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행복을 위해 불행을 선택하다

아이루다 2016. 9. 26. 09:50


 

사람들은 저마다 행복한 삶을 원한다. 누구에게나 행복은 삶의 최종 목표이다. 물론 우리는 가끔 그것을 착각한다. 그래서 행복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 삶의 목표라고 믿기도 한다. 종교, 신념, 믿음 등이 행복보다 더 중요하다고 착각하는 대상들의 후보이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위해 자신이 가장 중요한 가치, 즉 생명조차도 포기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마치 특별한 경우, 인간은 행복 이상의 무엇인가를 추구할 수 있는 존재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런 숭고한 행위조차도 잘 뜯어서 살펴보면 결국엔 행복을 위한 선택에 다름이 없다. 그것이 행복하기에 생명조차 포기하는 것이다. 주객이 전도된 경우이긴 하지만, 인간은 그럴 수 있을 정도로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사실 정도만 다를 뿐, 사실 평범한 우리들도 매일 행복과 행복하지 않은 것 중에서 행복하지 않은 것을 선택한다. 말 그대로 불행을 선택하는 것이다.

 

학생이 학교를, 직장인이 직장을 나가는 것이 그 예이다. 우리는 학교나 직장에 가는 것이 행복해서 가는 것이 아니다. 사실 불행할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가야 한다. 가야만 미래의 행복 가능성을 잃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먹는 것을 참는 것도 그렇다.

 

우리가 매일 일상 속에서 반복하는 것이 바로 행복과 불행 중에서 불행을 선택하는 일이다. 그렇게 행복하길 원하면서도 매일 불행을 선택한다. 바로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이것은 자신이 믿는 종교, 신념, 믿음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는 것에서 단지 그 대상이 생명이 아닌 불행으로 바뀌었을 뿐, 이 두 경우는 원리상 동일하다.

 

인간의 삶은 이런 식으로 원하지 않는 선택의 연속이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하게 살기가 쉽지 않다.

 

미래를 위해서 힘들고 참기 어려운 일을 해야 하며, 노후를 안락하게 보내기 위해서 젊은 시절에 돈을 아끼고 절약해야 한다. 음식을 조절해야 하며, 하고 싶은 많은 것들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한다.

 

물론 그래서 많은 행복 조언자들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지금 당장 하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조언조차도 그것을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능력 있는 사람에게나 유효할 뿐이다. 보통 사람들은 너무도 해외 여행을 하고 싶어서 회사에 사표를 내고 6개월 간 유럽을 다녀 온 후에는 백수로 지내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두려움 반, 후회 반으로 그것을 선택할 수 없다.

 

그나마 이런 것들은 명확한 면이 있다. 우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그것을 결정하는 기준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있을 때이다.

 

결혼 후 바람을 피운 배우자에게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결정할 때처럼 어려운 문제도 없다. 이때 흔히 이혼을 생각하지만, 보통의 경우 남자는 아이를 키워 줄 엄마의 부재가 가져올 문제로 인해서 고민하게 되고, 여자는 돈을 벌어다 줄 남자의 부재로 인해 자신이 돈을 벌어야 하는데 그것이 엄두가 나질 않아서 고민하게 된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다. 아무튼 어떤 경우든 이혼은 쉽지 않다.

 

분명히 상대가 바람을 피운 것은 부부 관계에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위는 맞다. 그것은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인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당연히 이혼을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더군다나 한 번이라도 바람을 피운 사람은 또 다시 바람을 피울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당사자들은 이것을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앞에서 말한 육아나 혹은 경제적 문제가 생각보다 많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둘이서 하던 일을 혼자서 다 하려면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사회적으로 이혼을 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좋지도 않고, 더해서 미래에 다가올 삶도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부부의 관계는 더욱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민을 한다. 사실 바람을 피울 때는 상대 배우자에게 최대한 들키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바람을 피우는지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다. 바람을 피우는 것은 그럴 만큼 은밀하게 이뤄지는 행위이다.

 

그래서 설령 상대가 수 년간 바람을 피웠다고 해도, 모르고 지나가면 아무 일도 아닌 것이 된다. 그런데 그것을 단지 알게 되었을 때가 문제이다.
 

그러니 잘 생각해보면, 이것은 단지 알고 모르고의 차이일 뿐일 수도 있다. 모르고 있었으면 아무런 문제가 안될 일이 알아서 문제가 된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모르고 있던 상태로 사는 것은 어떨까?

 

물론 이미 알았으니 모르는 척 하고 살 수는 없다. 그럼에도 실제적 차이는 알거나 모르거나 뿐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니고, 집에서는 계속 좋은 아빠, 좋은 엄마인 경우라면 더욱 더 혼란스러워진다.

 

상대 배우자가 도박이나 과도한 음주 그리고 가정 폭력을 행사했을 경우에는 그나마 결론을 내기 쉽다. 이 경우는 실제적으로 피해를 입혔기 때문이다. 많은 돈이 사라지고, 건강에 무리가 오며, 육체적으로 실제적인 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래에 다가올 끔찍한 결론에 대한 일종의 예비 동작이다.

 

그래서 무조건 그 사람과 헤어져야 한다. 그런데 바람을 피우는 문제는 조금 다르다. 특히나 바람 중에서는 정신적 바람도 있다. 즉, 어떤 육체 관계도 없는 상태에서 마음만 가는 상태도 있다.

 

이런 경우엔 어떤 결정을 하기가 더욱 더 힘들다. 상대가 다시는 바람을 피우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말을 믿고 그냥 살아야 할지, 아니면 과감히 헤어져야 할지 결정하기가 참 어렵다.

 

더군다나 그것이 한 번이 아닌, 두 번 이상 반복되었을 때는 더욱 더 힘들어진다. 처음 한 번은 정말로 실수로라고 믿고 어떤 식으로든 넘어가 줄 수 있지만, 두 번 이상이 되면 이것은 실수가 아니라 상습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미 언급했던 육아의 문제와 경제적 문제는 여전하다. 그러니 고민은 더욱 더 깊어진다.

 

어떻게 해야 할까?

 

상대가 자주 가벼운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비슷하다. 큰 일은 아니라서 넘어가 줄 수 있는데,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다. 상대를 계속 의심해야 하고, 무엇인가 커다란 것을 숨기고 있지 않을까 의심이 든다.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피해는 없지만, 마음이 불편하거나, 화가 나거나, 찜찜하거나, 불안한 경우에 우리는 어떤 결론을 내야 할까?

 

사실 답은 없다. 그렇지만 한 가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있다. 만약 상대의 어떤 태도나 실수로 인해서 둘 사이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다고 했을 때, 그 문제로 인해서 발생되는 가장 큰 걸림돌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 스스로 잘 생각해봐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대부분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거나 혹은 사회적으로 이미 규정된 어떤 규칙들을 위반했다고 믿어서 상대는 틀렸고 자신은 옳다고 생각해서 그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상대가 바람을 피웠다면, 결혼한 배우자는 절대로 바람을 피워서는 안 된다고 믿거나 혹은 자신을 무시해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상대가 자주 거짓말을 하면, 사람은 절대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믿거나 혹은 자신을 얼마나 쉽게 봤으면 그럴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부부나 연인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상대에 대해서 용서를 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해서 헤어짐이나 이혼과 같은 어떤 구체적인 행동도 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규칙에 얽매이거나 혹은 자존심과 관련된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상대의 행동으로 인해서 실제적인 피해를 입었다면 그리 고민할 필요가 없다. 재산의 피해, 육체적 피해를 입었다면 더 이상 고민하는 것은 단지 판단력과 행동력에 문제가 있는 사람일 뿐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그 어던 조언도 필요가 없다.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한, 답이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자신이 믿는 어떤 규칙이나 도덕적 기준으로 상대의 행동을 판단하거나 혹은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서 그런 경우라면 다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몰랐다면 아무런 문제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판도라의 상자와 같다.

 

어떤 문제가 단지 아는 것이 문제였다면, 알았더라도 모른 채 사는 것처럼 살 수 있다. 물론 불가능한 말이다. 그럼에도 이것을 참고할 수는 있다.

 

그것은 같이 살지도 못하고, 헤어지지도 못할 때 괜히 자신을 괴롭히는 것으로부터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살 것이라면 이것이 좀 더 낫지 않을까? 헤어지겠다면 그것도 괜찮은 선택이지만 말이다.

 

이것은 복잡하게 표현했지만, 사실 상대에 대한 관대함이다. 상대를 도덕적 기준으로 엄벌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가 부족하고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으로써 이해해 주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그 후 늘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 번 바람을 피운 배우자는 또 피울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관용은 한계가 있다. 물론 그 한계에 봉착했다고 느꼈다면 과감한 결정이 필요하다. 혹은 다른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경제적 주체로써 혹은 살림의 주체로써 역할만으로 제한 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부의 삶은 포기하고 사는 것이다.

 

그래서 심지어 이혼을 한 부부가 같은 집에 사는 경우도 있다. 집을 공동으로 씀으로써 주거비를 아끼고, 아이를 같이 양육하는 이점이 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고 느끼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때 부부는 동반자에서 동거인으로 바뀐 것뿐이다.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화가 난다. 그리고 화가 나면 자신이 알고 있는 다양한 명분을 끌어 들인다. 배우자가 바람을 피웠다면 배우자의 의무를 끌어 들인다. 하지만 우리가 화난 이유는 상대가 배우자의 의무를 져버려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냥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그것도 무척 상한 것이다.

 

이것은 심각한 자기 붕괴를 일으킨다. 그래서 분노는 바람을 피운 그 상대에게 향한다. 자신의 아내, 자신의 남편에게 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대에게 향한다. 이것이 우리가 도덕적 기준을 명분삼고 있다는 가장 큰 증거가 된다.

 

물론 이때도 도덕을 기반으로 한 명분을 끌어 들인다. 유부남이나 유부녀에게는 접근해서 안 된다고 하면서 말이다.

 

이것은 어느 정도 통한다. 자신의 분노와 절망을 설명할 때,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 토를 달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이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역시나 화는 나고 역시나 결정은 못한다.

 

이때 단순한 해결책을 생각해 봐야 한다.

 

그것이 바로 행복을 위한 불행이다. 이것은 학교나 직장에 나가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그 행위는 불행하지만, 그것을 하고 나면 미래의 행복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이것이 제대로 된 해결책은 아니다. 사실 배우자가 바람을 피웠다면 헤어지는 것이 가장 좋다. 단지 감당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헤어지지도 못하고 같이 살지도 못한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다.

 

어차피 헤어지지 못한다면, 괜히 더 불행해질 필요가 없다. 그냥 받아들이거나 이해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생각보다 간단히 해결될 수도 있다. 운이 좋다면 상대의 실수는 한 번으로 끝날 수도 있다. 사실 그런 경우도 꽤나 된다.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도덕과 법은 절대적 정의가 아니다. 그것은 그저 합리적 판단일 뿐이다. 이것은 지키는 것이 좋으나,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도덕과 법이 만들어진 이유 역시도 우리가 그런 성향이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아무도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면, 왜 도둑질을 하지 말라는 도덕적 조언과 법적 제약이 있겠는가? 우리가 그럴 수 있으니 그런 것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남을 위해서 자신의 전 재산이나 심장을 줘서는 안 된다는 법을 만들어 놓지 않았다.

 

그러니 조금 다른 시점에서 그런 일들을 바라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감정에 너무 매몰되지 말고, 조금 물러나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삶이란 그렇게 명확한 것이 아니다.

 

충분히 나이를 먹은 어느 날에는 자신의 옆을 지키고 있는 그 사람이 결국 최고의 사람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중간 과정 속에서 겪었던 수 많은 고통스러운 사건들은 삶이라는 전체 과정에서 잠시 스쳐간 바람에 불과함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정말로 그럴 것이다. 그러니 너무 붙잡고 살지 않아도 좋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