 어떤 기대치도 가지고 살지 말며, 사랑을 하지도 말며, 도전하지 말고, 승부를 겨루지 말고, 그 어떤 것에도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면 된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하기도 한다. 자기 이외에는 결코 그 누구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 누구에게도 기대치가 없는 사람도 있다. 사랑 자체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꽤나 된다. 정말로 조금이라도 위험해 보이는 일은 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다. 경쟁을 싫어해서 계속 피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무가치하다고 보는 허무주의에 빠진 사람들도 있다.

 

이 모두를 동시에 다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언뜻 보이게도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분명히 살고는 있겠지만, 그래서 배신, 실망, 집착, 좌절, 패배, 질투를 경험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사람들이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하자니 위험이 크고, 하지 않자니 삶이 너무 단조롭고 우울하다. 사실 신뢰, 기대, 사랑, 도전, 경쟁, 가치 등이 없는 삶을 삶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할 지경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선택 상황에 놓인다. 하나는 위험을 감수하고 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위험하니까 하지 않는 것이다. 삶이란 것이 이 두 가지 선택 선택 사항 중 하나를 고르는 과정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추가적으로 제 3의 선택 사항은 없는 것일까? 이것은 뭔가 좀 더 지혜롭고 현명한 방법이 있지는 않을까에 대한 질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제 3의 선택 사항은 있다.

 

우리가 결코 경험하고 싶지 않아하는 많은 나쁜 것들의 최초 유발자가 바로 우리들 자신이란 점을 알았다면, 우리는 좀 다른 시각으로 그것들을 바라 볼 수 있다. 물론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천지차이이다. 그래서 이것은 제대로 바라보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일단 이론적으로만 재해석 해보자.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그 사람이 무엇을 하든 어떤 의도이든 상관없이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내야 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실망을 하지 않으려면, 신경을 써주고 무엇인가를 해주거나 베풀 때 아무런 기대 없이 해야 할 것이다.

 

집착을 하지 않으려면, 사랑을 할 때 상대를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는 부속품으로 여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좌절하지 않으려면, 도전을 할 때 도전 자체로 의미를 가져야 하며 성공 여부를 신경 쓰지 말아야 할 것이다.

 

패배하지 않으려면, 승부를 겨룰 때는 그 승부 자체를 즐기며 승패에는 아무런 의미를 두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질투하지 않으려면, 가치를 부여할 때 자신이 부여한 가치는 오직 상대적인 의미만 있을 뿐이란 점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죽지 않으려면, 삶 자체가 온전히 무의미한 과정임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일단 적긴 했지만, 이것들은 알기도 어렵고, 이해는 더욱 어려우며, 받아들이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제 3의 선택지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충분히 오랜 시간을 자신에 대해서 성찰하고 난 후, 우리가 그토록 피하고 싶은 배신, 실망, 집착, 좌절, 패배, 질투, 죽음 등이 사실상 우리 스스로 불러 온 것들임을 인정하는 순간, 그것은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 상태로 충분한 시간이 흐르면 이것들은 아주 조금씩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죽을 때까지 되지 않을 가능성은 높다. 하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더 받아들일 때,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평온함을 경험할 수 있다. 적어도 과거와는 비교도 안되는 평온함 말이다.

 

그래서 행복해질 수도 있다. 관대해질 수도 있다.

 

기대가 없는 인간 관계는 더 없이 즐거울 수도 있다. 누군가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는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한 깊은 충만함을 느낄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사실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부모들이 경험하는 것들이 이런 것들이다. 아이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신뢰와 어떤 기대도 없는 일방적인 베풂이다.

 

승부를 그저 그 승부 자체로 즐길 때, 즉 승부에서 이기거나 진 사실을 자신과 동질화 시키지 않을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승부를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승부에 이기거나 진 후 기분이 좋아지거나 상하는 이유가 바로 그 승부의 결과를 자신과 동일시 여겼기 때문이다.

 

즉, 우리 머리 속에서는 내가 이겼고, 내가 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다. 승부에서 내가 한 일은 없다. 승패를 가르는 가장 필요한 조건인 능력은 이미 타고 났다. 더군다나 이기고 지는데 또 다른 중요한 요소인 '행운' 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다. 남은 것은 오직 노력인데, 노력하는 성격조차도 이미 타고 났다.

 

우리는 이기고 질 수 없다. 우리는 이기거나 질 뿐이다. 승패는 결코 능동적 영역이 아니다. 우리는 오직 그 결과를 받을 수 있을 뿐이다.

 

가치를 부여하는 삶은 행복을 가져다 준다. 하지만 그 가치가 절대화 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이 넘볼 수 없는 영역에 도달한 사람들을 보게 된다. 돈의 가치가 절대화 되는 순간, 돈을 아주 많이 번 사람을 보게 되고, 가족의 가치가 절대화 되는 순간, 자신의 가족보다 훨씬 화목한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때 공통적으로 질투심이 생긴다. 우리는 자신이 가치 없어 하는 것을 가진 사람을 질투하지 않는다. 그래서 똥을 많이 모은 사람을 질투하지 않는다. 돈에 가치를 두었기에 돈이 많은 사람을 질투하고, 사랑에 가치를 두었기에 불타고 있는 연인을 보면 질투를 하게 된다.

 

행복하기 위해서 자신의 가치를 절대화 시키는 순간, 우리는 질투라는 불행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된다. 더군다나 자신이 정한 가치를 끝없이 주변에 떠들고 다니게 된다. 그래서 고집스러운 꼰대가 된다.

 

사랑은 집착도 구속도 아니어야 한다. 사랑은 상대를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만약 집착이 일어나고 구속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닌 그저 자신의 부족함을 상대를 통해 채우려고 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스스로 완성되어야 한다. 스스로 채워야 한다. 그리고 나서 상대를 사랑해야 한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 도움을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도움으로 끝나야 한다. 상대를 끌어들여서 자신의 결핍을 채우는 순간, 우리는 상대에게 반드시 집착하게 된다. 그 사람이 없으면 사라졌다고 믿는 자신의 부족함이 그대로 다시 드러나기 때문이다.

 

성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 도전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도전을 그 자체로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이 역시도 도전의 결과를 자신과 동일시 여기지 않음으로써 가능해진다. 우리가 도전을 하고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것은 우리들이 결정할 내용이 아니다.

 

그것도 이미 타고난 능력과 운에 따라서 결정된 사항이다. 그러니 성공했다고 해서 우리가 능동적으로 뭔가 한 것은 없다. 우리는 그저 성공 당하거나 실패 당할 뿐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자신의 도전과 성공을 끝없이 자신과 동일시 여긴다. 내가 성공했고, 내가 실패했다고 믿는다. 모든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결코 성공하거나 실패할 수 없다. 우리는 당할 뿐이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죽음을 바라보도록 하자. 우리는 우리가 죽을 수 있기에 삶 자체가 찬란할 수 있음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가지고 싶은 행복 그 자체가 바로 죽음을 통해 만들어 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생존 기계이다. 우리의 살면서 하는 모든 행위는 생존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때 그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 행복이다. 우리는 행복할 수 있기에 두렵고 괴로운 일들을 도전하고 견뎌낸다. 삶의 모든 부정적 경험은 바로 행복하고자 하기 때문에 생겨나고, 그 행복은 바로 우리를 살 수 있게 해준다.

 

죽음은 그런 것이다. 죽음은 모든 의미와 가치의 시작점이다. 만약 죽지 않으면 가치도 사라진다.

 

매우 어렵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이다. 단지 우리는 이것을 참고할 수 있다. 그래서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죽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되면, 그것을 열린 마음으로 바라 볼 수 있게는 될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삶은 언제나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다. 나쁜 일이 일어날 일의 가능성은 너무도 높다. 하지만 나쁜 일이 나쁜 일이 되는 것은 우리 스스로 만든 결과이다. 조금만 다른 시각으로 그것을 보려는 노력을 하다 보면, 조금이라도 다른 시각으로 그것들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배신이 없다면 신뢰라는 말 자체가 없어졌을 것이고, 기대가 없었다면 실망이란 단어도 사라졌을 것이다. 그림자가 있는 이유가 빛이 있기 때문인 것과 같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고,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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