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가치의 소멸과 집착 - 2

아이루다 2016. 7. 15. 08:54


과거의 인간은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하면서 따로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가치를 얻어왔다. 총을 잘 만드는 가치는 그 총을 이용해서 사냥을 하는 사람의 만족도로 만들어 지고, 사냥꾼이 사냥을 하는 중 쓰이는 능력들, 탁월한 사격 실력이나, 사냥감을 쫓는 빠른 발 등은 사냥 결과물인 고기를 통해 만들어졌다.

 

그 고기는 다시 집으로 가져와서 그것을 요리하는 여자의 손을 거쳐 아이들에게 제공되는 맛있고 영양 있는 한끼 식사로 가치화 되었다. 또한 아이는 그 고기를 먹고 건강하자 자랐다. 설령 고기가 부족해서 굶는 날이 많더라도, 고기의 질이 좋지 않더라도, 총이 자주 고장이 나더라도 그 고유의 가치는 늘 유지되었다.

 

이 과정에서 단 하나도 불필요한 것이 없었다. 명중률이 좋은 총도, 가죽을 벗기는 잘 드는 단검도, 빠른 발도, 요리 능력도, 아이들이 먹는 먹을 것으로도 그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중요하고 필요한 가치였다.

 

하지만 요즘 시대엔 그런 가치들은 모두 사라졌다.

 

일단 아예 총 자체가 필요가 없다. 총이 필요하다고 해도 그것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 체제를 통해 싸고 품질은 좋지만 그저 총인 제품들이 나오고 있을 뿐이다. 이젠 총을 잘 만드는 명장 같은 존재는 없다. 칼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처음부터 사냥을 할 필요가 없다. 시장에 가면 신선하고 잘 다듬어진 고기가 즐비한데, 뭣 하러 힘들게 사냥을 한단 말인가?

 

그러니 그나마 사냥을 하는 사람들은 즐거움을 위해서 사냥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도 가치는커녕 다른 사람들에게 욕을 먹기 쉽다. 재미로 생명을 죽인다는 이유로 말이다.

 

사냥뿐만이 아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대부분은 전체의 일부로써 일한다. 즉, 방식만 다를 뿐, 긴 컨테이너 벨트에 서 있는 노동자처럼 일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전체를 다 만들 일이 거의 없다. 우리의 일은 대부분 협업에 의해서 이뤄지고 우리는 각자가 맡은 역할에 전문화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을 다른 말로 부품화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나마 현재도 의사나 소방수와 같이 남아있는 가치 존재하는 노동은 존재하지만, 이제는 그런 직업들 조차도 단지 돈을 버는 목적으로만 존재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직업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그것도 안정적인 직장으로 말이다.

 

우리는 언제든 바꿔 끼워질 수 있는 부품이며, 우리는 커다란 전체의 일부이다. 더군다나 최종 결과물인 전체는 우리들 하나 하나와는 사실상 별 상관도 없다. 또한 우리는 전체를 위해서는 언제든 버려질 수도 있다.

 

이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인간 노동 가치의 종말 시대라고도 할 수 있다.

 

현대에 들어서 이런 식으로 무너진 가치의 붕괴는,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원하는 이들에게 다양한 강도로 정신적인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이제 크게 둘로 나뉘었다.

 

첫 번째 입장은 기존의 가치를 어떤 식으로든 회복하려는 시도이다. 그래서 이들은 이제 생계 형 노동을 통해 얻을 수 없는 가치를, 노동이 끝난 후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 등을 통해 얻으려 한다. 그것은 가치를 봉사 활동을 통해 얻기도 하고, 취미 생활을 통하기도 한다. 혹은 힘든 도전을 하거나 몸을 건강하게 해주는 운동이나 등산 등을 통해 얻으려고 하는 시도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더해서 더 큰 문제는 가치의 최종 대상이 사라짐으로써 생겨나는 문제점이다. 지금이라고 해도 사냥을 통해 가치를 추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럴 때 우리는 곧잘 행위 자체 보다 거기에 필요한 도구에 대한 가치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경우가 생긴다.

 

원래 낚시는 물고기를 구하기 위해서, 사냥을 고기를 구하기 위해서, 캠핑은 안전한 잠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자전거 타기는 빠른 이동을 위해서라면 해야 하는 반드시 필요한 행위였다.

 

그런데 원래 최종 목적인 물고기, 고기, 안전한 숙박, 빠른 이동이 목적이었던 것들이 시장에 가면 즐비한 물고기와 각종 고기, 어디나 존재하는 숙박 시설, 자동차나 비행기와 같은 훨씬 더 빠른 교통 수단으로 인해서 최종 목표 자체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즉, 우리는 이제 그런 행동을 필수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흉내를 내고 있다. 낚시를 하고, 사냥을 하고, 캠핑을 하고, 자전거를 타는 것이 그저 과거 우리 조상들이 했던 행동을 코스프레 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니 남은 가치들 중에서 장비에 대한 가치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사냥에 필요한 총이 가진 가치는 최종 결과물인 고기보다 더 가치 있을 수 없다. 즉, 아무리 노력해도 고기 자체가 가지고 있던 가치가 없어진 상황은 결코 회복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결국 과도한 장비 자랑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잃어버린 가치에 대한 두 번째 입장은, 전통적 가치 추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재미와 즐거움 자체를 가치화 시켜서 추구하는 쪽으로 돌아선 경우이다. 그래서 이들 역시도 과거처럼 사냥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살기 위해서 하는 사냥과 재미로 하는 사냥은 시작부터 끝까지 완전히 다르다.

 

생계를 위해 하는 사냥은 많이 하고 싶어도 실제적으로 물리적인 한계가 있었다. 사슴을 100마리 잡을 수도 없고, 잡았다고 해서 그것을 다 옮길 수도 없었다. 하지만 재미로 사냥을 하는 경우라면 사슴을 천 마리도 넘게 잡을 수 있다. 더해서 죽이는 것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에 따로 옮길 필요도 없다. 그러니 하루 종일 사슴만 죽일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자전거를 타면 내기를 하거나 경주를 한다. 자전거를 타고 목적지까지 가는 행위는, 오직 이기기 위해서만 하는 것이다. 사실 거기에 가면 다시 힘들게 돌아와야 할 형편이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그 목적지에 갈 이유는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낚시를 해도 대회를 열고 경쟁을 한다. 사냥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식으로 경쟁이 가능한 대상은 거의 모두 경쟁적으로 변한다. 사실 캠핑 장비를 자랑하는 것도 경쟁 중 하나라고 볼 수도 있다. 다들 즐거움과 재미의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

 

물론 이렇게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재미와 즐거움으로만 접근된 행동들은 어떤 식으로 문제를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우리는 두 가지 입장을 취한다. 하나는 대안 가치에 대한 몰입, 다른 하나는 경쟁과 같은 재미와 즐거움의 가치에 대한 추종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입장 중 어떤 방식을 선택하든 상관없이,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던 가치를 온전히 되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가치를 추구하는 것 자체도 삐뚤어져서 결국 과도하게 자신의 가치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타인에게 강요하는 경우도 많고, 그로 인해서 사회 전체가 수 많은 가치 충돌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현대 기술의 발전이 가져다 준 또 하나의 문제점은 바로, 정보 통신 기술 발전으로 인한 순식간에 빠른 정보 전달 현상이다. 이것은 좋은 점도 많지만, 전 지구가 하나의 정보 체계 안으로 묶으면서 소수로 존재했던 비밀스럽고 극히 개인적으로만 유지되던 가치들이 익명성과 다수라는 인터넷 특성을 발판으로 공감을 얻으면서 음지에서 양지로 나와버릴 수 있게 만들었다.

 

즉, 즐겁고 재미만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통용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버린 것이다.

 

예를 들어서 변태적인 성행위, 타인에 대한 무차별한 공격, 그것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든 간에 상관없이 즐거움과 재미만 있다면 상관없다는 태도, 남은 시간을 오직 시간을 소비하는 목적만 가진 잉여로운 행동 등이 빠른 네트워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가 되고 공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개인적인 범위에서만 머물러야 할 것들이 익명의 다수가 모인 공간에서 공감을 받으면서 마치 그것들이 어떤 가치가 있는 냥 포장되고 있는 점이 문제이다. 그리고 이런 태도 변화는 그것을 혐오스럽게 여기는 반대 계층의 사람들을 만들어 낸다. 즉, 결국 또 다른 갈등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것 이외에도 많은 다른 요소들이 있겠지만, 아무튼 이런 문제점이 서로 복잡하게 얽히면서 아주 다원화된 가치와 아주 다양한 행동들을 하는 세상은 되었지만, 문제는 처음에 의도했던 궁극적 목표, 즉 잃어 버린 가치를 되찾은 일은 요원한 일이 되고 말았다.

 

즉, 우리는 일그러지고 오용된 태도를 가지고 살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가 왜 이렇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지 그 이유도 모른 채, 그저 사회적 흐름에 편승해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현대인들이 지금처럼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우리는 가치를 잃어 버렸다. 그래서 대안 가치에 집착하거나, 그것을 포기한 채 오직 시간을 보내는 삶을 추구한다. 하지만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에 대한 갈증은 결코 쉽게 극복될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알게 모르게 우리를 끝없이 뒤흔든다.

 

현대인의 불안, 두려움, 외로움, 고독이 모두 여기에서 출발한다.

 

여기까지를 간단히 정리하면, 현재는 과거에 존재했던 가치가 대다수 사라진 것과 새롭게 정의되고 있는 가치들에 대한 무리한 집착이 만들어내고 있는 혼돈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전통적 가치의 소멸과 새롭게 부각된 가치에 대한 집착이다.

 

이정도 배경적 특징을 인지한 상태에서 현 시대를 바라보게 되면, 사실 요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형태나 추구하는 방향이 꽤나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된다.

 

도대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왜 그렇게 판단하는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가 대부분 이해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 답은 하나뿐이다. 우리는 가치 있고 싶어하는데, 각자의 삶에서 가치를 갖기가 참 힘들어졌다. 그래서 그나마 남은 가치들에 대해서 과도한 기대치를 갖거나 혹은 그다지 가치 있는 것이 아닌 것들에게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다. 혹은 그것조차도 할 수 없어서 끝없이 불안해 하고 외로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괴로움을 피하기 위해서 끝없이 시간을 소모하려고 든다. 즉,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을 지운다.

 

가치 추구 자체를 포기하고는 세상의 모든 것을 즐거움과 재미의 요소로만 바라보려고 한다.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이 재미있으면 끝이라고 믿는다. 설령 그것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도 말이다.

 

그런데 사실 이 상황이 우리의 문명이 발전하면서 감당해야 할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이라고 설명한다면, 더 이상 생각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 문제는 정말로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할 것인가?

 

해결이 힘들어 보이는 난제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인류의 오래된  지혜를 살펴보는 것은 꽤나 괜찮은 방법이다. 즉,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지금부터 오래된 과거를 되돌려 볼 생각이다.


지금부터 동양 문화권에서 전승되어 온 중요한 철학 두 가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것은 각각 "유교" 와 "불교" 라고 알려져 있다.

 

[마지막 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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